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윤채린
* * *
윤채린은 생각했다.
이시우는 현재 사귀고 있는 애인이 없다고 했다. 윤승하의 말이 그렇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마도 가짜 최면으로 이시우를 홀린 것일 거다.
그 질문은 검은색의 왕관이 막아서 물어볼 수 없었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원점으로 돌린다. 이시우에게 최면을 씌우고, 자신의 호감도를 극대화하며 이시우를 공략한다.
윤채린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름 완벽한 작전이었다.
그것을 위해서 이시우를 납치했다. 히어로 아카데미 밖에 있는 폐건물 안으로 말이다.
“채린아, 괜찮아?”
이시우가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윤채린은 힘없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연기에는 재능이 별로 없으니 아예 힘을 빼라는 조언받은 탓이었다.
“……몸이 이상해, 뭔가 힘이 안 들어가. 독에 당한 것 같은데.”
천마지체인 탓에 윤채린은 독같은게 잘 통하지 않는다. 천마들이 가장 먼저 한 것들이 윤채린의 천마지체에 만독의 저항력을 키운 것이니까.
하지만 이시우는 그것을 모른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를 챌지도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일말의 낌새다.
윤승하라도 모르는 몇 안 되는 사실이다.
이시우의 눈이 조금 이상해졌지만, 윤채린은 고개를 숙이느라 보지 못했다.
“……그래? 그럼 내가 안을게.”
이시우가 한번 밧줄을 툭 치더니 밧줄이 한 번에 풀렸다. 저건 또 무슨 재주지. 윤채린을 이시우의 재주를 눈여겨보았다. 이시우가 윤채린을 향해 팔을 벌렸다.
“…공주님 안기로?”
“이게 대응하기 더 편하잖아.”
윤채린은 이시우에게 공주님 안기로 안겼다.
“안 불편해?”
“어, 괜찮아.”
오히려 좋았다.
조금 거칠다고 해야 하나. 남자 냄세라고, 해야 하나. 여자한테 나지 않는 그런 수컷의 냄새가 났다. 윤채린은 고개를 푹 숙이며 팔로 이시우의 목을 감쌌다.
킁킁.
목 근처에 얼굴을 가져가니 냄새가 더 강렬해졌다. 목에 얼굴을 가까이 했다. 그러자 반옥같은 얼굴이 더 가깝게 보였다. 그리고 냄새도.
윤채린이 목 가까이에서 냄새를 맡자 이시우가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빤히 이시우가 윤채린을 쳐다보자 그제야 윤채린은 멈췄다.
“뭐, 이상한 냄새라도 나?”
“아, 아니. 조, 좀 좋은 냄새가 나서. 이, 일단 여기에서 빠져나가자.”
“그러자. 혹시 채린이, 너 누가 우리를 납치했는지 알아?”
물론 알고 있다. 자신이 이시우를 바깥으로 납치한 거니까. 하지만 윤채린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분명 나는 시우 너랑 있었는데.”
“그렇지?”
이시우는 몇몇 이름을 중얼거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암천의 장막이라던가 다섯 줄기의 그림자 등의 이름을 불렀다.
윤채린은 힐끔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무겁지는 않겠지. 이시우가 무거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윤승하는 여리여리하다.
거기다가 운동은 이제 조금씩 하고 있어서, 근육이라 할만한 것도 없었다. 골반은 크지만, 가슴 크기도 72라서 무게는 가볍다.
그에 반해, 자신은 무인이다. 기본적으로 몸에 근육이 많을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키도 크고. 쭉쭉 뻗은 다리와 팔은 그녀의 자랑거리였지만, 지금은 신경이 좀 쓰였다.
이시우는 윤채린을 안아 들고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갔다.
“채린아, 바깥으로 나갈 거거든. 내 몸 꽉 잡아.”
“어? 어 알았어.”
지금 걱정해준 건가. 윤채린은 왠지 모를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이시우는 어둠을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해.’
몸이 가벼웠다. 자신과 윤채린을 제압했다면, 무력화는 필수다.
자신에게 쓸 극독을 윤채린에게 모조리 투입했다고 해도, 무언가 이상했다. 마치 상황 자체가 만들어지는 듯하였다. 애초에 윤채린을 독으로 제압할 수 있는가.
아니, 어쩌면 리가에 교환 조건으로 바꿔준 물약이 어떤 나비효과가 되어 윤채린 마저 제압할 독을 완성했을지도 몰랐다.
암천의 장막이나 다섯 줄기의 그림자가 나섰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끝날 리가 없다.
이시우는 머리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자기 목덜미에 코를 대고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는 윤채린도 있었지만, 이시우는 신경을 껐다.
우선은 윤채린과 자신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
인기척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암천의 장막이나 다섯 줄기의 그림자는 정면승부에 약했다.
그 둘은 주술이라는 트리거를 이용해서, 어떤 조건과 제약으로 남을 납치하는 것에 능하지, 정면승부라면 강한남 한테도 질 정도로 약하니까.
