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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52화 (152/298)

〈 152화 〉 검은 산양(4)

* * *

나는 계획을 모두에게 말했다.

오늘 밤에 마인이 습격하니, 신사를 지키고 다음 날은 정비하고, 수요일 날 던전을 공략한다.

“그렇게 되면 임무는?”

김시연이 물었다. 나는 씩 웃으면서 아공간 팔찌에서 시체를 꺼냈다. 머리 크기만 1m가 넘어가는 뱀장어가 머리 부분만 모습을 드러내었다.

전기 뱀장어라 불리며 물 속성 주제에 번개 속성 저항력이 강하고 번개 속성을 다뤄서 까다로운 괴물이다.

전기 뱀장어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천적을 만나면 전기를 사방으로 뿜어대서 생태계를 박살 내는데 크게 일조하는 괴물이라 토벌 의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거기다가 나는 전기 내성이 있어서 잡기는 훨씬 수월했다.

“그럼 나머지 날은?”

“관광하러 가야지.”

물론 관광할 시간이 나면 말이다.

윤채린이 수상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틈을 타서 윤승하는 포크를 움직여 윤채린의 찹쌀떡에 포크를 찍고는 자기 입에 넣어 우물거렸다.

“야! 하늘 같은…누나가 마지막에 먹으려고 남길 디저트를 훔쳐먹냐!”

윤채린이 호통을 치며 말하자 임나연이 입을 열었다.

“그럼 호텔로 가지 말고 바로 신사로 구경하러 갈래?”

“어? 마인들이 습격하기 전에 먼저 들어갈 수 있으면 좋지. 근데 거기는 일반인 출입 금지잖아.”

관계자도 엄선된 관계자만 들어갈 수 있다. 대외적으로 나태의 산양을 봉인한 곳이라서 히어로 아카데미의 학생이라고 할지라도 관광을 목적으로 들어갈 수 없다. 유명한 정치인이나 기업가들도 갈 수 없고.

그래서 일본인이나 일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장소 1위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였다.

“괜찮아. 우리 아버지가 그곳에 꽤 투자하셔서 나는 괜찮거든.”

임나연이 웃으며 말했다.

***

신사는 입구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거한이 보였다. 아직 입구에 불과한데, 하위의 위계를 가진 영웅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こちらは? ?者外出???です.”

일본어가 나왔다.

「지식열람」으로 알아보니 대충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뜻이었다.

“어떻게 할래?”

“임나연으로 방명록이 있을 텐데. 내 이름을 한번 말해봐.”

“아, 한국분이셨습니까?”

거한이 조금 어색한 한국어를 하였다.

“네. 임나연의 이름이면 통과할 수 있을 거라 들었는데, 가능할까요?”

임나연의 말에 그대로 말하니 거한이 태블릿을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다급하게 90도로 인사하였다.

“임나연 님이셨군요! 바로 알아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출입할 수 있게 조치하겠습니다.”

거한이 다급하게 말하고는 무전으로 어디론가 말했다. 그러자 근처에 있는 옛 일본식 건물에서 무녀복을 입은 여성이 나오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무녀의 안내를 받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신사로 올라가는 계단은 총 108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08번뇌는 인간이 가진 감정…….”

무녀가 한국어로 신사를 소개했다. 나는 한 귀로 흘려들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늘을 굽어보는 눈」으로 바라보니 이 신사의 정경은 꽤 특이했다.

검은색의 사슬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리고 계단의 끝에 있는 ㅠ자 형태의 문에 끝에는 사슬이 둘둘 감겨 있었다. 봉관의 무녀가 가진 봉관의 능력이었다.

봉관??.

무언가를 봉인하는 데 특화된 능력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봉관의 무녀는 등급으로 따지자면 상급에서도 최상위권에 분류되지만, 저 봉관의 능력에 대부분의 능력을 할애하여 전투력은 경지에 비하면, 굉장히 약한 축에 속한다.

어느정도냐 하면, 나나 윤채린이랑 접근전을 벌여 싸운다고 하면, 나랑 윤채린이 이길 가능성이 더 클 정도다.

다만, 봉관의 무녀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능히 최상위의 위계를 가진 존재조차도 봉인할 수 있다. 멸망의 번개라는 권능을 가진 김은정한테는 통하지 않겠지만.

“도착했습니다.”

무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우리는 사슬로 칭칭 묶인 ㅠ자 형태의 문을 통과하고, 안으로 들어 섰다. 200평 남짓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안에는 옛 일본식으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줄을 이었고, 복장도 그것과 맞추겠다는 듯이 무녀복이랑 전통 일본식 옛 복장을 한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저 건물은 이곳에 방문하시는 귀빈분들을 위한 전용 숙소입니다. 그리고 저기는 신을 모시는 사당이고, 저기는…….”

무녀의 안내를 따라서 우리는 관광을 시작했다. 사실 관광이라고 해도 즐길 거리는 별로 없었다. 애초에 봉인지 위에 확실한 안전과 봉인을 위해 이곳에 신사를 지은 것 뿐이니까.

“그리고 바로 저곳이 마왕을 봉인한 곳입니다.”

무녀가 한곳을 가리켰다. 「하늘을 굽어보는 눈」으로 보니 내 팔뚝만 한 크기의 굵고 검은 사슬들에 휘감겨 있었다. 사슬 하나하나에 온갖 부적이랑 십자가들이 붙어 있었다.

부적들과 십자가들은 하나같이 영묘함을 품고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귀빈들께서는 여기에서 구경하셔야 합니다. 더 가셨다가는 온갖 장치들이 있어서.”

무녀가 말끝을 흐렸다.

