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용사와 검주
* * *
하늘의 구름이 검에 갈라진 듯이 반듯하게 갈라졌다. 그리고 그 위의 태양마저도.
너무나도 강한 힘에 공간이 왜곡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와~ 쟤는 뭐 볼 때마다 색달라지네.”
“허허. 고놈 참 물건이다.”
그 광경을 보며 공허의 왕과 용왕은 어처구니 없어했다.
신물의 힘을 받아 일시적으로 초월경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저런 강대한 힘에는 그만한 페널티가 있는 법. 그러나 저 소년은 그 페널티를 ‘무시’했다.
검은색의 왕관.
어렴풋하게 봤을 뿐이지만, 용왕은 그 효과를 어느 정도 짐작했다.
“정말 부럽네. 우리 애들도 이번에 나름 괜찮아서 풍작이라고 생각했는데, 티타니아는 완전 대풍작이네. 아니, 이건 풍작 정도로 표현할 수 없지. 천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한 애들이 도대체 몇 명이야? 저놈들 다 자라기만 한다면 마왕도 이길 껄?”
에니스가 막대사탕을 와작깨물며 중얼거렸다.
용사의 힘을 이은 윤승하라는 놈도. 역대 인공 마왕의 힘을 이어받은 년도 부러웠지만, 저건 그 차원이 달랐다.
“윤승하랑 윤채린이라고 했나? 저 둘도 잠재력은 기막히지만, 저 남자도 주의 깊게 볼만 하다.”
용왕이 탐욕스러운 눈빛을 표했다.
티타니아는 그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당황했다.
에니스와 하메르.
그들은 왕이다. 종족의 왕. 그들이 인간을 보는 시선은 거의 애완동물에 가깝다. 있으면 편하고 없으면 그만인 존재들.
마왕을 두려워하기에 힘을 합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간과 거리를 벌리는 존재들이다.
“티타니아. 쟤 보니까 마법도 좀 쓰는데, 마법 배울 때 말 좀 해주라.”
“어허. 공허족이 마법에 일가견이 있지만, 우리 용족 만큼은 아니지.”
“용족은 그냥 타고난 마나 친화력과 용언을 바탕으로 마법을 쓰잖아. 이론적으로 가르치는 거라면 우리 공허족이 훨씬 낫지. 안 그래?”
티타니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시우는 그런 것보다 자연에 익숙한 요정족 마법이 더 어울릴 게 분명하다고. 세계수와 동화되어 쓴 능력은 가히 일절이었다.
저기에 요정족 특유의 마법과 무예가 합쳐진다면 어떻게 될까.
티타니아는 열망 섞인 눈으로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티타니아~. 쟤는 공허족이 가르치는 게 낫지?”
“그럼 권능 사용법은 우리가 가르치지. 원래대로라면 상격에 이르러야 가르칠 맛이 있겠지만, 저 녀석은 무리 없이 배울 수 있을 테니까.”
……우선 이놈들을 좀 떼어놓고.
***
파사삭.
검과 곡옥, 거울이 은빛의 가루가 되어 하늘로 흩날렸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보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시야를 멀리 바라보았다. 도시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이 통곡하거나 통곡조차 못한 채 죽었다.
괜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대단하십니다!”
금발을 흩날리며 절제의 검이 나에게 다가왔다.
나를 초롱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내 손을 꽉움켜잡았다.
“저, 정말 대단하십니다. 비록 신물의 힘을 받았다지만, 마왕을 소멸시키시다니! 위대한 업적이십니.”
나는 절제의 말을 잘랐다.
“죄송하지만,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잖아요. 남은 사람들부터 빨리 구하셔야죠.”
“어, 어찌 이리 겸손할 수가! 그만한 대업을 이루고도 가장 낮은 사람들을 생각하시다니. 주여.”
절제의 검이 성호를 긋고는 성가대를 힐끔 바라보았다. 대부분이 기절하고 다친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했다. 산양의 일격에 상격들이 거의 죽어가며, 용족들과 요정족, 혼돈의 사제가 질 때와 같은 절망은 없었다.
마치 나를 마왕을 물리친 용사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부담스럽다.
“아, 그리고 여러분에게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지요?”
“제가 마왕을 물리치지 않고, 김은정 님이 물리쳤다고 해주세요.”
“어째서?”
절제의 검이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야 아직 내가 약하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도핑으로 나태를 죽였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도핑 빨이다. 보통의 나는 아무리 도핑 해도 상격에 중간 정도의 힘밖에 내지 못한다.
마인들에게 표적이 되거나 따른 칠죄종에게 마킹되는 것은 아직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내 설명에 절제의 검, 머리 위에 느낌표가 뜨며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아직은 위험하시기에 그런 선택을 하시는 것이군요!”
그렇게 말하며 눈을 글썽거렸다.
“저는…저는 시우님의 업적에 감복하여 어떤 성물을 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런 곳까지 생각하시다니. 정말 오늘 눈을 여러 번 개안하는 것 같습니다.”
“……성물은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옆에서 나를 보던 비염의 시선이 조금 샐쭉하게 변했다.
아니, 근데 성물은 잘 받아야지. 그게 얼마나 귀한 건데.
