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 보스 공략(2)
* * *
“이번 수업은 보스 공략이다.”
강한자가 우리 넷을 힐끔 보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너희는 지금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면 너무 특출나다. 다른 애들 수준도 급격하게 오르고 있지만, 그걸 고려해도 너희는 너무 강하지.”
윤채린의 어깨가 으쓱거렸다.
아닌척하지만, 윤승하랑 은수아도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물론, 아무리 너희라도 네 명이 힘을 합치더라도 다른 학생들은 80명이 넘으니, 그대로 꽝하고 붙으면 학생들이 이길 확률이 높지.”
그렇다.
우리가 강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소위 말하는 네임드라 불리는 한종우, 임나연, 이지아, 김하린, 아야네 등. 강한 학생들은 많다.
나나 윤채린 중 둘 중 한 명이 완연한 상격에 오르게되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지지만, 나나 윤채린은 아직 불안전하다. 굳이 말하자면 상격이라는 곳에 발을 아주 살짝 걸친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선별되고 퇴학당한 학생이 16명.’
단순하게 계산하면 한 반에 84명이 넘는다.
그들이 서로 협조적으로 움직이면 아무리 우리라도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게임에서는 윤채린에게 온갖 버프의 향연이 있었고, 규칙 자체가 유리하게 설정되어있었기에 가능했지만.
“버프는 무리지만, 그래도 규칙은 너희 쪽에 유리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당연하게도 우리에게는 페널티가 있다.
“둘이 합쳐서 조를 짠다. 두 개의 조는 각각 다른 팀이며, 서로 견제하거나 위험에 빠지면 도울 수 있다. 그리고 학생들을 잡으면 포인트를 번다.”
“몇 포인트인데요?
“학생들은 각각 1p다.”
“그리고 다른 조를 부수면요?”
윤채린이 물었다.
“만약이지만, 정말 만약에 상대를 쓰러트리면 80p를 얻을 수 있다.”
강한자가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협력해서 학생들을 모두 쓰러트린 다음 승부를 보는 게 맞지만, 만약 상대 팀을 쓰러트릴 각이 보인다면 상대 팀 한 명만 잡아도 승리는 따놓은 거란 이야기다.
80p.
50p였다면 고민하겠지만, 80p가 되어버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막말로 상대 한 명만 잡고, 몸을 빼면서 시간만 끌어도 이길 수 있다는 거니까.
그것을 느꼈는지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럼 나랑 시우인가?”
“아니, 그건 안된다.”
윤채린이 히죽하고 말하자 강한자가 고개를 저었다.
“조는 이미 정해 놨다. 조는.”
***
보스 공략.
그곳은 일전에 체험했던 미로 탑에서 실시 되었다. 4개의 조로 구성된 학생들은 전부 흩어지면서 아이템이나 버프, 혹은 상대에게 디버프를 걸 수 있는 장치를 얻고 그것을 이용해서 포인트를 번다.
이지아는 자신의 파티 원들을 바라보았다.
‘단절’이라는 능력으로 일기토에 특출나게 강한 아야네, 탱커 역할이 가능하면서 상대를 찍어누르는 한종우. 그리고 파괴 마법에 한정하면 아카데미에서도 한 손가락에 드는 자신. 여기에 탱커역할인 조라까지.
조라는 중위권에 드는 탱커 역할을 하는 학생이다. 공격력이 부족하고 발이 느리지만, 수비력 하나는 일품.
학생들끼리 의견을 모으고 일부로 강한 학생들을 배치했다. 가장 전위에서 보스 공략을 위한 한 조다. 다른 조는 임나연과 김하린을 위시한 조다.
‘문제가 있다면.’
이지아는 아야네를 보았다.
아야네는 이번 중간고사 때 중위권에서 상위권 끝자락으로 반등하였다. 그래서 그녀의 실력은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아야네는 저번 주, 일본의 사태 때문에 상태가 별로였다. 본가 쪽에 영향이 꽤 크다고 하였나.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재산 피해가 너무 막대하다고 들었다.
