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화합
* * *
나는 앞을 보았다.
남다윤은 믿기지 못한걸 본 듯이 입이 떡벌어지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히 충격적인 광경일 것이다.
이웃 나라라고는 하나 외국에 와서 남자인 줄 알았던 이가 사실 여자였고, 자신과 관계를 맺은 남자가 그 여자를 알몸 산책을 시키고 있는 상황이니까.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변명할 여지가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시우야.”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남다윤이 입을 열었다. 윤승하가 아공간에서 코트를 꺼내서 앞을 여몄다. 윤승하가 굳게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전, 흥분해서 멋대로 지껄이며 남다윤을 자빠트리라고 한 윤승하는 없었다.
“검주 님. 할 말이 있습니다.”
“아니, 괘, 괘, 괜찮아.”
검주가 괜찮다고 말했지만, 어지러운 듯 이마를 짚으며 휘청거렸다.
기실, 최상격에 곧 이를 거라 예상되는 검주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리려고 하면 실로 엄청나게난 정신적인 타격을 받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를들어 본신을 드러낸 나태의 마력이라던가.
“사, 사실 어, 어렴풋이 지, 짐작하고 이, 있었어. 시, 시우가 사실 다, 나 말고, 다, 다른 여, 여자가 있는 게 아, 아닐까.”
“다른 여자?”
윤승하가 웃으며 남다윤을 바라보았다.
매우 서늘한 눈빛으로. 검은색의 부정적인 감정이 뭉게뭉게 피었다.
“죄송하지만, 검주 님. 말씀이 굉장히 잘못되셨는데요. 제가 시우의 진짜 여자친구인데.”
“……뭐?”
윤승하가 내 팔에 슬쩍 팔짱을 끼며, 남다윤을 바라보았다. 입가를 비틀며 웃으면서.
“검주 님은 그니까, 그런 거죠. 막, 지나가는 애완동물이 있으면, 귀여워해 주잖아요. 그냥 가벼운 관계였던 거에요.”
나는 당황해서 입을 벌리며 윤승하를 바라볼 뻔했다.
천의 가면이 없었다면 진즉 그랬을 거다.
“……뭐?”
“검주 님. 아니, 아줌마. 남의 남자 탐내지 말고 꺼지라고요.”
“……하?”
싱긋, 하고 웃으며 윤승하가 말했다.
나는 윤승하의 말에 굉장히 당황했다.
윤승하가 적대적인 것은 이해한다. 다만 남다윤을 회유하는 거라면 모를까, 저렇게 경계하고, 적대하는 것은 윤승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실, 그녀가 갖춘 능력 탓이었다.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수명과 재능을 깎아 먹는 종류의 능력.
그렇기에 나는 남다윤을 노려다 보는 윤승하와 그런 윤승하를 어이없음과 황당함에 물든 표정을 한 남다윤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실 나는 예전부터 준비해온 게 몇 개 있기는 하다.
가장 큰 준비는 역시 여자들이 스스로 나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처를 받을까고민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건 내가 오히려 너무 쥐어짜여서 안되었다.
저 경우는 나에게 해당하지 않았다.
나는 윤채린하고 윤승하, 이 두 명조차 감당하기 버거웠으니까. 내가 꿀리다는 게 아니다. 윤채린하고 윤승하 자매가 너무…너무, 너무 강한 것이다. 저 둘에게 걸리지 않는 날이면 여자 다섯이 덤벼도 이길 수 있을 정도.
“검주님의 나이가 이제 달걀 한판은 넘어가셨잖아요. 솔직히 시우랑 나이 차이가 꽤 되시는데. 아, 꽤가 아닌가. 띠동갑보다 차이가 심하시니.”
윤승하가 경멸어린 눈동자로 조소하였다.
내뱉는 말 마디마디 하나가 시리도록 차가웠다.
“솔직히 말해서 좀 추하지 않아요? 보통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렇잖아요. 그쪽도 자기랑 띠동갑 이상인 남자랑 연애한다고 생각하면…맙소사. 50세가 되어가는데.”
남다윤의 눈이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우리 시우가 엄청 멋있는 남자기는 해요. 띠동갑인 그쪽이 비난을 감수하고 사귀고 싶을 만큼 말이에요. 장래성이 보장되어 있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나지, 얼굴만 뜯어먹어도 백년해로가 가능할 정도로 아름답지, 거기다가 밤일도 잘하고.”
윤승하가 손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근데……그런 시우 눈에 그쪽이 찰까요? 30년 이상 사셨으면, 다른 남자랑 막 이런 짓, 저런 짓을 하셨을 텐데. 다른 남자들 자지를 입에 물거나, 차마 말로 하지 못할 거라던가……. 시우도 그쪽같이 30년 묵은 중고품보다야 아무래도 시우밖에 모르는 신품인 저를 시우는 더 좋아하지 않을까요?”
“나, 난 처녀인데?”
“와. 도대체 얼마나 하자가 많았으면, 30년 넘는 시간 동안 남자랑……아,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이쯤되니 남다윤도 화가 머리끝까지 찬듯했다. 남다윤이 굴욕감에 몸을 잘게 떨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천의 가면에서 읽히는 그녀의 감정이 굉장히 붉었다.
남다윤은 항상 여유롭고 차분한 모습만 보여줬는데, 지금의 남다윤은 꽤 색달랐다.
나는 눈치를 살폈다.
여기서 내가 끼어드는 모양새는 굉장히 이상하지만, 저 둘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마왕을 물리칠 업을 타고난 용사와 선 성향의 남다윤이 부딪쳐서는 안 된다. 협력한다면 모를까.
