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 보스 공략(3)
* * *
뇌광염익.
솔직히 말하자면, 은수아의 작명센스 치고는 나쁘지 않은 이름이다. 꽤 직관적이기도 하고. 그런데 앞에 굳이 영어를 붙였어야 하나.
라이트닝 블레이저 윙.
듣기만 해도 손이 오그라들었다.
“수아야, 일단 은신 마법 좀.”
“미리 걸어 뒀지.”
은수아가 히히하고 웃었다.
새롭게 변한 뇌광염익은 눈에 너무 띈다. 보랏빛의 불꽃과 번개가 혼합되어서 훤한 대낮에도 잘 보이는데, 어둑한 미로 탑에서는 구름 한 점 없는 밤에 환한 보름달이 뜬 것처럼 잘 보이니까.
나는 광익을 움직였다.
파르르광익이 떨었다.
광익은 가속에서 흔히 말하는 단계가 필요 없다. 최고 속도로 움직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0.1초. 물리법칙의 현상을 무시하는 ‘이능’이기 때문이다.
2km의 거리를 5초도 안 되는 시간에 돌파했다.
속도는 김하린의 광익보다 빠르다. 아마 광익에 뇌령의 마나가 있어서 기도 했고, 얼마 전에 김하린과 관계를 맺으면서 레벨을 올렸기 때문이다.
“수아야, 저기 애들 싸우고 있다.”
“윤채린?”
“응.”
나는 은수아에게 말하고 한쪽을 응시했다. 임나연과 김하린이 속한 조와 약 2개의 조가 더해진 학생들과 윤채린이 싸우고 있었다.
윤채린이 흑룡을 소환하며 날뛰고 있었다. 다만, 윤채린의 몸도 성하지 않았다. 김하린이 광익으로 보조하며 임나연이 천영의 꽃으로 그녀의 흑룡을 얼렸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윤채린의 열세.
그러나 그녀에게는 마법사이며 정령사인 동생이 팀원으로 있다.
우웅─!
마력이 들끓는다. 동시에 원소들이 부풀어 올랐다. 불꽃, 번개, 물, 대지, 금속, 그림자. 다행히도 아직 다음 정령인 ‘거울’속성의 정령은 얻지 못한 것 같다.
윤승하가 나서자 싸움의 기세가 기울었다. 임나연과 김하린은 슬슬 빠질 준비를 하고 윤채린은 임나연과 김하린을 집요하게 노리고 있었다.
다른 곳을 보니 아까 이지아가 있는 조와 다른 두 조 역시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승하랑 채린이 노리게?”
은수아가 묻자, 답했더니 은수아가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슬쩍 감정을 살펴보니 질투 같은 감정으로 보이는 게 부풀어 올랐다. 설마 친근하게 불렀다고 질투하는 건가?
나는 잠시 은수아의 제안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요정여왕의 창고는 몇 번 더 털어먹고 싶다.
탐나는 액세서리도 아직 있고, 영약도 꽤 있어서. 요정의 정기나, 세계수의 나뭇가지, 혹은 십삼 월을 상징하는 아이템들도 먹으면 꽤 맛있겠지만.
‘윤채린하고 윤승하에게 미움받는 건 좀.’
윤채린에게 당당하게 다른 여자가 있다고 선언한 지 아직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뒤통수를 노리면 나중에 진짜 죽지 않을까.
사인은 아마도 복상사일 거다.
“엄호는 좀 그렇고.”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도와주자니 은수아에게 미움 털이 박힐 것 같고. 공격하자니, 나중에 뒷수습이 힘들 것 같고.
그렇게 고민하고 있자니 한 조가 보였다. 강한남을 위시한 3명이 뭉친 조였다. 한종우 부하들과 강한남.
저건 괴롭혀줘야지.
“수아야. 나 잠깐 몸 좀 풀고 올게.”
“응, 완전 박살 내고 와.”
박살까지야.
하지만 은수아의 부탁이었다. 나는 거절하지 않고 아공간에 손을 넣었다.
어떤걸로 괴롭혀줄까. 창도 나쁘지 않다. 검도 좋고. 그러다가 해머가 잡혔다.
처음은 이거다.
나는 아공간에서 해머 하나를 꺼내었다. 그리고 발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파직번개의 마나가 신경을 자극하며 몸에 힘을 불어넣었다.