잘못하면 가세가 기울 정도라고 했으니.
“너희 그 소식 말이야 들었어?”
탱커 조라가 비밀이라는 듯, 목소리를 낮추며 입을 열었다.
“소식?”
“이번에 나태의 산양을 잡으러 티타니아님이 출전하셨잖아. 근데 이번에 전투에 나서시면서 크게 다쳤다고 하시더라고.”
“부상?”
한종우가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그러자 조라가 움찔거렸다.
“응. 안 그래도 티타니아님이 마왕한테 상처를 입으셔서 두문불출 하시는 편이시잖아.”
“하긴.”
이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행사에서 대외적으로 모습을 보이는 공허의 왕, 에니스.
그리고 축제가 있다면 가장 화려하게 축제를 벌이는 용왕, 하메르.
그 둘과는 다르게 티타니아는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다. 한다면 입학식이나, 여러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나서는 정도.
그래서 항간에는 티타니아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마왕에게 크게 다쳐 거동이 힘들다, 아니면 세계수가 상처를 입어 그것을 사수하는데 힘들다 등의 소문.
아주 미약한 목소리로는 사실 한국 드라마나 웹툰, 웹소설을 좋아하는 히키코모리라서 그냥 나오지 않는 거라고 하는데, 설마 그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 그럴 리는 없겠고.
파지직!
순간적으로 번개가 튀는 소리가 들렸다.
가장 빠르게 한종우가 반응했다. 철컥. 마갑이 한종우의 몸을 감쌌다. 이제는 갑옷이라기보다는 용인(人)의 형태를 한, 그러한 모습.
한종우는 빠르게 사방을 훑었다. 마법사 중에 번개를 쓰는 이들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다루기가 너무 까다롭기 때문이다.
리턴을 따지자면 상대를 마비시키며, 극강한 공격력을 지닌다는 강점이 있지만, 번개는 다루기가 난폭하다. 그러나 히어로 아카데미에는 딱 한 명. 그 번개를 마치 수족과 같이 굉장히 잘 다루는 녀석이 있다.
“이시우…!”
그보다 한 타임 늦게 다른 이들이 반응했다. 조라가 자기 몸보다 큰 방패를 소리가 들린 쪽으로 세웠다. 아야네가 검을 뽑고 앞으로 나섰다. 이지아가 발 빠르게 보조 주문을 외웠다.
신속화.
그리고 주문을 영창했다.
우웅!
보랏빛의 역장이 파티를 감쌌다. 그래비티 쉴드. 조라가 방패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한종우가 앞에 서서 용익으로 파티를 감쌌다. 그와 동시에 보랏빛의 섬광이 파티를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앙─!
뇌전의 창이 작렬했다. 역장이 깨지고 조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씨발, 이게 무슨…!’
보랏빛의 역장을 꿰뚫었다. 한종우가 가진 용의 날개를 뚫고 조라의 방패까지 도달했다. 뇌전의 창은 방패를 뚫은 채 힘을 잃었다.
조라는 허탈했다.
보랏빛의 뇌전의 창. 그것은 이시우가 날린 게 분명했다. 학생 중에서, 보랏빛을 띠는 마나는 이시우밖에 없으니. 그러나. 이게 말이 되는가? 무인임이 분명한 녀석이 이만한 마법을 날린다고?
“조라! 정신 차려!”
이지아가 호통했다. 동시에 아야네가 앞으로 향했다. 그녀가 든 도(?)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단절.
마나와 능력에 대한 이해도만 충분하다면 개념이나 현상마저도 잘라낼 수 있는 그녀의 고유 능력이었다.
능력 하나만을 따지자면 최상위권에 있어도 모자람이 없으나, 아야네의 능력이 따라주지 못해 상위권에 머물고 있다.
지잉.
보랏빛의 섬광이 다시 한 번 작렬한다. 아야네는 검을 들었다. 이지아가 보조했다.
