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 준비
* * *
휘익!
나뭇가지가 바람을 가르며 두 개가 쏟아졌다. 이번에도 고개를 까딱 움직여서 피했다.
이 시련의 관에서는 최소한의 움직임을 유지하는 게 좋다. 그래야만 체력을 완전히 비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련의 관은 연속으로 나온다.
이 시련을 깨고 다가 아니라, 다음 시련도 있다.
‘물론 그 최소한의 움직임도.’
휘이익!
네 개의 나뭇가지가 나에게 날아왔다.
오른쪽 다리를 살짝 위로 올리며 팔을 슬쩍 올리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다음은 8개의 나뭇가지가 날라왔다. 그다음은 16개의 나뭇가지가. 그다음은 32개의 나뭇가지가.
‘여기서 부터인가.’
나뭇가지가 날아오는 간격이 짧아진다. 32개의 나뭇가지가 한순간에 날아왔다. 나뭇가지를 피하다가 문득 나는 내 움직임이 ‘춤’의 명령어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라.’
춤이란 것을 인지하자, 천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천수.
천개의 손. 천가지의 재주를 가지고 있음을 뜻했다. 움직임과 관련된 온갖 재주를 극단적으로 높여주는 능력이 활성화되며, 내 몸이 자연스레 기억에 있던 춤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이건…….’
춤을 출수록 내 눈이 이채를 띄었다.
춤을 추면 출수록 몸이 가벼웠다. 기원의 춤. 춤이 나를 이끌었다. 나뭇가지가 날아오는 것이 춤을 추는 것으로 회피하는 것을 잊은 채, 나는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었다.
그렇게 춤을 추기를 10분이 지났을까. 나는 어느새 지쳐서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은 것을 깨달았다.
‘조금 전은…….’
도대체 무슨 일이지. 뭐가 되었든 기연이었든 것 같은데.
나는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상태창은 변화가 없었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기원의 춤은 기술 같은 건가. 그래서 보이지 않는 건가.
유저들이 기원의 춤을 회피한 이유는 간단하다.
드는 시간과 돈에 비해서 보상이 너무 부실하기 때문이다. 「하늘을 굽어보는 눈」과 「불가해한 감각」이 좋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윤승하랑 윤채린은 그보다 더 어울리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드르륵.
생각하고 있을 때, 벽 쪽에서 돌이 내려가며 통로가 생겼다. 다음 시련의 관으로 넘어가라는 뜻이었다.
나는 생각을 미리 준비해둔 물약을 꿀꺽꿀꺽 삼켰다. 아주 조금, 쥐꼬리만한 체력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유아독존을 써야겠네.’
상정했던 것보다 마력과 체력을 많이 썼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
어지간한 운동장보다 더 큰 무색의 방이 있다. 이곳은 마력을 강제로 묶어두는 방이다.
이곳의 마력은 바깥보다 짙으며 이따금 이상 현상을 일으킬 수 있기에 교수들 사이에서도 조심스레 이용할 수 있는 방이었다.
방 중앙에서 이지아는 보랏빛의 지팡이를 무릎 위에 올리고, 명상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우우웅
마력이 들끓고 있다. 활화산이 한계까지 불꽃을 머금고 토해내듯이, 마력이 사방으로 솟구치려는 것을 이지아는 안간힘을 쓰며 그것을 제어했다.
그렇지. 좀 더 한계까지.
라플라스의 정령이 이지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것은 이시우가 임무 주간에서 임무를 끝내며 요정여왕이 보상을 줄 때, 추천해준 무구였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사용하면서 여러모로 이지아랑 어울리지 않아서 의아했었지만, 곧 이시우의 의도를 깨달았다. 이 지팡이에는 마법적 지식이 뛰어난 정령이 잠들어 있음을 말이다.
그 정령은 이지아의 재능을 꿰뚫고, 그녀를 올바른 길로 올라가게 도와주고 있었다.
집중해. 마력을 그저 억누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 공간에 넓게 퍼트리는 느낌이다.
정령이 속삭였다.
그러나 이지아는 정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활화산같이 폭발할 것 같은 마력을 제어하고 있으니까.
마도의 업.
그것을 개화한 사용자의 재능을 뒤바꾸는 능력이다. 이지아의 마력은 거칠다. 아니, 거친 수준이 아니라 흡사 폭주하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항상 드세 있다. 거기다가 마력의 흐름도 통상의 마력과는 반대로 흐른다.
이 마력의 성질은 바꿀 수 없다. 정령은 그렇게 못을 박았다. 설사 바꿀 수 있더라도 바꾸지 않으리라. 이지아가 가진 마력의 성질은 마법을 발현하면 리턴이 확실하다.
일반적인 마법보다 제어가 힘들지만, 같은 마나량으로 2~3배 가량 위력을 증폭시켜주니까.
‘그냥 마법을 쓰는 것만으로도 그 정도인데.’
그러나 마도의 업이라는 능력은 고작 그 정도의 힘을 가진 건 아니었다. 마력을 극한으로 폭주시켜서, 주변의 마력의 흐름을 뒤튼다. 그것만으로도 주변 마법사들의 마법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하며, 술식을 엉키게 만든다.
지금 이지아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을 의식적으로 하는 작업이었다.
되었다.
“후우.”
이지아는 근처에 있는 청결 마법으로 묻었던 탐을 털어내며 일어났다.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정신을 한계까지 집중한 탓이었다.
