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화 〉 협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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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마나로 바뀐 세상의 증거였다.
게이트는 느닷없이 생성된다. 그 위치가 학교일 수도 있고, 던전 위일 수도 있다.
아주 경우가 없지는 않은데, 던전 안에 게이트가 생겨서 혼합되는 광경도 있다.
5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지만, 이것으로 2학년 때 시험에서 완전히 난장판이 된다.
‘지금 윤승하나 윤채린이 있으면 문제는 없겠지.’
2학년 때 위험한 사건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자니 윤승하가 옆에서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고작 게이트 하나를 처치하는데 김은정 님이 3시간이나 걸린다고?”
“3시간은 아닐걸. 원래 공무원들이 그래. 중격, 상격, 최상격의 영웅들을 그냥 단위로만 보는 경우가 있어.”
김은정이 멸망의 번개를 제대로 다루기 시작한 시점은 최상격이다.
상격 때에 김은정이 B급 게이트를 5시간에 클리어했으니, 지금은 넉넉히 잡아서 2시간. 게이트가 생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
그렇게 해서 3시간이나 걸린다고 말한 게 아닐까 싶다.
그걸 말해주니 윤승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최상격이면 더 빨리 잡지 않아?”
“그렇지.”
윤승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가 나타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한 시간.
나는 아까 전, 지식열람으로 살펴본 김은정의 능력치를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김은정이라면 글쎄. 넉넉히 잡아도 십 분이면 끝나지 않을까.
“그런데 하린이는 안 데려와도 돼?”
“하린이가 있으면 좋지.”
뇌익조(??)는 문자 그대로 번개의 날개를 지닌 새들이다. 번개속성을 지녀서 김하린의 광익으로 흡수가 가능한데다가 공중전까지 가능하다.
나는 아까 전, 회의실에서 떠들던 남자가 떠올랐다.
“뇌익조의 던전이라면 말이야.”
“뭐?”
반문하는 윤승하. 나는 핸드폰으로 문자를 꾹꾹 눌러서 보냈다.
“뭐야, 신입들이잖어!”
한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에 몸이 구름으로 이루어진 새가 둥둥 떠다니며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방송 중인가. 카메라 모습을 틀어서 우리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가면 쓸래?”
“가면?”
나는 천의 가면으로 여우 가면을 작성했다. 그걸 얼굴 위에다가 썼다. 아직 얼굴 팔리기는 좀 그래서.
“나도 여우 가면으로 만들어줘.”
“응.”
윤승하에게 똑같은 가면을 만들어 주자, 윤승하가 그것을 소중하게 받으며, 품속에 넣었다.
“……?”
“신입들, 여기서 뭐 해.”
“게이트 처리하려고 나왔습니다.”
“아, 지금 B등급 게이트 그거?”
한가인이 활짝 웃었다.
“혹시 말이야, 이 선배의 위엄을 보고 싶지 않니? 겸사겸사 촬영도 하고.”
“좋죠. 대신 저는 가면만 쓸게요.”
한가인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대로라면 거절했어야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나는 카메라를 봤다. 게이트 내에서도 작동되는 카메라. 마법과 과학이 융합된 마도 공학인 탓에 더럽게 비싸지만.
“그럼 신입들 인사해 줄 수 있어?”
“인사요?”
“응, 여기 카메라에 대고 인사해주면 되는데.”
“그래요? 이렇게 하면 되나?”
윤승하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카메라 옆에 있는 채팅창이 주르륵 올라갔다.
[헐, ㅁㅊ존예 은발남 ㄴㄱ임?]
[눈나 설마 지금 우리 두고 바람 피는 거야?]
[가능가능가능가능]
채팅창이 아우성이었다.
민심이 나쁘지는 않네.
[근데 저 가면남 누구임?]
[가면 써서 얼굴은 모르겠는데 존잘의 기운이 보이는데?]
[어떻게 보임?]
[저 비율 봐봐. 저건 무조건 존잘임.]
내 얘기도 많이 나왔다.
[저거 이시우 아님?]
[이시우? 그 이시우? 지금 상격 최연소라고 난리 난 그 이시우?]
[ㅇㅇ척추나 비율 보니까 저거 이시우같은데?]
척추나 비율로 사람을 맞춘다고?
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빨리 출발하죠.”
“그럴까. 거리도 좀 아슬아슬하니까.”
우리는 게이트 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한가인의 소환수인 풍룡을 타고 갔다.
“신입, 이름 언급해도 돼?”
