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나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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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의 구조는 간단하다.
여타 다른 함정 같은 것 없이, 일직선으로 가면 되는 구조. 다만 어둠이 안개처럼 있어서 감각에 혼란을 겪기 쉬우며 어둠의 안개가 시야를 방해하기에 뛰어난 안법이 필요했다.
나 같은 경우는 두 가지 다 충족하고 있는 경우고, 남다윤 같은 경우는 눈이, 윤채린과 윤승하 역시 아슬아슬하게 감각과 눈을 충족시키고 있었다.
“너, 감각이 좀 날카로워진 것 같다? 아니, 너 지금 보이냐?”
조금 놀란 어투로 윤채린이 물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곳 던전은 흔히 말하는 잡귀??들이 많다.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인지, 일본에서 나오는 요괴 계통이 많아 꽤 까다롭다.
‘윤채린하고 윤승하가 있으니까.’
윤채린이 가진 천상의 마는 모든 마기를 지배한다. 잡귀 역시 마기에서 태어난 존재. 그렇기에 윤채린의 먹잇감들이나 다름없다. 윤승하는 빛 계통의 정령이 있다.
남다윤 역시 빼놓으면 섭섭하다. 여동빈의 천둔검법을 익힌 계승자이기 때문이다. 천둔검법은 파마의 권능을 지닌 검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눈으로 앞을 살폈다. 100m 앞에 거대한 공동이 보였고, 그곳에 온갖 잡귀가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수는 얼추 봐도 500마리는 훨씬 넘었다. 나는 잠깐 손을 들어서 일행을 멈췄다.
“왜 그래 시우야?”
“앞에 적이 있어서요.”
“그게 보여…? 아니, 몇 마리야?”
내가 말하자 남다윤이 놀란 어투로 물어봤다.
“족히 500마리는 훨씬 넘어요. 종류는 잡귀.”
“500마리라. 그러면 내가 나설까?”
“아뇨, 괜찮아요. 누나는 여기서 가장 강한 전력이니, 일단 힘을 아껴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던전에서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그리고 채린이 쟤가 여기서 저런 거 가장 잘 잡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공간 팔찌에서 물약을 꺼냈다. 마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물약이다.
“내가 처음에 마법으로 크게 휘저을 테니까, 알아서 날뛰어.”
“너, 자꾸 내가 단순무식하게 돌진해서 날뛰는 애처럼 말한다?”
나는 좀 충격을 받았다.
지금의 윤채린이 단순무식하게 돌진해서 날뛰는 애가 아니었단 말인가?
어쨌든 전투 앞이다. 빠르게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가면을 쓴다. 「마도의 업」을 모방한 가면. 그리고 「대해의 마나」를 모방한 가면. 여기에 선유라의 「트윈 스펠」을 모방한 가면까지.
마나가 들끓는다. 마치 폭주하는 것처럼 거세게 반발하기 시작한다. 대해의 마나에 힘입어 더욱더 강대한 마나가 날뛴다.
“후우.”
여기에 「지식 열람」을 발동한다. 특성은 불러오지 않는다. 「지식 열람」을 발동하는 이유는 완벽한 좌표 계산을 하기 위함이다. 「마도의 업」을 모방한 가면의 레벨이 올라 슬슬 나 혼자 다루기 까다로워 졌기 때문이다.
파지지지직!
3m에 달하는 뇌전의 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여기에 끝을 꼬아, 나선의 창을 만들어 관통력을 높이는 작업을 생략한다. 대신 확산을 위한 마법식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비염을 불렀다.
“염.”
[오케이.]
내 의지에 따라 창에 불꽃이 달라붙는다. 여기에 선유라의 「트윈 스펠」을 모방한 가면이 진가를 드러내었다. 지잉하는 소리가 들리며 마나가 빠져나갔다. 그리고 한 자루의 번개가 파지직거리며 불꽃으로 타오르는, 뇌전의 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보랏빛의 궤적을 그리며 잡귀를 향해 쏘아졌다.
***
남다윤은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후광이 이는듯한 얼굴이 보였다. 뚜렷한 이목구비. 호수 같은 눈동자. 날카로운 콧날. 그리고 이상하리 만치 앞을 잘 보는 ‘눈’.
“전방에 다시 잡귀. 이번엔 수가 좀 적네. 혼자 날뛰어.”
“오케이~.”
윤채린이 앞으로 뛰어갔다. 남다윤은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러나 제대로 보이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냥 잡귀 몇마리 정도. 이곳에 있는 어둠의 안개가 남다윤의 감각을 대부분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시우는 그렇지 않았다. 분명 한 달 전만 해도 저런 ‘눈’은 없었을 텐데.
이시우는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리고 눈으로 한번 주위를 훑었다.
“이번엔 쓸만한 게 안 보이네. 그냥 가자.”
그런 식의 반복이 몇 번 있었다. 윤채린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이시우도 땀을 흘릴 무렵. 마침내 거대한 철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도착했다. 던전 보스는 말해줬다시피, 마기를 다루는 보스야. 던전 보스의 공격은 윤채린이 막고, 다윤이 누나가 공격하며, 나랑 승하가 보조한다.”
이시우는 굉장히 익숙하게 말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이시우는 능숙하게 문을 열었다.
텅빈 공동 안.
그 중앙에는 암석으로 된 의자가 있었다. 붉은색의 귀신같은 가면을 쓰고 옛 무사가 입는 붉은색의 갑주를 입은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는 방금 잠에서 깬 듯, 권태로운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주제도 모르고 신기??를 탐하는 어리석은 자가 또 왔군.
