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 상승(2)
* * *
황금빛을 띠는 사과나무.
주변에는 꽃의 화원이 감싸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미의 화신이 있었다.
남성으로도 보이고 여성으로도 보이는 금발의 인간.
“…….”
금발의 인간이 고개를 들어 허공을 응시했다.
“……왕이 탄생한 건가.”
여성의 것으로도 들리고, 남성의 것으로도 들렸다. 성별이 구분되지 않는 목소리지만, 그것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홀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티타니아, 너는 행복할 자격이 있다. 헬레나가 죽으며 미쳐버린 나와는 달리.”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은 미쳤다.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 옛날, 아름답게만 보이던 세상은 죽은 잿빛의 색깔로 보인다.
환하게 웃는 동포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밉다. 헬레나를 죽게 내버려둔 인간종족이 떠올랐다. 그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고 싶다.
“크흐흐흐흐흐.”
남자는. 오베론은 입을 비죽였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이마가 손톱에 찢어진다.
피가 흐르지 않는다. 대신해서 나오는 것들은 벌레.
으적.
벌레를 씹어 삼킨다. 역겨운 것이 입안에서 터졌다. 그럴 때마다 인간족을 멸망시키고 싶어진다. 이것은 오베론이 참는 과정이다. 역겨운 것을 씹어 삼키며 복수를 뒤로 미루는 것.
“킥킥.”
오베론의 입이 찢어졌다.
주변의 꽃이 무너진다. 황금의 사과나무가 무너진다.
아니, 무너지는 게 아니었다. 꽃이 아니다. 사과나무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은 벌레가 이루고 있던 허상. 날개가 달린 온갖 벌레들이 무리를 이루고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오베론의 왼쪽 볼이 찢어졌다. 입이 생겨났다.
그곳에서 지네가 튀어나왔다.
왕이시여.
“그래……. 가야지. 아직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아직은 아니었다.
오베론은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증오스러운 인간들의 역겨운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오베론은 온갖 감정이 섞인 눈으로 히어로 아카데미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
나는 우선 요정왕의 장막을 젖혀 두었다.
저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만 내가 상격을 얻으면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상격.
인간의 탈을 벗어 던지고, 자신의 의지로 세계의 법칙을 변형시키기 시작하는 단계다.
이정도 되면 권능 비스무리한 것들을 발현시키기도 한다.
무인이라면 검강을 쓰기 시작하고, 마법사라면 능히 도시의 절반을 한번에 파괴하는 대마법을 쓰는 단계.
그러나 이 모든것은 부가적이다. 자신이 새긴 업적이 세계에 기록되고, 세계가 가진 법칙을 쓰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각인.
혹은 개념.
일생동안 자신이 추구하는 개념을 새긴다.
‘게임에서는.’
윤승하는 여러가지 루트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융화’나 ‘분열’의 힘을 가진다. 정령들을 융화해서 한 단계 더 강한 힘을 가진다. 혹은 정령들을 분열시켜 더 양으로 밀어붙이기도 한다.
정령을 분열시키고 분열시키다 보면, 최상격 너머에 있는 초월경에 다다를 때 쯤, 그녀는 수만의 정령을 사역한다. 문자 그대로 정령군단이 완성된다.
윤채린같은 경우에는 파천, 개벽 등의 능력을 얻는다. 다만, 윤채린은 내가 플레이를 몇 번 안 해봤고 관심이 없어서 많은 걸 알지 못한다.
파천은 무엇이든 부수는 힘이고, 개벽은 무엇이든 가르는 힘이다.
남다윤 같은 경우에는 일종의 영역을 선포하고 그 영역에서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검역(??)을, 김은정 같은 경우는 보조의 개념이 강한 각인을 가진다.
나는 몸을 관조했다.
상격에 오르면 문이 열리면서 하나의 개념이 새겨진다.
그리고 내게 새겨진 개념은.
“…….”
일월(?月)이다.
해와 달. 음의 기운과 양의 기운을 뜻하는 이 능력은 나도 아는 능력이다. 아니, 게임을 어느 정도 플레이하면 누구나 아는 능력이다.
나는 눈이 파르르 떨렸다.
