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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09화 (209/298)

〈 209화 〉 협회(4)

* * *

티타니아에게는 다른 이들에게 말 못 할 취미를 몇 가지 가지고 있다.

여왕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이들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소설을 본다던가, 드라마나 영화 등을 감상한다던가, 아이돌 영상을 본다던가 등.

요정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띠링.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협회의 방송인가.”

티타니아는 고아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근래 그녀는 말투를 서서히 고치고 있다.

이시우를 신경 써서이기 때문이다.

­이시우 님은 여자가 많으십니다. 그런데 여왕님은 이쁘시고 강하시지만, 이시우 님은 그런 거에 별로 흥미가 없으십니다.

그란데힐의 말이 떠올랐다.

이시우는 그런 것보다 단아하고 높은 위치에 있는 여성을 좋아한다고 했다.

사실 그란데힐은 이시우의 능력을 알고 있어서, 언젠가는 티타니아와 맺어질 것을 안다.

동화.

사물과 동화되는 아주 간단한 능력.

그렇지만 종족이 요정족이며 왕이나 여왕의 격을 가진 이가 이 능력을 갖추게 되면 말이 달라진다.

세계수와 동화되어서 주변의 절대 영역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그 전에 여자가 얼마나 생길지도 몰랐기에 그런 말을 했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바티칸에서 절제의 검이라 불리는 이를 빼 왔다.

그래서 그란데힐은 티타니아를 자극하려고 일부러 강한 말을 썼다.

한 가지를 신경 못 썼을 뿐.

‘나이 차이가 너무 심해.’

요정족은 장수의 종족이다. 용족만큼은 아니지만, 티타니아는 이미 몇 세기를 살아온 존재.

이시우는 나이 차이를 별로 따지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오, 신입. 드디어 가면을 벗는 거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협회에서 상격으로 유망한 여인, 한가인. 소환수를 소환해서 다재다능함으로 유명한 여인이다.

그 목소리를 따라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 티타니아는 당황했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새하얀 피부에 보랏빛의 눈동자와 흑발.

요정왕, 이시우였다.

“대체 왜?”

그리고 그 옆에서 윤승하가 이시우의 어깨에 턱을 괴며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다.

­신입, 우리 협회에 오면 우리가 협회 얼굴로 밀어줄게. 고속승진 따놓은 거 알지?

그 옆에 한가인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협회에 오라고 꼬시고 있다.

티타니아는 이시우가 요정왕인것을 알고 있다. 아무리 협회에서 온갖 지원을 한다고 해도, 종족 중에서도 한 손으로 꼽는 요정족의 왕이란 위치에 비할 바는 아니다.

요정왕이 되자마자, 그에 눈에 들려고 온갖 요정들이 그에게 아양을 떨면서, 선물 공세를 하고 있다.

당장에라도 지나가는 요정족에게 부탁한다면 그에게 선물을 바칠 요정족들이 한 트럭이다.

­생각해볼게요.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는 이시우. 티타니아는 채팅창을 봤다.

잘생긴 것부터 시작해서 결혼해주세요, 아이돌로 데뷔하면 안 될까요? 지갑 다 털 테니까 라는 등의 반응으로 가득 찼다.

티타니아는 괜스레 화가 나서 화면을 껐다.

그러면서 이시우를 생각했다. 이시우를 생각하자, 이시우가 다른 여자랑 성교한 것도 떠올랐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상한 느낌도 들었다. 가슴이 검게 타오른다고 말해야 할까.

이시우가 다른 여자랑 성교하는 것을 쳐다볼 때, 이시우랑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묘한 느낌도 들었다.

‘으음.’

아랫부분이 욱신욱신 거렸다.

이시우가 다른 여자랑 한 장면은 정말 충격적이었지만, 티타니아는 다른 충격도 경험했다.

내 반려가, 내가 좋아하는 반려가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한다는 사실이,

티타니아는 그것이 너무 흥분되었다.

다리를 꼬았다.

이시우도 자신에게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닐 거다. 묘하게 티타니아와 이야기할 때, 가끔 시선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느꼈다.

아주 미미한 시선. 그러나 티타니아는 초월경의 강자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그리고 그, 서, 성욕도 강하니까.’

티타니아는 학교에서 이시우가 여자들과 관계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기말고사 실기에서 치른 섬에서도 그가 여자들과 하는 행위를 봐왔다.

이시우는 조금 아쉬워했지만, 여자들이 그의 정력을 버티지 못했다.

