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시련의 관
* * *
나는 외투를 입고, 신발을 신고는 슬그머니 복도로 나섰다.
머리가 복잡했다. 생각이 꼬리를 물듯 계속해서 다른 생각들이 머릿속에 부상했다. 나는 괜히 머리를 헝클었다.
나는 가면창을 노려다 보았다.
「천상의 마」. 그것은 마기를 지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주변에 있는 모든 마기를 지배하며, 상대의 마기까지 끌어다 쓰는 것이 가능한, 말도 안 되는 고유 능력이다.
모든 마족과 마왕 천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능력.
마기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지배한다. 나중에 Ex 등급으로 진화하는 몇 안 되는 능력이다.
그러나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존재한다. 「천상의 마」는 인공 마왕이라 불리는 천마들의 영혼이 존재한다. 그 망령들은 어지간하면 사용자의 육체를 차지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사실 그것도 단점도 아니지만.’
「천상의 마」.
그것의 진정한 단점은 그것이 아니다. 「천상의 마」라는 능력이 내 상태창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좀 더 천마답게, 좀 더 마왕답게 말이다.
「오버로드」, 「음양체」, 「변강쇠」. 내가 가진 이 특성들을 모두 「천마지체」나 「초직감」, 「악의 감지」 같은 특성으로 바꿔, 천마가 싸우는 방식에 알맞게 고쳐버린다.
그렇기에 나는 「천상의 마」를 얻는 것을 경계했다.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하였다.
어찌 되었든 나는 현재 천상의 마를 모방한 가면을 얻었다.
‘써봐야 하나?’
여러가지 생각이 뒤엉켰다.
지금 내 특성은 조금 불안전하다. 극단적으로 능력치를 강화하며 일순간 한 단계 격을 올리며 단기 결전으로 끌어들여 상대를 끝낸다.
그것이 내 전투법의 기본 골자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방식이 아니다. 뼈를 주고 뼈를 취하는 방식의 전투법이다.
그러나 뇌령신공을 완숙하게 다루고, 뇌신을 얻게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뇌신이라는 령을 얻으면 공격력이 극단적으로 증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뼈를 주고 뼈를 취하는 전투에서, 뼈를 주고 상대의 생명을 취하는 전투법으로 바뀐다.
뇌신까지 얻는다면 단기결전의 싸움에서 같은 격의 상대라면 어지간하면 한 호흡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다.
‘상격 까지겠지만.’
최상격은 힘들다.
거기서 재생력 하나만을 먹고 사는 빌런은 세포 단위로 분해해야 죽는 놈이 있다던가, 일격으로 산을 지워버리는 놈들도 한가득하니.
……아무튼 그런 내 전투법에 「천상의 마」가 끼어들어 내 능력을 바꾸면 내 공격력이 너무 애매해진다. 극단적으로 치우쳐진 공격력이 깎이고, 다른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만능 적으로 변한다.
만능.
좋은 단어이기도 하지만, 다른 말로는 이도 저도 안되는 애매함이 될 수 있다.
머리를 헝클며 복도를 걷자, 한 건물이 눈에 보였다.
검은색의 나무로 지어진 건물.
일명 교수동이라 불리며 여기에는 온갖 교수들과 요정들이 살고 지내는 곳이다. 대부분 교수는 집이 있지만, 이곳의 교수동은 마나가 풍부해서 이곳에서 죽치고 사는 이들도 많다.
교수동으로 향하자 여러 요정족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요정들을 지나치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을 꺼내서 그란데힐에게 톡 하나를 보냈다.
데힐아, 지금 만날 수 있을까?
데힐은 내가 그란데힐을 부르는 애칭이었다.
그란데힐 : 네, 가능합니다.
톡을 보낸 지 2초도 되지 않아, 답장이 왔다.
그란데힐 : 지금 김시연 학생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ㅇㅇ
나는 간결하게 답장하고 건물로 향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건물 앞에 서 있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나에게 물었다.
“그란데힐을 만나러 왔습니다.”
“아, 시녀장님을 만나러 오셨군요.”
요정이 칠판에 쓱쓱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출입해도 된다고 하였다.
“시녀장님은 현재 C12 동에 계십니다. 그쪽으로 향하시면 뵐 수 있을 거예요.”