“……아무튼 빨리 위급한 환자들부터 돌보고 시민을 구하러 가죠.”
내 말에 절제의 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신사에 위에서 도시를 훑었다.
도시는 거의 폐허나 다름이 없었다. 대도시를 연상케 하였던 건물들은 나태가 만든 구름에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 면적은 비록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인구수로만 따지면 대한민국에서 수원시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퍽 슬펐다.
***
목요일 아침.
현 하나가 날아가서 일본은 완전히 공황 상태가 되었다. 추정 사망자는 백만에 이르며 실종자는 그 배는 되었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서 원조와 국민을 도와주기 위해서 영웅들이 오고 있다.
속셈은 나태의 마나가 남기고 간 마나를 연구하고 싶어하기 때문이기는 한데.
나는 화면 속 동영상을 바라보았다.
동영상에는 내 계획대로 김은정이 삼 왕과 힘을 합쳐서 나태를 죽였다고 나왔다.
[일본이 전전긍긍하고, 중국이 눈치를 보는 마왕, 한국은 한 명의 영웅을 파견해서 잡았다.]
……이건 과장이 너무 심한데.
나는 나른하게 하품을 하곤, 슬리퍼를 신으며 밖으로 나갔다. 창문으로 바깥을 힐끔 보니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몰려있었다.
김은정이 이곳에 머문다는 소식에 바깥은 사람이 많았다. 온갖 나라에서 언론들이 몰려왔지만, 일본 정부에서 헌터들을 배치해주고, 이 호텔의 주인이 임나연이라 별다른 잡음은 없었다.
나 빼고.
“음? 너는 마왕을 물리치는데 1등 공로를 세운 이시우가 아닌가?”
마치 대본을 읽는듯한 어색한 대사가 고운 미성을 통해 나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화염같은 시뻘건 머리와 눈동자.
호텔 안이건만 정열적인 붉은색의 드레스를 입은 용들의 왕, 하메르였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야. 어디로 가는 거지?”
그녀가 나를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언론에는 김은정이 마왕을 퇴치했다라는 식으로 전달했지만, 그 현장에 있던 대부분 인물은 내가 나태를 해치우는 과정을 보았다.
삼왕은 물론 김은정과 검성, 바티칸에서 온 인물들과 봉관의 무녀, 하루히 아키 등등.
대부분이 말이 무거운데다가 티타니아와 에니스, 하메르가 직접 나서서 그들이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받아내어 밖으로 새나갈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바티칸 쪽에서는 신에게 맹세하며 다른 이들에게 맹세를 받아내는 데 적극적이었다.
“아침 좀 먹으려고요. 같이 드실래요?”
“아침? 좋지.”
하메르가 선선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호텔이 조식이 꽤 괜찮더라고요. 평생 여기서만 음식을 먹고 싶을 정도로요.”
“그래? 우리 학교로 온다면 바로 이런 음식을 평생 먹을 수 있는데 말이야.”
하메르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곤혹스럽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히어로 아카데미가 좋아서요.”
“그으래? 혹시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있나?”
하메르가 조금 불쾌한 눈빛을 하였다.
용답게 오만하며 자존심이 강했다. 기실, 용들의 왕인 하메르가 아침 일찍부터 나를 마주하는 것도 많은 자존심을 꺾었을 거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다. 윤승하와 윤채린. 그 둘을 최우선으로 키우며 그 외에 네임드라 불리는 인물들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알아서 잘 자라고 있어서, 그냥 위험한 던전이 어디 있나만 알려줘도 잘 자랄 테지만.
“음, 말하기는 좀 쑥스러운데, 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요.”
하메르가 내 말에 조금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말갛게 웃었다.
***
“왕!”
윤승하가 개소리를 내며 울었다. 주변은 한적한 공원이었다.
일본에 왔으면 일본 문화에 따라야 된다는 내 말을 실현하려는 듯, 일본문화가 알몸산책이 유행이니까 알몸 산책을 하러 왔다.
…이게 맞나?
그림자의 정령이 장막처럼 주변을 두르고 있어서 중격이나 상격의 영웅과 부딪치지 않는다면 솔직히 말해 별문제는 없다.
안전장치도 있다. 내가 가진 「불가해한 감각」과 「하늘을 굽어보는 눈」은 상격에 끝자락에 있는 남다윤이나, 최상격 정도가 아니라면 나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
“…….”
“…….”
별안간 푸른색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하얀색의 스커트와 검은색의 스웨터. 그 위에 코트를 걸친 남다윤이었다.
남다윤이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윤승하가 사족보행을 한 채로 굳었다. 물론 나는 윤승하의 목줄을 잡은 채로 굳어있다.
‘음.’
나는 재빠르게 생각했다.
하메르 님의 제안 아직 유효하겠지?
……아니, 이건 아니다.
“시, 시우야? 그, 그리고 너는. 여, 여자였어?”
당황해하는 남다윤.
[……시우야. 검주 님을 자빠트리자. 이젠 그 방법뿐이야!]
윤승하가 마법으로 조용하게 말을 전달했다.
아니, 그건 아니다.
윤승하의 말에 반사적으로 속으로 부정했다.
……아니, 맞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