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88화 (188/298)

〈 188화 〉 섬(4)

* * *

­침입자.

쾅!

석상의 팔이 내리쳤다. 백스텝을 밟으며 뒤로 후퇴했다.

그러자 문지기가 일곱 개의 팔을 움직인다.

­배제한다.

나는 뒤로 크게 물러났다. 기린검에서 보랏빛의 뇌광이 뿜어졌다. 문지기가 세 개의 팔로 주먹을 쥐며 나에게 휘둘렀다.

까아아아아앙!!

주먹과 검.

그것이 부딪친 소리가 공간을 울리며 사방으로 퍼졌다.

힘에 실린 경파.

나는 그것으로 확신했다. 문지기는 상격이다.

다만 개념의 힘을 사용한다든가 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문지기라는 존재가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침입자의 힘. 상격. 공격력 최상. 방어력 하. 위험등급 최상. 관리자 권한 개방.

까득.

일본에서 만들었던 뇌단을 씹어 삼켰다. 몸속에서 번개가 내달린다.

자파의 단을 삼키면 여기서 더 강해지겠지만, 자파의 단은 후유증이 너무 심하다.

우웅─!

단전에 머무는 뇌신이 울부짖었다. 몸속의 전류가 흐르며 시간이 느릿하게 흐른다.

뇌혼(?).

뇌신이 내 육체에 번개를 새긴다.

고오오오오오.

뇌령신공은 이상한 무공이다.

상격정도나 되어서 갈 수 있는 던전에 떡하니, 무공서만 놓여 있는 것도 그렇고, 그런 주제에 무공 사용자가 입문하면 사용자의 육체를 좀먹는다.

거기다가 다른 무공들은 어떤가.

중격에 올라야 겨우겨우 쓸만한 상태로 무공을 시전할 수 있다.

물론 그 쓸만한 상태에서도 뇌령신공은 다른 무공들과는 격을 달리한다. 모든 조건에서 같다고 가정하였을 때, 뇌령신공을 익힌 사람이 우위를 점하니까.

무신 혁월.

무의 신이라 불리는 남자가 그렇게 만들었다.

혁월은 이 무공을 만들면서 하나의 목적을 만들었다.

그릇.

혁월은 아주 커다란 그릇을 원했다.

그 목적은 뇌신의 힘을 다루는 사용자를 만들고, 그곳에 뇌신을 강림시켜, 그것의 정수를 취해 원영신을 이루는 것이다.

파지지지지지지직!

번개가 들끓는다. 뇌신이 호응했다. 번개를 방출하며 내 육체를 감쌌다.

­관리자 권한 개방 완료.

문지기가 보였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도, 검, 창, 봉 따위의 여덟 가지의 무기를 휘두르는 문지기.

오의.

뇌신현현(???).

***

상격에 들어서자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내가 가진 힘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많다.

가면으로 상대의 고유능력을 모방하며, 지식열람으로 상대의 특성마저도 모방한다.

하지만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저뿐만이 아니다.

나는 온갖 마법은 물론이고 이능까지 사용할 수 있다.

‘난감…하네. 시우 같은 경우는 또 처음이라. 내가 가르친 사람이 몇 없기는 하지만, 시우는 그래도 굉장히 특이해서.’

‘할 줄 아는 것이 많으면 좋지. 근데 너는 그게 너무 과해. 무공에다가 마법과 이능. 할 줄 아는 게 너무 많으면 오히려 안 좋아. 과유불급이야.’

내 상태를 남다윤과 윤채린은 그렇게 칭했다.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결국 정작 중요할 때 적절하게 내 힘을 쓸 수 없을 거라고.

나는 남다윤과 윤채린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세 가지를 간추렸다.

뇌신현현.

검강.

일월천뢰검.

검강을 제대로 쓰는 것은, 아직 무리였다. 뇌광을 엮어서 검기랑 혼합하는 작업은 단시간 내에 할 수 없는 작업이라서.

그래도 불안전하게나마 사용할 수 있다.

일월천뢰검도 아직 불안정하다.

천수로 가다듬고 있지만, 아직도 실전에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가장 기본적으로 일식과 월식의 일식을 만들고 최종형태의 절기를 하나 만들었지만, 그래도 불안정하다.

그래도 남다윤이 도움을 주고 있다. 머지않아 완성할 수 있다.

기말고사에 나올 문지기를 잡기 위해서 나는 한동안 하나에만 투자했다.

