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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04화 (204/298)

〈 204화 〉 요정왕

* * *

“내 생각에는 말이야.”

윤채린이 잠깐 고민에 잠긴 표정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시우, 네가 쓴 게 아무리 생각해도 원류 같거든.”

“원류?”

“응. 네가 만든 검법은 네 몸에 가장 잘 맞는다고 해야 되나. 뭐, 시우, 네가 만든 무공이니 당연한 소리지만.”

“……그러네. 가끔 엄마가 보여준 검법은 뭔가 억지로 맞춘듯한 느낌이 들었기는 했어.”

“억지로 끼워 맞췄다고?”

“응. 나는 그게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

나는 잠깐 이연아에 대해서 떠올렸다.

멸망의 용사.

이세계에 소환되고 나서 이윽고 한 세계를 멸망시킨 용사를.

‘천의무봉(Ex­).’

이연아를 상징하는 그녀의 특성이다.

무공이든, 마법이든 그녀는 가장 완벽한 형태로 구현한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고유 능력은,

‘천태만상(Ex­).’

Ex­의 등급을 두 가지나 가진 이연아는 대인전에 특화되어 있다.

만약 윤승하나 윤채린이 없다면, 마왕을 물리칠 사람 중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이연아이니까.

무신이라 경외 받는 혁월조차도, 당장 이연아와 붙으라고 하면, 승산을 점치기가 어렵다.

‘대인전에서 이연아는 거의 무적이지.’

만약에 이연아가 지닌 고유능력이 천태만상이 아니라 천상천하 유아독존였다면, 윤채린이나 윤승하가 나설 것도 없이, 그녀 손에서 마왕이 죽었을 거다.

‘너무 이상한데?’

나와 이연아의 접점은 없다. 흑시에서 이연아와 한번 눈을 마주친 게 끝이니까. 이연아와 나의 접점은 없다시피…….

‘……아니, 없지는 않군.’

나는 그 ‘탑’에 대해서 떠올렸다.

게임 내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입장조건이 없고, 맵도 구현이 안 되어서 DLC로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던 탑이.

아이템으로 탑에 대한 설명이 어느 정도 있어서, 유저들 사이에서 추측으로만 존재했다.

‘만약 예상대로라면…….’

“근데 원류가 이시우라면 엄마는 대체 어디서 배운 거지? 아니면 능력이 비슷해서, 원류에서 가져온 게 비슷해진 건가?”

“능력이 비슷하다고?”

윤채린의 말에 나는 의아했다.

이연아가 갖춘 능력은 천태만상일텐데.

“응. 네가 머리에 쓰고 다니는 그 왕관 같은 거.”

윤채린의 말에 나는 멈칫했다.

“……유아독존?”

“엉. 엄마도 그거 있더라.”

나는 당황했다.

유아독존을 이연아가?

“진짜로?”

“어, 진짜일걸? 검은색 왕관은커녕 능력을 발동하면 왕관이 나타나는 능력은 나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으니까.”

왕관이 나타나는 능력은 하나 더 있기는 하다.

유아독존의 능력과 정반대되는 하얀색의 왕관이.

“……확실해? 진짜로 너희 어머니가 그 능력을 갖추고 있어?”

“응.”

내 물음에 뭔가 심상찮음을 느낀 듯, 윤채린이 표정을 굳혔다.

유아독존은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그전에 한가지의 조건을 충족해야 된다.

유아독존의 존재를 알고 있어야 할 것.

그러나 유아독존은 게임 내에서 김시연만 가지고 있던 능력이다.

그리고 일월천뢰검.

그렇다면 유추할 수 있는 결과는 하나였다.

***

초승달이 떠있는 밤.

나는 학교 부지에 있는 정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 했던 이야기마저 하고 싶은데 정원으로 ㄱㄱ?]

윤채린의 문자 때문이었다.

