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티타니아(3)
* * *
티타니아에게 예쁘게 입고 오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다.
내가 강제적으로 약속을 잡은 것도 있고, 좀 얼떨떨한 표정이 기억나서.
그래도 혹시 몰라서 준비는 해야지. 나는 미리 지도로 봐둔 헤어샾으로 향했다.
‘……뭐 저리 비싸.’
가게 바깥에 가격이 나와 있는데 컷이 최대 50만 원이었다.
컷이 50만원?
어처구니 없었지만, 그만큼 실력이 확실할 거다.
“어서 오세요!”
들어서자마자 활기찬 인사가 들렸다.
“어머, 혹, 혹시 머, 머리 하러 오셨나요?”
“네.”
“예약하신 성함을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예약이요?”
예약까지 해야 되는 건가.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예약을 하지 않았네요. 다음에 오겠습니다.”
“자, 잠시만요!”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나를 황급히 잡았다.
“소, 손님 정도면 괜찮으실 겁니다. 대신, 사진 하나만 찍을 수 있을까요?”
“사진이요?”
어차피 협회에서 캠프를 할 때 팔려서 별 상관은 없기는 한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미쉘, 지금 손님은 없을 텐…….”
쉬고있던 여성이 미간을 찌푸렸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멍한 표정이 되었다.
“어머, 멋지신 손님이 오셨군요.”
“네, 언니! 이분이 머리 하신 뒤에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하셨거든요.”
“지, 진짜? 이, 일단 이곳에 앉아주세요.”
나는 여성이 가리키는 의자에 앉았다.
“머리 어떻게 손보시려고 오셨나요?’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
비싸니까 뭐, 알아서 해주겠지.
“그럼 댄디 커트에 펌을 살짝 줘도 될까요? 요즘 마도공학 기계가 좋아서 한순간에 가능하거든요.”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미용사가 내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사각사각기분 좋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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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디컷에서 가르마 펌에다가 웨잇한 느낌을 살짝 줬는데, 어떠신가요 손님?”
나는 멍하니 거울을 봤다.
나는 내가 잘 생긴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매일 봐서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머리 하나 바꾼다고 분위기가 확 달라졌군.’
이전이 날카로웠다면 지금은 좀 산뜻하게 바뀌었다.
여기저기서 시선이 꽂힌다.
“이제 사진 찍으면 되나요?”
“예. 예? 아, 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찰칵소리가 났다.
나는 사진을 찍고 계산을 하기 위해서 입구 쪽으로 갔다.
“얼만가요?”
“그, 그냥 가셔도 되, 됩니다. 생각보다 광고가 더 잘될 것 같아서 원장님이 공짜라고 했어요. 아, 혹시 사, 사탕 하나 드실래요?”
여직원이 막대 사탕을 하나 건네줬다. 사탕 아래에 종이 같은 것이 불가해한 감각에 잡혔다.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깥에 나와 종이를 봤다.
종이에는 번호가 하나 적혀 있었다. 번개로 종이를 태운 다음 나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머리를 했으니, 옷을 골라야지.’
옷은 백화점 가서 적당히 골랐다. 미리 그란데힐에게 추천받은 옷들로.
검은색 진에다가 위에 걸칠 검은색 코트. 안은 갈색의 니트.
한껏 꾸미고 그란데힐이 준비해준 향수를 뿌렸다. 인공 향수보다는 싱그러운 느낌이 드는 향수. 요정족이 만든건가.
주위의 시선이 거슬려서 투명화 마법으로 아카데미의 들어섰다.
“오셨……군요.”
“응. 오늘 좀 꾸며봤는데 어때?”
“산뜻한 느낌이 마치 봄과도 같습니다. 봄 신랑 컨셉인가요? 시우 님이 저희 여왕님을 이렇게 생각해주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어서 빨리 결혼식을 올릴 준비를 해야겠군요.”
“…….”
열정적인 그란데힐의 목소리.
저 정도로 흥분한 건 여장을 한 뒤로 처음 보는 것 같다.
‘결혼이라.’
솔직히 말해서 요정왕이 된 이상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는 하다.
세계수를 이용해서 다른 방법으로 생명을 잉태하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그건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
‘그리고 뭔가 내 자식이 양산되는 느낌도 들어서.’
좀 껄끄럽다.
“티타니아 님은?”
“지금 안쪽에 계십니다.”
나는 그란데힐의 말에 나는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빛의 머리카락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푸른색의 호수같은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검푸른색의 단화와 치마 끝 부분이 하얀색의 선이 그어진 검은색의 오픈 숄더 A라인 드레스.
나는 잠깐 멍하게 쳐다봤다.
생각보다 훨씬 예뻐서.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보나마나 그란데힐이 열심히 노력했을 거다. 당근과 채찍을 이용하면서 열심히 입혔겠지.
티타니아는 눈치 못 챈 것 같지만, 나는 그녀가 허름한 츄리닝을 즐겨 입거나, 요정여왕의 드레스만 입고 다니는 것을 알고 있다.
즉, 티타니아는 옷이 두벌밖에 없다. 츄리닝하고, 요정여왕의 드레스뿐이다.
내가 티타니아에게 다가가고 있는데, 티타니아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새로 바꾼 머리와 옷이 취향인가. 어쩌면 향수일 수도 있겠다. 혹은 위의 셋 전부이거나.
“진짜 예쁘게 차려입고 오셨네.”
“……그대가 이쁘게 차려입으라고 했잖은가.”
“그래서 잘했다고요.”
나는 실실 웃으면서 티타니아에게 다가갔다. 내가 근처로 다가가자 티타니아가 움찔거렸다.
“칭찬해줄까요?”
“……내, 내가 더 여, 연상인데?”
티타니아가 당황했다. 평소에 하는 쓸데없이 고아한 말투가 사라지고.
