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 티타니아(2)
* * *
“안녕하세요.”
나와 마주한 검은색의 눈이 싱글거렸다. 이연아가 나를 보면서 인사했다.
공손하게 허리를 90도로 굽히면서.
‘이건 익숙해지지가 않네.’
나는 이연아를 묘한 눈으로 봤다. 이연아는 저번 게이트 사건을 기점으로, 이따금 협회에 왔다.
협회에 마인들이 있다는 제보를 들어서요~
이연아는 그렇게 말하며 마인들을 숙청했다.
김하린의 말에 따르면 곧장 마인의 목을 날렸다고 했는데, 지금은 절차를 밟으면서 협회 내의 마인들의 목을 날리고 있다.
착각일 수도 있는데, 그때 승하의 어머니는 굉장히 화난 것 처럼 보여서.
김하린의 말이 떠올랐다.
화났다라.
나는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마인이 거짓된 정보를 가르쳐 주고, 게이트의 등급을 속였다.
윤승하가 위험에 처해서라고 생각해야 될까.
“흥흥~♬”
이연아가 콧노래를 부르며 양손으로 턱을 괴고는 고혹적인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명백하게 호감을 표하고 있다.
‘천의 가면으로 감정이 보이지 않아.’
굉장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삼왕이라 불리는 이들에게도 잘 보였던 특성이 이연아에게 보이지 않았다.
지식열람도 마찬가지. 나는 그녀에게서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나는 물어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유아독존을 어떻게 얻었느냐에 대해서, 천의 가면이 통하지 않는 이유도.
그리고 일월천뢰검을 쓴다는 윤승하의 말도.
“왜 그런 눈으로 절 보세요? 혹시 관심이라도 있으신가요?”
“…….”
이연아가 눈웃음을 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막 이래~.”
……장난이겠지?
설마 조카들의 남자에게 손을 댈 리는 없을 테니까. 어쩌면 조카들의 남자에게 그녀 나름대로 호감을 표시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협회 내에 수련장 쪽으로 향하기 위해서.
“오늘도 수련하실 건가요? 제가 검 좀 봐 드릴까요? 저 이래 봬도 꽤 강한 편이라서.”
“오늘도 봐주시게요?”
“네, 시간이 좀 널널한 편이라서요.”
이연아가 싱글거리며 내 옆에서 걸었다.
이연아의 말투는 묘하다. 항상 존댓말을 쓴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이연아는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느낌이 이상했다. 나를 자신보다 연장자인 사람처럼 대한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연하가 연장자를 놀리는 듯한 말투.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협회 훈련장도 꽤 쓸만하네요. 개인용이라고 해서 별로일 줄 알았는데. 저거 마나 중력장은 못해도 10억은 줘야 살 수 있거든요.”
“여기 김은정 님 개인 훈련장이라 그래요.”
“어머, 김은정 님은 생각보다 검소하네요.”
이연아가 그렇게 말하면서 훈련장을 봤다.
“김은정 님 정도 되면, 이런 거 다 쓸모 없을 텐데. 그래서 시우 오……씨에게 준 건가?”
……설마 방금 오빠라고 하려고 했던 건가.
아무튼 나는 훈련장에 비치된 검을 들었다.
“그것보다는 경파를 좀 얕게 싣는걸 추천해 드려요. 무위의 검은 일검은 정말 강력한데, 시전시간이 은근 길거든요.”
“무위의 검이요?”
“네, 상격 수준에서는 그 정도면 충분하지만, 그 윗 단계엔 시간을 준다고 해야 되나. 조만간 이시우 씨가 상격 중에서도 손 빠른 존재와 일대 다수로 싸울지도 모르잖아요~. 그럴 때를 대비해야죠. 약식으로 만든다든가.”
이연아가 키득거리면서 말했다. 묘한 확신이 깃든 말투.
