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천외일문
* * *
김은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점점 상대가 자신의 움직임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나태가 히죽하고 웃었다.
[왜 그러지? 아까 그 호기로운 말은 다 허세인가?]
콰르릉!
검은색의 벼락 줄기가 내리쳤다. 나태가 구름으로 막으며 몸을 틀었다. 멸망의 번개는 나태의 구름을 뚫을 정도로 공격력이 강하지만, 뚫는 시간에 나태는 회피를 시작한다.
초반부터 너무 무리했다.
주변의 부상자들이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허세를 부리며 공격을 가했다. 조금 희생을 내더라도, 나태를 위해서 전력을 아꼈어야 했는데.
저들이 악인가? 아니, 저들은 그저 살고 싶을 뿐이다. 저들 모두가 착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생존에 몰려서 저렇게 변해갔을 뿐이다. 악한 것은 그러한 환경을 만든 존재들이다.
그러니까 은정아. 만약, 네가 나중에 나처럼 강해진다면, 그때는 네 생명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저들을 도와줘라. 아주 약간의 도움이라도 상관없다. 너한테 약간일진 몰라도, 저들에게는 그것조차 빛일 테니.
자신의 스승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영웅이 되었는가. 약하며 선한 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스승과 같은 영웅이 되기 위해서 영웅이 되었다.
김은정은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둘렀다.
[음?]
나태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아주 조그만 틈. 김은정이 멸망의 벼락을 휘둘렀다. 나태가 구름을 모으려고 했다. 그러나 거뭇한 마나가 나태의 손을 아주 잠깐 막았다.
[이런. 귀찮은 것들의 부하들까지 왔군.]
나태가 킬킬대며 웃었다. 김은정은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각기 다른 13명의 요정이 보였다. 김은정은 저들을 알고 있다. 월月을 상징하는 요정족들의 비밀병기. 십삼월이라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용의 비닐을 두른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숫자는 무려 열에 달했다.
용왕이 직접 키운, 용족들의 최정예.
한 존재만 있어도 어지간한 나라들은 하루 만에 멸망시킬 수 있으며, 그 용족들 중에서도 ‘전투’를 위해서 극단적으로 훈련한 폭룡단.
흑색의 로브를 둘러싼, 존재들도 모였다.
흑색의 로브. 그 모자 아래에는 마치 혼돈과도 같이 무언가 빨아들이는 것 같은 존재들이었다.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종족. 공허의 왕이 자랑하는 최강의 공격대. 혼돈 사제단.
삼왕이 마왕을 대비해서 키운 최정예들이 나태를 잡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알고 있지? 너희의 왕은 ‘맹약’에 의해서 우리 칠죄종을 건들지 못한다는 거 말이야.]
“물론이다. 오물보다 못한 버러지. 다만, 조건도 알고 있지? 네놈들이 우리 왕을 건드리는 순간 우리의 왕은 너희를 죽일 수 있다는 거?”
백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인상적인 폭룡단의 단장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나태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물론이지. 설마 내가 너희 같은 실수를 할까?]
그리고 전투가 시작했다. 나태가 포악하게 웃으며 ‘진신’을 드러내었다. 인형 같은 조그마한 크기에서 어지간한 빌딩보다 거대한 구름이 되었다.
쩌억구름에서 여러 개의 입이 나타났다.
[종언이다, 벌레들. 네놈들하고 노닥거리는 것도 이제 슬슬 지겹구나.]
김은정은 허탈하게 웃었다.
뼈저리게 느껴진다. 나태는 지금까지 자신과 노닥거린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마왕은 절망이다. 그 말이 심하게 와 닿았다. 고작 수하에 불과한 일곱 중 하나가 저 정도일진대, 마왕의 진신은 과연 어느 정도인가.
인류는 과연 마왕을 이길 수 있을까?
절망이라는 감정이 생겼다.
한 마리의 용이 날개가 찢어지며 울부짖었다. 요정 한 명이 배에 구멍이 꿰뚫렸다. 혼돈의 사제가 머리가 꿰뚫려 즉사했다.
나태가 희멀겋게 웃었다.
아래에서 절망이라는 감정이 나태의 원동력이 되었다. 악마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원동력 삼아 강해진다.
나태는 점점 더 강해질 거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마왕도 물리치지 못하고 고작 일개 수하에게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퍽 절망스러웠다.
나태가 나태의 힘을 뿌렸다. 머리가 조금 몽롱해졌다. 벼락을 흩뿌렸다. 혼돈의 사제가 마력을 불어넣었고, 요정들이 정령들을 불러내며 가지각색의 마력을 뿌렸다.
용들이 입을 벌렸다 쩌억. 용족의 권능이라 불릴 만큼 강한 마력이 용의 입에 몰렸다. 나태가 귀찮은 듯 저으며 구름을 일으켰다.
수 킬로미터 단위를 넘어 수십 킬로미터까지. 검은색의 불길한 구름이 몰렸다.
