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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05화 (205/298)

〈 205화 〉 요정왕(2)

* * *

목요일.

수요일까지 연휴가 끝나고 다시 학교 수업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바티칸에 오셔서 또 여자를 늘리셨군요.”

그란데힐에게 바티칸에 있던 일에 대해서 말했다.

엘도르는 근처에 있는 수도원에서 의식주를 해결한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격의 위치에 있는 인물을 데려온 격이어서 거취 문제는 우리가 해결하는 게 맞았다.

“……뭐, 어쩌다 보니.”

“잘하셨습니다.”

그란데힐이 난데없이 칭찬을 했다.

“절제의 검, 엘도르. 마를 척결하는데 가장 앞서는 인물이라고 들었습니다. 무력도 뛰어나며, 신실하신 분이기도 하시지요.”

그란데힐이 엘도르에 대한 칭찬을 늘렸다.

“어떻게 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하셨습니까?”

“……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설마 엘도르 님이 힘을 잃으셨습니까? 바티칸에서는 순결을 중요시하는데.”

“아니, 신성력은 잃지 않았어. 오히려 여신님이 허락해줬다는데.”

“………………………………네?”

그란데힐이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데힐이 저렇게 당황하는 것은 또 드문 일이다. 하지만 진짜다.

“엘도르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리고……진짜로 그녀가 순결을 잃었어도, 힘을 잃지 않았고.”

“…그렇습니까?”

“응.”

혹시 여신님까지 꼬셔 버리신 건가. 아니, 설마 신이라는 존재가 얼굴에 넘어가지는 않았을 테고.

그란데힐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근처 요정에게 지시했다.

“루니엘, 당장 7월의 단장을 불러서 숙소 하나를 만들라고 하세요. 아, 절제의 검님께서 원하시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니, 혹시 그분이 언제 오시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일단 급한 대로 내가 살던 집에 머물게 했거든.”

“이시우 님의 집에서 말입니까?”

집이라고는 해도 거의 기숙사에서 생활하기에 방치된곳이다.

“그렇습니까?”

조금 부러운 표정을 짓던 그란데힐이 표정을 다시 무표정하게 바꾸고는 고개를 숙였다.

“응. 바로 물어볼게. 아마 금방 올걸.”

나는 바로 엘도르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히어로 아카데미 교수 부지로 올 수 있어?

­엘도르 : 예, 용사님!

“바로 온다네.”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목요일.

수업이 끝난 다음 나는 교무실에서 호출이 왔다.

티타니아의 호출 때문이다.

무슨 일이지.

여러가지 상상이 들었지만, 가장 큰 건 역시 요정왕에 대해서다.

티타니아는 내가 요정왕이 된 뒤로 멀리서 힐끔거리며 바라보거나, 내가 말이라도 걸면 갑자기 급한 볼일이 생겼다고 도망친다.

‘그래서 요정왕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지.’

요정왕의 정확한 권능을 모르겠다. 그란데힐에게 물어도 그란데힐도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그나마 유용하게 쓰고 있는 건, 요정왕의 장막이다.

평소에는 교복이나 옷으로 변환시켜서 쓰며, 아직 써본 적은 없지만, 내 목숨이 위급할 때, 꿈꾸는 요정의 화원이라 불리는 스킬도 가지고 있다.

이것만으로 나는 현재 거악들조차도 손쉽게 손을 댈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거다.

‘만약에 거악이 손대면 손대는 대로 이득이지.’

마왕과 삼왕이 맺은 협정.

마왕측은 삼왕을 건드리기 힘들고, 삼왕도 거악에게 먼저 손을 대기 힘들다.

하지만 내가 있으면 큰 변수가 된다. 뭐가 되었든, 나는 현재 삼왕 중 요정족을 이끄는 수장과 동격이기 때문이다.

‘이걸 이용해서 최소한 거악 두 년놈은 조진다.’

마음 같아서는 가장 까다로운 용이나 혁월을 조지고 싶지만, 그 두 년놈은 요정족을 멸망시킬 가능성을 지닌 괴물들.

그 두 년놈은 조금 시간을 두고, 윤채린과 윤승하를 키워서 잡는 것이 옳다.

‘이연아를 동원할 수 있을까?’

이연아만 있어도 용이나 혁월을 치울 수 있다. 다만 흑시에 있던 이연아의 태도가 걸렸다. 혁월과 싸울 수 있었음에도 묘하게 싸움을 꺼렸던 그 태도가.

“오셨군요.”

교무실에 당도하자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그란데힐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한쪽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수녀복을 입은 엘도르도.

“엘도르도 왔네?”

