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01화 (201/298)

〈 201화 〉 신께서 만드신 성유물을 드시고 가실래요, 용사님?

* * *

혈마를 놓치고, 검마의 목을 아공간에 소중하게 보관한 엘도르와 함께 바티칸으로 향했다.

“곧 기도시간인데 용사님도 같이 참가하실래요?”

엘도르가 조용하게 물었다.

기도시간이라. 바티칸의 기도시간이라면 매우 특별하다.

급한 임무나 순찰 등을 제외한, 바티칸에 거주하는 인원들이 대부분 모이니까.

평소라면 친해지기 위해서 기도하러 갔을 거다.

‘침대에 눕고 싶어.’

조금 전 검마와 싸우고 무리해서 마인들을 쓸어버린 여파로 몹시 피곤했기 때문이다.

‘유아독존의 쿨타임 여파가 생각보다 큰데.’

너무 유아독존에 익숙해졌다. 유아독존이 있을 때는 컨디션을 유지해줘서 회복도 빨랐는데.

“아까 전 검마와 싸울 때, 무리해서인지 지치네요. 조금 쉬고 싶네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혹시 부상이라도 당하셨나요?”

“아뇨,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다만, 첫 번째 일격으로 상대를 혈마와 검마를 공격했을 때, 그 여파라고 해야 할까요.”

엘도르가 눈에 띠게 당황했다.

“괘, 괜찮으신 건가요?”

“네. 그냥 휴식만 좀 취하면 되는 일이라서요.”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는데, 목소리가 피곤한 끼가 있었다. 음, 가면을 써야겠는데.

“그럼 숙소를…아, 혹시 저희 집에서 머무실래요?”

“집이요?”

나는 의아했다.

절제의 검, 엘도르는 절제라는 단어가 그대로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다.

의식주 모두 바티칸에서 해결하며 끼니마다 겸손하게 먹는다.

상격이라고해서 다르지 않다. 가장 높은 자리인 교황이나 겸손하는 자 마저도 그렇게 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성력이 늘기도 하고.’

“집, 이라고는 해도 물려받은 것이거든요. 제가 훈련만 해서, 어린 나이에 그렇게 하는 게 안타깝다고 저를 봐주는 양부모님이 계셨는데, 그분들이 집을 물려주셨어요.”

“……아, 그렇군요.”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가족 같은 존재가 죽었다고 해서 동정받으면 기분이 나쁠 수 있을 테니까.

“아, 제가 말을 조금 잘못 했네요. 제 양부모님은 아직 정정하시거든요. 미국에 있는 슈퍼볼에 당첨돼서 한국 원화로 수백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받아서요.”

“…….”

“아무튼 그래서 양부모님이 남겨주신 집이 있는데, 거기에 회복에 탁월한 아티팩트가 있거든요.”

무상하게 엘도르가 말했다.

마치 내 걱정만을 한다는 듯이.

천의가면으로 살펴보니 묘한 감정들이 보였다. 조그맣던 분홍빛의 감정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저건 성욕인데.’

당황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며 나는 담담하게 행동했다.

“괜찮습니다. 이래도 회복과 관련된 특성이 있어서, 하룻밤만 쉬면 되는지라.”

세계수의 정기를 얻으면서 얻게 된 능력, 대지의 활기.

땅을 내딛는 것으로 마력이나 활력 따위를 보급해줘서 진짜 침대에서 얌전히 잠만 자면 금방 회복된다.

“그, 그래도 보, 보답으로 뭘 해드리고 싶은데.”

“그러면 나중에 밥 한 끼 사줘요.”

“밥 한끼요?”

천역덕스럽게 말하자 엘도르가 눈을 빛냈다.

“확실히 용사님의 말은 일리가 있네요. 비록 가장 큰 해충은 박멸하지 못했지만, 해충 박멸을 한 용사님을 위해서 제가 밥을 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엘도르는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가려고 했다.

“엘도르.”