요정족 세 명이 배를 꿰뚫렸다. 혼돈의 사제 두 명이 죽었다. 용 두 마리가 아가리째 찢어발겨 졌다.
그만큼 나태의 힘도 확연하게 약해졌다. 그러나 절망이라는 감정이 머지않아 나태의 힘을 키울 것이다.
기적.
간절히 바라고 천운이 닿아야 일어날 수 있다. 김은정은 그것을 믿은 적이 없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바랬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육체가 삐걱거렸다. 머릿속에서 온갖 지식이 샘솟았다.
천외일문.
그것은 시간과 관련된 특성이다. 일시적으로 사용자의 잠재력에 따라 문을 열어, 극한에 이른 상태를 불러오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천외일문은 나와 ‘잘’ 맞았다.
상격을 넘어 그 너머인 최상격. 그것조차도 넘은 초월해버리는 초월경에 이르렀다.
전능한 감각이 느껴졌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능감.
감각이 아득하게 넓어진다.
도시 전체가 내 감각권에 있단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이 있었다.
‘맹약’에 따라 거악을 직접 칠 수 없는 세명의 왕이 보였다.
용들의 왕이 보였다.
공허의 왕이 보였다.
요정여왕과 그란데힐도 보였다.
이 상태에서 보니 알겠다. 삼왕은 괴물이다.
단신으로 칠죄종과 맞서서 승산이 있을 만큼.
‘상태창’
▼
이름 : 이시우
근력 : 70
민첩 : 70
체력 : 70
마력 : 70
고유능력 : 천상천하 유아독존(Ex)
특성 : ■■■■(Ex), ■■ ■■(Ex), ■■(Ex), 하늘을 굽어보는 눈(S+), 불가해한 감각(S+), 오버로드(S+), 태극지체(S+), 색즉시공(S+)
(Ex)등급으로 도배된 상태창이 눈에 띄었다. 하긴, Ex등급에 미치지는 못한다는 건가. 이제서야 윤승하와 윤채린이 가진 (Ex)등급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시선을 돌리니 가장 낮은 특성들조차도 S+등급에 자리 잡고 있다. 음양체는 태극지체로 바뀌었고, 변강쇠는 색즉시공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깨달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는 것을.
‘생각보다 훨씬 짧군. 1분 정도인가.’
1분 정도로는 부족하다. 김은정과 나태를 공격하는 이들을 도와 나태를 공격해도 아마 중간에 천외일문의 힘이 풀리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아니, 무조건 돌아간다.
‘괜찮네.’
그래도 괜찮았다. 1분. 아득하게 짧은 시간. 그러나 나에게는 이 시간을 늘릴 힘이 존재한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고유 능력이 Ex로 표시된 유아독존을.
천상천하 유아독존.
간단하게 말하자면 유아독존은 두 가지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첫째는 고정.
나라는 존재를 세계에 고정해 한없이 완벽한 육체를 상시적용시킨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유아독존이 육체가 최상인 컨디션일 때 고정시켜서, 내가 그것을 발동하면 최상의 컨디션으로 돌아간다. 마치 시간을 되돌리듯이 말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그것을 상시로 적용한다.
둘째도 고정이다.
그러나 첫째와는 좀 많이 다르다. 나라는 존재를 세계에 고정하고 무수히 많이 분포된 평행세계에서 또 다른 나의 능력을 나에게 고정시키는 능력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어떤 ‘분기점’에서 달라진 나의 능력을 가지고 올 수 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능력이야.’
오로지 홀로 존귀하다.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르는 가능성.
그 모든 것들을 끌어모아 얽히고설켜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오직 나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일지니.
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발동했다.
검은색의 왕관이 지잉하고 울리며 세계에 내 육신을 고정하였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또 다른 ‘나’들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평행세계의 내가 잘살고 있어서.
나는 분기점을 보고 한가지 능력을 골랐다.
천의 가면.
파직.
보랏빛이 아닌, 백색의 번개가 사방으로 쏘아졌다. 음양체에서 태극지체로 오르면서 마나의 색이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백색의 벼락이 그물처럼 얼기설기 설키며 반경 수 킬로미터를 덮었다.
그리고 나는 가면을 썼다.
번쩍.
한순간 시야가 뒤바뀐다. 저 멀찍이 있던 나태가 내 눈앞에 보였다. 미리 뿌려둔 전기를 이용해서 한순간에 이동한다. 자신이 퍼트린 빛이나 번개가 있다면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
바로 김은정의 뇌광이었다.
[뭣?!]
경악해하는 나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신이 검게 물들며 별무리??가 내려앉는다. 나태가 검게 물든 촉수를 들어 올렸다. 히죽나는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나태는 막지 말았어야 했다.
서걱.
간단하게. 마치 고기를 자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나태가 경악해하며 소리 질렀다.
그러나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아야네가 가진 단절의 힘은 후반에 가면 개념마저도 잘라버리는 힘이기에.
물론 그만한 마나가 필요로 하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마나를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임나연이 가진 대해의 마나아니, 그보다 한 단계 진화한 인피니티.
