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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55화 (155/298)

〈 155화 〉 검은 산양(7)

* * *

“그래서 쫄려?”

이시우가 히죽­하고 웃었다.

“하, 천마인 내가 쫄릴리가 없잖아.”

윤채린이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조금. 아주 조금 안도했다. 별 벼린 것 같은 저 마력은 마기에 치명적이다. 천상의 마로 인해서 아주 순수하기 그지없는 패도의 마기를 체내에 쌓았지만, 그런데도 저 마력은 상성이었다.

윤채린은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저 마력에 아주 조금 닿았을 뿐인데, 몸의 내부가 진탕되어서 장기가 꽈배기처럼 꼬이는 줄 알았다.

별의 마력이라고 했던가.

그것에 스치기 전, 천마의 망령이 비명 지르듯 말한 것이 떠올랐다. 모든 ‘마’에 상극이라 불리는 마력.

윤채린은 괜히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싫어서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너, 그거 검은 왕관 있잖아.”

윤채린은 태연한 척하며­말을 던졌다.

그러나 심장이 두근거렸다. 혹시 자신이 이시우에게 최면을 건 것을 눈치챈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망령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왕의 ‘격’을 지닌 영혼을 바쳤기 때문에 이시우는 눈치채기 힘들 거다.

최면을 풀려면 그에 상응하는 격을 지녀야 한다. 검은색의 왕관은 꽤 격이 높아 보이지만, 마왕의 영혼을 제물로 바친 최면에 비할 바는 아닐 거다­라고 말한 망령의 말이 떠올랐다.

두근. 심장이 조금 두근거렸다. 만약 이시우가 그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될까. 혹시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까.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들었다. 미안하기도 했다. 괜히 최면을 써서 왕관의 회복을 늦추었기도 해서.

“아, 유아독존?”

“유아독존이야? 이름이 꽤 멋있네.”

윤채린은 괜히 멋쩍게 말하며 칭찬했다.

천마.

유아독존.

꽤 잘 어울리는 별호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시우, 조금 전에 그거 뭐야. 손이 막 까맣게 변하던 거.”

윤승하가 이시우의 옆으로 앉아, 이시우의 어깨에 기대며 물었다. 윤채린은 눈썹을 찌푸렸다. 저 계집애가 미쳤나. 윤승하는 그녀가 가진 능력 때문에 남장을 해야 했다.

그래서 윤승하는 요즘 남자들끼리 하는 스킨쉽을 이시우에게 하고 있었다. 가령 지금처럼 어깨에 기댄다던가 시우의 무릎 위에 머리를 대고 무릎베개를 받는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아, 이거?”

이시우가 손을 폈다.

싸악­.

손이 먹물이 가득한 곳에 담갔다가 뺀 듯, 팔목까지 손이 새까맣게 변했다. 그러나 그 손은 이질감이 컸다. 윤승하는 손을 응시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이질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까 전, 산양으로 변한 마인이 가지고 있던 것과 비슷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윤승하는 눈을 조금 가늘게 떴다. 느낌이 이상했다. 산양과 싸우면서 느낀 것은, 저 기운은 원래 사용자를 잡아먹는데, 이시우의 손에 머무는 기운은 조금 달랐다. 마치 억지로 무언가가 개입해서 기운만을 억지로 떼어내고 안전장치로 덧댄 듯한 느낌.

지금은 안전하지만, 저 안전장치가 풀리면 어떻게 될까. 윤승하는 입을 열었다.

“시우야. 그거 계속 쓸려고?”

“응. 왜? 뭐 이상해?”

“음…….”

윤승하는 잠깐 고민하고 이시우에게 털어놓았다.

“그 능력 말이야. 좀 많이 이상해서.”

“이상해?”

“응. 뭐라고 해야 하지……. 누군가의 능력에서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더하고 뚝 떼어 붙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

“근데 지금 그 안전장치가 하나둘 떼어지고 있는 느낌이라서.”

윤승하의 걱정 섞인 말.

이시우는 느릿하게 웃었다. 「천의 가면」도 「지식열람」도 그랬다. 「천의 가면」으로 작성한 기린의 가면. 그것은 자아를 잃는다는 페널티를 가지고 있었다. 「지식열람」은 신체에 부하를 주었다. 완전히 여는 것도 아닌 특성의 일부를, 그것도 낮은 특성들을 모방하는 것으로도 그랬다.

그렇다면 「천수」 역시 위험을 부담할 것이다. 어렴풋하게 느껴진다. 천의 재주를 가진 「천수」가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음?”

윤채린이 의아함이 섞인 소리를 내었다.

입구 쪽이 웅성거렸다. 시선을 돌렸다. 입구에서 강한 기척들이 느껴진다. 조금 전 쓰러트린 나태의 사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기척 하나. 그리고 그보다는 약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기척 하나가 느껴졌다.

……강한 쪽이 검성인가. 아니, 검성이 아니었다. 이시우는 당황했다. 이 기척은 이시우에게 굉장히 익숙한 기척이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

입구 쪽에서 사람이 올라왔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붉은빛의 장발을 가진 남성이었다. 검성. 일본을 대표하는 영웅 중 한 명이다. 이시우는 눈을 돌렸다.

푸른색의 단발이 찰랑거렸다. 호수를 머금은 듯한 푸른색의 눈동자. 무릎 부근까지 내려오는 검은색의 롱코트를 입고, 검은색의 니트에 새하얀 다리가 보이는 하얀색의 치마를 입은 여성이 보였다. 빙설같이 냉혹해 보이는 표정이 한순간 이쪽을 응시하더니, 헤벌쭉­하고 풀어졌다.

