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 성물(4)
* * *
일월천뢰검(?月?雪?)
월식(月?)
영천(氷?)의 리.
이윽고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쩌저저저저저저적────!!
엘도르를 제외한 모든 것. 폐공장은 물론 같이 있던 마인들. 그리고 이시우를 향해 돌진한 검마와 혈마까지.
얼굴에는 경악이 서린 표정을 한 채 얼어붙었다.
“요, 용사님 이건 대체……! 일단 혈마를 끝내겠습니다!”
엘도르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검을 휘둘렀다.
목표는 혈마.
엘도르의 전투본능이 그녀를 이끌었다. 지금은 마를 척결하는 전쟁이다.
쩌억─.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입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피로 이루어진 뾰족한 송곳니. 그것이 엘도르의 검을 막았다.
아주 잠깐, 혈마의 목을 노리는 성검이 멈칫했다.
그 잠깐 사이에 혈마의 눈동자에 핏빛의 기운이 감돌았다.
아타락시아.
혈마의 음성이 퍼졌다. 혈마, 홍유화가 영언(?)을 통해 말했다.
화악!
그리고 순간적으로 마력이 팽창했다. 홍유화의 고유능력 아타락시아.
허공에서 핏빛의 온갖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핏빛의 이빨, 핏빛의 검날, 창등 따위의 무기들. 그것들이 수십, 수백 개를 넘어서 엘도르의 검을 막았다.
아타락시아의 능력이었다. 능력이 지속하는 순간, 일정 이하의 마력이 드는 주술들을 트리거 없이 사용한다.
핏빛의 불꽃이 피었다. 그것이 빠르게 냉기를 녹이고 있다.
‘느리군.’
홍유화는 얼음이 녹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자신과 검마를 얼려버린 냉기. 심상치 않다고 느꼈지만, 직접 태우니, 생각 이상이다.
‘거기다가 홍옥도 썼고.’
홍옥.
그녀의 생명력을 담은 옥. 조금 전 이시우가 날린 무시무시한 검으로부터 주인을 지키기 위해 홍옥에 담긴 생명력을 다 썼다.
‘3초면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3초라.
홍유화는 그 생각을 하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홍옥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이 일검에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위력이었다는 뜻이다.
이시우가 시전한 검법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냉기를 녹이기 전에 엘도르가 공격할 것이다.
“성검, 착검.”
엘도르가 조용하게 읊었다.
번쩍!
황금빛의 검신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모든 것을 태우는 성검.
홍유화는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 저건 기다려주지 않았다.
황금빛이 홍유화의 주술들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보다 빠르게 엘도르가 검을 휘둘렀다.
직후, 홍유화의 목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
“후우.”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영천의 리를 막은 검마를 바라봤다.
‘……힘들군.’
전신이 탈력감으로 넘쳐흘렀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다.
‘일월천뢰검은 강하지만.’
그만큼 반작용이 확실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위력은 만족스럽다. 오버로드와 천영의 꽃만을 썼음에도 이 정도라면.
‘상격에서는 무조건 통해.’
그런 확신이 들었다.
나는 숨을 거칠게 토하는 검마를 바라봤다.
“……무서운 놈.”
검마는 내 검이 뻗어 나가는 순간 발 빠르게 대처했다.
호신강기를 한순간에 수겹을 겹치면서, 검으로 천영의 꽃을 막았다. 그리고 마지막의 순간 반투명한 검이 검마에 앞에 나타나서 대부분의 충격을 막았다.
그 결과 검마는 그럭저럭 멀쩡한 상태.
“쿨럭!”
검마가 죽은 피를 토했다.
그럭저럭 멀쩡한 상태도 아닌가.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을 들었다.
‘검령인가.’
보니까 떠올랐다.
개념, 검령.
사용자의 의지를 따르는 한 자루의 검.
검마는 주인공이 어떤 루트를 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검령은 보통 주인공이 강해질 때 타는 루트였다.
게임을 할 때 저걸 얻고 싶어서, 남캐만 하던 걸 윤채린으로 플레이할 때가 있었다.