뇌신현현.

뇌신현현은 기존의 뇌혼과는 다르다. 속도를 극대화한다면, 뇌신현현은 문자 그대로 뇌신을 현실에 실체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뇌신현현은 일종의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는 영체다.

게임에서는 총 세 가지의 형태가 있다. 삼두육비의 아수라 형태. 검의 형태. 용의 형태. 세 가지 모두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아직 내가 숙련되지 않아서.’

가장 기본적인 수라의 형태를 골랐다.

까가가가가가강!

보랏빛의 번개가 사방으로 휘둘러졌다. 문지기가 크게 뒷걸음을 쳤다.

내 등 뒤에,

한 쌍의 검을 지닌 수라(??)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위험! 위험!

문지기가 눈을 붉게 빛냈다.

나는 고민했다. 뇌신현현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상대가 내 생각대로 그 상대라면 도발을 좀 하고 싶은데.

“관리자, 닫힌 세계는 어때?”

느릿하게,

문지기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저 붉기만 한 눈이 갑작스럽게 뒤바뀐다.

의문이 가득한 눈동자.

그것이 나를 바라봤다.

­……너는 누구냐.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닫힌 세계.

그곳은 일종의 아공간과 비슷한 공간이다. 모든 세계의 연결이 닫혀 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간.

관리자는 무신을 피해서 그곳으로 도피했다. 아니, 정확히는 무신은 그곳으로 도망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무신이 무섭기는 한가 봐. 그렇게 끔찍하게 싫어하는 곳으로 도피하고 말이야.”

나는 즐거운 듯 웃었다. 수라가 내 심상에 따라 검을 휘둘렀다. 뇌광이 번뜩인다.

문지기가 두 팔을 휘둘렀다. 조금 전보다 엉성한 움직임.

콰득.

그 대가는 크다. 문지기의 팔 세 쪽이 조금 전 일격으로 날아갔으니까.

­네놈!

“내가 누굴까. 네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혁월의 제자일 수도 있고. 혹시 몰라? 교단의 소교주일지?”

­흥, 혁월 그놈이 제자를 기른다고? 웃기는 소리.

관리자가 조소했다.

­네놈. 얼굴은 기억했다.

“기억해서 어쩌려고. 닫힌 세계에서 겨우겨우 목숨을 연명하는 주제에.”

­…….

말이 없다.

하지만 눈은 많은 것을 말한다. 분노에 가득한 눈이 나를 응시했다.

“참 슬픈 일이지. 컬렉터를 도와서 마왕을 쓰러트린 것까지는 좋지만, 그 후에는 부와 영광은 없고, 닫힌 세계에서 잠만 자다가 이따금 깨는 생활이라니.”

회귀자와 13명의 동료.

사람들은 그들을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서 마왕과 싸웠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진실은 현실과 다르다.

콜렉터는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정이 있는 사람이다.

무작정 너, 내 동료가 되라. 라고 하면서 세계에 편입시켜서 꼭두각시로 만들지 않는다.

재능이 있다고, 그 사람이 선할 이유는 없다.

혼란의 시대였다.

괴물이 범람하고 마나의 힘으로 각성한 각성자들이 날뛰던 시대.

13명의 동료 중 절반은 선한 인물이지만, 다른 절반은 중립이거나 얼마든지 마에 투신해도 이상하지 않을 인물들이 있다.

무신, 관리자, 경국지색이 그 경우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억 단위의 인구가 죽어도 눈 깜짝하지 않을 존재들.

회귀자는,

그들 때문에 한 번 실패했다.

마왕을 죽이기 직전까지 갔지만, 그럼에도 동료의 배신으로 마왕을 죽이는 데에 실패했다.

다만 그들은 몰랐을 거다.

우연한 기적에 닿아서 세계의 시간을 회귀시켰고, 회귀자가 자신들을 꼭두각시로 부릴줄은.

“이 안에 ‘그게’있지?”

마력을 끌어모으면서 말했다. 앞뒤 다 자른 말.

그러나 내 말에 관리자의 눈이 요동쳤다. 관리자가 왜 여기에 있을까.

무신과 관련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신과 관련된 일은 보통 두 가지다.

하나는 원영신을 위한 대계.

다른 하나는 컬렉터와 관련된 일.

등 뒤의 뇌신이 몸집을 크게 키웠다.

­너, 멈춰라!

“멈출 거면 진작에 멈췄지.”

콰드드드득!