“네.”
나는 안으로 쭉쭉 걸어갔다.
근처에 안내된 지도를 보면서 안으로 걸어가니, 수련장이 보였다. 나는 문을 조금 열고 안쪽을 보았다.
안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화아악!
사나운 돌풍이 사방으로 몰아치고 있었다. 바람으로 형성된, 연둣빛의 늑대가 그란데힐을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김시연의 능력, 풍랑의 힘이었다.
저 상태의 김시연은 지극히 까다로운 존재가 된다. 속도가 극한으로 높아지며, 풍랑이 가진 신살의 힘까지 있기 때문이다.
파앗!
김시연의 눈이 연둣빛으로 빛났다.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풍랑의 마나를 받아들이며, 연둣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검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연둣빛의 바람. 모든 존재를 부정하는 폭풍의 마나가 김시연의 검에 머물렀다.
나는 갑자기 김시연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궁금해서 지식 열람을 이용했다.
▼
이름 : 김시연
근력 : 17
민첩 : 25
체력 : 19
마력 : 25
고유능력 : 풍랑
특성 : 신화의 늑대(S), 풍신(A), 짐승의 직감(B+), 유연한 신체(C+)
극단적인 능력치였다. 마력과 민첩만을 키워서 공격력을 키웠다. 특성도 나쁘지 않게 잘 키웠다.
쿠구구구궁!
광풍이 일었다. 연둣빛의 바람이 폭풍이 되어 사방으로 쏟아졌다. 그란데힐은 태연하게 그것을 바라보며 손잡이만 있는 검을 내밀었다.
허공이 도화지에 흩뿌려진 검은색 먹물이 번지듯이 그려졌다. 김시연의 광풍이 사방으로 번져서 그란데힐을 향해 쏘아졌다.
초승달 형태를 가진 바람의 칼날들이 그란데힐의 사방을 점하며 쏘아졌다. 그란데힐은 무표정하게 검을 앞으로 세웠다.
손잡이가 있는 검이 그란데힐의 마나를 받으며 검은색의 먹물이 검의 형태로 형태를 갖추었다.
그란데힐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간결함의 정석이다. 김시연이 날린 초승달 형태에 칼날들을 피할 수 있는 건 피하고, 몸에 직격하는것은 공간장악으로 만든 칼날로 찢어버렸다.
김시연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흡!”
김시연이 양손을 모아 연둣빛의 구슬을 만들었다.
콰과과과─!
광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연둣빛의 구술을 주축으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바람이 주변에 마나를 잡아먹으며 커지며 거대한 폭풍이 되었다.
나는 당황했다.
‘벌써 저걸 익혔어?’
저런 종류의 공격은 자기보다 약한 상대들을 상대하는 게 더 좋다. 연둣빛의 구슬이 저 폭풍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저 구슬을 파괴하면, 한 번에 무너지는 구조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그란데힐 앞에 있는 먹물이, 연둣빛의 구슬이 비쳤다. 그란데힐이 검을 휘둘렀다.
파앗!
구슬이 빛나며 광풍이 힘을 잃었다.
“나쁘지 않은 시도였습니다. 주변에 마나를 이용해서 존재 부정의 마력을 약화했지만, 그래도 범위도 괜찮고, 공격력도 나쁘지 않군요. 다만, 약점이 너무 뚜렷합니다.”
그란데힐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광경을 보며 김시연이 씩, 하고 웃었다.
쿠우우우웅─!
바람이 구슬을 향해 휘몰아쳤다. 광풍들이 방향성을 가지고 그란데힐을 향해 한 번에 휘몰아쳤다.
콰과과과과과과─!
녹빛의 바람이 하나하나 뭉쳐지며 녹빛의 파도를 만들었다. 그것들이 그란데힐을 향해 파도치기 시작했다.
그란데힐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짝. 손뼉을 치는 행위를 했다. 그것으로 그란데힐은 김시연의 뒤를 점했다.
공간계와 관련된 능력자들이 강하다고 평가받는 이유였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유틸이면 유틸. 모두 강점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꽤 훌륭한 시도였습니다. 방심을 유도하고, 구슬을 파괴하는 행위, 그 자체로 반격하다니.”
“이…이이익……이, 이 개같은……!”