“저…….”
“시우는 가만히 있어.”
“시우는 잠깐 가만히 있어.”
남다윤하고 윤승하가 서로 노려보았다.
여기서 윤승하에게 최면을 걸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건 최악이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최면을 걸었던 인물들이 모두 깨닫기도 하거니와 가장 중요한 인물인 윤승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둘이 언제부터 사귀었는데?”
“꽤 지났죠? 이제 곧 150일 기념일이니까.”
“……그래? 생각보다 늦었네. 그러면 시우 처음은 내가 먹었네. 내 처녀와 함께. 장난감은 승하, 네가 아닐까?”
윤승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줌마.”
“할 줄 아는 말이 아줌마밖에 없니? 뭐, 그래도 나는 시우의 모든 걸 다 받아줄 수 있거든. 가령 시우가 숨긴 여자친구라던가, 애인이라던가. 법이 일부일처도 아닌데다가 나라가 일부다처제를 권하고 있으니. 누나, 아니, 언니는 꽤 너그럽거든. 물론, 1, 2명 정도겠지만. 그래도 시우 정도면 워낙 날파리 들이 꼬이잖니. 승하, 너처럼.”
남다윤의 눈이 반달을 그렸다.
“그냥 장난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시우는 성실하니까 알아서 여자들을 잘 쳐내겠지만, 그냥 정에 이끌려서. 너랑 잠깐 논게 아닐까. 보아하니 능력 때문에 남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마 평생 다른 남자를 만나지 못해서. 그래서 시우가 잠깐 흔들렸던 거겠지.”
“…….”
윤승하가 거의 부릅뜬 눈으로 남다윤을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승하 네가 무릎 꿇고 빌면 처의 자리 정도는 양보해 줄 수 있어.”
“누가 할소리에요, 아줌마.”
“그거 아니? 시우는 말이야, 보지로 질 주름 하나하나로 자지를 꾹하고 죄면 황홀한 얼굴을 하면서 사정한다? 자지를 부르르떨면서 말이야. 꾹꾹하면서 질 주름으로 감싸주면 엄청 좋아해. 근데, 넌 그게 되니? 보아하니 몸 쓰는 쪽은 잘 못하는 것 같은데?”
“……저도 되거든요, 아줌마”
윤승하가 조금 늦게 대꾸했다.
“그리고 자꾸 아줌마하는데. 나는 마나 때문에 신체나이가 꽤 어리거든. 피부로 따지면, 거의 아기 피부지. 신체의 나이는 고등학생보다 좋고. 잘 조이고. 동안이기도 하고. 거기다가 모아둔 돈도 꽤 많은데다가 협회에서 발언권도 꽤 된단다. 아마 나보다 돈이랑 권력 합치면, 나보다 높은 사람은 한국에서 300명도 채 안 될걸. 여기서 네가 나보다 더 뛰어난 게 있니?”
“……저는 시우가 해주는 거 뭐든 해줄 수 있어요.”
“설마 내가 그것도 안 해줄까? 나는 시우가 항문을 핥아 달라고 해도, 바로 해줄 수 있는데.”
“그 정도는 기본이죠. 그거 아세요? 시우 아침에 일어나면 제 입으로 한번 싸고, 보지에 두 번 싸고 하루를 시작해야 기분 좋게 일어나는 거?”
찌릿하고 둘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리의 정령과 그림자의 정령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걸 멈추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 몰랐다. 만약 삼왕이나 김은정이 보기라도 한다면…….
“일단, 우리 어디 가서 이야기 좀 하자.”
다행히도 내 말에 반발은 없었다.
윤승하랑 남다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옆에 서서 걸었다.
***
일단 그 둘을 근처에 있는 모텔로 끌고 오기는 했다. 카페나 다른 공간에 가기에는 마땅한 곳이 없어서 일단, 이곳에 대실을 한 상태.
이 이후에 대처는 없다.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윤승하가 생각보다 다른 여자에게 좀 더 적대적이었다.
남다윤도 그렇게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란데힐이나 김하린 처럼 쉽게 넘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윤승하는 소유욕이 강해서 내가 준 선물 하나하나도 굉장히 아끼는 편이고, 남다윤도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은근 소유욕이 강하다. 거기다가 남다윤은 따로 내 부모님을 만나서 밑작업을 하고 있을 정도니까.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물 두 병을 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남다윤하고 윤승하는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서로를 못 본 척하고 있었다.
“우선 잠시만.”
나는 일단 그 둘에게 양해를 구하고, 불가해한 감각을 발동시켰다.
감각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혹시 모를 도청이나 카메라 같은 것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혹시 몰라서 하늘을 굽어보는 눈까지 발동했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나는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남다윤하고 윤승하가 조신하게 앉았다. 힐끔힐끔내 눈치를 살피면서.
뭐지.조금 전까지 싸우던 두 사람이 맞나?
굉장히 이색적인 광경이었다. 내가 물을 사올 동안 안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기는 했는데.
나는 천의 가면이 감정으로 두 사람을 살폈다.
검은색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느껴졌다.
두려움이라던가, 후회 등의 감정들이었다. 굉장히 짙게 느껴지는.
설마 아까 전에 싸워서 내가 실망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윤승하랑 남다윤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 무겁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을 깨닫자 나는 가면을 썼다.
윤승하랑 남다윤에게는 정말…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내가 악역을 자처하고 둘이 화해하는 게 더 이로운 일일 테니까.
“나는 오늘 누나랑 승하에게 실망했어.”
축처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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