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화 〉 성물(2)
* * *
절제의 검.
마왕에게 7대 죄악이 있다면, 가톨릭에는 7대 주선이 있다.
각각 겸손, 자선, 친절, 인내, 순결, 절제, 근면을 상징한다.
순수하게 무력으로 친다면 절제는 바티칸 내에서 세 번째로 강하다.
…그리고 그런 절제의 검이 나를 바티칸 성당을 직접 안내해 주고 있다.
“아, 여기는 예배당이에요. 이곳에서 신을 믿는 신도들이 성력을 수련하는 장소에요.”
엘도르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엘도르가 안내해 준 장소는 백 단위의 신부복을 입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는 장소였다.
“앗, 안녕하세요!”
낮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릴리의 소녀, 엘리스 루나 마리아.
후에 순결의 성녀로서 마왕에 대적하는 바티칸의 희망이라 불리는 소녀가 보였다.
“와, 진짜 오랜만이네요! 소식 들었어요. 상격에 드셨다면서요? 축하해요! 최연소 상격이라 협회에서도 뭐 준비해주신다던데…….”
만나자마자 축하한다면서 엘리스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러자 느끼한 얼굴에 표정을 가진 나탈도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과연 내 라이벌이군.”
……도대체 내가 왜 네 라이벌이지. 라고 묻기에는 피곤했다. 한종우도 나를 라이벌로 여기고 타오 리도 그러는 편이니까.
나는 그것보다 불가해한 감각으로 엘리스나 나탈의 힘을 가늠해 봤다.
‘……중격인가.’
완연한 중격은 아니다.
이제 슬슬 중격에 발을 들이밀고 있는 것이니까. 나탈하고 엘리스는 생각보다 강해지지 않았다. 원작보다 좀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러고 보니 바티칸에는 무슨 일로 오신 거에요? 혹시 절 보고…….”
“이시우 님은 저번에 나태의 사도를 토벌하고, 나태를 잡는데 일부 도움을 줘서 온거랍니다.”
엘리스가 뭐라 말하자 엘도르가 끊었다. 나태를 잡는데 일부라. 혹시 모를 사태가 발생할까 봐 부탁했는데 다행히 들어준 것 같다.
“그럼 바로 성물을 받아가실래요?”
“지금 받을 수 있나요?”
“예. 준비 자체는 끝났으니까요. 다만…….”
엘도르가 말끝을 흐렸다.
용사님께서 나태를 해치우는 장면을 목격한 신도들은 모두 용사님이 성물을 받아도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성주문.
성력을 이용해서 나에게만 들리는 주문으로 엘도르가 말했다.
아니, 오히려 성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저처럼요.
작게 중얼거리며 엘도르가 나에게 말했다.
그래도 밖에처럼 추악한 몰골은 보이지 않을 겁니다. 모두 성격이나 자라온 환경은 달라도, 신에 대한 믿음과 신념은 선에 있으니.
엘도르가 덧붙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가 성물을 받는 것을 탐탁잖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혹시 기분이 나쁘더라도 너무 나쁘지 않게 생각해달라는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티칸은 신앙심으로 집결된 곳이다. 이곳의 중추에 있는 존재들은 ‘한 존재’를 제외하면 침입할 수 없다.
그리고 타락하기도 쉽지 않고.
‘그 한 명이 문제이긴 한데.’
그래도 상격에 오른 지금 한 번 비벼볼 만 하려나.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엘도르를 따라갔다.
형형색색의 글라스가 장식된 복도를 지나고, 고즈넉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닥은 나무로 지어졌고, 병기같은 것들은 보였지만, 일반적인 사무실을 연상케 하였다.
사치라고는 없는듯한 공간. 그곳에는 금발의 미남자와 나탈 또래의 소년이 한 명 보였다.
“……이분이?”
백금색의 눈동자가 나를 한순간에 훑었다.
나는 당황하다가 마음을 가다듬었다. 생각해보면, 최연소 상격인 나를 맞이하는 데 이만한 인물이 와도 이상할 건 없겠지.
바티칸의 무력을 대표하는 남자.
겸손하는 자, 미쉘 2세.
……감정.
▼
이름 : 미쉘
근력 : 48
민첩 : 45
체력 : 49
마력 : 50
고유능력 : 태초의 불꽃(S+)
특성 : 신성요체(S++), 선악의 심판자(S+), 불꽃의 구도자(S+), 대신관(S), 적의 감지(B) 외 7종.
통할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통했다.
……그나저나 정말 화려한 능력치다. 첫 번째 인간과 가장 닮은 신체인 신성요체로 천사의 힘을 극대화 시킬 수 있고, 마에 속한 이와 싸울 때 모든 능력치를 올려주는 선악의 심판자.
그리고 모든 불꽃과 관련된 이능, 마법, 무공을 모조리 흡수하는 불꽃의 구도자.
‘그리고 태초의 불꽃.’
신의 힘이라 불리는 태초의 불꽃은 그 존재 자체로도 어마어마하다.
미쉘은 최상격 중에서도 약한 축에 속하지만, 저 태초의 불꽃 하나로 최상격 중에서도 선두주자인 김은정과 맞먹는 힘을 자랑한다.
“생각보다.”
미쉘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훨씬 더 대단하네요. 상격에 이르기도 전에 나태를 공략하는데 크게 도움을 줬다고 했는데, 나태와 싸우면서 강해진 건가요? 이정도면 엘도르와 싸워도 크게 밀리지 않을 것 같은데.”