그란데힐이 김시연을 칭찬했지만, 김시연은 분하다는 듯, 그란데힐을 노려보았다. 지금이 끼어들 타이밍인가.
나는 인기척을 크게 내며 손뼉을 쳤다.
짝짝짝.
그란데힐과 김시연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김시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고, 그란데힐은 상대적으로 평온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오랜만이네요, 누나.”
“어? 시, 시우야!”
김시연이 나에게 날아오듯이 내 앞에 왔다.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김시연의 뒤에 개의 꼬리 같은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다음 달 나랑 일본 여행 간다고 했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나 보러 온 거야?”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러자 그란데힐의 표정이 조금 꿈틀했다.
“시우 님. 슬슬 가실까요?”
어딜? 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란데힐의 분위기가 조금 무거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럴까? 아, 그러고보니 시연이 누나, 요새 편지는 쓰고 받을 수 있다고 했지?”
너무 조이기만 하면 안된다는 방칙하에 김시연은 슬슬 자유를 어느 정도 받고 있다. 다만 그 자유라는 게 편지 정도라는 게 문제다. 요즘 시대에 도대체 누가 편지를 쓴다는 건지.
나는 아공간에 있는 종이와 펜을 꺼내서 내 기숙사 주소를 적어서 김시연에게 주었다.
“여기에 편지해줘, 누나.”
“으응, 알았어. 꼭 답장해 줘!”
김시연이 조금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장을 꼭 하겠다고 말하고 그란데힐하고 다른 장소로 걸었다.
“미안, 갑작스러웠지? 지금 쉬는 시간이지? 용건 빨리 끝내고 갈게.”
“아닙니다. 쉬는 시간이지만, 저는 시우 님을 보는 게 더 쉬는 것 같으니까요.”
나는 당황했다.
생각보다 그란데힐의 말이 훅 들어와서.
“……그, 래?”
나는 문득 그란데힐에게 대부분 부탁만 하고 있단것을 떠올렸다.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아니, 그냥 보고싶어서. 오랜만에 데이트…는 좀 힘들려나."
"……가능합니다."
그란데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금 무서운 미소를 지으면서.
***
벽이 반쯤 무너지고, 깨진 유리창이 보이는 폐건물. 그곳에서 달빛을 받으며 홍유화는 시뻘건 머리를 쓸었다.
“나태의 산양?”
여상한 목소리였다.
자기 주인이 하는 말에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나태의 산양이 깨어났다는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나태의 산양은 깨어나려면 멀지 않았나?”
“예. 예상외의 사태입니다. 폭식의 벌레와 질시의 뱀도 생각보다 일찍 깨어나려는 조짐도 보입니다.”
“그 둘도?”
흐음홍유화는 손가락으로 핏빛의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생각했다. 거악 중 일부는 싸움의 여파로 인해서,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 잠에 빠졌다.
오만의 용은 복수의 칼을 갈며 힘을 기르고 있었고, 탐욕의 짐승은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분노의 마수는 스스로의 힘을 과신하여 인간들에게 죽을 뻔해,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깊숙한 곳으로 피신해 있었다.
거악이라 불리는 이들이 이런 꼴이 되다니. 마왕이 본다면 한심해하며 거악을 갈아치웠을 텐데.
“나태의 산양이 잠든 곳이 일본이었나?”
“네, 그렇습니다.”
“준비해. 일본으로 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림자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홍유화는 나른하게 손으로 턱을 바쳤다.
보랏빛의 벼락을 두른 한 남자가 떠올랐다. 이시우라고 했었나. 여왕의 눈치를 보느라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고는 하나, 자신을 계속해서 밀어붙이던 인물이었다.
흥미가 일어 조사를 하라 시켰다. 알면 알수록 더 흥미가 일던 인물이었다.
학기 초에는 분명 어지간한 학생보다도 못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자신을 숨긴 건가,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자신의 재능을 일깨운 건가.
전자도 흥미롭지만, 후자는 더 흥미로웠다.
그 정도의 재능이면 시간이 지나면, 거악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 보낸 남자가 떠올랐다. 정신계통을 이용하는 환혹 계열의 능력자. 그 남자가 한참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다.
‘아마도.’
죽었을 거다. 이시우라 불리는 남자의 손에.
홍유화는 기대어린 미소를 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