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나태(3)
* * *
나는 멍하니 있지 않았다.
상격들이 틈을 벌어준 시간. 재빠르게 펜던트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파직.
불길한 검은색의 번개가 일었다. 동시에 산양이 획하고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검은색으로 물든 불길한 손이 나에게 향했다.
마기를 몸으로 둘러싼 윤채린이 내 앞에 나타났다. 십수 체의 정령이 크게 부풀며 내 앞을 막아섰다. 김시연의 등 뒤에 늑대의 형상이 떠오르며 검을 앞으로 들며 왔다.
그러나.
「불가해한 감각」이 죽음의 냄새를 짙게 맡았다. 「하늘을 굽어보는 눈」이 공격 경로를 보여줬다. 산양의 공격은 고작 나에게만 비롯되지 않았다.
내 근처에 있는 전부. 아니, 그보다 범위가 훨씬 더 아득했다. 저 멀리서 공격하고 있건만, 공격범위가 100m 넓이의 운동장을 웃돌았다.
“신이시여!”
신념의 방패가 울부짖으며 내 앞으로 왔다. 일격을 막기 위함이었다. 성가대 중 일부가 반응해서 힘을 보태었다. 한 발짝 늦게, 임나연이 얼음의 꽃을 피웠다.
파직.
떠오른 빛의 방패가 종이짝처럼 찢어졌다. 그 여파로 십수 체의 정령이 역소환되고, 얼음의 꽃이 산산이 조각나 흩날렸다. 윤채린이 피를 토하며 튕겼다. 김시연이 내민 존재부정의 마나. 신살의 힘이 그 여파를 막았다.
“쿨럭!”
그러나 그 일격으로 김시연이 피를 토하며 건물에 처박혔다.
[신살? 어떻게…….]
나태가 중얼거리면서 귀찮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꼬맹이.”
뇌광.
빛이 있다면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권능.
그것을 펜던트에 심어 내 눈앞에 온 김은정이 야구 모자를 벗으며 정면을 주시했다.
“잘 버텼다.”
파직.
그 말과 함께 허공에서 회색의 검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손잡이 부분이 흰색과 검은색이 태극을 그리는 손잡이. 그것을 잡았다.
[귀찮은 걸 소환했네. 회귀자라고 했나? 그 녀석의 동료 중 하나인 도복을 입은 녀석이 떠오르는군. 냄새가 그래. 킁킁.]
“무신, 혁월 님이다. 버러지.”
김은정이 혐오와 경멸을 담아 중얼거렸다.
[버러지라. 하찮은 가축에게 이런 말을 또 들을 줄 몰랐는데.]
“그 가축들에게 우두머리를 잃고, 대부분이 봉인되고, 죽어버린 놈들이 할 말인가?”
[킥.]
나태는 한번 비웃었다. 김은정은 무신 혁월이 아직 마에 몸을 담은 것을 모른다. 그렇기에 저런 말을 할 수 있고. 반대로 나태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태는 그저 비웃을 뿐이다.
김은정이 검을 들었다. 회색의 검신이 완연한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쩌저정──!
나태의 손과 검은색으로 완연히 물든 검이 부딪쳤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그 여파로 주변의 건물들이 붕괴하고 있었다.
[귀찮은 것. 인간 주제에 가당치 않은 힘을 다루고 있구나. 멸망의 힘이라니.]
나태가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울의 힘으로 양팔을 회복한 검성과 가슴에 난 구멍을 회복한 절제의 검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회복을 대가로 마나를 지불한 무녀는 안색이 파래해 졌다. 너무 많은 마력을 쓴 이유였다.
윤채린은 죽은 피를 뱉고 있었고, 윤승하는 정령들이 역소환되어서 안색이 새하얗게 변한 채 숨을 내쉬며 회복하고 있었다. 뜻밖에 김시연이 가장 멀쩡했다. 윤채린하고 윤승하가 대부분 피해를 반감해서겠지.
