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싸우지 말고 섹스해(2)
* * *
“나, 다 기억났어."
나는 조용히 한마디 했다.
“뭐?”
내 말에 윤채린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다른 애들은 모두 흠칫하며 몸을 움찔거렸다.
우선, 주머니에서 미리 빼둔 나는 관리자의 구슬을 윤승하에게 던졌다. 윤승하가 멍한 표정으로 구슬을 받았다.
“이, 이건 뭐야?”
“승하, 네 페널티를 없애는거.”
“뭐?”
“정확히는 페널티는 받는데, 시간이 지나면 회복시키는 거야.”
그렇게 말하자 윤채린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래도 승하, 네가 여자라는 건, 여기 있는 애들한테만 알릴 거고, 어지간하면 다른 애들한테는 알리지 마.”
“어……?”
윤승하가 여자라는 말에 다들 눈에 띄게 동요했다.
“여, 자였어?”
“응, 승하는 세계의 운명이란 능력 때문에 남장하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시우, 너 승하랑 계속 같이 합숙했던 거였어?”
윤승하가 여자라는 사실보다, 그 사실에 경악해하는 여자가 더 많았다.
“……아무튼, 윤승하는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녀가 가진 재능이나 수명이 깎이는 구조야.”
“그래서 남장을 했던 거구나.”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은수아.
다행히도 말은 성공적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래서 윤승하는 여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돼. 하지만 만약 이 사실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 좀 고민되는 문제다. 사나에가 있다면, 그녀의 봉관 능력을 일부 이용해서 이런 곳에서 쓸 수 있을 텐데.
……라고 말하실거면 될겁니다.
그란데힐의 조언이 떠올랐다.
그녀의 조언은 대부분 옳다. 그러나 나는 이번 것에는 확신할 수 없다. 고작 그 말 한마디로 여자들이 모두 믿는다니.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소문을 낸 사람을 찾아낼 거야. 그리고…….”
비장하게 말하자, 다들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입을 열면서도 이게 맞나싶었다. 하지만 그란데힐은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강력하게 추천했다.
“나는 그 사람을 평생 손대지 않을 거야.”
“헉.”
이지아가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는 듯이, 입을 틀어막았다.
이게 그렇게 충격적이라고?
어이없어하며 바라보자 다들 충격받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란데힐의 말대로 생각보다 더 효과가 좋았다.
“자, 잠깐만.”
윤승하가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말했다.
“그, 그럼 설마 여기 있는 모두가 시우랑 세, 섹스를 했다고?”
윤승하의 말에 다른 여자들 모두가 경악이 서린 눈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봤다.
임나연은 이지아를 배신당한 눈으로 바라봤고, 이지아는 어쩐지 그럴 것 같았어라며 중얼거리고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김하린도 생각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은수아는 고장이라도 난 듯 파파를 중얼거렸고, 윤채린은 여자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는 듯, 경악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모두 기억이 났다고 했잖아.”
“…….”
나는 여자들을 쳐다봤다.
가장 첫 번째로 쳐다보는 것은 임나연이다. 그녀가 가장 먼저 나에게 최면을 건 것으로 시작되었으니까.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조교 해줬으면 한 것.”
임나연이 움찔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첫번째로 말하자, 여자들이 웅성거렸다.
“……주인님? 암퇘지?”
“아, 암퇘지까지는 아, 안 했어.”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윤승하가 임나연을 바라보자 임나연이 마지막 거는 부정했다.
“그리고 이지아는 최면을 이용해서 자신을 마마라고 부르게 한 것도.”
“마, 마마?”
은수아가 당황한 얼굴로 이지아를 바라봤다.
“윤승하가 나를 숨은 애인이라고 한것도.”
윤승하가 움찔했다.
“김하린이 나에게 강간당하고 싶다고 한것도.”
“뭐, 강간?”
“은수아가 나를 파파라고 부르게 한것도.”
“아니, 파파는…….”
우습게도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윤승하가 가장 정상적으로 보였다.
나는 윤채린을 바라봤다.
윤채린이 나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래도 윤채린은 미안하다고 머리를 박았으니 괜찮지 않을까.
“모두 기억이 났어.”
기묘한 침묵이 일었다.
알고 있던 애들에게 자신의 성 취향이 까발려진 것에 대한 부끄러움……같은 감정은 의외로 적었다.
그것보다는 나를 힐끔거리며 보는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천의 가면으로 감정을 살펴보자, 두려움이나 무서움 따위의 감정이 더 컸다.
내가 최면을 기억해서 자신을 싫어하거나 혐오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럴 수도 있지.’
만약에,
내가 게임을 통해 이들을 알지 못했다면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경우가 달랐다.