나는 이연아의 말에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지금은 그냥 약식 정도로만 만들어도 충분해요. 일월천뢰검은 아직 완성할 부분이 많거든요. 오의 쪽은 아직 미숙하지만, 지금 시우 씨의 육체를 보면 한 번쯤은 견딜 수 있어 보이거든요.”
“그래요?”
“네. 근데 한 번 만져보면 제대로 감이 잡힐 것 같은데.”
이연아가 눈으로 내 몸을 한 번 훑었다.
소름이 끼치는 눈으로 보니 이연아가 조그맣게 말했다.
“농담이에요.”
히죽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이연아가 말했다.
굉장히 익숙한 웃음이었다.
***
나는 오랜만에 학교에 들렀다. 방학 중이지만, 개인적인 사유로 학교에 남아서 수련하는 이들이 보였다.
이곳은 다른 곳보다 자연의 마나가 풍부하게 머물러서 수련하기 좋다는 이유로 남아있는 학생들이다.
“오랜만이십니다.”
“응, 오랜만이네. 잘 지냈지?”
환하게 웃는 그란데힐이 나를 마중을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티타니아 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
나는 자연스럽게 그란데힐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 그란데힐이 수줍은 표정을 짓고는 내 품에 쏙 안겼다.
“그러고 보니 티타니아 님은 뭐 좋아하는 거라도 있어?”
“요즘은 걸 그룹인 레인보우 스타즈랑 네토라레에 빠졌습니다.”
……선물할만한 게 있나 물어본 건데.
근데 NTR이라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게 맞는 건가?
“아, 선물 관련 말씀이시군요. 이시우 님이 주시는 거라면 뭐든 좋아할 겁니다.”
“그래?”
나는 떨떠름하게 답하면서 아공간에서 줄 게 뭐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일단 단 걸 좋아해서 고급 양갱 몇 개와 초콜릿 몇 개를 사두기는 했는데.
“좋아하실 겁니다.”
내가 물어보자 그란데힐이 확신에 찬 어투로 중얼거렸다.
“티타니아 님은 요정족의 여왕으로 군림하시면서 온갖 선물을 받으셨습니다. 값비싼 영약부터 시작해서 장인이 만들었다는 조각상……그런 것들을 많이 받다 보니, 이제는 좀 특별한 물건이 아니면 관심도 두지 않으십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가격보다는 이시우 님의 정성이 들어간 것들을 더 좋아하실 겁니다.”
“그래?”
“예.”
확신에 찬 어투로 그란데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제 초콜릿같은거라도 만들어줘야 되나.
다음 달이 밸런타인 데이니, 만들어볼까.
“도착했습니다.”
문 앞으로 오자 나무문이 끼익소리를 내며 절로 열렸다.
“들어오라.”
묘하게 들뜬, 말투.
나는 천의 가면으로 티타니아를 살폈다. 희미하지만, 확실한 핑크빛의 감정이 솟고 있었다.
‘천의 가면이 이상이 있는 건 아니야.’
그로서 유추할 수 있는 단서는 하나였다.
이연아가 천의 가면마저 차단할 특성이 있다거나,
‘혹은…….’
“그대, 무슨 일로 방문했는가.”
티타니아가 여상하게 물었다.
“이번에 뉴스 보셨나요?”
“아, 그 일 때문이군. 거악(巨?) 중 하나인 마수 때문에 나한테 왔군.”
티타니아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거악이 움직여도 우리는 움직일 수 없다. 다만, 다들 최대한 지원을 할 거다.”
마왕과 환생자.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종의 협약을 맺었다. 삼왕은 거악을 건드리지 못하고, 거악은 삼왕을 건드리지 못한다.
거악이 먼저 삼왕을 건드리면 삼왕은 거악을 칠 수 있는 조건이고, 삼왕이 거악을 먼저 친다면, 거악들은 힘을 합쳐 삼왕을 친다.
그런 조건의 계약이었다.
‘다만 그 아래에 있는 애들은 다르지.’