나는 채팅창을 힐끔 봤다. 아까 전 척추나 비율 등을 언급한 유저를 기점으로 나를 이시우라고 확신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인터넷 진짜 무섭네.
“네, 뭐. 눈치챈 분들 많은 것 같으니까.”
“시우, 인기 정말 많다.”
윤승하가 내 왼쪽 어깨에 턱을 기대며 말했다. 향긋한 라벤더 냄새가 났다.
“뭐야, 신입들. 둘이 왜 그리 친근해.”
한가인이 눈을 반짝이며 윤승하를 바라봤다.
채팅창을 힐끔 보니 전우애니, 윤승하 정도면 가능이라느니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윤승하는 여잔대.’
당연히 가능이지.
나는 가면을 벗었다.
“오, 신입, 드디어 가면 벗는 거야?”
한가인이 내 얼굴을 힐끔 보며 말했다.
“몇 번 보는 거지만, 정말 엘릭서가 따로 없는 얼굴이네.”
나는 채팅창을 힐끔 봤다.
순간 채팅창이 멈췄다. 뭐지.
“이거 고장 난 거에요?”
“어? 아닌데.”
한가인의 말이 끝나자 채팅창이 주르륵 올라갔다. 나도 보는 게 조금 버거울 정도로 빠르게.
대충 보니까 결혼해달라느니 하는 채팅들이 넘쳤다.
“신입, 우리 협회에 오면 우리가 협회 얼굴로 밀어줄게. 고속승진 따놓은 거 알지?”
한가인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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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룡의 쉼터(A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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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식열람으로 바라봤다.
주변을 둘러봤다. 초원이 펼쳐진 풍경이 있었다. 이건 운이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익룡의 쉼터는 나도 많이 다녔으니까.
[뭐임? 뇌익조의 둥지 가는 거 아니었음? 왜 초원임?]
[초원 필드는 와이번 나오는데 아님?]
한가인의 표정이 굳었다. 윤승하는 꽤 창백한 표정이 되었고.
B급 던전이라도 윤승하 혼자서도 어떻게 해서든 통과할 수 있을 거다.
A급 던전은 상격을 최소 3명은 모아야 한다.
‘얼추 맞다.’
윤승하는 중격이지만, 상격에 필적하는 중격이다. 나도 상격 중에서 대인전으로 따지면 최상급이다. 단기 결전에 특화되어 있어서 문제지만.
한가인도 상격에 막 들어와 있다.
“익룡의 던전이네요. 협회에서 잘못 파악했을 리는……없겠네.”
한가인이 진중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방송에서는 큰일이니 뭐니 하면서 떠들고 있다.
‘운이 좋네.’
나는 천천히 장비를 점검했다. 문제가 있는 부분은 없다.
게이트나 던전 유물을 토해내는 미궁이나 탑은 보통 세 가지의 형태로 나뉜다.
보스가 단독으로 있는 곳, 보스와 일반 몬스터들이 있는 곳, 일반 몬스터들이 있는 곳.
익룡의 쉼터는 익룡이라 불리는 몬스터 홀로 존재하는 곳이다.
보스만 단독으로 존재하는 스테이지. 나는 기린검을 빼 들었다.
“당장 협회에 연락해서 지원병력을 파견…….”
“운이 좋네요.”
“뭐?”
“익룡의 쉼터는 익룡 혼자만 있거든요.”
나는 요정왕의 장막 내에 있는 아공간에서 두 개를 꺼냈다. 뇌단. 그리고 태양의 돌.
“그리고 제가 단기결전에서 워낙 강해서. 이렇게 되면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안 해도 되겠네요.”
까득.
뇌단을 씹어 넣었다. 저 멀리서 바람에 둘린 무언가가 이쪽으로 향해 오는 게 보였다. 거리가 1.4km 정도 되니까 한 5초 안에는 오겠군.
태양의 돌을 부쉈다.
그러자 태양의 돌에서 뜨거운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승하야. 버프 좀.”
“어.”
윤승하가 마법으로 나에게 버프를 주었다. 온갖 보조마법이 걸린다.
우웅!
기린검이 비명을 토했다.
태양의 돌까지 쓰니, 무리가 가는 것 같다. 나중에 윤승하에게 맡긴 치유의 돌로 내구도 좀 회복해야겠는데.
일월천뢰검
일식무위의 검.
태양으로 벼린 벼락이 하늘을 갈랐다. 10m에 달하는 익룡의 몸 한가운데에 붉은색의 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반으로 갈라지며 익룡의 주검이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
나는 나지막이 탄성을 질렀다.