조용하게 엘도르의 이름을 부른 겸손하는 자가 없었다면.

“겨, 겸손하는 자 님?”

“네. 보아하니 기도 시간 전에 훌륭하게 임무를 끝마친 것 같군요. 카르마가 는 것을 보니.”

그렇게 말하며 겸손하는 자가 나를 힐끔 봤다. 그리고는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는 감탄 어린 미소를 지었다.

“대단하시군요. 선의 카르마가 늘었습니다. 보아하니 상격 중에서도 완숙한 상격을 잡으시고, 다른 한쪽은 크게 부상을 입힌 것 같은데. 엘도르 어땠나요?”

“해충을 박멸하는 성전에서 검마와 혈마와 만났습니다.”

“검마와 혈마를요?”

한순간에 눈이 날카로워졌다.

“네. 보고서를 작성해서 따로 올리겠습니다.”

“……제가 실수했군요. 이시우 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선 쉼터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조치 하겠습니다. 라딘. 빛을 담은 휴식처로 이시우 님을 안내하도록.”

“예.”

15세 즈음으로 보이는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빛을 담은 휴식처.

문자 그대로 성력을 있는 대로 때려박아서 마(?)와 관련된 부정한 자가 아니라면 몸이 젊어져서 나온다고 하는 곳이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나는 소녀를 따라가면서 몸을 점검했다.

몸은 피곤하고, 정신은 노곤했다. 당장에라도 침대에 누워서 뒹굴고 싶은 심정.

그러나 검마와 싸우면서 얻은 결실 때문에 머릿속으로 되새김질했다.

검마와 싸우면서 얻은 것은 꽤 많았다.

일월천뢰검에 보완할 점도 있고.

‘월식이 너무 자폭기 같은 성향이 강해.’

월식을 쓰면 무조건 유아독존을 써야 한다. 상격 두 명을 한순간에 전투불능으로 만든 공격력은 놀라운 수준이지만, 천영의 꽃과 같이 써서 부담감이 심했다.

‘위력을 약화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면 굳이 천영의 꽃을 쓸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일월천뢰검의 오의. 이대로 못써.’

일식과 월식을 만들면서 만든 오의.

월식보다 부담이 훨씬 심하다. 실제로 써보지는 못했지만, 유아독존을 사용한 상태에서 써야 된다.

‘영약을 먹어서 체력을 올리면 되기는 한데.’

상격에 오르면서 직감했다. 지고의 영약이라도 영약빨을 슬슬 받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수의 나뭇가지와 여의천주. 아직 그것을 먹지 않았지만, 이게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해야 된다.

“도착했습니다.”

상념에 잠기며 소녀를 따라가자 어느새 한 건물에 도착했다.

“여긴가요?’

“예. 그리고 겸손하는 자 님께서 이시우 님은 언제든 이용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또 한, 원하는 성물 같은 것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준다고 언질을 주었습니다.”

소녀가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언질이 아니라 문자가 아닌가.

“저는 안까지 들어서는 게 허락되지 않아서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휴식처에서 너무 떠들지만 않으면 대부분 행위는 문제없을 것입니다.”

소녀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어디론가 향했다. 나는 가볍게 나무문을 열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좋네.’

황금빛으로 빛나는 사과나무.

그 아래에 벤치 몇 개가 있고, 중앙에는 분수대가 하나 있다. 성유가 흐르고 있는.

들어오자마자 몸이 회복된다. 체력이 가파르게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상태창을 점검했다.

이름 : 이시우

근력 : 33

민첩 : 41

체력 : 39

마력 : 32

고유능력 : 유아독존

특성 : 지식열람(S+), 천수(S+), 천의 가면(S), 하늘을 굽어보는 눈(S), 불가해한 감각(S), 오버로드(S), 태극지체(S), 변강쇠(A+)

능력치가 소소하게 올랐다. 나는 변강쇠를 바라봤다.

변강쇠.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데에 큰 영향을 준 특성이다.

‘만약 이게 없었다면…….’