이시우 몰래 훔쳐본다는 것이 그녀의 양심을 쿡쿡 찔렀지만, 이건 그거다. 자신의 반려가 전대 요정왕처럼 정력이 약한지 확인을 해보는 것이다.

전대 요정왕은 정력이 약해서 반려인 헬레나하고만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직접 확인한 이시우의 정력은 실로 훌륭했다. 어쩌면 고위 요정족을 대거 만들지도 모른다.

‘……그래, 이건 나를 위해서가 아닌 요정족을 위해서다.’

나이 차이가 아주 조금, 조금 많이 나는 편이지만 그래도 요정족을 위해서다. 그리고 요정족이 많이 는다면 이시우가 그토록 싫어하는 마인들을 척결하는 데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흐읏.”

티타니아는 들뜬 신음을 냈다.

***

김하린은 내 지시에 잘 따라줬다.

회의실에서 긴급상황이라고 말했던 남자를 미리 잡아뒀다고.

“다행히도 하린이가 저희한테 정보를 준 남자를 잡아둔 것 같네요.”

“근데 우리 신입은 어떻게 알았어?”

한가인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 신입을 의심하는 건 아니고. 신입은 머리가 좋잖아. 그냥 어떤 방식인지 궁금해서.”

방송을 일시적으로 끄면서 한가인이 말했다.

“뭐, 대단한 건 아닌데요. 제 특성하고 관련이 있어요. 마기 같은 것을 잘 감지한다고 해야 하나.”

실제로는 지식열람으로 상태창을 훔쳐본 것 뿐이다.

“아하, 그런 거야?”

“네. 확실하게 마인이에요, 그 사람.”

“음…….”

한가인이 내 말을 듣고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했다.

“혹시 말이야, 그 특성을 발동할 때, 좀 힘들어?”

묘한 말투로 말하는 한가인.

나는 그녀가 협회 내에 있는 마인들을 뿌리째 뽑으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건 도와야지.

“힘들지는 않아요.”

“그래? 그래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아마 협회장한테 말하면, 굉장한 보상을 줄 거야. 협회는 좀 썩기는 했지만, 그 영감님은 청렴하거든.”

한가인이 그렇게 말하며 풍룡을 소환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윤승하에게 다가갔다.

“승하야, 부탁 좀 해도 될까?”

“응, 뭔데?”

윤승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내가 부탁한다면 뭐든 들어줄 기세였다.

“이것 좀 고쳐줄 수 있을까?”

나는 달의 돌과 태양의 돌의 파편들을 보여줬다.

“저번에 줬던 관리자의 구슬로 회복하면 되는데.”

“해줄게. 내가 시우, 너한테 받은 게 얼만데.”

윤승하의 눈이 반달을 그리며 말했다. 그러면서 묘한 손짓을 했다.

오늘 끝나고 같이 하자는 뜻이다. 나는 한가인이 못 보게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윤승하가 반달을 그리며 요사하게 웃었다.

‘어차피 오늘은 승하의 날이니까.’

***

“끄아아악!”

비명이 들렸다. 협회의 일원들은 냉정한 눈으로 보면서 경계했다.

김하린을.

“이게 무슨 짓이지?”

경박해 보이는 남자, 정한석이 김하린에게 물었다.

“이 사람 마인이래요.”

김하린이 도도하게 말했다.

“……그거 하나 가지고 협회원의 팔을 아작냈다고?”

“방송에서 보셨잖아요. 뇌익조의 둥지가 아니라 익룡의 쉼터였던 거.”

“방송?”

“네, 한가인이 방송한 건데. 한번 확인해보세요. 지금까지 게이트 등급을 잘 맞췄던 협회가 처음으로 틀렸는데.”

“진짜야?”

“네. 게이트 등급이 한 단계 더 높은 A등급으로 판정되었습니다.”

심각한 사안이다.

협회는 회귀자의 동료, 관리자가 만든 기계로 게이트의 등급을 측정한다.

그것이 한 번이라도 어긋난 적은 없다. 게이트의 공략 도중이나 던전의 공략 도중에 게이트가 생겨서 겹치는 일은 있어도, 측정 자체는 가장 확실하게 했으니까.

저 남자가 마인이고, 기계를 조작했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다. 이미 그곳이 마인이 점령했을지도 모르니까.

"그것하고 저 요원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저 요원이 가장 의심스러우니까요."

