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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77화 (177/298)

〈 177화 〉 마켓

* * *

“아~놀러 가고 싶다.”

윤채린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윤승하는 힐끔 흘겨보았다. 아마도 놀러 가고 싶다는 단어 뒤에 이시우가 붙어 있겠지.

윤승하는 속으로 숨을 쉬며 얼마 전, 검주와 이시우와 같이 섹스했던 날을 떠올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윤승하는 이시우가 다른 여자와 하는 게 싫었다.

내 시우가 다른 여자랑 하는 것도 싫었고, 내 육체에 다른 여자가 닿는 것도 싫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다른 여자가 필요하기는 했다.

‘그날 가버린 횟수가 200번이 좀 넘어.’

더 정확하게는 자신 혼자서 이시우를 제어하기 힘들다. 검주와 했을 때는 그나마 번갈아 가면서 하느라 버틸만했다. 만약 혼자였다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진짜 복상사했을지도 모르지.

“놀러 가고 싶으면 놀러 가던가. 시우는 어디 갔던데.”

“…….”

윤승하는 일부로 이시우를 언급했다.

윤채린의 반응을 떠보려고. 임무에서 돌아온 뒤, 이시우와 윤채린의 반응이 신경이 쓰여서 그랬다.

그런데 윤채린의 반응이 이상했다.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는 달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자매가 더 낫…낫나?”

“뭔데, 그 반응은.”

“……아냐. 그냥 우리 자매 맞지?”

“어.”

“그럼 됐어.”

“…….”

윤승하는 불안한 눈으로 윤채린을 바라보았다. 설마 함락당한 건가. 그것도 그건데 윤채린이 설마 다른 여자를 들이는 걸 허락했나? 저 망나니가?

“아~그럼 게임이나 하러 가야겠다.”

“또 그 게임을 하게? 욕 좀 그만해.”

“……어쩔 수 없어. 이건 탑솔러의 싸움이거든.”

윤채린은 그렇게 말하며 방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놀러 가고 싶니?”

그녀들의 어머니, 이연아가 말하기 전까진.

윤채린은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이연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들을 끌고 가 화창한 던전으로 데려가는 여인이었다.

12살 때, 망령에게 잠시 자아를 뺏겨서, 큭큭­이곳은 나에게 너무 밝은 곳이다­라고 말했을 때, 어둠 속성 괴수들이 즐비한 던전으로 끌고 간 이연아는 그녀에게도 조금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다.

윤채린은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놀러 가고 싶지 않아졌어요.”

“그래? 그럼 엄마는 오랜만에 장 좀 보고 올게.”

“장이요?”

이연아의 말에 윤승하가 반응했다.

윤승하는 요즘 들어서 요리에 관심이 부쩍 생겼다.

괴수들을 사냥하면서 그 부산물로 용돈 벌이를 꽤 쏠쏠하게 했는데, 이시우에게 어울리는 옷들을 산다든가, 같이 사는 기숙사를 신혼집 꾸미듯이 해서 돈이 많이 부족했다. 줄일 건 줄여야 했다.

‘식비 정도는 해결할만해.’

그리고 약간의 계산이 있다. 남자는 요리를 잘하는 여성에게 끌린다. 윤승하는 오이맛 사이다를 입에 털어 넣고는 말했다.

“그럼 저도 갈게요.”

윤승하는 대충 흰색 모자 하나를 쓰고, 하얀색의 후드티와 반바지를 입었다.

그리고는 슬쩍 거울을 바라봤다. 조금 후즐근한 후드티지만, 원판이 워낙 잘나서 괜찮았다.

윤승하와 이연아는 그렇게 집을 나섰다.

“어머니?”

“왜?”

“어디까지 가시는 거에요? 마트는 아까 지났는데?”

“장 보러.”

윤승하는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자신의 어머니지만, 이연아는 말을 너무 생략해서 하는 경향이 강했다.

‘장을 본다고 했으니, 마켓을 가는 건 확실한데.’

평범한 장은 아닐 거다.

그렇다면 워프 게이트를 탈 리가 없으니까.

***

‘재밌군.’

혁월.

무신이라는 칭호를 받은 마인이 소년을 바라봤다. 소년 보다는 내면의 뇌령들이 보였다. 뇌신을 목전에 둔, 뇌령과 그 뇌령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인 뇌령.

뇌령신공.

마왕을 칠 때, 사령의 힘을 본떠 만든 무공이다. 그러나 그 무공이 지닌 목적은 하나다.

대기(大?).

아주 커다란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릇은 훗날──.

혁월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멈췄다. 멀리서 묘한 감각이 들었다.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검은색 장발의 여인이 보였다.

인세를 초월한 외모.

인간의 희로애락을 버렸으나, 순간적으로 마음이 동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였다.

그러나 분위기는 외모와 전혀 달랐다. 혁월이 소년을 바라보자마자, 여인은 혁월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살기가 훅­하고 몰아쳤다. 일반인이라면. 아니, 영웅이 될 재능이 없는 헌터나 재능이 없는 영웅이라면 한순간에 졸도할 밀도 높은 살기. 만약 그녀가 악독했다면 살기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으리라.

