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 활동(3)
* * *
아키에 대한 인상은 솔직히 말하자면 빈말로도 좋기는 힘들었다.
사나에가 내 팬이라는 이유로 나를 꽤 싫어했으니까.
그런데 아키는 나랑 통하는 게 많았다.
“매운 걸 좋아하시는 군요.”
“네. 주변에 매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동안 혼자 다녔는데. 아, 민트 초코우유를 좋아하세요?”
“네, 사실 없어서 못 먹는 거긴 한데 사나에 님이 민초를 싫어하셔서.”
사나에는 민초를 싫어하는구나. 내면에서 사나에의 대한 호감도가 내려가고 아키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갔다.
“이것도 드셔 보실래요?”
나는 매콤한 불닭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 올린 것을 소접시에 덜며 물었다.
“네, 저도 한번 맛보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된 거 반씩 나눠 먹을까요?”
“그러죠.”
사나에가 마파두부를 절반 정도 덜어서 나에게 줬다.
타오 리가 사천의 마?와 랄?을 느낄 수 있다고 추천해 줬는데,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한 번 먹으려고 해도 윤승하가 마라탕을 먹자고 하거나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를 같이 먹자고 해서.
수저로 한입 떠서 밥 위에 올리고 입에 넣자 기분 좋은 매운맛이 혀를 얼얼하게 자극한다.
“이시우, 너도 사천의 음식을 먹는 거냐?”
자연스럽게 다가온 타오 리가 내 왼쪽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타오 리는 시뻘건 국물의 탄탄멘과 마라샹궈 한 그릇을 가져왔다.
“……그거 다 먹을 수 있냐?”
“물론이다. 오히려 네가 이상한 거야, 이시우. 몸을 쓰는 전투직이 그것밖에 안 먹고 훈련이 되나? 누나가 음식 더 가져올 테니까, 사천의 음식을 맛보도록. 우리 가문에서도 특별히 이름있는 쉐프가 한 요리니까 너도 마음에 들 거야. 한국 사람들은 사천의 마?와 랄?을 좋아하니까.”
타오 리가 자랑을 하며 탄탄멘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얼핏 봐도 지름 40cm 가까이 되는 그릇인데.
나는 젓가락을 마라샹궈로 옮겼다. 연근 하나와 새우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혀끝이 얼얼한 기분 좋은 매운맛이 마음에 들었다.
“어머, 마라샹궈가 마음에 드세요?”
머리를 양옆으로 묶고, 차이나 드레스 아래에 각선미를 뽐내며 샤오메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양손에는 큰 접시 두 개를 가져왔는데, 접시 하나에는 갈색빛의 오리가 통째로 한 마리가 들어 있었고 그보다 작은 나무 판에는 만두가 들어 있었다.
샤오메이가 오른쪽에 앉으며 만두를 꺼냈다. 주먹만 한 만두가 4개만 들어있었다.
뭔가 배치가 이상했다. 마치 많이 담으려다가 급하게 뺀 듯이 만두가 한쪽에 쏠려 있는 기묘한 배치.
“…뭐지? 누나, 아까 다이어트 한다고 만두 12개만 가져온다더니 더 줄었네?”
샤오메이가 손을 내 등 뒤로 넘기고 타오에게 향했다. 움찔하는 걸 보니 샤오메이가 손으로 타오를 꼬집은 것 같았다.
“타오, 조용히 해.”
“……응, 알았다.”
타오가 조용히 하고 면을 흡입했다.
“이거 한번 드셔 보실래요?”
샤오메이가 옆에서 오리고기 한 점을 찢어서 내 입가에 가져왔다. 눈웃음을 살살 치면서.
나는 사양하지 않고 먹었다.
***
“아, 그럼 사나에 님은 아카데미의 교수로 오시는 건가요? 혹시 몇 학년을 가르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사근사근한 말투로 샤오메이가 말했다.
“사나에 님은 2학년을 가르치실 겁니다. 다만, 이번 이번에 기말고사를 치르시니 학생들과는 안면만 익히기 위해서 인사만 하실 겁니다.”
“아, 아쉽네요~. 저는 이번에 3학년으로 올라가서 사나에 님의 수업을 받지 못하는데. 대신 타오가 열심히 수업을 받으면 되겠네.”
“누나, 나는 무학을 배우고 있는데.”
“타오.”
“……응, 할게.”
타오가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쯧쯧, 불쌍한 것.
나는 후식으로 가져온 와플을 입에 넣었다. 달달한 생크림과 꿀맛이 기분 좋게 혀를 감싼다.
후식으로 와플을 먹자니 몸속의 마나가 거의 다 찬 것을 느꼈다.
슬슬 컬렉터의 가면에 마나를 불어 넣을 시간이기는 한데.
“……혹시 시우 씨는 시간 되세요?”
“시간이요?”