인피니티가 문자 그대로 나에게 무한정의 마나를 공급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면을 쓴다. 절제의 검이 가진 광휘光?가 별무리 위에 덮어졌다. 요정여왕이 가진 동화가 발동된다.
“여왕님!”
“왜에?!”
내가 물어보자 요정여왕이 당황한 듯 답했다.
나는 웃으면서 통보하듯이 말했다.
“세계수 좀 빌려 쓸게요!”
“.....뭐?”
어처구니 없어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동화를 발동하였다. 감각이 넓어진다. 수 킬로미터를 지배하는 내 감각권이 더 넓어졌다.
파앗
초록빛의 싱그러운 빛이 세상을 감쌌다. 내 머리색과 눈동자가 초록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경악하는 세명의 왕이 보였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어하는 나태와 놀란 김은정의 표정도 보였다.
동시에 나태의 힘이 약해진다.
영역선포.
세계수가 가진 권능 중 하나다.
모든 사특한 것을 멸??하며 아군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가히 절세의 권능. 다만 아직 내 숙련도가 낮아, 이것밖에 쓸 수 없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나태의 힘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리고 김은정이나 신사에 남은 사람들의 안색도 좋아졌고.
특히나 요정족들은 경악해하면서 강해진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죽지 않고 부상당한 이들이 빠르게 회복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성능 확실하구만.”
나는 팔을 들었다. 천수를 발동했다. 내 오른팔이 팔꿈치 부근까지 새까맣게 물들었다. 흑수?手. 검은색의 손이 빨리 무언가를 잡아먹고 싶다며 나를 보챘다.
어떤 가면으로 할까.
그래, 이게 좋겠다.
천상의 마.
천수가 천상의 마를 모방한 가면을 삼켰다. 꿀꺽. 그러자 인간의 귀로 알아들을 수 없는 괴어가 비명을 지르듯 머릿속에 새겨졌다. 나는 손을 그대로 내렸다.
[버러지 같은 것이!]
나태가 분노하며 촉수를 새까맣게 물들였다. 촉수가 갈라졌다. 한번에 수천 갈래로 갈라진 촉수들이 새까맣게 물든 채로 나에게 쏘아졌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웃었다.
차르륵흑수에서 사슬이 쏟아졌다. 봉관의 무녀가 갖춘 능력, 봉관. 그것이 나태의 힘을 봉인하기 시작했다. 그 위에 절제의 검이 가진 광휘를 덮어 씌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윤승하가 가진 세계의 운명. 레벨을 거의 윤승하까지 올린 상태에서 비염을 불렀다.
“염!”
확연하게 커진 백색의 불꽃이 피었다. 내 마나를 먹고 쭉쭉 자랐는지, 비염은 내 목까지 커진 상태였다. 내 팔뚝만한 꼬맹이가 어느새 내 목아래까지 오다니. 뭔가 기분이 좀 이상했다.
[뭐야, 계약자! 이 모습은 아그니 님하고 비슷하잖아! 도대체 얼마나 강해진 거냐고!]
“호들갑은 나중에! 우선 저놈부터 조지자!”
[물론이지!]
비염이 손을 쫙 폈다. 백색의 불꽃이 하늘을 덮었다.
봉관이 나태를 얽매기 시작했다. 상격에 달한 봉관의 무녀와 일시적으로 초월경에 들어선 내 능력은 그 힘의 차이가 컸다.
나태가 감히 저항하지 못하고 사슬에 묶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
거기에 백색의 화염이 나태를 태웠다.
[끄아아악!!!!]
태극지체로 진화한, 마나는 두가지 계통으로 나뉜다. 하나는 김은정이 가진 ‘멸망’을 상징하는 검은색의 마나다.
나는 그와 정반대인 순백의 색깔을 가진 마나였다. 조화를 상징하며 파마의 성질이 강한, 백색의 마나.
그것이 나태의 몸을 힘껏 태웠다.
나는 마지막으로 준비했다.
공허족의 왕이 가진 능력 ‘개화’.
그리고 은수아가 가진 칠색. 개화의 능력으로 칠색을 개화한다. 내 손에 칠색이 뭉쳤다. 칠색 찬란한 빛이 섞이고, 섞이며 마치 우주와 같은 모습을 드러내었다.
공허.
마치 우주를 그대로 본떠 만든 듯이 새까만 배경에 별 무리와 은하가 그대로 박혀있는 듯한 검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다른 능력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그만큼 내가 칠색에 집중하고 있거니와 슬슬 천외일문의 유지시간이 끝나가고 있어서였다.
유아독존으로 아무리 길게 고정시키고 있어도, 이만한 힘을 5분 이상 유지했다. 언제 끝나도 이제 이상하지 않다.
나는 모든 힘을 공허검에 때려 박았다.
이격은 없다. 일격으로 끝낸다.
위에서 아래로.
나는 공허검을 그저 아래로 휘둘렀다.
무한변천개세검無????世?
그리하여 일검.
세계를 갈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