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 싸우지 말고 섹스해
* * *
일단 우리는 캠프로 향했다.
일행은 아까 전보다 늘었다. 중간에 어디론가 향한 윤승하를 제외한 은수아, 이지아, 윤채린과 나.
이렇게 4명으로.
윤채린이 불만 있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 눈치를 보다가 팔짱을 끼며 텐트로 향했다.
“아, 맞다.”
“왜?”
“아까 짐승형 괴수 잡았는데, 애들 족친다고 고기 놓고 왔거든. 그거 다시 가지러 갔다 올게.”
“멀어?”
“아니, 꽤 가까운데.”
“그럼 거기 들렀다가 가자. 어차피 식량 챙기려면 괴수 잡는 것보다 같이 가는 게 나으니까.”
“…나 혼자서도 될 것 같은 데.”
윤채린이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아닌척해도, 내가 같이 가겠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잠깐 은수아와 이지아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가지, 뭐.”
“그럴까.”
히히웃으며 윤채린이 내 옆에 나란히 서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은수아와 부러워하는 표정으로 윤채린을 보는 이지아를 바라봤다.
윤채린은 묘하게 내 눈치를 보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이 아직 어색했다. 그녀의 성격은 거슬리는 것은 모두 부수는 성격이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바로바로 말하는 시원한 성격이지만,
일전에 진짜 최면으로 나를 건드리고 나서부터 내 눈치를 본다.
‘그러고 보니.’
바티칸에서 받기로 한 성물이 슬슬 올 때가 되었다. 그 성물은 어떤 물건인지만 알면, 위치를 알려주는 특수한 성물이니, 어지간하면 빨리 받는 쪽으로 가야지.
“찾았다. 다행히 그대로 있네.”
윤채린의 말에 나는 가죽에 둘둘 말려있는 고깃덩이들을 응시했다.
“전부 손질이 잘되어있네?”
“후, 내가 살림살이를 좀 알뜰살뜰하게 하지.”
내 말에 윤채린이 앞머리를 털며 자랑했다.
딱.
나는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러자 가죽에 둘둘 말린 고기들이 염동마법으로 인해 부유한다.
우리들은 그것을 짊어지고 텐트로 향했다.
***
임나연과 이지아, 이시우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은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서, 사방으로 퍼졌다.
가볍게 학생들 사이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소문을 좋아하는 요정족과 결합하면서, 어느새 이지아는 이시우와 약혼한 사이고, 임나연은 그 둘을 찢어놓으려고 한다라고 까지 퍼져버린 상태였다.
강한남은 뒤늦게 막아보려고 했지만, 소문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상태.
‘좆됐다.’
이건 진짜로 큰일이다.
만약 이것 때문에 임나연의 심기가 불편해지면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반에는 한종우를 위시한 한종우의 패거리들이 많지만, 당장 학교에만 봐도 임나연을 추종하는 무리가 잔뜩 있다.
그들의 귀에 들어가도 자신의 학교생활은, 아니, 학교생활이 문제가 아니다. 사회에서 매장당할지도 모른다.
“한남이네.”
싸늘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 강한남은 시선을 돌렸다.
은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 남자라고 보기에는 너무 여성적인, 윤승하가 보였다.
“스, 승하야?”
윤승하는 혼자 움직이지 않았다. 분홍색 머리인 김하린과 싱글싱글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조금 멍청해 보이는 웃음을 짓는,
임나연이 보였다.
꿀꺽.
강한남은 조용히 침을 삼켰다.
학기 초, 임나연은 대부분의 일에 싱글벙글 웃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얕잡아 본 몇몇은 그녀 몰래 뒷말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안 가 사라졌다. 여러 가지 이유였다.
부모님의 일 때문에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간다든가, 혹은 갑작스러운 사정이 생긴다든가 해서 말이다.
“소문에 대해서 묻고 싶은데, 알려줄 수 있어?”
임나연이 웃으면서 물었다.
강한남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텐트 밖.
나는 공간장악으로 인벤토리를 열고는 안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윤승하에게 줄 물건이 있다. 관리자를 잡으면서 얻은 드랍 템.
그 후의 있던 일이 좀 충격적이어서 그렇지.
나는 주머니에 집어넣은 구슬을 만지작거렸다.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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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의 회복 구슬]
손상을 입은 것을 회복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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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면서도 심플한 효과다.
이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내 힘을 쥐어짜 낼 때, 더 무리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그리고 정액도 채울 수 있고. 다만, 나한테는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다. 요정왕이 되면서부터, 체력이 크게 올랐다. 더군다나 땅을 디딜 때마다 체력회복이나 마나 회복이 되니, 굳이 필요하지는 않다.