나는 윤승하와 윤채린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훗날, 저들의 우두머리를 아무렇지 않게 쓰러트릴 힘을 가진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저들은 더 성장해야 한다.
“성가대! 김은정 님을 보조해라! 다른 상격 분들은 나서지 말고 보조에 집중해주십시오!”
성가대가 찬송가를 불렀다. 그러나 처음과 같은 힘은 없었다. 나태의 힘에 너무 많은 부상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콰르릉!
김은정이 검은색의 번개 구슬을 하늘 위로 던졌다. 그러자 구슬이 한순간에 증폭하더니 수백 줄기의 검은색 번개를 토해내었다. 멸망의 번개. 멸망의 힘이 담긴 벼락 줄기들이 나태에게 쏘아졌다.
[쯧]
나태가 손을 휘저었다. 검은색의 구름이 뭉게뭉게 퍼지더니 원형의 방패를 만들었다. 그 크기는 족히 30m는 훌쩍 넘어갔다. 그러나 김은정이 부린 벼락 줄기들은 구름을 꿰뚫으며 나태를 공격하였다.
극단적인 공격력 때문이다.
김은정이 가진 ‘멸망’속성의 마력은 개념마저도 멸하기 때문이다. 다만, 멸망이라 불리는 속성의 극단적인 강함만큼 단점도 존재한다.
“시우.”
남다윤이 어느새 내 옆으로 온 채 말했다. 그리고는 아공간에서 반지 하나를 꺼냈다. 굉장히 눈에 익은 반지였다. 일명 귀환의 반지. 특정한 곳의 좌표를 심어서 도망칠 수 있게 만드는 구조를 가진 반지였다.
“이건 반지야. 특정한 곳으로 미리 도망칠 수 있는 반지. 만약 내가.”
“누나.”
나는 남다윤의 말을 잘랐다.
“저 믿죠?”
“어? 시우 말이면 당연히 믿지.”
“그럼 제가 무슨 짓을 해도 무조건 믿어주실 수 있죠?”
“……응.”
남다윤이 표정을 바꾸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수십 줄기의 벼락이 치고 킬로미터 단위로 주변을 점령하며 마기를 뿌리는 구름이 격렬하게 부딪치고 있다.
이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지금은 김은정이 밀어붙이고 있지만, 그녀가 가진 멸망의 번개는 사용자의 육체를 좀먹는다.
그렇기에 빨리 봉인을 해제해야 했다.
***
검은빛의 벼락 줄기들이 내리쳤다.
나태를 타격하는 수백 줄기의 벼락들은 가히 세계의 멸망을 보는 것 같았다.
구름이 쭉 늘어지고 사방을 점했다. 해일이 오는 것처럼 주변을 점하며 그 길이가 수 킬로미터를 점하였다. 그 뜻은 산을 넘어 도시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는 소리였다.
아니, 이미 도시라고 불린 곳은 절반 이상이 구름에 파먹혀서 사라졌다. 핸드폰에는 당장 주변을 벗어나라는 긴급 문자들이 잠잠했다.
저것으로 도대체 몇만에 달하는 생명이 사라진 거지?
이게 일개 생명에게 허락된 힘이라고?
‘…….’
하루히 아키는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의미가 없다.
신념의 방패가 피를 토하며 나태의 공격 일부를 막았다. 절제의 검이 검을 휘둘렀다.
하루히 아키는 동영상을 보았다. 절제의 검이 일격으로 백에 달하는 괴물을 죽인 광경을.
검성이라는 인물이 쓰나미를 갈라버린 기적을.
그러나 지금 그들은 어떤가.
광휘를 두른 절제의 검은 빛 한점 없는 암흑에서 성냥에 붙은 불과도 같았다. 검은색의 구름의 잔해를 막는 것으로도 벅차 보였다.
해일을 가르며 기적을 보인 검성은 단 일격에 전의를 상실했다.