혁월의 입이 찢어졌다.

그녀의 외모 때문은 아니다. 혁월이 웃은 이유는 단 하나.

‘강해. 힘의 총량으로 따지면 신유진보다 더…….’

신유진.

회귀자라 불리며, 불세출의 천재라고 불린 이와 힘이 대등했다. 혁월은 그의 재능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명백한 둔재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수집한다. 심지어 재능마저도. 그것으로 그는 천재라고 불릴 영역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후천적인 천재는 선천의 재능을 이기지 못한다. 둔재라는 틀에 갇혀서 그는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신유진과는 다르게 여인은 재능이 충만하였다. 그녀의 걸음을 살폈다. 몸을 움직이는 법을 눈으로 쫓았다.

주의하지 않으면 놓칠, 자연스러운 걸음.

그러나 빈틈이 없다. 걸음 하나하나가 위압적이다. 마치 완전함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한듯하다. 만약 그녀를 공격한다면, 어떤 수를 쓰던 그녀는 반격할 것이다.

‘후발선제(????)? 아니면 천의무봉(??無?)? 뭐가 됐든 까다롭겠군. 단기전은 불가능해. 상성에서부터 밀린다.’

그리고 혁월은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재밌군. 아직 인간 쪽에도 저런 강자가 남아있었나.’

혁월은 소년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몸이 달아올랐다. 만약 조금만 더 있다면, 그녀에게 싸움을 걸었을 만큼.

‘아직은 안되지.’

혁월은 아직 이루지 못한 대업을 떠올렸다. 마에 타락하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았던, 자신이 이뤄야 할 숙명을.

***

‘살…았나?’

혁월이 가게 안쪽으로 가는 것을 확인하며 안도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혁월이 나에게 관심을 거두었다.

안심해하며 벽에 기대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윤승하가 보였다.

“시우야!”

새하얀 모자를 쓰고, 후드티에 반바지 차림을 한 윤승하가 나를 보며 달려왔다. 마치 주인을 보고 반갑게 달려오는 강아지처럼.

“승하 왔구나.”

“응. 근데 시우도 뭐 사러 왔어? 어머니가 마켓에 간다고 해서 왔는데.”

“어머니?”

나는 고개를 돌렸다. 밤하늘 같은 기다란 장발이 허리까지 내려오고, 우주를 담은듯한 눈동자가 보였다. 그녀의 외모는 어떤 말을 해도 빛바랠 것 같은 절세의 가인이었다.

물론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

무엇이든간에 자신의 신념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나라도 아니고, 세계 그 자체를 멸망시켜버린 여인이다.

거리를 둔다면 두고 싶지만, 그녀는 일단 윤승하와 윤채린의 어머니다.

“안녕하세요. 이시우라고 합니다. 항상 승하에게 신세를 지고 있어요.”

“응, 알고 있어. 맨날 승하가 집에서 시우, 시우 거리거든.”

내 말에 멸망의 용사­이연아가 포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웃는 것조차 인상적이었다. 어지간한 영웅이라면 그녀의 웃음에 홀릴 정도.

“……우리 엄마 유부녀인 거 알지?”

“물론 알지.”

불안해하며 말하는 윤승하의 말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답했다.

“근데 승하야. 너도 블랙마켓에서 뭐 살 게 있어?”

“블랙 마켓? ……나는 장 보러 갈 거냐고 들었는데.”

윤승하가 이연아를 바라보자 이연아가 웃으며 말했다.

“블랙 마켓도 마켓이잖니.”

어처구니 없는 답변이 왔다.

나는 핸드폰을 터치해서 톡을 확인했다. 아키랑 사나에는 거의 도착했다고, 나에게 톡을 보냈고, 샤오메이도 5분 안에 올 거라고 보냈다.

그리고 잠시 뒤.

청순해보이는 여인과 똑 부러질 것 같은 성격을 지닌 냉막한 미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나에와 아키였다.

사나에는 화장에 힘을 줬는지, 평소에 보이던 다크 서클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옷은 어깨와 팔이 반투명하게 비치는 하얀색의 시스루 원피스를 입었다. 아키는 평소에 입는 정장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근데 시스루……?’

사나에한테 시스루 원피스가 어울리지 않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청순한 모습에 시스루 원피스를 입으니 야릇한 느낌도 있어서 음침해 보이는 무녀복보다는 훨씬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치만 사나에의 나이가 걸렸다.

사나에의 나이는 40세인데.

‘음.’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저런 옷을 입은 것 같은데. 나잇값 못한다고 욕을 먹기 좋은 옷이었다.

뭐야, 부끄럽지 않나. 나잇값 못하는 거.

윤승하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재빠르게 마법을 걸어서 소리가 새나가는 것을 막았다. 사나에가 퍼지는 마력의 파장에 의아해했다.

“엄청나게 예쁘시네요, 사나에님!”

나는 활짝 웃으면서 사나에를 칭찬했다.

그러자 사나에가 바보같이 헤­하고 웃음을 흘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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