'아이템의 내구성을 회복시켜주기는 하는데.'
이건 굉장히 끌리는 옵션이지만, 나보다 더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윤승하.
이 물건이 있다면, 윤승하는 자신의 고유능력으로 내려진 천형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세계의 운명이라 불리는 능력으로 자신을 여자라 밝힐 수 없는, 패널티를 완화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윤승하는 성장세는 탄력을 받을 거다.
기분 좋은 일은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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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의 복제 구슬]
1회에 한하여, 물품을 복사할 수 있는 구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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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의 복제 구슬을 이용해서, 관리자의 회복 구슬을 복제할 수 있었다. 이렇게 쓰면 회복 구슬을 두 개 얻을 수 있다.
김은정을 죽일 때, 혁월이 왜 멈췄는지 알 수 있는 물건이다.
김은정을 죽이는 것은 그녀가 그릇이 되지 못했다는, 단순한 화풀이에 지나지 않지만, 저 구슬 두 개는 혁월이 원하는 대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칠 테니까.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복잡하다. 문지기가 지키고 있던 곳은 안에 공간이 하나 더 있다. 그곳에서 나는 충격적인 것을 봤다.
환생자라 불리는 영웅의 시체.
그리고 그곳에 잠들어있는──.
뭐야, 왜 이리 몰려 왔어.
언짢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뭐지.’
텐트쪽이 시끄러웠다.
나는 텐트 쪽을 쳐다봤다. 어느새 텐트 쪽으로 온 임나연하고 윤승하, 김하린이 윤채린이랑 이야기하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니 좋은 의도를 갖고 온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윤채린이 나랑 사귀고 있다고 당당하게 선언했으니, 그것 때문에 온것 같은데.
나는 텐트 쪽으로 향했다.
텐트쪽으로 향하면서, 높은 민첩 탓인지, 여자들이 다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시우랑 사귄다는 거 진짜야?
뭐가 진짜야. 당연히 진짜지.
시우, 최면에 약하잖아. 그, 뭐지. 1학년 1학기 초반에 유행하던 거 있잖아. 가짜 최면 어플. 혹시 그런 걸로 한 게 아닌가 해서.
움찔.
임나연의 말에 윤채린이 미약하게 움찔했다.
뭐야, 진짜야?
지, 진짜는 무슨, 내가 그런 거에 의존하는 성격인 것 같아?
혹시 모르지. 너도 시우에 대해서 알잖아. 시우 특성 중에 주위 사람들 홀리는 것 같은 능력. 얼마 전에 상격이 되니까, 더 심해졌던데…….
내가 그런 특성에 홀릴 것 같아? 나랑 이시우는 그냥, 내가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가, 우리 둘이 서로 사랑하는 걸 확인하고, 사귀게 된 거야.
……진짜로?
어. 그러게 누가 그렇게 눈치 보래?
여자들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저렇게까지 저들은 싸우지 않는다. 김하린을 제외하면 전부 선(?)성향의 인물들이니까.
천의 가면이 지닌 사람을 홀리는 패널티.
그것이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강한지 잘 모른다.
다만, 내 주위에 있는 여성들이나 김은정이 해준 말로 대충 유추해보자면, 그것은 내 매력이 얼마나 심하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종류의 것이다.
원래부터 한 미모 했던데다가, 음양체를 얻으면서 미모를 스펙업 했고, 요정왕이 된 지금은 나도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른다.
다만, 그란데힐의 말에 의하면.
어지간하면 여자들에게 눈길도 주지 마십시오.
다른 여자들하고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굉장히 관대한 그란데힐이 한숨을 쉬며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모를 사태?
만약에, 윤채린 님과 사귀는 것이 들통 난다면 다른 여성분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
그렇다면 일단 여지를 주십시오. 그리고 모든 여인이 한 자리 모인 곳에서…….
그래도 괜찮아?
네, 그래도 시우님은 노력하시지 않습니까. 다른 여인과 보내는 시간만큼, 저를 봐주시려고요.
어쩔 수 없다면서 희미하게 미소 짓는 그란데힐이 떠올랐다.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중간부터 다른 여자들이 최면에 걸리지 않으면 눈치챌까 봐, 최면에 걸린 척 했던 것도 문제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어느 새부턴가 즐기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연예인이나, 좋아하는 캐릭터가 한둘 즘은 있을 거다.
좋아하는 게임에 나오는,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니까.
바스락.
일부로 인기척을 내며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여자들의 시선이 나한테 모였다.
이런건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한 번 겪어야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잠깐 고민했다.
“나, 다 기억났어."
나는 조용히 한마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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