“동조─시력 강화. 순발력 강화. 근력 강화. 마나 동조.”
신속화로 빠르게 영창 하면서 동시에 수인을 맺는다.
아야네에게 한종우의 마나를 링크해서 마나를 증폭시켰다. 이지아의 마력이 가진 근원은 ‘폭주’이기에 이런 곳에서 적합하지 않았다.
서걱─!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보랏빛의 섬광이 갈렸다.
“와, 씨발. 조금 전 도대체.”
조라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하아아아.”
아야네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한종우는 조용히 섬광이 날아온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트윈 스펠.”
이지아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도명가인 자신의 가문과 어깨를 견주는 명가가 있다. 그곳의 장녀가 트윈 스펠이란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선유라라고 했던가. 이지아는 이시우의 능력을 떠올려보았다.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 능력들은 어검이랑 윤채린과의 싸움에서 선보인 광익. 그리고 이따금 폭주하는 것 같은 마나. 자신의 능력인 마도의 업.
아무리 생각해도 이시우의 능력은 이상하다.
단점은 없고 장점만을 취한 것 같은 능력치. 저런 것은 보통 페널티가 심할 텐데.
“추적마법은 거셨나요?”
“못 걸어. 난 내 능력 때문에 그런 섬세한 보조 마법은 잘 못 써서.”
아야네의 물음에 이지아가 답했다. 아야네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그런 마법을 못 쓴다고 아쉬워하기에는 이지아의 능력은 너무 출중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마법사 수 명분의 학생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에.
“빨리 다른 애들한테 연락해. 이시우가 저격하고 있다고.”
***
팡!
허공에서 불꽃이 터졌다.
대충 학생들끼리 만든 암호인데 내가 마법으로 애들을 저격하고 있다는 표시였다. 그걸 왜 알고 있느냐면, 지식열람이 가르쳐 줬기 때문에.
“어떻게 할까? 애들이 눈치채고 도망치는 것 같은데.”
뇌전의 창으로 저격이 생각보다 강했다. 트윈 스펠까지 사용한 덕에 마나가 꽤 많이 소모되기는 했지만, 한종우를 부상입하고 이지아 파티의 아야네가 마나를 많이 썼으니, 이득을 봤다.
나는 대해의 마나를 모방한 가면으로 마나를 빠르게 회복할 수 있으니.
“일단 다른 포인트에서 자리를 잡고 공격하자.”
은수아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눈을 보니 반짝거리고 있었다. 중2병에서 많이 벗어나기는 했는데, 아직 완전히 벗어난 게 아니라서. 상대를 저격한다고 했을 때부터 저 상태였다.
“그럼 움직이자.”
나는 광익을 모방한 가면을 장착하고 은수아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었다.
“잠깐만.”
“……!”
은수아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그러나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가진 광익은 어깻죽지에서 나오기 때문에 업어줄 수 없어서.
파직.
번개와 빛, 불꽃이 피어오르고, 그것들이 한차례 융합하더니 한 쌍의 날개를 만들었다.
“우와.”
은수아가 감탄 어린 소리를 내었다.
“나, 날개가 멋있네. 특히 번개가 튀는 게.”
아무래도 은수아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혹시 이거 이름 지은 거 있어?”
“……이름?”
은수아의 말이 갑자기 불길하게 느껴졌다.
“아직 안 지었구나. 그, 그럼 내가 지어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광익이라는 멀쩡한 이름이 있는데 굳이 은수아에게 받을 이유가.
"시우가 뛰어난 건 알지만, 그래도 기술 이름은 지어놔야지. 왜 무인들이나 마법사들이 기술명을 적어놓는데. '이미지'를 확고히 해서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발동시키기 위해서야."
하지만 그런 내 의견 따위는 듣지 않겠다는 듯, 은수아가 멋대로 중얼거렸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지어줄게. 번개와 빛, 불꽃이 함께 섞인 날개. 그러니까, 라이트닝 블레이저 윙. 뇌광염익이라는 이름은……?”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진짜, 정말로 싫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