자기 확신이 없는 말투. 그러고 보니 마인을 제압했을 때, 마인 이래요­라고 했었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일을 저지른 것이다.

정한석은 묘한 소름이 돋았다. 협회의 내부가 썩은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그저 심증만으로 말해둔 것을 이렇게 과격하게 처리하는 저 두 명이 무서웠다.

싱글싱글 웃으며 지팡이를 들며 마력을 끌어올리는 이지아.

그리고 도도하게 머리를 뒤로 쓸며 제압한 협회원을 견제하는 김하린.

누군가는 믿음이라고 포장할지 몰라도 정한석이 보기에는 저것은 일종의 광신도였다.

그들에게 말한 존재라는 신을 믿는.

“그래도 이건 손이 너무 과했다. 협회는 협회 내부인이 징계한다. 그것이 원칙이고.”

“내가 시켰다.”

정한석의 말에 김은정이 나섰다. 정한석은 눈썹을 찌푸렸다.

협회의 일은 협회가 처리해야 한다. 외부인의 도움을 받는 순간 권력이 조금이나마 흔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호해주는 이가 협회의 상징이라 불리는 김은정이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김은정이 시켜서 김하린이라는 이가 제압할 수 있다고 둘러댈 수 있다.

정한석이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입을 열려는 차였다.

“감히 내 아들을! 당장 저놈을 붙잡아!”

간부 한 명이 성질을 냈다. 아, 저놈이 저 개자식의 아들인가? 정한석은 눈썹을 찌푸렸다.

책상머리에 앉은 새끼들은 이게 문제다.

최상격이 지닌 힘을 제대로 모른다. 그저 영웅 중에서도 좀 센 놈들로 알고 있다.

김은정이 마음만 먹고 작정하고 멸망의 번개를 휘두르면 세계에서 안전율이 가장 높은 서울조차도 한 시간을 채 못 버티고, 폐허가 되는데.

“제가 시켰습니다.”

“김은정! 네놈이 시켰더라도 이건 협회 내부에서 처리해야 할 문제…….”

역정을 내는 간부가 말을 멈췄다.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마치 자신의 목숨을 거두려는 저승사자를 본 모양새.

“그 아이 말이 맞는 것 같은데.”

기다란 검은색의 생머리.

말이 사람들의 움직임을 멈췄다. 정한석은 처음 깨달았다.

인간이 이렇게도 무시무시할 수가 있다는 것을.

싱글거리며 웃는 여인이 들어왔다. 여인의 몸차림은 매우 가벼웠다. 김은정과 같이 주변의 신경을 쓰지 않은, 가벼운 차림새.

흰색의 박스티에 검은색의 스키니진.

압도적인 몸매라던가 아름다운 얼굴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게, 어느샌가 이곳에 와서 주변을 장악한 저 힘이 무서웠다.

‘뭐지.’

이게 인간이 지닐 수 있는 힘인가? 스카우트의 일을 하면서 정한석은 많은 인물을 보았다.

세계 전체를 뒤져서 그보다 눈이 좋은 인물은 열 손가락도 채 되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는 눈.

‘뭐지.’

그 눈이 이연아를 바라봤다.

억 단위의,

나라 몇 개 정도가 아니라 수십 개를 몰살시킨듯한, 생명들이 죽어서, 그녀의 발아래에서 신음하는 망령들을.

그리고 이시우와 같은 검은색의 왕관을 두르고, 오연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그녀는 발랄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에요, 간부님. 그동안 많이 편하셨나 보다. 마에 영혼을 팔아넘기시다니.”

“그, 그건…….”

그리고 그것은 유언이었다.

획­하고 간부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았다.

“……여전한 실력이군요.”

김은정이 신음을 하며 이연아를 바라봤다. 보지 못했다. 속도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으며, 전투에 특화된 음양안으로도 그녀의 움직임을 잡지 못했다.

“뭐, 그렇죠.”

적당히 김은정의 말에 대꾸하는 이연아는 시선을 돌렸다. 김은정은 자연스럽게 이연아의 시선을 쫓았다. 그리고 화면에서 이시우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은 멀었나.”

아쉬운 말투가 흘러나왔다. 김은정은 이연아를 보다가 당황했다.

이연아는 항상 웃으면서 생활한다. 그녀는 표정이 적다. 웃는 모습은 대부분이 가면이니까.

그래서 김은정은 이연아의 저런 표정을 처음 봤다.

마치 정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여인처럼, 이시우를 바라보는 그런 표정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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