〈 213화 〉 Somebody help me!
* * *
파앙!
폭죽이 터지는 소리.
그리고 내 앞에서 새빨갛게 물든 얼굴을 한 티타니아.
‘각이다.’
이정도면 거의 넘어왔다고 봐도 좋다. 나는 혹시 몰라 예약해놓아 뒀던 호텔을 떠올렸다.
스위트룸으로 잡아서 하루에 천만 원이 깨지는 미친 숙박시설.
근데 티타니아에게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천 만원 쯤이야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첫 경험일 테니까.
인간의 나이로 치면 9세기에 가깝게 처녀를 유지한 그녀의 첫날밤을 생각한다면, 싼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팔을 티타니아의 허리에 둘렀다. 티타니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내 손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내 품에 안겨왔다.
“호텔을 잡아뒀는데, 거기에 갈까?”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구나.”
“그렇지만 누나가 너무 예쁜걸 어떻게 해요. 누나가 예쁜 게 죄지.”
“……….”
내 말에 티타니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천의 가면으로 티타니아를 봤다. 희미한 분홍색이 조금 더 커졌다.
나는 뒤에서 티타니아를 안았다.
“싫으면 지금 말해주세요.”
“……가자. 그래,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지. 다만, 장소는 다른 곳으로 옮기자꾸나.”
“장소를요?”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 때가 되기는 했지.”
티타니아의 말에 나는 그녀가 어느 곳으로 갈지 깨달았다.
확실히 늦은 감이 있다. 그래도 세계수를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그녀가 가진 일종의 합격선을 넘었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겠지.
나는 티타니아의 말을 경청했다.
“우선 그곳에 가자.”
티타니아가 앞장서서 워프 게이트 쪽으로 향했다.
나는 티타니아를 따라갔다.
***
세계수.
생명의 나무라 불리는 이 나무는 요정족의 본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수가 죽으면 요정족도 죽는다. 그래서 세계수는 요정족이 어떻게든 보전하려고 한다.
마왕과의 일전.
요정족은 회귀자의 힘으로 히어로 아카데미 내부에 어떤 ‘세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세계수를 보관했다.
다른 말로는 우주수라고 불리는 그 거대한 나무를 다른 이들이 발견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렇게 보니 훨씬 거대한데.’
나는 위를 봤다.
하늘에 닿을 듯이 높게 솟은 나무. 그 기둥부터도 거대하기 그지없었다. 불가해한 감각과 천수를 결합하여 살펴보니 밑동 부분도 5km가 넘었다.
그리고 중앙에 있는 거대한 상처도.
마치 짐승이 손톱으로 할퀴고 간듯한 상처가 보였다. 그 부분은 마기로 번져서 검은색으로 변색하고 썩어버렸다.
자상은 거대했다. 손톱으로 가로질러진 부분만 해도 1km가 넘는다.
“저건…….”
“마왕에게 당한 상처다. 저것 때문에 요정족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머물고 있지.”
티타니아가 쓰게 웃으면서 복부 부분을 만졌다.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하다. 내 처소에 그대를 초대하고 싶어서 그렇다.”
“요정여왕님, 이분은?”
사슴의 뿔이 달린 회색빛 머리의 요정이 물었다.
“요정왕이다.”
“아, 이분이 바로…! 확실히 여왕님의 취향에 들어맞는 외모군요.”
“…….”
요정에 의해서 강제로 취향이 까발려진 티타니아.
“아, 그럼 이곳에 오신 이유는 요정왕님의 씨앗을 받으려고 오셨군요. 세계수에서 하면……읍읍!”
티타니아가 요정의 입을 막았다. 나는 못 들은 척을 하며 티타니아 뒤를 따라갔다.
“이곳은 세계수다. 요정족의 근원이자, 요정족의 모든 것이지.”
“그렇군요.”
“그리고……이곳에서 요정왕의 정액을 받아서, 세계수에 보관하면, 요정왕의 정액이 변질한다.”
“……..”
“그, 그리고 그, 그, 그걸 서, 섭취하면, 다, 다른 요정족들은, 이, 일종의 지, 진화를 하게 되지.”
티타니아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여기서 나랑 티타니아가 섹스하고 그 정액을 세계수에 보관하고, 그 정액을 요정이 섭취하면 전직을 한다는 건가.
‘이게 서큐버스 족이야, 요정족이야?’
속으로 어처구니없어 하면서, 세계수 중앙에 뚫려 있는 부분을 향해 갔다.
그곳에는 온갖 마법진들이 있었다.
“여긴?”
“일종의 워프 게이트다. 세계수의 크기는 너무 커서 일일이 돌아다니며 관리하기에는 좀 힘들어서.”
그렇게 말하며 티타니아가 마법진에 손을 대었다.
화악!하고 마나가 폭발하듯 증폭했다. 그리고 5m는 될법한 거대한 마법진이 하나 생겼다.
“들어가지.”
티타니아가 먼저 마법진 안으로 들어가고 나도 따라서 갔다.
보이는 것은 거대한 방이었다.