콰득.
도약한다. 1km 이상 있는 거리였지만, 속도가 빠른 나에게 별로 멀지 않은 거리였다.
1초.
강한남에게 도약하며 들고 있는 해머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2초.
한 순간 눈이 마주친 강한남의 동공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뭐라 소리치며 뒤로 빠르게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늦어도 한참 늦었다.
3초.
광익을 크게 폈다. 보랏빛의 불꽃과 번개가 혼합된 날개가 나에게 추진력을 달아줬다. 한 순간 속도가 한 번 더 가속하며.
쿠르르르르르릉!
그대로 해머를 바닥에 찍었다.
조원 2명의 몸에 투명한 배리어가 펼쳐졌다. 그들이 마법사가 아니라, 크게 다칠 정도거나, 현재 드론들로 미로 탑을 보는 교관들이 자의적으로 펼쳐서 그들의 몸을 보호해준 거다.
강한남과 남은 한 명은 꽤 멀리 도망쳤다. 약 2초 만에 50m를 도약했다. 얼굴을 보니 표정이 창백했다. 급격하게 마나를 쓴 것도 있고, 나를 보아서 그런가.
나는 마나를 과도하게 불어넣어 반쯤 녹아버린 해머를 아공간에 넣었다.
그리고 광익을 폈다.
강한남 정도면 전투력 측정기로 충분하다. 뇌광염익으로 진화한 광익이 얼마나 강한지 알아볼 수 있겠지.
파르르.
보랏빛의 불꽃과 번개가 호응했다. 한순간에 앞으로 쏘아졌다. 내 몸이 강한남의 앞으로 한순간에 날아갔다.
“이런 미친!”
강한남이 대경실색하며 주먹을 땅에 내리쳤다. 콰앙! 한순간 폭발적인 힘으로 바닥을 내려찍었지만 이미 나는 하늘에 날아다니고 있었다.
광익의 장점이다.
어떤 속도로 움직이고 있던 방향의 전환이 너무 자연스럽다. 나는 팔짱을 끼고 뇌광염익을 움직였다.
캉.
오른쪽에 광익이 잘게 찢어졌다. 한쪽의 날개가 수십 갈래로 나뉘며, 이윽고 검의 형태로 변환하였다. 그리고 수십 개로 갈라진 뇌광염익이 폭풍처럼 몰아치며 강한남을 공격했다.
탕탕탕탕!
불꽃과 번개가 교차한다. 번개가 강한남의 몸을 짓이겼다. 불꽃이 육체를 태웠다. 그리고 다른 한쪽의 뇌광염익을 움직였다. 한순간 길쭉하게 늘어지더니, 이내 그것이 강한남을 감쌌다.
그리고 반대쪽의 수십 갈래로 갈라진 뇌광염익이 강한남을 노렸다.
캉!
뇌광염익이 배리어에 막혔다. 흠, 이걸로 4p를 획득한 건가. 하얗게 질려버린 강한남을 뒤로하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윤채린하고 윤승하와 다른 조가 격돌하는 장소.
‘눈’에 보이는 마나의 움직임이 격렬하다.
마법으로 모습을 가리고 광익으로 날아서 올라가서 싸우고 있는 장소를 응시했다. 싸움은 아직도 한창이었다.
학생들은 어느새 30명 가까이 모여있었고, 10명 가까이가 배리어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윤채린이나 윤승하도 꽤 지쳐 보였다. 끼어들자면 지금이 적기기는 한데.
장소를 둘러보다가 순간 윤채린하고 눈이 마주쳤다.
윤채린의 눈이 복잡해 보였다. 도와달라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강하고. 그렇다고 대놓고 들어가서 지는 것도 꽤 꼴사납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가면을 썼다.
공간장악을 모방한 가면. 눈앞의 배경이 먹물처럼 까매졌다. 그리고 그 안으로 도약했다.
***
승기가 굳어가고 있다.
임나연은 앞을 응시했다.
윤채린.
평소처럼 자신만만한 미소가 아니었다. 꽤 낭패 어린 표정을 지었다.
윤승하도 보였다. 태연한 척 표정을 하고 있지만, 태연하지는 않겠지. 이번 전투에서 저 둘은 힘을 꽤 많이 소진했다.