삼왕을 제외한 공허족이나 용족, 요정족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괜찮아요. 다른 괴수들을 최대한 억제만 해주시는 쪽으로 가시면.”
“저번에 나태를 죽였던 그 기술을 쓰는 것이냐?”
반짝이는 눈으로 티타니아가 나를 바라봤다.
“아뇨, 그건 아닌데.”
삼신기를 불태워서 얻은 일회용 능력.
사실 그건 효율이 정말 높지 않다. 절제의 검인 엘도르가 본 모습인 성검으로 돌아갔을 때, 그 성검보다 격이 조금 낮은 아이템 세 개를 불태우는 거니까.
“일단 방법을 찾고 있기는 해요. 사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공격당해서 티타니아 님이랑 하메르 님, 에니스 님을 개입시킬 방법을 찾는 거라.”
“……그렇군.”
티타니아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걱정 마라. 그대는 요정왕이니까. 요정족은 그대를 지키기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니라.”
“그럼 하루라도 빨리, 두 분이 결혼식을 올려야겠군요.”
조곤조곤하게 그란데힐이 말했다.
히끅.
그란데힐의 말에 티타니아가 딸꾹질했다.
“……결혼식?”
“예, 이시우 님은 아시다시피 요정왕이십니다. 그리고 요정족의 강함은 요정왕과 요정여왕의 강함에 따라 달라지지요.”
“그, 그건……!”
“그 이유는 요정왕과 요정 여왕이 서로 섹스를 해서 잉태한 아이는 정말 강력합기 때문입니다. 전대 요정왕은 티타니아 한 분만을 낳으시고 사라졌으니까요. 견적이 나오지 않습니까? 고작 한 명인데 그분이 요정여왕이 되다니.”
“확실히…….”
그건 끌리기는 하다.
“굳이 여왕님이 생명을 잉태하는 형태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정예 요정족을 태어나게 하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저희 티타니아 님은 영원히 혼자입니다.”
“영원히……?”
“예, 요정 여왕은 예로부터 요정왕만이 반려자로 정할 수 있습니다. 이시우 님께서 마음이 없으시다면 그건 그것대로 어쩔 수 없지만, 지난 800년 동안 태어나시면서 쭉 홀로 지내신 티타니아 님은 영원히 혼자 지내시겠죠.”
“자, 잠깐, 그란데힐?”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인간을 기준으로 숫자를 세면 거진 9세기 가까이 솔로이신 티타니아 님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영원히 혼자이실 겁니다. 극단적으로 이시우 님이 천하에 다시 없을 추남이었더라도……여왕님은 이시우 님을 택했을 겁니다.”
“……차라리 혀를 씹고 죽을 거야.”
“어디까지 예시입니다. 그리고 이시우 님 정도면 완벽한 신랑감 아닙니까? 다시 없을 절세가인에 재능이 충만하고, 정력도 절륜합니다. 여자가 많다는 아주 조금 사소한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절세가인이라는 말에서 그란데힐의 눈이 아련해졌다.
마치 내가 여장했을 때를 떠올리는 것처럼.
하지만 결혼이라.
아직은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전생의 나이를 다 합쳐도 30이 되지 않은 나이라서.
“일단, 결혼은 너무 이르지 않을까. 요정여왕님은 나를 잘 모르는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요정여왕님은 이시우 님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언제나 이곳에서 이시우 님을……읍!”
그란데힐의 입이 닫혔다. 어느새 초록빛으로 변한 티타니아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볼은 새빨갛게 물들었고, 눈은 조금 눈물이 고여 있었다.
‘세계수와 동화했나.’
“……그래도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지.”
“맞는 말이다.”
내 말에 티타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인데, 저랑 데이트 가실래요?”
“그렇다. 요정왕도……네?”
“그럼 동의한 걸로 알게요. 내일 이 시간에 예쁘게 차려입고 오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교장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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