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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07화 (207/298)

〈 207화 〉 협회(2)

* * *

방송이라.

나는 잠깐 생각해봤다.

여름방학 전, 1학기 말 축제에서 여장하고 노래 부른 것이 인터넷에 퍼졌었다.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내 사진이 음지에서 슬금슬금 퍼져 나갔다. 그래서 일본에서 나를 알아본 사람이 많았던 거고.

튜브에 올린 영상 하나로 그랬다.

‘이건 거절할까.’

유명해지면 좋은 점도 있지만, 단점도 크다. 내 행동 하나하나에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니, 은밀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일단 내가 얼마나 강한지 세상에 드러난다. 그렇게 되면 협상을 할 때 쉽게 쉽게 할 수 있다.

나는 고민했다. 내가 강한가 약한가로.

‘아마도 내 현재 강함은 최상격 끄트머리랑 해볼 만 할 텐데.’

상대가 마인이고, 성검까지 장착한다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빠르게 생각을 마쳤다.

‘하지 말자.’

“죄송한데, 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한가인은 쿨하게 다른 애들한테 물어봤다.

“아참, 신입 친구들은 어때? 오늘은 원래 부서로 이동하면 되지만, 이 누나가 생떼 쓰면 문제없어.”

“저도 얼굴 팔리는 건 싫어서…….”

윤승하가 내 쪽으로 슥­다가오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그럼 신입 나, 먼저 갈게. 있다 봐~.”

한가인이 손을 흔들며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꼬맹이, 그럼 부서로 갈까?”

“네. 근데 지아나 승하 하린이는 어디로 가요?”

“음…….”

붉은 빛과 푸른빛의 오드아이.

김은정이 그 태극안으로 다른 애들을 살폈다.

“다들 훌륭하군. 당장 실전에 투입해도 문제가 없겠는데.”

김은정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거기다가 은발 꼬맹이…조만간 상격에 오를지도 모르겠군.”

김은정이 윤승하를 보고 말했다.

“일단 부서로 가지. 다들 혹시 보고 싶은 곳이나 가보고 싶은 곳이 있나?”

“저는 시우랑 같이 다니고 싶은데.”

윤승하가 슬쩍 내 옆으로 오며 말했다.

“어머.”

계단에서 내리는 한 여성이 보였다. 기모노를 입은 단아한 여성.

“한국에서 유명한 전우애가 바로 저런 거군요.”

“……전우애라, 과연.”

김은정이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나와 윤승하를 바라봤다.

……김은정이 생각하는 그 단어는 아닌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 저는 김은정 님의 팀원으로 일하고 있는 요시무라 유키나라고 합니다.”

유키나가 고아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다들 오늘 협회에 체험하러 오신 분들인가요?”

“예. 이쪽은 윤승하라고 해요. 그리고 이지아랑 김하린이에요.”

“아, 윤승하 씨는 알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정령 왕자님으로 유명하거든요.”

“……정령 왕자님이요?”

“예. 아, 한국에서는 조금 낯선 별명이죠? 저희 일본이 그런 별명을 좋아하거든요. 왕자님이라던가 공주님이라던가. 이시우 씨는 참고로 미소 짓는 공주님이에요.”

나는 왜……?

아니, 그것보다 미소 짓는 공주님은 대체 뭔 소리야. 나는 어이없는 얼굴로 유키나를 바라봤다.

“일본 애들이 좀 얼빠 기질이 있지. 얼굴 잘 생긴 애들 있으면 일단 왕자님이라고 짓고 본다. 아마 그래서 꼬맹이들이 그런 별명이 생긴 것 같다.”

“근데 왜 시우가 공주……아.”

윤승하가 낮게 탄성했다.

“그럼 슬슬 출발하도록 하지. 근데 꼬맹이들. 너희 너무 붙어있는 거 아닌가?”

김은정이 의아한 어투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음, 이건 그런거에요, 전우애?”

슬쩍 웃으며 윤승하가 내 어깨에 팔을 걸쳤다. 어깨동무였다. 은근슬쩍 볼을 붉히며.

“…….”

윤승하가 남장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지아와 김하린은 그저 입을 벌리며 멍하니 쳐다보았다.

“어머어머.”

유키나가 조신하게 입을 가리면서 나랑 윤승하를 바라봤다.

눈을 반짝거리면서.

그러니까 그런거 아니래도.

***

우리는 협회 위쪽으로 올라갔다.

“구 북한인 함경남도 쪽에 괴수 무리 확인! 철새 변종으로 추정됩니다!”

“지금이 언제인데 구 북한이라는 단어를 써? 그쪽에 지원을 갈 수 있는 영웅들이 누구 있지? 최소 중격으로 두 명, 하격으로 열 명만 구해서 시민의 안전을 우선시하도록!”

“수원 쪽에 암석 거인 던전이 확인되었습니다!”

“길드에서 연락해서 대충 클리어 하라고 해! 잠깐, 그러고보니 거기 창천 길드 쪽이었지? 거기에 의뢰해!”

협회는 떠들썩했다.

북한까지 통일된 통일 한국까지 협회가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떠들썩하네요?”