“네. 아무래도 바티칸에서 왔으니까, 그에 관한 이야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용사님은?”

“나도 교무실에 호출이 와서.”

­들어오라.

평소와는 다른 자못 신비스러운 음색이었다. 끼익­문이 저절로 열렸다.

싱그러운 풀냄새가 향긋하게 코끝을 스쳤다.

그 속에서 티타니아가 보였다.

연둣빛으로 빛나는 눈동자와 머리카락. 그녀의 능력, 동화를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평소와는 완벽히 다른 모습이다.

히키코모리 같은 모습이나, 나와 눈을 마주치면 딸꾹질을 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한 종족의 수장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모습이었다.

바티칸에서 온 엘도르에게 요정족 수장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꿀꺽.

엘도르가 긴장한 모습이 보였다. 나도 평소에 모습을 알고 있음에도 티타니아의 모습이 어색했다.

“절제의 검. 우리 아카데미에 온 것을 환영한다.”

“예. 바티칸의 검이 요정족의 수장인 티타니아님을 뵙습니다.”

티타니아가 자연스럽게 하대했다.

엘도르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티타니아는 현기가 가득한 눈으로 엘도르를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약간의 당황이 깃든 눈으로 나를 살폈다.

“……?”

티타니아의 눈을 떠올렸다. 대부분의 것을 꿰뚫어보는 눈.

……뭘 봤길래 저런 눈을 하는 거지.

티타니아는 느긋하게 테이블 올린 손에 턱을 괴었다. 자뭇 신비스러웠다.

“……그대들을 이런 곳으로 부른 이유를 다름이 아니다.”

티타니아가 여상하게 말했다. 나는 당황했다.

천의 가면으로 아주 미약하게,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져서. 그러나 다른 감정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랐다.

불꽃이라고 표현이 더 정확한 감정.

불길한, 검은색의 불꽃.

그것이 티타니아 속에서 보였다.

“협회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절제의 검. 그대가 한국 협회에서 행동하고 싶다면 협회에 간단한 신고를 하면 된다.”

티타니아의 말에 나는 의아했다.

협회에서 공문이 내려오기는 했을 거다.

근데 그게 굳이 티타니아가 해야 할 말은 아닐 텐데.

“알겠습니다.”

엘도르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카데미에 머무르고 싶다고?”

“예, 마침 이곳에서 빛의 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기에, 여왕께서 허락하신다면, 그곳에서 머물러 볼까 합니다.”

빛의 신.

신성력을 가진 천신이다. 그저 그녀를 믿는 것으로 신성력이라는 신령한 힘을 내려준다.

마력에 반발하는 성질이 강해서 극소수의 인원들만 배우고 있다. 요정족은 외부인에 민감한 편이지만, 신성력은 예외다.

‘히어로 아카데미에 이득이니까.’

신성력은 회복과 저주 해제 부분에서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힘이니까.

“허한다.”

티타니아가 입을 열었다. 엘도르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리고 잠깐 곁눈질로 나를 바라봤다. 같이 있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라는 표정.

묘하게,

티타니아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대.”

티타니아가 나를 바라봤다.

“협회에서 일을 배우고 싶다고 했지?”

그것때문에 물어본 건가.

나는 진로를 협회로 잡았었다.

협회에서 일하면서 김은정에게 여러가지 배우면서 협회에 있는 썩은 물들을 도려내기 위해서.

그러나 요정왕이 되고, 신성력을 얻은 지금은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다.

세계수의 마력을 받으면 가만히만 있어도 체력 능력치가 복사되고, 요정족들의 특징인 자연 마법도 배우고 싶다.

‘거기다가 신성력도 배울 수도 있고.’

엘도르.

그녀가 나한테 신성주문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그리고 아카데미에는 펜릴의 힘을 받은 김시연이랑 봉관의 무녀인 사나에도 키워야 하고.

협회에 갈 이점보다는 이곳에 남아 전력을 키우는 것이 더 좋다.

다만, 협회에서도 특히 썩은 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회에 들어가기는 해야 한다.

‘그래서 그란데힐에게 부탁했지.’

히어로 아카데미와 협회를 같이 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예컨데 직업 체험 같은 느낌으로 먼저 협회에 들어가는 것이다.

“일단 직업체험 같은 느낌으로요. 협회에 김은정 님에게 신세를 진 것도 있고, 그분한테 배워야 할 것도 있고요.”

“…….”

티타니아가 나를 바라봤다.

천의 가면으로도 아주 미약하게 느낄 수 있는 질투가 섞인 눈빛으로.

‘질투하는 건가?’

설마 이름을 언급했다고?