중간에 복상사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변강쇠와 유아독존으로 겨우겨우 살아갔으니까.

‘슬슬 진화할 때가 되었는데.’

변강쇠는 어떤 기준을 채우면 색즉시공이라 불리는 능력으로 진화한다.

기본적으로 오버로드처럼 능력치에 능력을 더해주는 것이지만, 가장 좋은 점은 능력치들이 서로 시너지를 내게 해준다.

내 능력치 중 가장 높은 민첩의 성장치가 조금 둔화하는 대신 낮은 능력치의 성장을 가속한다.

‘색욕을 조절하면 되는 거라 금방 올릴 줄 알았는데.’

나는 잠깐 내 생활을 돌이켜 봤다.

‘바티칸에 오기 전에 일요일. 시험의 마지막 날이라 자제해서 윤채린 혼자. 토요일 오전에는 이지아랑 은수아. 오후에는 그란데힐. 밤에는 임나연과 김하린. 새벽에는 윤채린 혼자서…….’

나는 차근차근 새어보다가 깨달았다.

시험 둘째 날을 제외하고 나는 항상 모두와 했었다는 것을.

‘……용케도 살아 있었군.’

변강쇠에 힘에 감탄하다가 내 쪽으로 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용사님!”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엘도르가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 피로는 좀 괜찮아지셨나요?”

“예. 빛의 휴식처란 곳이 정말 좋은 곳이네요.”

“그렇죠? 가끔 해충들을 잡다가, 부상당했을 때, 이곳에서 쉬면 힘이 솟는다니까요?”

“……정말 주책이야.”

엘도르의 옆에서, 릴리의 소녀가 중얼거렸다. 엘도르는 못 들은 척을 하며 내 옆에서 말했다.

“제가 이곳으로 오면서 식당을 하나 알아봤거든요.”

“자매님. 저도 배가 몹시 고픕니다.”

엘도르의 말에 릴리의 소녀가 갑자기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베풀면 그것이 훗날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요.”

“빛의 신께서 가라사대. 그러나 함부로 먹을것을 탐하는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보다 먹을 것을 채집하는 법을 가르쳐 주라 하였습니다. 자매님, 내일 같이 해충들을 구제하러 따라오시겠습니까?”

엘도르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릴리의 소녀, 엘리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10일 동안 물과 퍽퍽한 흑빵이나 간이 없는 감자를 먹으면서 마인만 잡으라고……?”

10일동안 간도 안 한 감자랑 흑빵만 먹는 건 심하긴 하네.

“그럼 가시죠, 용사님.”

엘도르가 싱긋하고 웃었다.

***

밥을 먹고 난 후, 저녁.

“흥~흥~.”

나는 엘도르를 힐끔 보았다. 흥얼거리면서 성가를 흥얼거리는 엘도르.

나는 문득 엘도르의 심정을 헤아려봤다.

마인들을 퇴치한 행위였지만, 어찌 되었든 엘도르는 마인을 잡는 행위를 데이트라 여기고 그 끝으로 밥을 먹었다.

‘음…….’

뭔가 익숙한, 장면인데.

“오늘 겸손하는 자 님에게 허락을 받았어요.”

“허락이요.”

“예, 제가 성검으로서 용사님을 보필해도 된다는 걸요.”

“…….”

그걸 허락해 줬다고?

“성검의 기능은 제가 용사로 인정한 사람한테만 가능해요.”

“그렇군요.”

“예, 정의를 위한 마음, 소외된 자를 긍휼히 어기는 마음. 그리고 마를 대적하겠다는 굳고 단단한 의지.”

“그렇군요.”

“…….”

조용히 엘도르가 나를 바라봤다.

“성검은 말이죠. 성검과 사용자가 친밀할수록 강한 힘을 발휘해요.”

“그렇군요.”

홍조를 띄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오늘 저희 집에 오실래요?”

“집이요?”

“예. 성검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해드릴게요.”

조금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엘도르가 말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