우리가 얼마나 만만했으면 저렇게 들이댔을까. 40명 가까이 모인 시점에서 빼지 않고 전투한 게 저들의 패착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까지 윤채린은 눈에 거슬렸다.
맨날 실기 시험이 될 때마다 애들을 때려잡는다. 더 화나는 건 애들이 어지간히 모여도 윤채린 하나를 잡기 힘들어한다.
지금도 그렇다.
40명이 모여있는데도 윤채린은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사납게 웃으며 돌격했다. 그 결과 지금 벌써 1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리타이어 되었다.
다른 학생들도 멀쩡하지 않다.
“괜찮아?”
옆에서 이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이 깃들어있다.
임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이렇게 된 것은 임나연의 활약이 컸다. 아야네의 부족한 마력을 임나연이 채워줬다. 그리고 윤채린의 돌격을 임나연이 저지했다.
천영의 꽃.
이시우가 가져다준 영약이 가진 특성.
그것은 임나연하고 너무 잘 맞는 특성이었다. 천영의 꽃은 공방 모두에서 우월한 힘을 발휘한다. 거기다가 ‘마나’마저 얼리는 강력한 특성이다.
그렇지만, 마나를 많이 소모한다. 임나연이 완연한 천영의 꽃을 피우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임나연이 검을 움켜쥐었다. 하늘빛의 검기가 튀어나왔다. 시리도록 차가운 냉기가 주위를 잠식했다.
“슬슬 포기하는 게 어때?”
“설마 나한테 하는 말이야? 천마인 나를?”
“이럴 때는 좀 포기해도 돼. 마나도 얼마 없는데.”
불리한 상황.
그럼에도 윤채린은 자신감을 보였다. 윤승하가 옆에서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전투에 임한다. 정령들이 늘어섰다. 그 수는 열 체.
임나연은 내심 아쉬워했다.
윤승하는 전투 경험이 적다.
대부분의 전투에서, 전투가 시작하면 정령을 일단 소환하고 본다. 스무 체에 가까운 정령은 그 자체로도 어마어마한 폭력이지만, 그만한 마나는 윤승하가 부담한다.
일시적으로 모든 정령을 소환하면 그만큼 리타이어가 빨라진다. 그러면 윤승하를 먼저 리타이어 시키고 윤채린에게 집중할 수 있을 텐데.
“아야네 몇 번 가능해?”
“이제 두 번 남았어요. 윤채린씨가 큰 걸 공격하면 한 번이요.”
“버퍼들! 빨리 버퍼 걸어! 전열들은 윤채린 막고 궁수들이랑 마법사들 윤승하 견제해!”
한종우가 빠르게 명령조로 말하며 윤채린에게 격돌했다. 가장 크게 활약을 한 거라면 임나연이지만, 한종우도 중요하다.
마룡갑을 몸에 두른 한종우는 윤채린과 정면대결을 그나마 할 수 있으니까.
한종우가 포효하면서 돌격하자 윤채린이 짜증을 내었다. 저놈의 방어력은 보통이 아니다. 거기다가 용의 피라도 이었는지 굉장히 거칠었다.
마기가 손아귀에 뭉쳤다.
윤채린은 한종우의 배를 가격했다. 한종우가 일격을 허용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을 잡았다.
“잡았다!”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한 순간, 김하린의 광익이 솟아오르며 자신에게 향했다. 이지아가 마법을 연달아 발동했다.
그라비티 붐
익스플로전
라이트닝 임팩트
세 가지의 마법이 연달아 터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한 송이의, 시리도록 차가운 꽃이 피었다. 천영의 꽃.
윤승하가 정령을 연달아 소환했다. 이지아의 마법, 그라비티 붐이 꽃잎으로 변했다. 꽃의 정령의 힘이었다. 그러나 다른 두 마법은 그대로였다.
김하린의 광익이 쪼개지며 자신에게 향했다.
임나연의 꽃이 자신의 몸을 얼려가고 있었다. 윤채린은 직감했다.
아, 끝났다.
이건 리타이어겠네.
그러나 순순히 당해주고 싶지는 않다. 윤채린은 마나를 북돋았다. 그러나 임나연의 꽃이 더 빨랐다. 몸의 반쪽이 벌써 얼어붙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법이 보였다. 김하린의 광익도.
그리고.
“안녕.”
상큼하게 웃고 있는 이시우의 모습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