훌륭해. 벌써 일부 공간까지 지배하기 시작했어.
정령에 칭찬에 이지아는 대꾸 없이 이시우가 만들어준 포션을 집어 들어서 삼켰다. 활력과 마력이 회복되는 느낌이 듦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느려.”
이지아는 불만족스럽게 말했다.
이지아의 성장세는 가히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입학식에서 이지아는 영웅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조차 아까운, 헌터에 가까운 존재였다.
지금의 이지아는 어떤가. 이시우나 윤채린, 윤승하와 은수아. 저 네 명에 비하면 한없이 빛을 바라지만, 지금의 그녀는 바로 그 아래까지 추격하고 있으니까.
이미 상아탑과 한국에 유명한 길드들은 그녀를 영입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들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느렸다. 이시우의 옆에 서는 게 굉장히 멀게 느껴졌다. 이지아는 이시우의 제안을 떠올렸다. 임나연, 윤승하. 그 두 명에게 같이 일본에 가자고 제안했던 것을.
‘아직은 부족하다는 거겠지.’
이시우가 떠올랐다.
어지간한 여자들은 옆에 서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에 조각 같은 몸. 그것들이 이시우를 좋아하게 되는 조건들이긴 했지만, 이지아는 이시우의 분위기를 더 무섭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거의 홀릴 것 같은 아우라라고 불러야 하나.
그래서 충동적으로 행동했다. 이시우는 절대로 모르겠지만, 이시우에게 최면을 걸고, 마마라고 부르게 하며 그를 범했다.
"하."
답답해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시우는 자신이 이런 여자라는 걸 절대로 모르겠지만,만약…만약 이시우가 이런 내 면모를 알면 어떻게 행동할까. 경멸할까, 그것마저도 보듬어줄까.
이지아는 눈을 감았다.
***
“하, 씹.”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것을 참고,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귀에서 그란데힐이 시우 님은 정말 좋으시지만, 가끔 나오는 욕은 덜 좋아할 수밖에 만드는 조건입니다라며 잔소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러워지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땅바닥에 드러누우려다가 그냥 주저앉았다.
중간에 유아독존에 뇌령에 오버로드까지 쓰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나는 힐끔 벽에 쓰여 있는 글귀를 쳐다보았다.
[세계를 느끼며 보아라. 그러면 세계수의 헌신이 깃들지니.]
여기에서의 시련은 간단했다.
앞선 시련이 나뭇가지의 회피였다면, 이곳에서는 바닥에 새겨진 문양을 따라 움직이면서, 나뭇가지를 회피하는 것이었다.
대신 나뭇가지가 느리게 날아왔지만, 나는 이곳에서 무슨 히든 피스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인드로 더 열심히 뛰었기에 이리 지친 것이었다.
화아악!
그때 갑작스레 바닥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빛의 입자들이 한순간 흘러나오며 내 머릿속에 말이 새겨졌다.
[그대는 생명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있구나. 시련을 다 끝낸, 그대에게 여기 세계수의 축복이 깃들지니…….]
그리고 빛의 입자들이 모조리 내 몸속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어둑한 공간의 모든 것들이 ‘인지’되기 시작되었다.
두근.
심장 소리가 강하게 느껴졌다. 무슨 말로 설명해야 할까. 머리카락의 한올 한올마저 내 감각이 인지하기 시작한다. 마음만 먹으면 육체의 모든 것을 생각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눈’은 벽을 뚫고 모든 것을 시야 안에 담기 시작했다. 이 방 안에 있는 마나의 흐름이 눈에 담겼다. 하늘을 굽어보는 눈은 천리안과 마나의 흐름을 보는 것에 특화된 눈이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빛의 입자들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빛의 입자들이 내 몸속을 누비며 뼈나 혈관에 달라붙어서 내 능력치를 촉진 시켰다.
원래대로라면 인지할 수 없는 일. 그러나 「불가해한 감각」이 내 몸속의 모든 것을 인지하게끔 만들어주며, 어떤 원리로 빛의 입자가 내 몸을 강화하는지 인지하게끔 만들어주었다.
“후우.”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시련의 관을 통과하기 전보다 조금 더 육체가 강건해진 느낌이다. 나는 손을 폈다가 다시 쥐었다.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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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시우
근력 : 25
민첩 : 26
체력 : 27
마력 : 28
고유능력 : 유아독존
특성 : 지식열람(S+), 천의 가면(S), 천수(S), 하늘을 굽어보는 눈(S), 불가해한 감각(S), 오버로드(S), 음양체 (S), 변강쇠(A+)
근력이 3이 올랐고, 다른 능력치는 2씩 올라갔다. 나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고난에 비해서 보상이 너무 후했기에.
빛의 입자가 체력마저도 활성화해준 영향인가. 몸도 다시 제 상태를 되찾았다.
‘이거면 은수아가 줬던 아이템을 끼면 마력은 30까지 올라간다.’
은수아가 내 정신계 계통에 취약해지는 대신, 능력치를 올려주는 오를로스의 날개가 떠올랐다.
이렇게 올린 마력 30은 스텟 그대로 올린 마력보다 효율이 낮고, 유아독존을 사용하면 사용할 수 없다는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어차피 나태의 산양전에서는 유아독존을 사용할 수가 없다.
유아독존을 사용하면 나태의 산양이 가진 권능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바지를 털털 털어내고, 청결 마법으로 한번 점검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