“……그대들을 위해서 선물을 준비했다. 절제의 검은 아카데미에 머무를 것을 결정해서, 그리고 이시우……학생은 아카데미에 남아줌을 감사해서 선물을 주겠다.

짝.

티타니아가 가볍게 손뼉을 치자 두루마리가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천 년 동안 요정족들이 모아온 보물들이 잠들어 있지. 하나를 가져갈 것을 허한다.”

티타니아가 말하자 나는 눈을 빛냈다.

‘방어구.’

영약은 아직도 넘쳐난다. 티타니아에게서 뜯어낸 세계수의 나뭇가지랑 용왕이 준, 아직 마시지 않은 여의천주.

무기가 부족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기린검은 여전히 잘 써먹고 있고, 샛별의 영광이라는 창도 있다.

거기다가 얼마 전에 엘도르의 주인이 되면서 여차하면 성검으로도 쓸 수 있고.

실피드의 증표로 바람을 묶거나 탈 수 있어서 액세서리도 필요 없다.

‘방어구가 필요해.’

영웅들이나 빌런, 괴수들과의 싸움에서는 대부분의 공격이 방어구를 웃돈다.

그래서 방어구는 동격과의 싸움에서는 일회용이다.

‘한종우가 워낙에 특이한 거지.’

걔는 상격에 오르면 최상격의 일격마저도 버틴다.

최상격에 오르기 직전에는 김은정이 담은 멸망의 번개도 막는다.

걔도 언제 한번 손봐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저는 방어구로 고를게요.”

“방어구는 저 작품이 좋습니다. 옛날 티타니아님이 입고 계시던 건데…….”

그란데힐이 옆으로 달라붙어서 이것저것 설명했다.

나는 지식 열람으로 훑어보면서 그란데힐의 설명을 들었다.

***

나는 방어구 하나 골랐다. 엘도르도 방어구를 골랐다. 손목에 차고 다니는 건틀렛 형태의 무기.

“그럼 가볼까요?”

“아, 저는 티타니아 님한테 용무가 있어서. 먼저 가세요.”

“아닙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엘도르가 완고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오래 이야기할 것 같아서 그래요. 마법 때문에.”

“요정여왕에게 마법을 배우시다니.”

과연 용사님.

엘도르가 나지막이 감탄하며 성호를 긋고는 밖으로 나갔다.

“저도 가보겠습니다. 밀린 일이 많아서.”

엘도르가 나가자, 그란데힐도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제 이 방에는 나와 티타니아 단둘 뿐이다.

“여왕님.”

“무엇이지?”

티타니아가 여상하게 말했다.

얼굴을 조금 붉히면서.

“요정왕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겨, 겨, 겨, 결혼에 대, 대해서 무, 묻고 싶은 것이냐? 아, 아직 우리는 마,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 무, 물론 나, 나는 싫지 않지만…….”

티타니아가 빠르게 말했다.

결혼이라니. 아, 그렇군. 요정족들이 요즘 그 이야기에 대해서 말이 많기는 했다. 하루라도 빨리 왕이랑 여왕이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결혼에 대한 게 아니라, 요정왕에 대해서 묻고 싶어서요. 요정왕이 되었는데, 정작 요정왕에 대해서 잘 모르겠더라고요.”

“아, 그 이야기군.”

티타니아가 조금 실망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요정왕의 권능은, 음…….”

티타니아가 입을 열려다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다.

“그,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걱정 마세요. 오해하지 않아요.”

“……그래, 그대는 요정족이 어떻게 태어나는 지 알고 있나?”

“자연에서 태어나는 거 아닌가요?”

“그것도 일부 맞는 말이지. 다만 강력한 요정들은 조금 다르게 태어난다. 강력한 요정들은 요정왕과 여왕의…번식 행위에서 태어난다.”

“……그렇군요.”

그러니까 그란데힐 같은 요정은 요정왕과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다는 거군.

“기본적으로 세계수의 백업이라던가, 장막에 내장되어있는 스킬인 꿈꾸는 요정 화원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모든 요정족을 호출할 수 있는 기능, 그리고 상대방과 서, 성행위로 저, 정액을 머, 먹거나 자, 자궁 쪽에 바, 받게 하면 상대방의 성장을 촉진하는 능력도 있지.”

알고 있는 내용이다.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지? 나는 그런 시선으로 티타니아를 바라봤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다. 세계수의 백업을 받는 요정왕은 무한한 체력을 가진다.”

“……설마.”

“그렇다. 세계수의 영역 내에 있다면, 그대는 지치지 않을 것이다.”

설마 난 요정왕이 아니라 인큐버스의 왕이 되었던건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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