성능 좋은 걸로 따지면 부정, 진리 등 많지만, 잠재력을 개화하는 덴 일월이 짱이지.
ㅇㅇ잠재력 개화하는 건 일월이 ㄹㅇ짱임. 근데 ㅅㅂ레즈년이랑 내 채린이랑 이어주기 좆같으니까 문제지.
오히려 좋은데? 바보도 알 수 있게 보벼.
일월의 효능에 대해서 묻자면 모든 게이머들에게 비슷한 반응이 나올 것이다.
일월의 효능은 누구나 긍정한다. 하지만, 하지만…….
‘……씨발.’
한 마인이 있다.
여색을 밝히기로 유명한 마녀. 그녀가 갖춘 능력이 일월이다.
……일월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섹스를 하면 서로가 원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능력을 뜻한다.
물론 이것도 일월이 가진 능력 중 하나다. 대부분은 태양이나 달이 떠 있으면, 능력치가 상승하는 쪽으로 사용한다.
‘나쁜 능력은 아니야.’
어쩌면 나에게 최적화된 능력일지도 모른다.
어느정도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하급의 영웅이나 헌터에 머무를 재능을 가진 존재를 중격까지 끌어올리는 미친 능력이니까.
뿐이랴. 태양이 떠 있으면 육체가 강건해지며 온갖 활력과 회복력을 준다. 달이 떠 있다면 마력을 비롯하여 온갖 보정과 버프를 준다.
불속성이나 빛, 수속성이나 빙, 음 속성의 힘도 강해지며 좋기는 한데.
‘그래서 음양체가 태극지체가 진화했던 거군.’
내가 갖게 된 개념이 너무 음양체랑 잘 맞아서 진화한 것 뿐이다.
한숨을 쉬며 번개를 내뿜었다. 자색의 번개가 파직하고 튀었다. 불꽃을 소환하고 둘을 섞었다. 원래대로라면 반발이 어느정도 나야 하지만 두 마법은 반발 없이 잘 섞였다. 태극지체가 가진 조화의 마나가 영향이 있다는 증거다.
마나의 색은 특성이나 고유능력보다 ‘개념’을 우선시한다. 그렇기에 보랏빛으로 빛나는 거고.
나는 바로 근처에 있는 벽 거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 뚜렷한 이목구비. 검은색의 머리카락.
‘눈 색이 바뀌었네.’
번개가 이는듯한, 보랏빛의 눈동자가 보였다. 눈이면 양호하다. 다른 애들은 머리카락색까지 영향에 미치는데 나는 눈동자에 그쳤으니.
나는 요정왕의 장막을 보고는 내가 평소에 입는 티셔츠랑 반바지를 떠올렸다.
휘리릭.
하얀색의 망토가 옷과 반바지로 변했다. 내가 생각한 검은색의 티셔츠와 반바지로. 그러면서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색깔도 변형되는 건가, 좋네.
나는 그란데힐에게 문자를 보내기 위해서 핸드폰 화면을 켰다.
“………………………………¿?¿?¿?¿?¿?¿?¿?”
부재중 전화가 4 자릿수가 찍혀 있다. 문자는 그보다 많았다. 뭐지, 하는 심정으로 날짜를 보니 이해가 되었다.
목요일.
분명 마켓을 들리고 훈련에 들어간 요일은 토요일이었는데, 목요일이라는 날짜가 떡하니 찍혀 있다.
톡을 확인해보니 300+가 주를 차지하고 있었고, 여자애들 갠 톡 들은 대부분 100개 넘게 톡이 와 있었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정리했다. 우선 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를 보내고 차례대로 전화해야겠다.
‘이거 순서 잘못하면 큰일이겠는데.’
여자들중에서. 아니, 거의 모든 여자라면 신경 쓸 것이다.
첫번째는 그란데힐, 혹은 윤채린.
다음으로는 윤승하랑 남다윤. 머릿속으로 여자들 순서를 빠르게 정하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
요정족은 십삼월이라는 조직이 있다. 종족마다 가장 강한 열셋을 뽑은 다음, 그들로 하여금 가장 강한 무력대를 만든다.
그 중에서 카니에는 방어를 상징하는 6월의 부단장이었다.
“하아.”
“웬 한숨이냐.”