사람들은 보통 좋아하는 캐릭터나 연예인들을 보며 한 번쯤 생각한다. 나도 저런 애인을 갖고 싶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생각에 그치고 만다. 왜냐하면, 다들 현실을 부정해도 속으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상은 그저 상상에 그칠 뿐이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평행세계인지도 모를 이쪽으로 떨어지며, 나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아.”
일부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에게 실망했다는 표현으로.
다들 몸을 움찔거렸다.
분위기가 굉장히 가라앉았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건 좋은 기회다.
‘당당하게 하렘을 선언할 기회.’
……이렇게 말하니까 정말 쓰레기 같네.
하지만 정말 좋은 기회임은 부정할 수 없다. 평소에 이들은 다른 여자들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장 평범하게 부딪치는 임나연과 윤승하는 물론이고, 이지아도 다른 여자들을 별로 좋아하는 눈초리는 아니다.
은수아도 티를 안낼 뿐이지 자신에 대한 자아가 강하다. 자신은 별로 좋아하는 직책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상아탑에 관해 이야기 할 때는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니까.
나는 여자들을 바라봤다.
하나같이 내 눈치를 보고 있다. 혹시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 하는 감정들을 담으면서.
‘뜸을 좀 들일까.’
적어도 기말고사가 끝나기 전까지.
지금 바로 하렘선언을 하는 건 인간적으로 너무 쓰레기 같다. 그리고 그란데힐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좀 더 의견을 나눠봐야 할 것 같고.
"…밤이 늦었으니, 오늘 하루는 여기서 자."
그렇게 말하며, 나는 몸을 돌렸다.
***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시우의 말에 그란데힐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란데힐도 인지하고 있다. 이시우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아주 심상찮다는 것을.
그래서 그란데힐은 평소에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란 것을 인지시켜주면서 , 폭탄이 터지면 바로 대응하기 위해서 몇 가지 조언을 해줬다.
"그래도 생각보다 늦게 터진 편입니다."
"그런가."
"예. 이지아 양이 눈치를 챈 타이밍이 빨랐으니까요. 그래도 이지아 양은 다른 이들은 자기가 제어 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김하린 양만 끌어들인 것은 좋았지만."
그것보다는 이시우가 가진 특성의 힘이 컸다.
공허의 왕, 에니스는 이시우의 능력을 보고, 사람을 홀리는 능력이라고 평가했다. 아마 이시우가 극단적인 추남이었어도, 그를 사랑할 여자는 많았을 거다.
대상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공허함을 충족할 수 있을 거라고 평가했으니까.
"정말 잔인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확실히 이시우 님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잔인해?"
"예."
그란데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시우의 옆에서 그를 지켜보는 그란데힐은 안다. 이시우는 아직도 눈치를 못 챈 것 같지만, 이시우는 생각보다 더 여성들에게 위험한 존재다. 그를 지켜보는 만으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충족감이 느껴지는데, 거기에서 더 나아가 그와 섹스를 하면.
'절대 벗어날 수 없어.'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란데힐은 이시우에게 미움받는 것보다 자결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좋은 생각입니다만, 그래도 일주일은 너무 깁니다."
"고작 일주일인데?"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만약에, 그녀들이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으니까요. 당장 내일 오후 즈음에 가셔도 문제없을 겁니다."
"그렇게 빨리?"
"……생각보다 늦은 겁니다."
"그렇게 생각해?"
"예."
그란데힐의 말에 이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시우의 뇌 속에서 여자에 관한 문제는 그란데힐의 말을 듣는 게 가장 정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럼 데힐에게 상을 줄까.”
이시우가 웃으면서 말하자 그란데힐은 옅게 홍조를 띄우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이곳에는 저희 말고 다른 분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옷의 면적이 좁은데."
이시우의 말대로, 그란데힐은 평소의 클래식한 메이드 복이 아니라 면적이 좁은 메이드 복을 입었다.
윗가슴을 드러내며, 허벅지와 엉덩이가 드러난 프렌치한 메이드 복.
“그, 그건.”
“이미 마법은 쳤어.”
방음 마법과 기척차단 마법, 창문에는 환상마법을 걸어 아무도 없는 것처럼 꾸몄다.
놀랍도록 정교한 솜씨였다.
“그래도, 웁.”
이시우는 무언가 말하려는 그란데힐의 입을 입으로 막았다.
***
그란데힐의 예측은 정확하게 맞았다.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윤승하.
어디서 났는지는 모르지만, 나무로 깎은 인형을 보며 뭐라 중얼거리는 이지아.
하룻밤 사이에 폐인 몰골이 되어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은 얼굴로 계속 중얼거리는 은수아.
눈물을 펑펑 쏟아냈는지, 얼굴이 퉁퉁 부었지만, 계속해서 눈물을 쏟아내는 임나연.
그리고 무언가 홀린 듯이 밧줄을 보고 있는 김하린.
“…….”
도대체 하루 만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