‘너무 좋아보여서.’
그리고 나는 윤채린으로 쓰레기라 불리는 검 트리를 타면서 검령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얻은 검령은……상상이하였다.
검령이 나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다만, 윤승하나 윤채린이 얻은 개념이 검령과 비교하면 검령이라는 개념이 너무나도 손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령에 대한 건 알고 있다.
‘이기어검.’
일종의 이기어검이다. 그 안의 담긴 힘은 이기어검 수백 자루에 해당하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고작 이기어검 수백 자루다.’
그렇기에 검령은 상격이 가지는 개념 중에서도 꽝에 해당했다.
검마가 가지는 검령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수라마검이라 불리는 특성 때문이다.
검령을 수라마검이라 불리는 검으로 재탄생시킨다.
기교파이면서도 온갖 능력에 대응하기에 검마는 굉장히 까다롭다.
윤채린과 싸우면 마검이면서도 마를 집어삼키는 탐마의 검을, 정령사인 윤승하와 싸울 때는 정령의 힘을 집어삼키는 흡령마검을.
“너, 정말 상상 이상이구나. 고작 1년 만에 상격에 들어섰다고 믿어지지 않을 성취야. 거기다가 상격에 들어선지 한 달도 안 된 놈이.”
우웅!
검마가 쥔 검령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조금 전의 그 일격. 숨겨둔 한 수였지?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냉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상격에 들어선 네가 나한테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크흐흐, 이상한 소리를 지꺼리는군. 네놈은 네놈이 뭘 생각하든 간에 그것보다 더 유명하다. 일 년 만에 헌터 정도의 수준인 놈이 상격 영웅으로 진입했다? 열 살이 된 아이조차도 믿지 않을 이야기지.”
텅.
검은색의 검을 내팽개치고 검마가 두 손으로 검령을 쥐었다.
“혈마에게 듣고 난 뒤로, 너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여러가지 능력이 있더군. 온갖 능력을 복사하는 능력. 그리고 상격에 이르는 기교. 보통은 하나만 가져도 다시 없을 천재라고 불리는데, 너는 그것들을 다 가지고 있더군.”
나는 검마가 쥔 마검을 바라봤다. 검마가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마검의 형태.
수라마검.
수라마검의 능력은 단순하다.
굉장히 단단하고, 마나의 효율을 극대화 시킨다.
‘그리고 마법을 배제하는 파마의 권능도 있었나.’
나는 기린검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유아독존.
우웅! 검은색의 왕관이 씌워지며 내 몸 상태가 원상으로 복귀되었다.
‘이래야 반반인가.’
나는 아직 상격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되었다. 그리고 검마는 상격에 들어선지 이미 10년은 더 되었다.
"말이 길다. 검마는 검으로 말한다고 들었는데."
"크흐흐. 그렇군. 말이 길었어."
나는 천수를 극대화 시켰다. 검마는 좋은 상대다. 완숙한 존재인 만큼,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줄 수 있는 상대니까.
나는 요정왕의 장막을 두르며 뇌광을 뿜었다.
***
쩌엉!
검격이 부딪친다. 그 파장으로 주변의 공간이 뒤틀린다. 남궁검령은 눈을 찌푸렸다.
‘마나도 위인가.’
남궁검령은 진중한 눈으로 상대를 살폈다. 검과 검이 부딪친다.
검을 맞부딪칠 때마다 남궁검령은 어이없는 기분이 들었다.
근력은 자신이 위였다. 그러나 부딪치는 순간 특성의 힘인지 저놈은 자신보다 더 위의 근력을 뿜어낸다.
속도는 저쪽이 더 빠르다.
자색으로 완연하게 물든 머리카락색이 보일 때부터, 자신은 이시우의 속도를 따라잡기도 힘들었다.
체력을 비교한다? 상대는 만전의 상태이지만 자신은 첫 일격을 받을 때 심한 내상을 입었다.
‘설마설마 했는데.’