“한숨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저희 요정족은 인간들보다 우월한데, 인간이나 지키고…….”
카니에는 더 말하지 못했다. 그의 상사가 재빠르게 마나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너, 어디가서 그 말하지 마라. 장로님들한테 불려 가고 싶지 않으면.”
“?”
“그 인간이 요정여왕님의 오른팔인 그란데힐 님의 반려자다. 그 남자한테 뭐라 했다가, 그란데힐 님이 화내면 어쩌려고? 우리 6월 예산, 저번에 사고 친 것 때문에 삼 분의 일이 날아갔는데, 여기서 절반 이상이 깎일 수 있다. 알겠냐?”
“아니, 인간……읍.”
“인간이고 나발이고. 그란데힐 님의 반려자인데다가 걔 성장치는 보통이 아니야. 최소 30년 안에 최상격에 들어갈 인물이다. 아무것도 모르면 닥치고 있어.”
하룬은 부하를 훈계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카니에만 그런게 아니다. 종족적으로 인간족보다 모든 것이 우월한 요정족들은 대저, 그런 심리를 가지고 있다.
하룬도 처음에 그랬다. 남다윤이라고 했나. 그 인간을 보기 전까지.
인간족은 열등하다.
그러나 이따금 그들 사이에서 희한하리만치 강한 존재들이 대거 등장한다.
자신의 여왕님에 비견되는 강자들도 등장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시우라는 소년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하룬은 그리 생각하면서 방비를 철저히 했다.
끼익.
문이 열렸다. 하룬은 문쪽을 바라보았다. 그란데힐이 상격에 오를지도 모른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하룬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의 나이가 너무 어린 탓이다. 그의 재능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경험이 너무 일천하다.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재능을 발견했지만, 소년이 제대로 무?에 입문한 지 이제 1년. 소년의 성장속도는 상상이상이지만, 그래도 이제 벽에 막히고 있을 차례다.
“……어?”
누군가가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하룬은 소년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하룬 뿐만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요정족들이 모두 이시우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요정족들에게 각인된 본능이 그를 향해 무릎을 꿇게 하였다.
뒤에서 후광이 비친다.
하룬은 알고 있다. 뒤에서 후광이 비쳤던 존재를. 누구보다도 찬란했던 존재를.
무슨 이유인지는 모른다. 다만 인간은.
아니, 인간이었던 것은.
“““요정들의 왕을 배알하나이다.”””
요정들의 왕이 되어 나타났다.
***
나는 주변을 보았다.
수 많은 요정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거리를 벌리고.
‘…….’
뭐지.
요정족들은 보통 어린아이와 비견된다. 그들이 대부분 좋은 의미로 순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거리낌 없이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는 편인데.
“그란데힐은?”
“예! 하룬 단장이 보낸 마법 편지에 따르면, 지금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시우 님의 명에 따라, 아직 이시우 님이 왕에 등극했다는 건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
“넵!”
검은색 단발이 인상적인, 카니에라고 불린 부단장이 경례를 붙이곤, 우렁차게 말했다.
요정족들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천의 가면에서 느껴지는 것은 질시와 부러움. 아니, 저걸로 부러워한다고?
황당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나무의자요정족들이 왕이 일어서 있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만들어줬다.에 기대며, 조용히 상념에 빠졌다.
요정들의 왕이라는 대우가 상상 이상으로 좋다. 저 까칠한 요정족들이 아이돌을 만난, 순종적인 팬처럼 변했다.
그러자 이런 생각도 들었다.
티타니아가 가진 요정족들의 보물고. 거기에 잠들어 있는 보물들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나는 왕이잖아. 왕과 여왕끼리 니꺼 내꺼가 없을 텐데. 나도 몰래 몇 개 슬쩍해도 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자니 눈에 거대한 마력 반응이 일었다. 그 반응은 두 개. 작은 반응과 거대한 반응을 보니 티타니아와 그란데힐인것 같다.
내 예상대로 티타니아하고 그란데힐이 왔다.
“이건…….”
그란데힐이 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바로 예를 취했다.
“요정족의 왕을 뵙습니다.”
그리고 티타니아는.
“딸국.”
딸국질을 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을 붉힌 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