그리고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다시 냉혹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검주??, 남다윤.

그녀가 일본에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

우리는 바깥으로 나왔다.

나태의 사도는 신사 밖에서 처리했다지만, 나태 신도들의 습격, 그들을 막기 위해서 신사 내부에서 싸워서 건물이 좀 무너진 상태여서 그랬다.

나야 무너져도 별 상관은 없는데 하필 남다윤이 와버리는 바람에 머물기 좀 애매한 상태가 되었다. 손님을 이런 곳에 머물게 하면 일본 위신이 상한다고 했나.

나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 몇 개만 넘으면 상격이 될 거라 확실시되는 윤승하와 윤채린.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돈을 만지는 임가의 외동딸 임나연. 존재감은 없지만, 그래도 중격은 확실하며 신살의 힘을 품고 있는 김시연.

여기까지도 어마어마한데 조금 있으면 최연소 최상격이 거의 확실시되는 남다윤에 일본에서 제일 유명한 영웅들인 검성과 봉관의 무녀, 히가미 사나에와 그녀를 보조하는 하루히 아키까지. 하나같이 화려한 스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근처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을 잡아주겠다고 정부의 요원이 나오고 있었다.

“그럼 우리는 어디에서 머물지? 처음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배정해준 호텔로 갈까?”

내가 묻자 윤승하와 윤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다윤은 조금 불만족스러운 눈빛을 했다.

“그럼 우리 호텔로 갈까?”

“……호텔이 있어?”

하긴.

대한민국에서 돈이 가장 많은 가문이 임가였다.

“응.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이 우리 가문의 호텔이거든. 우리 할아버지 소원이 일본에 사업을 하나 들이고 그중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셨거든.”

“아, 그래? 할아버님께서 일본을 좋아하셨나 보다.”

“아니, 일본을 엄청나게 싫어하셨어. 근데 일본에 우리가 하는 사업이 1등을 먹으면 재밌을 것 같다고 하셔서 호텔을 세우셨거든. 그래서 현재 일본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 우리 호텔이야.”

“……그렇구나.”

임나연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비서에게 말해두면 바로 VIP 스위트 룸으로 들어갈 수 있어. 그러니까 차라리 우리 호텔로 갈래?”

임나연이 말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VIP스위트 룸은 보통 하루 머무는데도 1,000만 원 넘게 든다고 들었는데. 나야 지금 시점에서 머무는 일이 별로 어렵지는 않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어서 굳이 머물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자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제 소개하지 않았군요. 저는 코무로 테츠야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과분하지만 검성??이라고 불리고 있지요.”

겸손한척하지만,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쪽에게 인사했다. 노골적으로 여자들에게 신경 쓰고 나랑 윤승하를 무시하는듯한 구조였다.

이건 꽤 신선했다.

요즘 들어서 내가 어디서 무시당한 적이 없어서 그런가. 오히려 내가 학기 초에 괴롭혔던 걸로 보복할까 봐 한종우에게 잘하는 따까리들이 조심하고 잘 대해줘서 좀 신선했다. 윤승하는 귀찮은 걸 피해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전 임나연이에요.”

평소에 나를 보면 조금 바보같이 헤실대던 임나연이 도도하게 말했다. 내 쪽으로 슬쩍 오면서 말이다.

“비서에게 방금 문자 보내서 우리 호텔 간다고 말했으니, 지금 워프 게이트 타고 도쿄로 가면 되겠다.”

헤실거리며 임나연이 내 쪽에 붙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강렬한 눈초리가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나를 노려다 보는 코무로 테츠야가 보였다.

아니, 그는 아니었다.

「불가해한 감각」이 더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 옆에서 롱코트를 걸친 채 냉담해 보이는 표정을 한 남다윤이었다. 천의 가면으로 감정을 살피니 스멀스멀 올라오는 검은색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런데 누나는 어떻게 일본으로 오셨어요?”

“……내가 일본으로 온 게 거북해?”

조금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들린다면 착각일까.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뇨, 너무 갑작스러워서. 솔직히 누나는 엄청 바쁘셔서 말씀 못 드렸거든요. 누나가 온다면 당연히 좋죠.”

나는 실실 웃으면서 남다윤의 옆으로 슬쩍 다가갔다.

“누나, 배고프지 않으세요?”

“배? 그러고 보니 저녁을 먹지 않았네. 먹기는 해야 하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감정에서 기대감이 솟았다.

사실 이번에는 김시연이 잘했고, 자존감 좀 올려줄 겸같이 밥 먹으면서 칭찬해주려고 했는데.

“저기 오마카세 잘 하는 데가 이 근처에 있는데 저랑 같이 가실래요?”

“시우 너랑? 단둘이서?”

남다윤이 단 둘을 강조했다.

여자 일행은 조용했다. 왜냐하면 아까 나태의 사도가 접근하기 전에 신사에서 잔뜩 대접받으며 먹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아직 덜 소화됐기는 했지만.

“아, 그러고 보니 일본에 오신 후, 바로 신사에 가셔서 많이 시장하시겠군요. 제가 잘 아는…….”

코무로 테츠야가 끼어들려다가 멈칫했다. 왜냐하면 남다윤이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내보이며 싸늘하게 노려봤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시우 ‘동생’이랑 만나서 둘이서 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요.”

정중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동생을 강조하며 남다윤이 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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