뇌신이 보랏빛의 뇌광을 휘둘렀다. 남은 팔을 잘라내었다. 샛별의 영광을 들어서 몸통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콰아앙! 폭음이 일며 석상의 한가운데에 크게 구멍이 뚫렸다.

관리자는 제작계열의 능력자다.

원래대로라면 좀 더 고전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싸우는 데에 재능이 없는 수준이다. 굉장히 심각할 정도로 말이다.

얼마나 없냐면 무신이 중격의 능력치로 자신을 제어했을 때, 상격의 끝자락에 있던 관리자가 압도적으로 패할 정도로.

팔을 잃고, 무릎 아래마저 절단된 문지기는,

쿠웅.

그대로 쓰러진다. 붉게 물든 눈이 그저 석상으로 변했다.

그리고는 이내 재가 되면서 물건 두 개가 모습을 보였다.

“……이건?”

나는 지식열람으로 내용물을 살폈다.

그리고 당황했다.

물음표로만 뜨던 아이템의 정체.

그게 상상이상으로 좋은 물건이라서.

***

콰앙!

마법이 폭발했다. 강한남은 이를 악물고는 방패를 들어 올렸다.

하나의 무기만을 들고올 수 있는 섬 구조상, 강한남은 꽤 유리한 위치였다.

다른 무기들도 자신이 있지만, 신체 능력을 극한으로 활용하는 자신은 방패만 들어도 이점이 있다.

“젠장, 이러면 앞으로 못 가는데! 다른 애들은 뭐해?”

“다 막고 있지! 이지아 마법이 얼마나 강한데!”

사방에서 학생들이 소리를 질렀다.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공격력이 강하다. 그런데 이지아는 거기서 더 강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한종우가 이지아의 마법을 피하려 할 정도로.

중력의 구체를 막은 강한남은 이를 악물며 방패 위에 기갑을 전개했다.

이대로 막다가는 마나가 바닥나서 쓰러질 거다.

그러니 그 전에 쓰러트린다!

강한남은 우직하게 돌진했다. 온갖 마법을 막아내며, 그 사이에 감춰진 바인드도 무시하면서.

강한남의 고유능력인 저돌맹진의 힘이었다.

“잡았다!”

강한남은 바로 이지아의 앞까지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이지아에 대한 호감이 있지만, 시험은 냉정한 법. 강한남은 냉정하게 이지아를 구속하기 위해서 팔을 벌리고,

콰앙!

그대로 튕겨 나갔다.

“어?”

강한남의 돌진. 그것 때문에 눈을 감던 이지아가 눈을 떴다.

조금 피곤한 안색을 한 이시우가 보였다.

이시우다.

강한남은 반사적으로 몸이 떨렸다. 학기 초, 그를 괴롭혔던 기억이 아직도 그를 좀먹고 있다.

상격.

간단한 위치가 아니다. 세계 전체를 뒤져봐도 그곳에 오른 이는 마인들을 포함해서 2천 명이 채 넘지 않는다.

2,000.

작은 숫자이기도 하고, 큰 숫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웅과 관련된 일을 하면 마주칠 확률이 급격하게 높은 숫자이다.

만약에,

이시우가 자신을 작정하고 괴롭힌다면 한종우조차도 막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한종우가 자신을 내치면서 환심을 사려 할지도 모른다. 광성자의 아들인 한종우는 괜찮지만, 자신은 끈이 없다.

“이, 이시우다! 도, 도망쳐!”

사방에서 그런 소리를 하며 학생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시우는 잠깐 숨을 내쉬고는 이지아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응, 괜찮아.”

이시우는 이지아를 바라봤다. 마나를 과도하게 써서 조금 창백해 보이는 것 말고는 괜찮아 보였다.

“근데 넌 도망 안 가?”

이시우는 강한남을 보며 물어봤다. 강한남은 몸을 잘게 떨었다.

이시우는 강한남의 감정을 살폈다. 굴욕과 자존심. 그리고 무서움. 여러 가지가 공존하는 부정적인 감정.

그러고보니 강한남이 이지아를 좋아했지.

“한남아.”

“어, 어?”

“지아한테 너무 들이대지 마라.”

이시우는 팔을 이지아의 허리에 둘렀다. 이지아가 당황한 표정을 했지만, 이내 얼굴을 붉히며 이시우의 품에 쏙 안겼다. 마치 다정해 보이는 연인의 모습.

“어?”

강한남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