“네, 요즘 들어서 괴수들의 출현이나 마인들이 등장하는 빈도가 매우 높아져서요. 협회에서도 인원을 모집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마인들을 걸러내는 작업을 해야 하다 보니까, 좀 오래 걸려서 이렇게 됐어요.”

유키나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혹시 이 중에서 협회에 바로 들어오시고 싶으신 분들은 제가 슬쩍 말해주시면 돼요. 여러분들은 학생이지만……그래도 김은정 님이 인정하신 만큼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신 분이실 테니까요.”

“은발 꼬맹이는 힘들걸? 걔는 다른 길드들이 탐내는데, 이시우 군을 우리가 데려와서 사이가 틀어질지 모르니까 말이야.”

경박한 남성의 목소리.

정장을 입은 금발의 남성이 모습을 보였다. 단정해 보이는 정장을 입었음에도 얼굴의 표정 때문에 경박해 보였다.

“안녕, 친구들. 나는 협회 스카우트 소속인 정한석이라고 한다. 다들 잘 부탁해.”

싱글싱글 웃는데 묘한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데.

‘정한서?’

정한서와 비슷한 생김새였다. 탁한 금발이라서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형제인가.

“내가 스카우트 소속에서는 왜?”

“은발 친구에게도 굉장히 관심이 많지만, 여성분들에게도 관심이 있어서요.”

“죄송해요. 남자친구가 있어서요~.”

이지아가 싱글거리며 말했다.

“저도 남자친구가 있어서요.”

김하린이 도도한 어투로 중얼거리며 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슬쩍 팔짱을 끼웠다.

“음, 그 관심이 아닌데. 혹시 협회에 일할 생각이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해달라는 건 무리겠군.”

이지아와 김하린이 차분한 눈길로 바라보자 정한석은 포기했다.

“그럼 나중에라도 협회에 관심이 생기면 말만 해줘. 바로 최고의 조건으로 대우해주지. 돈은 무리지만 권력은 줄 수 있는 게 협회거든.”

껄렁하게 다음에 보자­라고 인사하고 사라지는 정한석.

“그럼 저희는 담당 부실로 갈까요.”

“그러고 보니 김은정 님은 어떤 담당이세요?”

윤승하가 물었다.

“저희는 재해 대응 부실이에요. 한가인 님이나 김은정 님은 모두 협회에서도 손에 꼽는 무력이 있어서요. 진짜 위험하다 싶은 일이 아니면 어지간하면 나가지 않아요. 만약을 대비해서요.”

“만약이요?”

“음. 마인 쪽에서 협회를 안 좋게 보는 사람이 매우 많거든요. 마인 뿐만 아니라 길드에서도요.”

“아, 들었어요. 협회가 던전들을 관리해서 부당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근데 어쩔 수 없어요. 옛날에 회귀자 님이 등장하기 전까지 다들 던전 하나를 두고 전쟁을 벌일 정도로 분위기가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 회귀자 님께서 협회를 만드시고 길드들을 통제한 거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자니 어느새 담당부실 쪽으로 도착했다.

“그럼 미팅 전에 다들 마시고 싶으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저는 커피로 부탁할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그럼 저도 아아로 부탁할게요.”

“저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나는 늘 먹던 걸로.”

김은정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늘 먹던 핫초코에 초콜릿 얹고, 휘핑크림까지 얹어서죠?”

“…….”

김은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볼이 붉은 것을 보니 창피한가 보다.

“그럼 다들 우선 앉도록. 미팅은 화상연결로 한다.”

김은정의 말에 우리는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윤승하가 내 왼쪽에. 이지아가 내 오른쪽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는데 김은정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꼬맹이들. 내가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겠다.”

묘하게 들뜬 목소리로 김은정이 컴퓨터 화면에서 아이콘 하나를 클릭했다.

“우선 이걸 누른다. 그러면 저절로 화상 채팅으로 연결되지.”

김은정이 그렇게 말했으나, 화면은 까만 화면만 나왔다.

“……?”

“크흠.”

유키나가 헛기침을 하며 내 앞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오고, 옆에서 마우스를 잡아서 오른쪽 채널에서 [협회 미팅]이라고 쓰인 곳을 눌렀다.

“아…….”

김은정이 묘한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자 화면에서 회의실 같은 곳이 나왔다.

“이제 미팅 시작이다. 다들 잘 보도록.”

그러나 김은정의 말대로 미팅이 시작되지 않았다.

“긴급상황! 긴급상황!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B등급 게이트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뭐?!”

“게이트 분석으로 이름은 뇌익조의 둥지라고 합니다!”

“지금 협회에 머무르고 있는 상격 중에서 뇌익조를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있지?”

“한가인 님하고 김은정 님입니다!”

“김은정 님은 안돼! 게이트 한번 공략하는데 최소 3시간이다!”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떠들썩하게 변했다.

“긴급상황이네요. 여기서는 보통 저희가 처리하는데 지금 한가인님이 안 계셔서 좀 걸릴 것 같은데.”

“꼬맹이. 가능하지?”

김은정이 나를 봤다.

“네, 뭐 저 혼자 될 것 같은데요.”

“그럼 저기 은발 꼬맹이랑 한번 가봐라.”

“그럼 이 아메리카노 얼음이 녹기 전에 갔다 올게요.”

내 말에 김은정이 피식 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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