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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93화 (193/298)

〈 193화 〉 싸우지 말고 섹스해(3)

* * *

‘뭐지.’

나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헤카테의 축복을 받아 은신상태인데다가 기척 자체를 죽이고 있어서인지 나를 알아보는 인물은 없었다.

나는 내가 없어진 시간을 떠올렸다.

어젯 밤에 없어져서, 그란데힐의 조언을 받아 아침 일찍 이곳으로 왔다. 내가 생각한 하루보다 짧게 이곳으로 왔다.

‘고작해야 반나절인데.’

나는 은수아를 바라봤다.

은수아의 눈에는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았다. 마나를 이용하는 초인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 힘들다. 특히 은수아 정도의 수준이라면.

‘정신적 타격을 단시간 내에 크게 받아야 이 정도일 텐데.’

극단적으로,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야 저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근데 나한테 실망을 좀 받았다고 저렇게 초췌해질 수가 있나.

­시우님은 시우님에 대해서 잘 모르십니다.

문득 그란데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들이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하룻밤 만에 이렇게까지 피폐해지는 것은 너무 이상하다.

‘천의 가면의 효과인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특성일지도 모른다. 단시간 내에 사람을 이렇게 피폐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어쩌지.’

생각했던것보다 효과가 너무 좋았다. 여차하면 다른 여자애들에게 쓰고 싶어질 정도로.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데.’

너무 막막하다.

나는 일단 인기척을 드러냈다.

또각.

크게 발소리를 내었지만, 주변에 인물들은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

나에게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현실에서 도피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거 생각보다 큰일 났는데.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우선 상태가 그나마 가장 심각해 보이는 김하린을 향해서.

내가 다가가도 김하린은 여전히 무언가에 홀린 듯이 밧줄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하린.”

이름을 부르자, 김하린이 나를 돌아봤다.

“……이제 환상이 보이네.”

“…….”

나를 환상 취급하는 김하린.

어이가 없었다.

나는 김하린을 어떻게 해야 현실을 직시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손을 바라봤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우선 절정으로 한번 보내고 나면, 내가 여기에 있단 걸 실감하지 않을까.

천수.

천수의 출력으로 최대치로 올렸다.

손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가장 충격적인 방법이 좋겠지.

“흐으으으으으으윽♥”

김하린이 눈을 뒤집은 채로 절정에 이르렀다.

나는 어이없는 눈으로 김하린을 바라봤다. 김하린이 절정에 이르른 것까지는 의도했는데, 너무 기분이 좋아서 기절까지 해버려서.

“…….”

진짜로 어이가 없네.

그래도 김하린이 낸 신음 때문에 다른 애들도 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멍한 표정으로 환상인가­라고 중얼거리는 윤승하.

여전히 나무로 깎은 인형을 보며 뭐라 중얼거리는 이지아.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게 얼굴이 퉁퉁 부어서 나를 멍하니 보는 임나연이 있다.

‘그런데 윤채린은 어디에 갔지.’

걔가 나름 심성이 착해서 돌봐주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일단 다 깨워볼까.’

그 후, 여자들의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텐트 안.

임나연, 윤승하, 이지아, 김하린, 은수아 순으로 다소곳하게 앉아 있다.

‘일단 모두 깨웠는데.’

문제가 하나 있다. 천수를 이용해서 정신을 차리게 하니까, 여자들이 성욕을 느끼고 있다는 것.

다만, 그 감정은 부정적인 감정에 의해서 먹히고 있다는 것.

‘부정적인 감정이 아직도 너무 심해.’

나는 그 광경을 보다가 감각에 걸리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익숙한 인기척, 윤채린이다.

텐트 바깥으로 나가니, 윤채린이 거대한 멧돼지를 짊어진 채,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뭐야, 벌써 왔어?”

윤채린이 주변을 잠깐 살피면서 말했다. 평소에 나를 보면 히죽 히죽거렸는데, 오늘은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면서.

“응.”

“애들은 어디 갔어?”

“텐트 안에.”

“그래?”

윤채린은 멧돼지를 내려놓고는 잠깐 나를 바라봤다.

“너 저번에 나한테 했던 말 기억나?”

“어떤 거?”

“네가 욕심이 많아서, 여자가 많이 생길 것 같다면서 했던 말. 네 능력과 관련이 있다고.”

“……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윤채린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 조건이 섹스한 여자의 능력을 쓸 수 있는 거지?”

확신에 가까운 말투로 윤채린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검주님도……하, 검주님이랑 내가 기둥동서라니.”

윤채린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싫어하는 것 같았지만, 긍정적인 감정이 더 강했다.

하긴, 윤채린은 윤승하와 다르게 양성애자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윤채린을 플레이할 때 그란데힐의 루트가 있으니까.

‘설마…….’

“그런데 너 내 능력도 있는 거야?”

윤채린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천상의 마.

고유 능력중에서 가장 흉포한 능력이다. 사용자의 육체를 강제적으로 천마에 가깝게 만들며, 지닌 바 특성마저도 뒤바꾼다.