흥미가 담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미쉘.
미쉘의 말에 엘도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나태를 죽인 게 당신이군요?
머릿속에 울리는 말.
미쉘이 나를 보면서 웃었다.
나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미쉘한테는 숨길 수 없다. 선악의 구도자. 저 특성은 상대가 선(?)의 성향을 지녔는지, 악(?)의 성향을 지녔는지 판별할 수 있는 특성이니까.
‘그리고 나는 나태를 잡는데 결정적인 일격을 먹여서 선의 카르마가 쌓인 상태니까.’
그래서 마왕을 잡게 되면, 주인공에게 바티칸은 무한한 신뢰를 준다.
미쉘이 이렇게 호의적으로 온다면 성물 하나를 더 대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슨 수를 썼는지는 궁금하지만, 그것에 대해 묻는 것은 실례겠죠. 같이 마를 퇴치하는 동료인데.
‘동료라.’
미쉘의 호의에는 당황스럽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롤랑. 성물을 가져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롤랑이란 소년이 문밖으로 나갔다.
“이런 제가 손님을 앞두고 아무것도 안 내오다니 실례했네요. 성유를 내오겠습니다.”
바티칸에는 성유(??)라 불리는 것이 있는데, 일종의 영약 같은 거다. 양산형 영약이라서 나 정도 되면, 이것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감사합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
그 후에 롤랑이라는 소년에게 성물을 받고, 나는 미쉘이 정해준 바티칸 내에 숙소로 이동했다.
‘……여긴 나름 지낼만하군.’
침대 하나와 TV와 컴퓨터 한대. 컴퓨터가 있는 것을 보니 전기도 통하는 모양이다.
수도사들이 존재하는 방은 침대 하나와 서랍과 책상, 옷장이 끝인 곳과 비교하면 나름 손님을 위해 신경을 쓴 모양새가 났다.
나는 품 안에서 손거울을 하나 꺼냈다.
내가 바티칸에서 받은 성물이다. 일명 소망하는 자의 거울.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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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하는 자의 거울
사용자가 원하는 어떤 물건의 위치를 찾아준다.
현재는 모든 힘을 다 써서 봉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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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하는 자의 거울은 게임 내에서도 꽤 유명한 아이템이다.
반년이라는 기간이 있지만, 반년에 한 번 원하는 아이템을 찾아다닐 수 있으니.
‘……물론 중간부터 모든 루트를 꿰찬 애들 덕분에 별 쓸모는 없지만.’
그래도 게임과는 다르게 모든 이들이 다르게 움직여서 이 거울은 꽤 쓸만하다. 나도 루트를 모두 일일이 외우고 있지 않아서.
‘그럼 슬슬 준비할까.’
나는 몸을 서서히 풀었다.
1년 후, 마인들은 힘을 모아서 바티칸을 친다. 바티칸에 존재하는 성물들이나 그들이 가진 힘은 마인들에게 너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바티칸의 전력은 다른 곳의 전력보다 더 강하다. 일종의 정예 병력 같은 셈이다.
그리고 바티칸에서 생성된 전력은 마인과 싸움에서 마인들에게 매우 치명적인 힘을 발휘한다.
성력(?力).
신의 힘을 이용하는 이들은 마(?)에 물든 이들과 싸울 때, 평소보다 최소 50%는 더 강해진다.
하격이라도 중격에 다다른 마인하고 대인전을 펼쳐도 밀리지 않는 정도로.
‘상위의 격을 지닌 상대부터는 통하지 않지만.’
상격부터는 이야기가 좀 달라지지만, 그래도 마인과 싸우면 우위를 가진다는 점에서 마인들에게 신경이 거슬린다.
최상격 중에서도 중위권에 속하는 겸손하는 자는 김은정도 고전하는 사도들과 싸워도 밀리지 않을 정도니까.
‘그래서 마인들이 협력하는 거지.’
……여기까지는 괜찮다. 다만, 마인들은 바티칸을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전력을 투입해서 문제지.
바티칸은 거악 중 하나인 폭식의 벌레인 요정왕 오베른과 오만의 용인 묵시록의 붉은 용이 그 주축이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와서 해야 할 일은 테러의 축을 부수는 거지.’
테러의 축을 부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바티칸을 어떻게 습격할지에 대한 정보를 모은다.
‘결정적인 증거를 모으면 김은정과 삼 왕을 움직일 수 있어.’
겸손하는 자, 미쉘도 움직일 거다.
그럼 슬슬 나가볼까.
“어, 시우 님! 어디 가시나요?”
나가려던 도중, 엘도르랑 만났다.
“네, 잠깐 관광 좀 하려고요.”
“관광 좋죠! 제가 안내해 드릴까요?”
관광이라.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다.
“사실 제가 마인들이 있다는 제보를 받아서, 마인들을 소탕하려고 하는데.”
“……과연 용사다운 행동이군요!”
엘도르가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절제의 검은 겸손하는 자, 미쉘이 말했듯이 나와 겨룰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정말 기대되네요. 용사님과 함께 지구의 산소를 먹는 것조차 아까운 해충들을 박멸하러 가는 일이라니. 이것도 신이 점지해주신 운명일까요.”
콧노래를 부르며 절제의 검, 엘도르가 웃었다.
정말로 해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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