“……마왕.”
그 단어가 얼마나 절망적인 단어인지 하루히 아키는 뼈저리게 이해했다.
이런 놈들이 일곱이나 있었다고?
하루히 아키는 미칠 것 같은 정신을 가까스로 유지했다. 봉관의 무녀가 창백한 안색으로 기절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면, 저 사람을 누가 지킬 것인가.
털썩.
봉관의 무녀를 치료하던 신관이 한 명 쓰러졌다. 너무나도 과도한 이능의 사용으로 기절했다. 그것을 기점으로 다른 신관들도 쓰러졌다.
빛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김은정을 보조하는 빛도, 구름으로부터 이곳을 지키는 빛도.
그속에서.
유일하게 한 소년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
나는 전의를 상실한 검성을 바라보았다. 기다란 붉은빛의 장발이 생기를 잃었다. 표정은 그저 망연했다. 이게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매스컴에는 대인처럼 나오는 인물이지만, 그 속이 여자에 관심이 많고 좀생이 기질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나름 영웅 같은 면모가 있기에 일본을 대표하는 상격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검성 님.”
“…….”
이름을 불렀지만 검성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검성 님, 지금 급박한 상황이니까 빠르게 말하겠습니다. 당신이 들고 있는 천총운검을 저에게 넘기세요.”
“……내 검을?”
천총운검을 이야기하니까 이제서야 반응했다. 검성은 잠깐 검을 바라보았다.
“그렇군. 마지막이니까 검사로서 이 검을 만지고 싶어진 건가. 좋다, 만져라.”
검성이 나에게 검집 채로 검을 넘겼다. 나는 빠르게 검을 획하고 뺏었다.
나는 봉관의 무녀를 바라보았다. 봉관의 무녀도 기절했다. 나는 봉관의 무녀에게 다가가서 거울을 뺏었다. 주변에서 놀라며 나를 바라보려 했지만, 내 옆의 남다윤이 한번 째려보자 주춤했다.
“근데 이걸 모아서 어떻게 하려고?”
나는 품에서 돌덩이 하나를 꺼내었다. 나태의 힘으로 봉인되고, 오염된 곡옥. 이 봉인은 검과 거울의 힘으로 해제할 수 있다.
파앗검과 거울을 꺼내서 곡옥에 두자 검과 거울이 스스로 은색의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돌이 쩌적하고 쪼개지며 은색의 빛을 뿜어내었다.
[──만일 이 봉인이 깨졌다면, 거악이나 마왕이 부활했다는 증거겠지. 후세에게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은 실패한 건가. 그렇다면 후세의 전인이여. 부탁한다, 부디 상대를 막아주길.]
머릿속에서 한 남성의 음성이 들렸다.
회귀자.
지구를 구한 용자.
여러가지 수식어가 있지만,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회귀자다. 이것은 그가 남긴 메시지.
나는 눈을 감았다.
은색의 빛이 내 몸을 휘감았다. 육체에 스며들며 한순간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나태의 공격 경로가 확연하게 보이고, 감지된다. 뇌령이 마지막 남은 뇌령을 잡아먹었다. 하나의 뇌신이 육체에 새겨졌다. 파직자동적으로 뇌혼이 발동되며 시야가 느릿하게 흘러갔다.
완벽하게 상격에 들어갔다는 증거였다.
삼신기에는 여러 가지 능력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능력은 바로 위계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이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게 이번 한 번 뿐이기에.
나는 눈을 감았다.
삼신기의 힘을 해방한다. 파앗하고 은빛의 기운이 어둠을 물렸다. 일시적으로 극단적인 힘을 사용한다. 이렇게 되면 삼신기를 다시는 쓸 수 없지만, 삼신기는 애초부터 이렇게 설계된 물건이기에.
머릿속에 한가지 능력이 새겨졌다.
그리고 그것에 따른 능력도.
천외일문?外一門.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귓속에 들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