그래서 나는 천상의 마라는 능력을 굉장히 꺼렸다.

‘그래도 천수의 능력을 깨달아서 이제는 유용해 졌지만.’

천수.

가면을 잡아먹는 대신, 천수의 성능을 올려주는 기능이 있다.

가면을 작성했지만, 성능이 만족스럽지 않은 가면­여성진들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서 작성한 가면을 제외한­들을 천수에게 먹였다.

“응, 천상의 마도 있었어. 그래도 걱정하지 마. 이미 해결했거든.”

“진짜? 하긴, 너라면 어떻게든 했을 테니까.”

이상할정도로 나를 믿는 윤채린.

“그런데 쟤내들은 어떻게 할 거야?’

낮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쟤내들 상태 심각해. 폐인으로 만들 생각 아니면 빨리 다 거둬.”

“……괜찮아?”

“그야 당연히 안 괜찮지.”

윤채린이 이마를 조금 찌푸리며 말했다.

“근데, 쟤내 저러다가 진짜로 죽을 것 같아서.”

그리고 남 일 같지도 않고.

뒤의 말을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아마도 윤채린은 자기 일을 그녀들에게 대입해서 생각한 것 같다.

“그래도 본처는 나다. 기억해라.”

윤채린이 당당하게 말했다.

생각해보니 여기서 가장 당당하지 않아야 할 윤채린이 당당한 모습을 보니까 어이가 없었다.

“근데 말이야.”

“엉.”

“내가 어제 밤새도록 고민했거든.”

그란데힐을 몰아붙이면서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여자들이 그나마 평화롭게 같이 지낼 수 있을까.

“네 생각은 어때?”

최종적으로 그란데힐의 의견까지 고려한 내 의견에 윤채린은 어처구니없음과 일리가 있다는 표정을 반반 섞은 채 나를 바라봤다.

“확실히……일리는 있는데.”

어처구니 없다는 목소리로 나를 바라봤다.

“애들 상태를 보면, 네가 뭘 하든 겉으로는 친하게 지낼 것 같은데, 그 방법까지 쓰면 확실히 친해지긴 하겠다.”

맥빠진 목소리로, 윤채린이 말했다.

“근데 종일 있어야 할 텐데 그러면 다른 사람한테 들킬걸.”

“괜찮아, 안 들켜.”

“……뭔 자신감이냐.”

솔직히 말해서 들켜도 상관없다. 이곳은 요정족들이 특별히 관리하게 된 장소라서.

주의를 할 사람이라면 오히려 학생들인데 학생들이 내 감각을 피해서 이곳에 도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근데 너 감당할 수 있겠냐?”

윤채린의 말대로,

평범한 사람이라면 감당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재계 1위의 가문인 임가의 유일한 외동딸인 임나연.

그리고 마도명가로 유명한 이씨가문의 후계자로 유력한 이지아. 그리고 모든 마법사의 연합인 상아탑의 후계자.

‘정말 무시무시한 배경이지만.’

나는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누구?”

“……최연소 상격. 그래 너, 잘 났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윤채린이 픽 웃고 끝냈다.

최연소 상격.

이미 사방으로 소문이 퍼진 나는 바깥에서는 어마어마하게 유명하다.

기본적으로 얼굴이 받쳐주는 데다가 이제 고작 1학년 끝에서 상격에 올랐기 때문이다. 바깥에서는 음모론이 돌고 있는데, 내가 요정족의 숨겨둔 병기니 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긍정적인 평가는, 먼 훗날 초월경까지 갈 거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뭐, 믿고 있는 것은 것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다.

요정족의 왕이라는 위치와 김은정이라는 강력하기 그지없는 인맥. 그리고 나에게 호의적인 공허족의 왕과 용왕까지.

‘이 정도면 비빌만해.’

그리고 애초에 나는 대외적으로 강간을 당한 케이스다.

“근데 진짜로 할 거야?”

“여기까지 와서 평화롭게 해결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잖아.”

“그렇기는 한데…….”

윤채린이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럼 난 갔다 올게.”

나는 결의 어린 표정으로 텐트 쪽으로 향했다.

윤채린에게 말한 방법은 사실 별거 아니다.

‘섹스로 몰아붙이는 거지.’

여자들을 극한까지 몰아붙여서 자기 혼자 나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방법이니까.

일본에 있었을 때, 자존심 강하고 집착이 심한 윤승하가 나를 독차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남다윤과 협업을 할 정도였으니까.

텐트 안으로 들어가니 시선들이 꽂혔다.

나는 차례대로 여성 진들을 바라보았다.

임나연, 이지아, 김하린, 은수아, 윤승하.

다들 내 눈치를 보며 다소곳하게 앉아있었다.

"너희가 나한테 얼마나 심한 짓을 했는지 알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어젯밤에 많이 고민했어."

어젯밤에 그란데힐을 괴롭히면서 고민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일단 받은 대로 돌려주자고."

나는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벗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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