몇 걸음 걷자, 윤채린이 붉은색의 츄리닝에 검은색 돌핀 팬츠를 입은 채, 벤치에서 다리를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헬로.”

히죽­하고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윤채린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달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금색의 머리를 뒤로 묶어 넘김 포니테일.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윤채린이 나에게 다가왔다.

“네가 좀 찝찝해하길래, 우리 엄마……아니, 이모에 대해서 말해주려고.”

“이모?”

“엉. 승하는 이모를 엄마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우리 엄마는 따로 있거등.”

그렇게 말하면서 윤채린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런 거 말해줘도 돼?”

“뭐, 네가 남도 아니고. 내 신랑이 될 몸인데 당연하지.”

윤채린이 그렇게 말하며 슬쩍 내 눈치를 봤다. 아주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나도 조금 찝찝한 부분이 있거든. 정보도 별로 없고. 시우, 넌 머리가 좋고, 아는 것도 많으니까, 도움받고 싶은 것도 있고.

윤채린은 사진 한 장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두 명의 여학생이 V를 그리며 서로 나란히 찍은 사진.

마치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둘은 비슷했다. 이렇게 보니 알겠다. 윤승하와 윤채린이 누구를 닮았는지.

“우리 이모는 말이야 우리 엄마와 정말 잘 맞았나 봐. 둘은 아카데미에서도 찰싹 달라붙어 있을 정도였다고 하더라고.”

“그래?”

“응. 히어로 아카데미가 설립되기 전에 원래 다른 학교였다는 거 알지?”

“어. 한국에서 만든 사립 기관이라고 했지? 신분을 따지는 굉장히 귀족적인 학교.”

히어로 아카데미가 들어서기 전에 고등 육성 학교라는 기관이 있었다.

“그 학교에서 어느 날, 우리 엄마랑 이모가 동시에 실종됐다고 하더라고. 우리 엄마랑 이모를 포함해서 총 다섯 명이 흔적도 없이 증발한 미스테리한 사건으로 분류되었지.”

푹­한숨을 쉬며 윤채린이 말했다.

“이 이야기는 나도 잘 몰라. 그란데힐에게 물어봤다가 들었거든.”

윤채린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사라진 다섯 명. 그들의 신분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당시 현직 대통령의 아내로 들어간 집안의 딸, 그리고 당시 길드에서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간부의 아들과 정계에 막강한 권력을 지닌 국회의원의 아들이 같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정계에서도 온갖 영웅들을 파견해서 그들을 찾으러 갔다.

“그런데도 누구도 찾을 수 없었다 하더라고. 심지어 상격에 도달한 탐색가 마저도 찾을 수 없다더라.”

그리고 그들 전부 반 년간의 탐색 끝에 결국 실종이라고, 단정을 지었다.

“그 사건 뒤로 약 2년 후, 이모가 지구에 나타났어. 우리를 데리고 말이야.”

이연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실종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채찍과 당근을 들고, 반 협박하다 시피 이연아에 대해서 추궁했다.

“그리고 전부 박살을 내 버렸지. 우리 이모는…정말 강하거든. 어지간한 초월경도 대인전으로 따지면 상대도 안 될 정도로 말이야.”

윤채린이 동경 어린 시선으로 잠깐 하늘을 바라봤다.

“아, 이야기가 잠깐 샜는데, 아무튼 우리 이모는 귀환자라고 하더라고. 이계라고 불린 데서 말이야.”

“……그래?”

“응. 그리고 이모만 거기에서 왔어. 나도 다른 사람들 왔냐고 물어봤는데, 이모는 그냥 미안하다고 말했어. 다만, 복수는 정말 완벽하게 했다 하더라고.”

복수라.

나는 어처구니 없는 스케일에 헛웃음을 지었다.

복수를 위해 세계를 멸망시켰다라.

“아마……내 예상이지만, 엄마는 정말 심한 짓을 당한 것 같아. 이모는 그때 정말 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거든.”