“네. 이번에 블랙 마켓에서 꽤 좋은 물건들이 들어왔다고 해서요.”
블랙 마켓.
암시장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희귀한 것만을 파는 시장으로 바뀐 곳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불법적인 것이 없지만, 그 안은 불법 천지다. 마인들도 꽤 유용하게 쓰고 있기에 중반쯤 되면 협회에서 철거당하는 곳이다.
블랙 마켓에 나오는 물품들은 모두 랜덤이다. 그래서 나는 굳이 빨리 갈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샤오메이를 바라봤다. 샤오메이의 능력은 탐욕의 시선이라는 능력이다.
어떤 사물이나 인물의 가치를 대략적으로 측정하는 능력이다.
샤오메이가 참가한다면 내가 모르거나 까먹은 물건들도 비교적 헐값에 좋은 물건을 살 수 있을 거다.
‘돈은 꽤 있어.’
통장에는 샤오메이 덕분에 백억이 넘는 금액이 잠들어 있다.
다만, 블랙 마켓에서 나오는 물건들은 심심하면 십억 단위는 우습게 넘어간다.
가문이나 기업 차원에서 사활을 걸고 얻으려는 물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러 명의 중격의 영웅보다 한 명의 상격 영웅이 낫다.
대기업 영업직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한 명의 상격 영웅을 키우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그리고 상격의 영웅은 어떤 직종이든, 백억이 들어갔다고 하여도 빛을 변제할 능력이 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블랙 마켓에서 경쟁이 과열되어 물건을 입찰해도 그 값을 지급하다가 패가망신한 곳도 있다. 라고 할 정도.
“그럼 같이 가죠.”
“저, 저도 가도 될까여?”
사나에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키가 눈을 잠깐 찌푸렸다가 아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티켓은 쉽게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사나에 님이 같이 가신다면 혹여나 다른 마인들이 급습해도 괜찮을 겁니다. 사나에 님은 다른 영웅분들과 친밀하게 지내셔서…….”
아키가 다급하게 사나에의 장점을 언급했다. 물론 그녀가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아도 데려가야 한다.
이런 말을 하면 미안하지만, 사나에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잘 모른다. 무언가를 봉인하는 힘으로만 생각할 뿐이지.
“그럼 같이 갈까요?”
내가 묻자, 사나에가 고개를 위아래로 격렬하게 끄덕였다.
“아키님도 같이 가실 거죠?”
“저, 말씀입니까?”
내가 묻자 아키가 잠깐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무언가 걸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옆을 슬쩍 보니 사나에가 배신당한 표정으로 아키를 보고 있었다.
***
티타니아는 오랜만에 말끔하게 차려입었다. 운동복에 반바지만을 입던 패션을 버리고, 그란데힐이 손수 정리한 요정여왕의 드레스. 그것을 그란데힐의 손을 빌려 입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은 그란데힐이 다듬어 주어서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고, 그란데힐이 골라준 예복을 입어 한눈에 봐도 정갈하게 보였다.
이쁘다기보다는 굉장히 고아한 느낌. 티타니아는 만족스럽게 웃고는 자신의 눈동자와 같이 푸르게 빛나는 목걸이를 목에 걸쳤다.
“여왕님.”
“응, 왜?”
“그 목걸이보다는 이 목걸이가 더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
그란데힐이 진주 목걸이를 보였다.
티타니아는 힐끔 거울에 걸린 자신을 보았다. 다시 보니까 진주 목걸이가 더 맞는 것 같았다.
사파이어가 박힌 목걸이를 다시 빼고 그란데힐이 추천한 진주 목걸이를 걸었다.
문득, 그란데힐의 귀에 걸린 귀걸이가 눈에 밟혔다. 인간이 만든듯한 조금 투박한 사파이어가 달린 귀걸이.
‘데힐은 액세서리 별로 안 좋아하는데.’
상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이시우가 바로 지척에 왔기 때문이다.
똑똑.
티타니아는 자리에 앉고는 그녀의 능력인 동화를 살짝 이용하였다. 세계수가 호응했다. 세계수의 마력이 이곳에 깃든다.
그저 깃들 뿐이라 효용 자체는 별로 없다. 그저 기분이 좋아지고 싱그러운 풀냄새가 나며, 위엄 같은 것이 돋보일 뿐.
아주 조금. 아주 조금 한심한 눈으로 티타니아를 바라본 그란데힐은 재빨리 눈을 아래로 내렸다.
“들어오렴.”
평소와 답지 않은 고아한 목소리.
티타니아가 말하자 문이 끼익하고 절로 열렸다. 나무의 정령을 손짓으로 시킨 결과였다.
그란데힐은 아무것도 못 본 척하면서, 이시우가 선물로, 자신이 좋아하는 보석이라며 건네준, 사파이어 귀걸이를 잠깐 만졌다.
활짝 열린 문.