이렇게 되면 익룡의 시체를 쓸 수 없는데.
“……운이 안 좋군.”
“…….”
내가 우울하게 말하자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한가인이 나를 바라봤다.
***
윤승하가 가진 고유 능력.
세계의 운명.
이것으로 윤승하는 자신의 본모습을 감춰야 했다. 그것이 지닌 페널티가 바로 윤승하의 수명을 낮추기 때문에.
그러나 아무리 윤승하라 하더라도, 그녀보다 윗줄에 있는 고수들로부터 이목을 모두 숨길 수는 없었다.
고작 눈매를 날카롭게 올리거나, 나른한 표정을 하여도, 그녀의 얼굴은 여성에 가까우니까.
세계의 운명은,
거대한 재능이다. 자신의 어머니, 이연아의 말에 의하면, 세계 자체가 자신에게 운명을 떠맡긴 케이스라고 했다.
윤승하가 자라면서, 그녀의 고유 능력도 진화했다.
그리고 마침내 10살이 넘었을 무렵에는 그녀의 윗줄에 있는 존재들은 그녀를 볼 때 그녀의 재능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눈이 좋은 영웅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감각이 좋은 영웅들은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게 했다.
윤승하라는 존재가 가진 재능이 너무나도 거대한 탓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진짜 정체를 눈치 챈 것은 최상격 중에서도 가장 높은 김은정이나 초월경에 오른 삼 왕 정도.
다른 이유도 있다. 윤승하가 가진 재능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몇 가지 안전장치가 있다.
그것이 바로 최상격의 인물들조차도 그녀를 ‘소년’으로 밖에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능력이다.
윤승하는 지난 생애 동안 여자로서의 부분을 억눌러 왔다.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은 이연아와 그녀의 언니인 윤채린이 전부.
‘좀 어색한데.’
윤승하는 거울 속의 모습을 바라봤다. 가장 먼저, 찬란한 은발이 보였다. 단정하게, 여성스럽게 잘린 단발이 보였다.
옅은 화장으로 부드럽게 만든 눈매. 지나가는 사람 전부가 다시 고개를 돌릴 외모의 미소녀가 보였다.
‘으음.’
윤승하는 괜스레 어색해서 머리를 매만졌다. 어색하다. 이렇게 여성스럽게 꾸며본 적이 없어서.
‘있기는 했는데.’
아주 어렸을 적의 일이었다. 일곱 살. 만으로 다섯 살인 나이 때. 치마를 입던 동성 친구가 부러워서 치마를 입고 싶다고 이연아에게 떼를 썼을 때.
그리고 이연아가 없을 때, 치마를 몰래 입고 바깥으로 나갔을 때였다.
그리고 윤승하는 지독한 감기에 시달렸다. 당시에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윤승하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것이 두 번째’라는 소리를 어렴풋하게 들었던 것 같다.
윤승하는 조용히 거울을 바라봤다.
하얀색의 치마를 입고, 그 위에 푸른색 니트를 입었다. 가슴이 패인, 그런 옷. 영혼까지 끌어모은 상태에서 윤승하는 어색하게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이건 입지 말아야겠다.’
윤승하는 생에 처음으로 좌절감에 휩싸였다. 굉장히 냉정하게 말해서 이제 B컵으로 올라간 윤승하의 가슴크기는 작지 않은 편이다. 평균값을 낸다면 오히려 높은 수치.
그러나 주변의 여인들이 가진 가슴 크기가 너무 말이 안 됐다.
가장 먼저 윤채린부터나 자신을 싫어했던 임나연, 김하린도 전부 D컵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지아는 어떤가. 만져보지 않았지만, 윤승하는 처음 그녀의 가슴을 봤을 때, 가슴에 압도당했다.
난생 처음이었다. 재능이 충만한 그녀는 압도당했다는 단어를 체감하지 못했다.
윤채린에게 대련으로 몇 번 진적은 있지만, 그것은 윤승하가 선택과 집중으로 마법과 정령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근데 엄마는 분명 큰데.’
그녀의 엄마인 이연아는 컸다. 이지아보다는 작지만, 비교 대상이 이지아다. 그녀 정도면 정말 큰 게 맞다.
윤승하는 자신의 나이를 떠올렸다.
성장기는 지났다.
즉, 가능성은 이미 없다는 뜻.
윤승하는 괜히 자신의 가슴을 바라봤다. B컵. 작은 것은 아닌데. 정말 작은 것은 아닌데.
괜히 갑자기 울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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