나는 자연스럽게 티타니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일단 앉아서 오늘 뭐 할지 고민할까요? 사실 저도 무턱대고 말한 거라서.”
“그, 그런가?”
“네, 그래도 오늘 티타니아 님을 보니 잘한 결정 같네요.”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티타니아가 다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
새빨갛게,
펑하고 터지면서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진짜 내성이 없으시네.’
어제 드라마를 보면서 참고하길 잘했다.
“수족관은 어떤가?”
“수족관이라…….”
나는 잠깐 고민했다. 어젯밤, 그란데힐이 추천해준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하고 여자 주인공이 수족관을 처음 갔었지.
그리고 야구장에 가서 부산 롯데 결승전에서 통합 1회 우승을 하며, 하늘에서 폭죽이 터지고 키스신으로 끝났다.
‘어떻게 꼴데가…….’
아니, 이게 아니지.
“혹시 그대가 괜찮다면, 야구를 보러 갈 생각은 있느냐?”
“꼴…롯데 야구장으로요?”
“물론. 21세기 최고의 명문구단 롯데를 빼놓고 야구를 논할 수 없지.”
티타니아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꿈이야, 생신이야.
나는 어처구니 없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초를 쳐서 티타니아의 기분을 나쁘게 할 필요는 없겠지.
“그럼 출발할까요?”
마침 오늘 경기도 있고 하니, 가도 나쁘지 않다.
***
“좋은 야구였다.”
부산의 사직 야구장.
사직은 원래 세계보다 훨씬 더 컸다. 왜냐하면, 게이트가 생겨나면서, 괴수에게 무너진 것은……아니다.
‘옛날에 어떤 팬이 각성자가 되어서 경기장을 박살 내버려서.’
터무니 없는 이유였다.
그래도 야구는 꽤 재밌었다.
전생과는 다르게, 이곳의 야구는 초인들이 하는 스포츠로 바뀌었다. 구속이 200km가 넘는 투수가 흔한 세계.
보는 맛이 있었다.
“그럼 저녁인데 슬슬 밥 먹으러 갈까요? 제가 부산 풀코스 알고 있는데.”
“좋다.”
티타니아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끄는 일은 없다. 미리 환상 마법으로 우리의 모습은 안 보이게끔 만들어놔서.
“대게 먹은 다음, 회 먹고. 입가심으로 밀면은 어때요?”
“너, 너무 많지 않으냐?”
“괜찮아요. 제가 좀 많이 먹어서.”
저녁을 먹고, 우리는 대로를 걸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불꽃놀이가 있다고 했는데.”
“불꽃놀이 말이냐?”
불꽃놀이라는 말에 티타니아가 관심을 드러냈다.
“네, 보고 가실래요?”
“그러자꾸나.”
티타니아가 여상하게 말했다. 꽤 풀어진 목소리로.
팡!
폭죽이 울려 퍼졌다. 티타니아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나는 티타니아에게 슬쩍 다가갔다. 허리에 손을 올리자 순간 움찔했다.
“누나.”
“누, 누, 누나?”
내 칭호에 티타니아가 당황했다. 그래도 싫어하지 않은 눈치였다. 티타니아가 좋아했던 드라마에서는 연하남이 연상녀에게 다가가는 거니까.
‘시청률이 잘 안 나왔는데 그건 꼬박꼬박 챙겨보시더라고요.’
가끔 그런 게 있다. 성적이 나오지 않는데도, 따라가는 사람들이.
그건 아마도, 이상할 정도로 자기 취향에 들어맞아서, 그런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누나라는 칭호를 던졌고,
‘먹힌 것 같네.’
“누, 누나라는 치, 칭호는…….”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티타니아 누나? 아니면 티타니아?”
“뭐, 뭐라고? 나, 나랑 그대는 나이 차이가…….”
“그럼 티타니아라고 부를께.”
티타니아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원래 이런건 빨리빨리 끝내야 한다. 당황했을 때, 바람처럼 확하고.
나는 티타니아를 품에 안으며 귀에다가 속삭였다.
“그럼 누나로 할게요. 누나, 오늘 누나 먹어도 돼요?”
“뭐, 뭐, 뭘 머, 머머, 먹는다고?”
“저 누나, 좋아하는데.”
“무, 물론 나도 그, 그대가 좋기는 한데.”
“그럼 허락한 걸로 알게요.”
생각했던것보다 꽤 쉽네.
***
‘뭔데.’
나는 어처구니 없는 심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상대 때문이다.
초록빛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보랏빛과 핑크빛이 교차하며 회전하는 핸드폰 화면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기대 어린 눈빛으로.
‘뭔데.’
“흠흠.”
티타니아가 낮게 헛기침을 했다. 조금 부끄러워하면서, 나를 바라보고.
“최면에 걸렸나?”
혼자 중얼거렸다. 마치, 내가 알아먹길 바란다는 식으로.
이게……이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나?
상격에 오르고, 내가 정신계와 관련된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게 티타니아다.
‘도대체 왜?’
기대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티나니아.
나는 어처구니 없어 했지만, 고민했다.
‘빠져든 척을 해, 말아?’
아주 잠깐 고민했다. 그래도 티타니아가 나한테 최면을 건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빠르게 판단하고 최면에 빠진 척, 흐리멍덩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시우는 지금부터 다른 여자랑 할 때마다 티타니아를 떠올립니다. 그, 그리고 티타니아를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을 가집니다.”
과연, 내가 여자가 많으니까 자기만 봐줬으면 해서였나.
“그, 그리고 티타니아와 서, 서, 성관계를 하면서 이시우는 그 성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티타니아 귀에 속삭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다른 여자랑 하는 것을 들으면서 하겠다는 건가?
돌겠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