서늘한 음성이 들렸다. 동시에 붉은색의 안광이 타올랐다. 저 존재는 신기를 지키는 문지기 같은 존재다. 강함으로 따지자면 얼마 전, 상대했던 변신하기 전의 나태의 사도와 같은 강함을 가지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그때의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상대가 그러했다.
이름은 잊었다. 다만, 검귀라는 이명만은 기억할 뿐.
스르릉. 서늘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칼로 찌르는 듯, 농밀하게 날카로운 기세가 뿜어졌다.
어린아이같이 힘을 휘두를 줄만 알았던 그와 달리 상대는 제대로 싸울 줄 아는 존재였다. 기세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고아하게 남다윤이 검을 뽑으며 앞으로 나섰다. 윤채린이 그 옆을 보조하였다.
순간 검귀가 움찔했다. 강자는 강자를 알아보는 법. 검귀는 순간적으로 남다윤이 자신보다 한 수는 더 위라는 것을 직감했다.
한발짝.
남다윤이 한발 크게 내디뎠다. 아차하는 순간에 검귀 앞에 다가갔다. 공간을 접은듯한 움직임. 축지였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검에는 어느새 선명한 푸른색의 별무리?가 내려앉았다.
“검강??….”
윤채린이 중얼거렸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꿈을 꾸는 경지. 검기성강.
길쭉하게 뽑힌 푸른색의 별무리가 휘둘렸다.
선공은 남다윤이었다. 검귀는 기함하며 검을 휘둘렀다. 짙은 암흑의 무리가 검에 둘러졌다. 검과 검이 부딪친다. 검귀가 검을 날카롭게 휘둘렀다.
검귀의 검이 남다윤의 머리를 노렸다. 그러나 남다윤은 침착하게 검을 튕겼다. 그 여파로 머리카락 일부가 잘렸지만, 남다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휘둘렀다.
마를 멸한다.
그 명제 아래에 남다윤은 검을 휘둘렀다. 그렇기에 만들어진 살검이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극한으로 벼린 공격성이었다.
검귀가 크게 검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남다윤은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수십 자루로 분열한 검들이 검기를 두른 채, 검귀를 쫓아갔다.
둘의 전투를 멍하니 보는 윤채린과 다르게 이시우랑 윤승하는 움직였다.
윤승하가 빛을 불렀다. 빛으로 이루어진 용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시우도 정령을 불렀다. 보랏빛의 불꽃이 허공에 피며 불꽃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빛이 쏟아지고 온갖 마법들이 남다윤을 보조하며 검귀를 몰아붙였다.
격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나버렸다. 남다윤이 천둔검법으로 검귀의 움직임을 틀어막고 그대로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커흑. 후, 훌륭하고 올곧은 검! 그, 그대같이 바른 성정의 여인이라면 신기를 올바르게 이용해 주겠지. 신기는 저곳에 있다.
검귀가 한쪽 구석 자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검귀가 재가 되었다. 검귀가 죽은 자리에는 검 한 자루가 있었다.
이시우는 조용히 검을 줍고는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운이 좋군.”
***
던전을 공략하고 나면, 아이템 분배라는 가장 큰 난제가 생기게 된다.
“뭐야, 가지고 싶다고 말한 게 고작 그거였어?”
윤채린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나는 돌 모양처럼 생긴 곡옥을 들어 올렸다.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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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척경구옥]
일본의 세 개의 신물 중 하나.
무언가에 의하여 모든 힘이 봉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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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던전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 곡옥을 얻었다.
나는 이거면 만족한다.
“아이템 분배라면서 얼굴에 힘을 팍 주고 말하더니. 뭐, 됐어. 뭔가 있어 보이기는 한데, 그거 봉인 풀려면 엄청 귀찮을 것 같으니까, 난 패스.”
“괜찮아?”
“검주님과 검귀의 대결을 본 것으로도 큰 수확이어서.”
윤채린이 가볍게 말했다.
그러나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던전에서 꽤 활약해서 얻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가질 수 있을 텐데.
“그럼 나도 됐어.”
윤승하가 웃으며 말했다.
검지 손가락을 하나 흔들면서.
저 표시는 나랑 윤승하의 암호다. 무언가를 양보하는 대신, 윤승하가 나중에 자기가 해보고 싶은 플레이 하나만 들어주면 문제없다는 표시였다. 즉, 내 정액을 착정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누나는요? 누나는 검으로 고르실래요?”
검귀를 잡으면서 나온 검. 요도라 불리는 무라마사였다. 그걸 말해주자 남다윤이 눈을 빛냈다. 남다윤은 검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으니까.
“이게 그 요도??라고?”
남다윤이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되면 곡옥은 자연스럽게 내 손에 들어왔다.
“그럼 슬슬 나갈까요?”
“그러자.”
윤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다윤도, 윤승하도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 했다. 우리는 다시 입구로 돌아가서 호텔로 향했다.
“음?”
호텔은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북적거렸다. 마치 유명인사라도 온 듯이 말이다. 설마 들켰나. 검성과 봉관의 무녀는 일본을 대표한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상격의 영웅들이다.
저렇게 인파가 몰린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인원이 좀 이상했다. 중간마다 수도복을 입은듯한 인물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백금발의 머리카락을 가진 미남이었다. 자기보다 더 커 보이는 거대한 방패와 풀 플레이트로 무장한 이질적인 복장.
‘방패’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홀로 수만 마리나 되는 괴물로부터 도시를 구원한 바티칸의 상징. 그 옆에는 꽤 익숙한 얼굴들도 보였다.
윤승하로 플레이하면 나오는 백금발의 소녀. 릴리의 소녀, 엘리스 루나마리아.
윤채린으로 플레이 하면 나오는 백금발의 소년. 장미의 왕자, 나탈 바스티앙.
방학 때, 협회에서 일하면서 잠깐 얼굴을 마주한 소년과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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