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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90화 (190/298)

〈 190화 〉 치정싸움

* * *

섬 중앙에 있는 안전지대.

그곳에는 학생들을 감독하는 교수들과 탈락자들을 위해 마련된 일종의 감시관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내부에는 섬의 내부들을 볼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 존재한다. 섬의 내부를 수십 개의 화면으로 분열된 공간.

이곳은 시험기간 동안 혹시 모를 위협에 대처하고, 학생들의 시험 점수를 매기기 위한 공간이다.

“요르네. 화면 돌리세요.”

그란데힐이 말하자 요르네라고 불린 요정족이 다른 쪽으로 화면을 돌렸다. 감독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오직 요정족만이 존재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요정왕인 이시우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란데힐 님. 저거 큰일 아닌가요?”

“흐음…….”

그란데힐은 화면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이시우랑 여러 여자가 보였다.

솔직한 심정으로 말해보자면, 걸릴게 걸렸다고 볼 수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이라도 개입할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어차피 지금 개입한다고 해도, 다들 확신할 테니까요.”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기까지 와서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됩니다.”

그란데힐은 담담하게 중얼거리면서 생각했다.

무서운 건 이시우의 여자 관계가 고작 저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장 학교만 쳐다보더라도 임나연하고 김하린이 있고, 자신도 있다. 학교 밖을 쳐다보면 그 수는 그란데힐도 짐작할 수 없다. 대충 짐작이 가는 여인은 검주, 남다윤 정도.

“그리고 애초에 요정왕이시니까요.”

“그렇죠.”

요르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정왕.

요정족을 이끄는 수장이지만, 요정족 내에서는 그 의미가 좀 다르다.

세계수를 보살피는 요정족의 생각은 좀 다르지만, 세계수는 보통 두 가지를 상징한다.

기원과 생명.

기원을 상징하는 여왕.

그리고 생명(번식)을 상징하는 왕.

이시우는 아직 모르지만, 요정왕이 되면서 그가 원하는 각인에서 일월로 바뀌었다.

“그래도 이번에 인간족이 왕이 되어서 다행이네요.”

요르네의 한숨 섞인 말에 그란데힐은 긍정했다.

요정족은 평생을 함께할 배필을 만든다. 그리고 그 배필이 죽는 순간 요정은 미친다. 그것이 설사 종족을 통솔하는 왕일지라도.

개인으로 보면 일족의 몇 명이 죽는 것은 슬프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당대의 요정왕은 미칠 일이 거의 없다.

“요정왕님의 아기씨……나도 받고 싶다.”

요르네의 중얼거림.

그란데힐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

어쩌지.

재빠르게 머리를 굴린다. 알고 싶지 않지만, 선명한 감각이 나에게 속삭였다.

­파파가 도대체 뭔 개소리야.

은수아, 윤채린, 윤승하.

저 세 명이 모두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고.

아무래도 강한남이 이지아에게 들러붙는 걸 떼려다가 강한남이 말을 잘못 놀려서 저렇게 된 것 같은데.

내가 이곳에서 살면서 가장 큰 나비효과를 일으킨 것 같다.

가면을 쓴다.

나는 이럴 때를 대비해서 세워둔 계책들을 떠올렸다.

“근데 우리 이렇게 가도 되는 거야?”

파래진 안색으로 이지아가 말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윤채린이 죽일 듯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윤승하가 죽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하루 칼부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 하지만 괜찮다.

“괜찮아.”

나는 이지아를 다독이며 말했다.

진짜로 괜찮다.

가면을 쓰고 냉정하게 생각하니, 사실 이건 별로 큰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피해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리 생각해둔 방법도 있고.

‘이 방법은 별로 쓰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얼굴을 굳혔다.

“우, 우리 싸울 거야?”

이지아가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여성진 쪽의 표정을 보았다.

음…….

실력의 고하를 떠나서, 저들과는 싸우고 싶지 않다.

“안 싸워.”

“응?”

당황하는 이지아.

나는 가면을 작성했다.

[여자를 후회와 피폐로 물들게 하는 카사노바의 가면Lv. 1]

……몇 번을 봐도 드는 생각이지만, 작명이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양다리를 걸친 것을 여자들에게 들켰을 때, 해결하는 방법.

멈칫.

가면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의 작성한 가면은 특이했다.

내가 간절하게 바란 탓인가. 혹은 내가 상격이 되면서 그릇이 커져, 가면의 ‘성능’이 강화되어서 그런가.

가면에 깃든 사념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럴 때는 오히려 뻔뻔하게 굴어라.

이상한 소리다.

양다리를 걸친 것을 여자들에게 들켰는데, 뻔뻔하게 굴라니. 생각해보니, 애초에 나는 양다리도 아니다.

하지만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은 없었다.

어느새 눈을 부릅뜨면서 노려보는 윤채린과 음울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윤승하, 안절부절 해하는 은수아가 보였다.

“시우야.”

은수아가 불안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은수아의 안색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왜?”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반문했다.

그건 쉬웠다. 정신력은 항상 유아독존의 보호를 받고 있고, 연기는 가면 덕분에 간단했으니.

은수아가 나를 쳐다봤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몰아치고 있었다. 금빛으로 빛나던 눈동자가, 그렁그렁하게 나를 바라봤다.

“……혹시 말이야.”

은수아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사귀는 사람 있어?”

“사귀는 사람?”

이지아가 되물었다.

가장 먼저, 나는 윤채린의 표정을 살폈다.