이시우는 폐건물을 나와서 근처에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에서 가장 비싼 호텔이지만, 여기라면 오히려 안전할 거다. 몸값 비싼 영웅들도 잔뜩 있을 테니까.
윤채린을 공주님 안기에서 부축하는 자세로 바꾼 이시우는 호텔로 향해서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1인실로 2개…. 아니다, 2인실로 하나 주세요.”
1인실이 두 개라면 대응에 늦어질 수 있다. 지금 윤채린은 많이 약화한 상태니까. 이시우는 직원에게 키를 받아 2인실 하나를 빌렸다.
직원들이 힐끔힐끔 자신과 윤채린을 보면서 대화하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곧 소문이 날 것 같다. 스캔들 정도로 끝나면 다행일 것 같기는 한데.
이시우는 속으로 걱정하며 윤채린을 부축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
배실받은 방은 모던한 느낌이 나는 방이었다.
하얀색 바탕에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에 윤채린을 내려놓고는 주변 경계를 섰다. 무기는 없지만, 뇌광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혹시 몰라서 근접 박투를 어느 정도 연습해두기를 잘했다. 검사란 언제든 검을 가까이 해야 하는 존재지만, 항상 검을 준비할 수 없는 노릇이라며 남다윤이 나를 철저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중에서 가장 잘 배운 것은 바로 조?를 다루는 방법이었다. 내 뇌광을 길쭉하게 뽑아서 검처럼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침대 아래에서 경계를 섰다.
핸드폰이나 아공간 팔찌도 없어서 불안했지만, 일단 인터폰으로 상황을 말해 두었다. 직원에게 빌런에게 갑작스럽게 습격당해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 호텔에 잠시 머물렀다고.
더불어 히어로 아카데미에 연락해 달라고 말이다.
다행히 그런 상황이 많았는지, 직원은 알았다고 하며, 빠르게 어디론가 연락하는 행동을 취했다.
히어로 아카데미에 연락한다면, 높은 확률로 그란데힐이 올 것이다. 그란데힐이라면 직속 친위대에 있는 추적자를 데리고 올 확률이 높을 테니까, 금새 잡을 수 있겠지.
나는 호텔 방안을 뒤져서 무기 대용으로 쓸만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급한 대로 옷걸이 하나와 우산을 들어서 주위를 경계했다.
그렇기를 한 시간.
“하.”
어디선가 김이 샌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윤채린이었다.
나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그래?”
“아니.”
윤채린은 나지막이 대꾸하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당황했다. 얘 지금 극독에 당한 거 아니었어? 다섯 줄기의 그림자가 가진 극독은 강하고 막대한 후유증을 유발한다.
그러나 윤채린의 몸을 살피다가 윤채린의 몸이 잘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미안, 사실 거짓말이었어.”
대체 왜? 뭐 때문에.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윤채린이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혹시 건물에 있었던 일도?”
“어. 그, 미안하다.”
윤채린은 미안하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뻔뻔하게 말했다.
“근데 말이야, 내가 속여서 미안하기는 한데. 그래도 내가 너를 엄청나게 좋아하거든. 잊어보려고 해도 잘 잊히지 않더라.”
윤채린이 잠깐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는 너, 나 주라.”
나는 멍하니 윤채린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멍청하게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 켰다. 윤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래도.”
“그래도는 자시고! 닥치고 날 안으라고!”
윤채린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니, 그래도…….”
“후, 그래 지조 있는 남자라 이거지?”
윤채린이 손뼉을 짝하고 쳤다. 갑자기 저게 뭐 하는 짓이지. 라는 생각과 동시에 몸이 이상해졌다. 갑자기 확하고 후끈해졌다.
그리고 윤채린이 엄청, 엄청 이쁘게 보이기 시작했다.
“…….”
그런 나를 보자 윤채린이 얼굴을 붉히며 치마를 들쳤다.
“봐봐, 나 시우 너랑 단둘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젖었어.”
“…….”
“승하가, 너랑 연인인 건 알지만, 그래도, 하루만…하루면 되니까. 아니, 다 필요 없어.”
윤채린이 홍조가 가득한 얼굴로 사납게 웃었다.
조금 어색한 손길로 바지를 벗기고, 그 안에 있는 팬티까지 벗겼다. 나는 저항하려고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힘이 빠져서 저항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최면 어플. 설마 나한테 최면 어플을 쓴 거였어?
내가 경악하거나 말거나 윤채린은 내 자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시우의 자지, 여전히 크네.”
설마,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윤채린이 히죽, 하고 웃으며 내 자지를 손으로 훑었다.
나는 움찔거렸다. 손으로 한번 훑으며, 내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둘,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와이셔츠를 벗기고, 반팔을 벗긴 다음, 와이셔츠를 다시 입혔다. 단추는 풀지 않고, 그대로 열어둔 채.
“하아, 씨발. 존나 멋있어.”
윤채린이 혀로 한번 입술을 훑고는 나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었다.
“이다음은 알지, 이시우? 우리 섹스하는 거다.”
그리고 나를 침대에 던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