남궁검령은 이시우를 중격때부터 알았다. TV에서 나오는 소년이 상격에 영웅과 맞먹는 기교파라 불리고 있었으니까.
‘기교마저도 나보다 높다!’
지금까지 자신이 버티는 것은 검을 다루는 법과 경험에 의한 힘이었다.
그리고 남궁검령은 지금 그것마저도,
쩌어엉!
검이 부딪친다. 남궁검령은 두 발짝 물러났다. 자줏빛의 번개가 이는 눈동자가 자신을 무심하게 쳐다본다. 검을 휘두른다 이시우가 능숙하게 망토로 자신의 검을 흘리며 공격해왔다.
“흐흐.”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마치 더 없느냐는 눈. 무기질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시우.
남궁검령은 검을 부딪칠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이시우의 검이 보였다.
……저놈은 지금 자신의 경험을 모조리 훔쳐버리고 있다.
감각으로 상대의 틈을 살핀다. 그러나 틈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주 약간의 빈틈이 있더라도 재빠르게 대처한다. 상대가 자신보다 높은 감각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
극에 이른 명경지수로 남궁검령은 수단을 강구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다.’
남궁검령은 그것을 확신했다. 모든 면에서 밀린다. 자신이 앞서는 것조차도 얼마 안 가 상대에게 빼앗길 판.
본능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도박을 걸 때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남궁검령은 냉정한 눈으로 상대를 살피며 뒤로 크게 물러났다. 그리고 수라마검의 진정한 힘을 깨웠다.
“감히 이 비천한 검의 수행자가 청하노니.”
역천의 마검.
후우우우웅!
한차례 바람이 불었다.
검령이 깨질 듯이 진동했다. 새까맣게 물든 검이, 심연처럼 주변을 잠식한다.
“수라에서 태어난 무신이여. 당신과 같은 길을 걷는 이에게 적을 멸할 힘을 내려주소서.”
우우우우우우우웅──────────!
공간을 침식하는 마검이 크게 휘둘러졌다. 남궁검령을 기준으로 한 반경 500m.
휘둘러진 일검이 멸망의 힘을 담은 채, 주변을 일소한다.
‘생각보다 강하지만, 아직 아수라와의 연결은 약하군.’
그 광경을 이시우는 담담하게 쳐다봤다.
요정왕의 장막에서 샛별의 영광을 꺼냈다.
‘마’라는 성질의 대척점.
별무리로 벼린 창, 샛별의 영광.
상격에 들어서면서 주인 작업을 통해 완전히 길든 창이 성스러운 빛에 휘감기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기에 태양의 마력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일월천뢰검
일식(??)무위의 검
화르르륵!
태양의 마력으로 벼린 뇌신의 벼락이 성창에 휩싸인다.
창의 휘둘러진 경파. 그것을 담담하게 휘둘렀다.
***
어둠이 휘몰아치는 마의 해일.
엘도르는 그곳에서 담담한 표정의 이시우를 바라봤다. 성스러운 별빛이 휘감긴 창.
그리고 태양으로 벼린 벼락이 휘둘러졌다.
시꺼먼 어둠속에서 어둠을 몰아내는 태양 빛. 그것을 보며 엘도르는 자신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다.
곧 마왕이 부활할 터이니, 너희는 용사를 찾아라.
바티칸에서 겸손하는 자가 신에게 들은 말이었다. 바티칸에서는 은밀하게 사람들을 풀어서 용사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히어로 아카데미란 곳에서 한 소년을 봤다.
윤승하.
십수체의 정령들을 사역하는 모습은 일견 신이 점지한 남자인 것 같았다.
그 생각은 일본에서 바뀌었다.
나태의 산양.
수십만의 목숨을 단숨에 앗아간 마왕을 가르는 모습을 보고.
용사.
이시우야 말로 신이 점지한 빛의 사도였다.
“요, 용사님 저,정말 대단하시군요."
엘도르는 백금색의 눈이 그렁그렁한 채 이시우를 바라봤다. 얼굴에는 옅은 홍조가 띠어져 있었다.
‘각인가.’
이시우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