이시우가 들어온다. 잠깐 눈이 마주치자 이시우가 눈으로 안부 인사를 건넸다. 그란데힐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소파에 앉으렴.”
티타니아가 우아하게 손짓하며 말했다. 이시우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앉았다. 티타니아는 이시우에게 말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묘한 위화감이 강하게 왔다.
익숙한 향기. 그리고 아릿한 기억.
나태의 산양을 잡고 난 후, 일본에서 자기보고 취향이라고 말했을 때도 묘한 위화감을 느꼈었는데.
고개를 잠깐 갸웃거린 티타니아는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은 우선 그란데힐을 밀어줄 차례다.
봉관의 무녀는 상격의 영웅이며, 개인의 무력은 약하지만, 팀에 합쳐지면 그녀의 가치는 수직상승 한다.
그렇지만 히어로 아카데미에는 그녀가 없으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티타니아는 그란데힐을 밀어주려고 이렇게 자리까지 따로 만들지 않았는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질책하려는 게 아니라, 저번 나태의 산양을 막은 공로로 상을 주려는 것이니.”
초반에는 담담하게 말했다.
실제로도 줄려고 했다. 공허의 왕, 에니스와 용왕, 하메르도 동의한 사항이다.
다만, 그 보상을 무엇으로 줘야 할지가 문제였다. 단지 강림하고 힘의 일부를 되찾았던 나태의 산양은 일본에 커다란 재앙이었다.
400,000km에 달하는 면적을 마기로 오염시키고, 온갖 것들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산양이 강림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말이다.
에니스가 괜히 자기를 주겠다고 한 게 아니다. 농담조로 말하기는 했지만, 이시우가 거기서 고개를 끄덕였다면 진짜로 결혼식을 치렀을 테니까.
─제 취향은 오히려 요정여왕님에 가까운데.
이시우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티타니아는 고개를 잠깐 저었다.
보상은 우선 한가지씩을 주기로 했다.
여의천주????를 내놓지.
용왕의 말이었다.
다른 말로는 넥타르. 먹는다는 행위로 불로 하는 신의 음료였다. 여의천주는 먹는 것 자체로 인간에게 완전함을 선사한다.
일반인이 먹으면 중격의 영웅이 가지는 스펙과 비슷해지는, 문자 그대로 신의 음료.
뭐야뭐야~. 하메르, 너무 화끈한 거 아니야? 이렇게 되면 고민되네. 걔는 무기도 엄청 좋아 보이는 거 쓰고. 여의천주면 영약은 필요 없겠고.
다름이 아니라 그가 가진 샛별의 영광이나 기린검은 그의 수준에 너무 높은 무기들이다.
그저 좋은 무기라면 더 있기야 하겠지만, 그래서는 이시우의 성장이 고착될 확률이 높다.
거기다가 바티칸에서 성물?物도 받기로 했으니. 그럼 난 공상의 구슬을 주도록 할게.
……너야말로 무리하는 게 아닌가?
공상의 구슬.
시간과 관련된 성물이다. 그 효과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시우가 한 번 죽으면, 이시우의 시간을 되돌리고 부활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티타니아는?
티타니아는 여기서 말고 그란데힐과 상의해라. 너는……내가 말하기에 뭣하지만, 너무 호구다운 경향이 있다.
그건 그렇지~. 만약 남자가 생긴다면 집안 살림 거덜 내면서 남자를 떠받들어줄걸?
……티타니아는 머릿속에 그들의 대화를 지웠다.
“데힐.”
그란데힐을 불렀다. 그란데힐이 고개를 숙이고는 공간에서 물건을 두 개 꺼냈다.
황금빛의 잔. 잔 위에는 보랏빛의 액체가 찰랑거렸다.
그리고 보랏빛의 구슬.
“……이건.”
이시우가 떨리는 눈으로 그 두 개를 바라봤다. 티타니아는 흡족하게 웃었다. 강함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다.
한눈에 물건의 가치를 아는 이시우의 눈과 두뇌를 보니 이시우가 더 이쁘게 보였다.
이시우는 재능이 입증된 우량아다.
‘미래에는 분명.’
그를 중심으로 역사가 개편될 것이다.
일찍이──회귀자이자, 하나의 세상을 품었던 그 남자를 주축으로 인류가 뭉쳤던 것처럼.
“각각 공허의 왕과 용왕이 준 선물이다. 용왕은 여의천주, 신의 음료라 불리는 넥타르를 주었다. 그리고 공허의 왕은 공상의 구슬을 주었지.”
“네에…….”
이시우가 자신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황홀한 눈으로 여의천주와 공상의 구슬을 바라보았다.
티타니아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내가 더 취향이니 뭐니 했으면서 에니스나 하메르가 준 선물에 눈을 못 때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데힐.”
티타니아는 그란데힐의 이름을 불렀다.
요정족이 준비한 보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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