윤채린은 당연히 내가 먼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옆에 윤승하는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응, 지금 있어.”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은수아가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이지아가 굳은 표정으로 있었고.

"그, 그럼 누군데?"

"물론 이 몸이지~."

윤채린이 재빠르게 내 쪽으로 다가와 팔짱을 꼈다.

"……어?"

윤채린이 팔짱을 끼는 장면은 꽤 어색하지만, 내가 그녀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그녀들은 확신할 거다.

"나랑 이시우랑 사귀고 있다. 그러니까 괜히 넘보지 마라."

조금 떨리는 목소리. 미약하게 띄는 홍조.

윤채린은 자신만만한 웃음을 띠며, 선언하듯이 말했다.

***

윤채린이 선언하듯이 말하자, 순간 시간이 멈춘듯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멍하니 있어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윤승하였다.

"이, 이시우랑 사귀고 있다고?"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윤승하.

가장 큰 부정적인 감정은 배신감.

'배신감이라는 감정이 맞나.'

나는 처음, 윤승하가 윤채린 앞에서 몰래 사귄다고 선언했던 날이 떠올랐다.

우리 시우, 건들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던 애가.

"사귀는 거구나."

담담하게,

은수아가 말했다.

은수아의 감정은 놀랍도록 평정한 상태로 바뀌었다. 금빛의 눈동자가 조금 서글프게 변했지만, 은수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나와 윤채린을 바라봤다.

천의 가면으로 은수아의 감정을 살펴보니, 은수아가 감정을 추스르고 있다.

애가 덜렁거리고, 중2병에다가 나한테 파파거려서 그렇지 그녀는 전 세계의 마법사들을 모아놓은 상아탑의 예비탑주라고 불리는 존재.

감정 컨트롤쯤이야 이골난 것이 바로 은수아라는 존재─.

"그러니까 친구로서 사귀는 것이지?"

……그저 현실도피였다.

윤채린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은수아를 바라봤다.

"나랑 시우는 섹스도 하는 사이야."

"……."

은수아의 물음에 어처구니없는 답변이 나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침을 삼켰다.

조금 전, 윤채린이 한 말은 별로 의미가 없다.

이지아, 은수아, 윤승하.

여기에 있는 모든 여자랑 주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표정이 묘했다. 은수아는 괜찮은 척을 하며, 윤승하는 담담한 척을 하고 있고, 이지아는 묘하게 부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부러운 거지? 당당하게 할 수 있어서 그런가.

"그럼 아직은 사귀는 거지?"

윤승하가 은은한 적대감을 표하며 윤채린과 나를 바라봤다.

"결혼도 당연히 해야지~. 최연소 상격에 등극한 부부 두 명이 결혼한다. 완전 그림이잖아. 우리 결혼식장은 어디로 할까? 평생에 한 번 있을 결혼인데 큰 곳에서 하자. 서울에서 좀, 좀 많이 비싼 곳이 있기는 한데, 거기가 엄청 화려해서 좋더라."

윤채린이 신난 표정으로 재잘거렸다.

결혼이라. 나는 반사적으로 조금 껄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냐, 이시우. 방금 그 표정은?"

"……아니, 너 아직 상격 아니잖아."

"좀만 있으면 될 거니까 상관없어."

그렇게 말하며, 윤채린이 은수아를 바라봤다.

내 옆에 바로 착­달라붙으면서. 적대적인 눈빛으로 은수아와 윤승하를 노려봤다.

"너희가 이시우를 좋아하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시우의 여자친구는 나야."

윤채린이 그렇게 말하자 윤승하가 윤채린을 노려봤다. 윤채린은 담담하게 그 눈빛을 받으며 자신의 자매를……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어, 언제 그런 사이가 된 거야?"

"얼마 되지 않았어. 시간상으로 따지면 2개월도 안됐으니까."

은수아의 물음에 윤채린이 답했다.

"아무튼 물어볼 건 이게 끝이지?"

그렇게 말하며 윤채린이 내 앞에서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야. 아까 애들이 말했는데, 너 임나연이랑 이지아랑 사귀고 있다며? 해명 똑바로 못 하면 오늘 진짜 뒤진다.

역시 강한남이 문제였다. 강한남 뒤졌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애들이 충격을 더 받은 것 같지만, 그래도 언젠간 터질 시한폭탄치고는 꽤 양호하게 터진 것 같았다.

아니, 이건 일시적으로 미뤄둔 거에 불과하다. 시한폭탄은 째깍거리며 타고 있으니까. 다만, 지금은 애들이 받은 충격이 너무 크고, 보는 눈이 많아서 이렇게 된것이겠지만.

'그리고 성격이 그나마 둥근 애들이 터졌어.'

만약에 여기에 임나연이나 윤승하, IF루트에서 빌런타락하는 김하린이 있었다면, 어쩌면 싸움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일단은 이걸로 한숨을 돌린 건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생각했다.

***

윤승하는 입술을 비죽이며 생각했다.

아까 전,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대로 보내줬다.

윤승하는 어렸을 적부터, 윤채린에게 많은 것을 양보했다. 그 이유는 그녀가 천상의 마라는 고유능력에 의해 인격이 잡아먹힐까 봐, 굳이 그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녀는 천상의 마를 극복했다.

근 1년간 폭주하지 않은 그녀가 바로 그 증거.

'지금까지는 빼앗겼지만.'

이번에는 내가 빼앗을 거다.

우선 첫 번째로.

윤승하의 시선이 자신을 노려보는 임나연에게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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