우리 일행은 멀찍한 곳에서 그곳을 보았다. 눈과 감각 덕분에 보이고, 느껴진다. 온갖 결계와 물리적인 장치가 있었고, 근처에 다가가니 사방에서 시선이 꽂히기 시작했다.

과연 거악의 봉인지 다운 경계 태세였다.

‘정작 거악은 봉인 당하지 않은 것이 함정인데.’

나는 「하늘을 굽어보는 눈」과 「불가해한 감각」을 동원해서 봉인지를 살폈다. 그러나 안은 엿볼 수 없었다. 아직 내 숙련도가 미숙하기도 했고, 봉관의 무녀가 가진 봉관의 힘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누추한 곳에 귀빈들이 오셨군요.”

질책하는듯한 말투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무녀복 차림을 한 여성이 있었다. 일자 형태로 앞머리를 자르고 하얀 상의와 붉은색의 하의가 잘 어울리는 무녀가 보였다.

그 옆에는 음침해 보이는 여성이 있었다.

무녀복의 폼이 꽤 큰데도 숨길 수 없는 큰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앞머리는 덥수룩하게 대충 기른 듯한 모양새. 이곳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차림이다. 대충 입은 듯, 정갈하지 않은 무녀 복장. 다분히 음침해 보이는 눈동자. 그 아래에 짙게 내려온 다크써클. 시선이 나에게 향하자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저 두 여성이 등장하자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그들을 맞이했다. 윤채린과 윤승하, 임나연은 물론 분위기에 휩쓸려서 인사한 김시연까지.

그리고 나도 고개를 숙였다.

단정해 보이는 무녀가 아니라, 음침해 보이는 여성에게.

***

“고작 이것들로 봉인지를 치겠다고?”

홍유화는 권태롭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나태의 신자들이 있었다. 나태의 산양을 추종하여 힘을 얻은 마인들. 더 정확하게는 나태가 흘리는 힘의 파편들을 주워 먹고 강하게 된 마인들이었다.

홍유화는 이시우를 떠올렸다.

솔직하게 말해서 한 놈을 제외하면 이시우 혼자서도 저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한 놈이 퍽 강했다. 봉관의 무녀를 죽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사도??.

자신을 스스로 산양의 사도라 지칭한 존재였다. 과연. 사도라 지칭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주변에는 나태의 힘이 넘쳐흘렀다. 일반인이라면 저 기운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성실하다고 평가받는 사람이 나태해져 아사할 정도로 말이다.

홍유화는 히죽 하고 웃었다.

“알지? 우리는 이번 일하고 아무 관계 없는 거?”

[물론이다. 우리도 그대들의 개입을 원하지 않아. 그대들이 개입하면 위선자와 탕녀가 개입할 테니까.]

나른한 목소리. 그러나 그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곧 있으면, 산양께서 부활하신다.]

“맹약은 알고 있지?”

[물론. 하나 산양께서 힘을 회복하면 위선자와 탕녀쯤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홍유화는 키득거렸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우물 밖을 모르기에 자신에 가득 차 있다.

산양은 강하다. 그리고 이질적이다.

그러나 그 힘은 절대적이지 않다. 봉관의 무녀에게 봉인 당한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비록 마왕에게 당해 전성기의 힘을 낼 수 없다고는 하나 요정여왕과 공허왕의 힘은 산양 한 마리 정도는 죽일 수 있을 텐데.

“그래? 그럼 여는 이만 가보겠다.”

[좀 더 구경하고 가도 된다. 특등석에서 우리의 산양께서 일본을 침몰시키는 광경을 보고 가도 문제는 없을 거다.]

***

봉관의 무녀와의 만남은 퍽 인상적이었다.

“저, 저 팬이에요!”

첫 만남에서 꺼낸 것이 바로 저 말이었으니까. 그것도 한국어였다. 조금 어색하지만, 일본 특유의 말투인 한국어.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녹차를 마셨다.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꽂혔다. 그리고 불편한 눈빛도.

힐끔.

나를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봉관의 무녀가 아이돌을 만난 팬의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단정한 무녀가 나를 불편한 눈빛으로 보고 있다.

“아, 마, 맞다. 그, 그러고 보니 아, 아직 이름도 말하지 않았네요. 저, 저는 히가미 사나에라고 해요. 사, 사나에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네, 알고 있습니다. 사나에 님.”

“저, 저를 아, 알고 계신다고요? 어, 어떻게…….”

라고 중얼거리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봉관의 무녀. 마왕을 봉인한 사나에 님은 엄청 유명하시니까요. 개인적으로 팬입니다.”

“패, 팬…! 저, 저도 시, 시우 님의 팬이에요! 아, 그, 그리고 저, 저를 사나에 님이라고, 부, 불편하게 부르지 않으셔도 돼요. 펴, 편하게 사나에 양이라고 부, 불러주시면 됩니다.”

나는 프로필상의 사나에의 나이를 떠올렸다.

나이 39세. 양이라고 불리기에는 굉장히 어색한 나이였다. 그러나 나는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사나에 양. 이렇게 부르면 될까요?”

“네에엣! 가, 감사합니다!”

도대체 뭘 감사하다는 걸까.

“저도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제, 제가 어, 어떻게 시, 시우 님을 펴, 편하게……저, 저는 그럴 수 없어요…!”

거의 울먹거리듯이 사나에가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무녀가 헛기침했다.

“히가미 님. 체통을 지켜주세요.”

“하, 하지만 내 최애인 시, 시우 님이 눈앞에 있는걸!”

나는 무언가 말하는 대신 찻잔을 들어 녹차를 한 입 마셨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하루히 아키라고 합니다. 한국은 통성명을 나누면 이름을 말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일본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가족이나 연인, 친구 사이의 일이니, 성으로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루히 아키가 조용하게 말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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