티타니아 내부의 처소.
싱그러운 꽃향기가 넘실거렸다.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꽃향기. 거대한 싱글 침대와 옷장으로 보이는 곳 등이 보였다. 옷장에는 옷이 별로 없네.
나는 그곳을 둘러보다가 멈칫했다. 하늘을 굽어보는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남의 남자를 빼앗는 방법이라던가, 남의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 빼앗긴 남자를 되돌리는 법, 쓰레기 남친이 섹스를 너무 잘함. 등등.
NTR과 NTL에 관한 수많은 책이 있었다.
나는 애써 모른 척을 하며 티타니아에게 다가갔다.
***
티타니아는 자신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그냥 훔쳐보는 걸로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간단했다.
요정왕이 된 이후로 이시우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갑작스레 힘을 얻은 인간은 변하기 마련이었다.
그란데힐이 주기적으로 보고서를 올리지만, 그란데힐은 이미 이시우의 여자가 된 지 오래. 그를 위해서 일부 보고를 누락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란데힐을 믿는다.
그러나 티타니아는 사랑에 빠진 요정족이 얼마나 충성하는지를 더 믿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요정 여왕을 죽인 요정족은 아직도 그녀의 뇌리에 단단히 기억한다.
이시우가 평소에 담담하게, 최대한 공정한 성격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눈으로 직접 봐야 그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혼은 포기 못 해.’
마왕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하게 되면 정말로 뒤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후세를 대비하고, 마왕을 무찌를 정예들을 만들기 위해서, 요정왕과 요정여왕은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이시우가 자신의 취향에 굉장히 들어맞는 남자이기도 했다.
성격? 좋다. 여러 여자에게 손을 벌리는 게 흠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여자라고 인정하면 굉장히 잘 대해준다. 잡은 물고기라고 소홀히 하지 않는다.
외모는 말할 것도 없다.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종족을 외모순으로 세워둔다면, 그는 가장 첫 번째에 세워질테니까.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잠재력은?
‘1년.’
그가 이곳에 입학한 지 이제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히어로 아카데미의 커트 라인에 아슬아슬했던 입학 시즌과는 다른, 완전한 상격에 올랐다.
성장세는 회귀했던 그 회귀자 이상.
그래서 티타니아는 이시우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이시우 모르게 그를 훔쳐보는 것이 양심에 쿡쿡 찔리지만, 그래도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잘못 봐서 이시우가 그릇된 짓을 한다면? 요정족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그렇기에 티타니아는 눈으로 이시우를 감시했다.
그러다가 보았다.
이시우와 은수아가 사랑을 속삭이면서 성교하는 장면을.
처음 행위를 하는 것을 봤을 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자기 것인 줄 알았던 남자가 다른 여자와 하는 광경.
처음에는 질투로 시작된 감정이었다.
그러나 그 감정은 변질하기 시작됐다. 은수아가 이시우의 정액을 삼키는 것, 이시우의 정액을 받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듯한 은수아의 표정이,
그 광경이 머릿속에서 떠나지가 않았다.
질투로 시작된 감정은 서서히 다른 감정으로 변질하였다.
나도 이시우의 정액을 받고 싶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잘해 줄 수 있는데.
서서히 변질하기 시작한 감정은 다른 감정들을 좀먹었다.
그리고 이윽고 생각했다.
‘이시우가 자신과 다른 여자랑 비교하게 한다.’
티타니아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외모?
객관적인 사실로 봤을 때, 그녀는 다른 이들보다 꿀리지 않는다. 슬랜더한 몸에 E컵에 달하는 가슴. 탄력 가득한 피부에, 조금 창백해 보이는 피부. 분위기는 어떤가? 세계수의 힘을 빌리면 그녀는 굉장히 신비로워진다.
체력은 어떤가.
삼왕 중에서는 조금 떨어지는 편이지만, 어디까지나 삼왕중이다. 현세에 머무르고 있는 인간 중에는 그녀의 체력을 따라갈 존재는 없다. 온갖 영웅들을 모아둔 협회에서 김은정보다 이름있는 존재가 있던가? 이연아라고 불리는 묘한 존재는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티타니아는 알고 있다.
이시우가 이런 최면 따위에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이시우의 고유 능력으로 추정되는 검은색의 왕관은 그의 정신을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보호해준다.
그런 주제에 나태를 단독으로 격살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냥 이것은 그냥 제스처 같은 것이다. 그녀가 말하기에는 굉장히, 굉장히 부끄러운 그런 것이기에.
애초에 부부란 서로 보듬어 주는 존재가 아닌가?
나는 이런 성욕을 가지고 있어서, 이시우에게 말하지만, 자신도 이시우가 말하면 이시우에게 받아주겠다는 제스처다.
그러니까,
“그럼 시, 시작, 하, 할까?”
티타니아가 수줍게 말했다.
***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얕보고 있던걸 지도 모른다.
9세기동안 묵은 처녀의 정욕은 세계수 근처에서 무한한 체력을 보급받는 나조차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이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