“그래?”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윤채린은 자아가 강하다. 동정한다 해도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내 태도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인지 윤채린은 씩­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뭐, 솔직히 말해서 한번 만나서 물어보고 싶기는 한데, 그래도 이모는 우리를 지금까지 키워줬거든. 조금…이 아니라, 굉장히 많이 험하게 굴렸지만.”

윤채린이 갑자기 안 좋은 기억이라도 났는지, 조금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나는 잠깐 상상했다. 저 윤채린의 안색이 어두워질 정도면 도대체 뭘 한 거지?

“아무튼 내 이야기는 이게 끝이야.”

“그렇군.”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복잡했다. 이럴 때 유아독존이 있다면, 빨리빨리 정리될 텐데.

“일단 채린이 네가 원하는 건, 너희 어머님의 행방이지?”

“거기까지 바라지는 않아. 어머님을 한번 뵈고 싶기는 하지만, 아마 돌아가셨을 테니까. 그냥 그 사건에 대해서만 좀 알고 싶은 거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요정족에서 현재 가장 관심 있는 화재는 하나다.

­과연 요정왕님과 요정여왕님이 언제 결혼할것인가.

요정족이라 불리는 일족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다.

요정왕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요정족의 강함이 달라진다.

거기다가 당대의 요정왕은 무려 인간이다.

일각에서는 요정이 아니라 요정왕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지만, 요정들은 그 말을 무시하는 분위기.

요정족이 아니라면 더 환영이다.

요정은 일평생 자신과 함께할 반려자를 정한다. 그 반려자와 평생을 함께할 것을 맹세하고, 반려자와 같이 있다면 온갖 능력치가 오른다.

그러나 저 능력은 심각한 리스크가 있다.

반려자가 죽으면 남은 요정이 미쳐버린다는 것. 그것으로 요정왕을 잃은 요정족들은 인간이 요정왕임을 오히려 환영한다.수명의 문제쯤은 세계수가 가진 생명의 힘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번 요정왕 님께서는 어마어마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

검은색 단발을 한, 카니에가 조잘거렸다.

이시우가 막 요정왕이 되었을 때에 장면을 봤던 카니에는 이미 그를 신봉하고 있다.

“인간의 나이로는 이제 약관. 이제 막 성인이 된 요정왕님의 무력은 상격중에서도 최상위권.”

하나하나 정보를 적을 때마다 경악스럽다. 이게 과연 같은 생물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하다.

요정족은 인간보다 길게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이 가지는 강렬한 욕구는 없다. 그래서 요정족은 인간과 비교하면 그 성취가 더디다.

그걸 고려한다 해도 이시우의 성취는 너무나도 비정상적이다.

“그러니까 요정왕님이 되셨지.”

카니에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보고서 작성을 끝냈다. 모든 내용이 요정왕인 이시우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카니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이기도 했으니까.

그런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요정여왕님이 어서 요정왕님과 결혼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아주 어쩌면 요정왕님이 자신에게 은총을 내려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카니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란데힐에게 갔다.

“확실히 이시우 님에 대한 과도한 찬양이 있지만, 일리가 있는 내용이군요.”

그란데힐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요정왕이 탄생한 지 한 달.

그러나 요정여왕인 티타니아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시우가 여성과 하는 행위를 관음했지.

‘슬슬 위험할 때인 것 같군요.’

티타니아를 멈출 때가 온 것 같다. 이러다가 관음이라는 이상한 성벽이 생긴다면,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

그리고 이상한 매체에 익숙해진 티타니아라면…….

‘어쩌면 NTR이라는 이상한 성벽에 눈을 뜰지도.’

그란데힐은 티타니아의 컴퓨터에 잠들어있던 폴더를 떠올리고는 조용히 보고서를 품에 챙겼다.

하루라도 빨리 티타니아가 이시우와 결혼하는 것을 서두르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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