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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42화 (142/298)

〈 142화 〉 공략(4)

* * *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니까 윤채린이 나한테 고백을 한 건가.

대체 왜.

그 이전에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잠겼다.

입을 열려다가 다시 닫았다. 머리가 너무 복잡하니까 오히려 멍했다.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솟았다.

이기적이게도, 윤채린의 고백을 듣자마자,

천상의 마. 그것의 성능과 가면의 열려있는 가능성들이 떠올랐다.

천상의 마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수많은 특성들로 육체를 강화하며 그것을 조율하기 때문이다. 천상의 마라는 능력은 모든 것과 어울리지 않는다. 홀로 고고하게 있으면서, 다른 능력들을 짓밟거나 집어삼키는 종류의 것이다.

나는 속으로 숨을 삼켰다.

“싫냐?”

좋냐, 싫냐로 나누자면 당연히 좋다.

일단 윤채린은 이쁘다. 황금빛 머리카락에 붉은색의 눈동자. 몸매도 좋고, 성격도 시원시원하다. 다른 여자한테 한눈 파는 것만 아니면 어지간한 건 다 넘어가 준다. 거기다가 한 남자를 좋아하면 한 남자만 보는 일편단심이기까지 한다.

돈이 없지만, 돈이야 내가 해결해주면 충분한 문제다. 애초에 윤채린이 돈이 없어서 골골대는 이유는 천마의 유산 때문이다.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오히려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윤승하랑 사귀는 사이라고 알고 있지 않나?”

이번에는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경악하는 표정을 지으며 윤채린을 바라봤다. 아니, 솔직히 자매가 동생이랑 내가 먼저 사귀는데 언니라는 작자가 나한테 고백하는 건, 좀 많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 채린아.”

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빠르게 정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머리가 안 돌아간다. 머리가 붕 뜬 것처럼 아무런 생각이 안 나는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유아독존이 쿨타임이라는 것이 이렇게 한탄스러운 적은 없을 거다.

나는 속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목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은 다음 나는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주는 계속해서 훈련해서인지 정신적으로 피로했고, 좀 혼란스럽기도 했다.

사람은 일만 하면 어딘가 망가지게 되어있다.

가끔 이렇게 느긋하게 쉬어줘야 한다.

‘유아독존이 진짜 엄청난 거였네.’

정신력을 올려주는 게 환혹계열의 마법, 이능등에 강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끈기라던가 침착함 등의 추가적인 보정이 있었다.

그래서 훈련을 할 때도 아무리 육체가 힘들어도 완벽하게 자세를 따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좀 힘들었다. 여러 여자들이 유혹해도 버틸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자제가 거의 안 되고 있었고.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윤채린의 얼굴이 떠올랐다. 붉은색의 튤립을 건네주면서 나는 어떠냐.­라는 목소리도 환청처럼 들렸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거절했다.

친구로 지내자­라는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하게 들릴 수 있는지 알았기에 그 말을 필사적으로 삼켰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니,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았다.

좋은 향기가 코끝을 스치며 누군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야, 이시우!”

윤채린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당황한 척을 숨기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왜?”

“왜는 왜야. 오늘 오전 수업밖에 없으니까, 잠깐 어디 좀 가자.”

오전 수업밖에 없다고? 갑자기?

나는 의아해하며 핸드폰을 켜고 톡 내용을 확인해보니 진짜 오늘 수업이 취소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사건이 있었구나.

그냥 별거 아닌 사건이다. 주인공을 윤승하로 택했을 때, 윤승하가 선택한 부 활동에서 정령이 날뛰는 사고가 좀 크게 번지는 것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윤채린을 슬쩍 보았다.

어제 고백을 찼을 때,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졌는데, 오늘 다시 보니까 털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좀 더 강해졌는데. 나는 당황함을 애써 감추며 자판기에서 뽑은 캔 커피를 목에 흘려 넣고는 입을 열었다.

“어디 가게?”

“잠깐 내 부실 좀 가자.”

나는 의아해하며 윤채린을 따라갔다.

그런데 묘한 기시감이 있다.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닌 듯한 기시감. 예를 들자면 여자애들이 나에게 최면을 걸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에이, 설마.’

윤채린이 그럴 리는 없다. 윤채린을 플레이한 경험은 몇 번밖에 없지만, 그란데힐과 이어지지 않는 루트에서 남주들과 이어지려고 하면 바로 닥돌하고 자살해서 다시 리셋했지만, 윤채린이 어떤 성격인지는 알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좀 미안하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로서는 남자를 공략한다는 행위 자체가 끔찍했었는데.

거기다가 남자들 반응도 웃겼다. 차갑게 대하거나 저리 꺼져! 라는 선택지를 골랐는데 대부분이 나에게 이런 행동을 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다. 라면서 스스로 호감도가 높아졌다.

어느새 나는 윤채린의 부실 앞으로 왔다. 윤채린이 문을 탁­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문을 닫고 침대 위에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야, 내가 어제 진짜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

“……어.”

윤채린의 감정이 더 진해졌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느껴졌다. 억울함, 굴욕감, 미약한 슬픔도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핑크빛의 감정이 있었다.

‘?¿”

내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윤채린은 입을 열었다.

“그, 뭐냐. 어제 좀 급발진해서, 미안했다. 내가 너무 성급했어. 그, 어느 순간부터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져서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탄했다.

아마도 천의 가면으로 인한 부작용 탓이 클 거다. 그래도 자매랑 사귀고 있는 애인을 노릴 정도로 부작용이 심할 거라 생각하지는 못했는데.

최대한 빨리 이 부작용을 억제할 아티펙트를 구해야 할 것 같다. 아티펙트 목록이 머릿속을 스쳤다. 지금 당장 구할 수 있는 것은 감자튀김 여신의 힘으로 급하게 억제하는 정도일 것 같은데.

“라고 할 줄 알았냐.”

윤채린이 어딘가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

“내가 이대로 포기할 것 같아? 나, 윤채린 한번 정한 남자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 그게 옳고 그런지는 전부 상관없어. 한번 내려놓은 자존심, 두 번 못 버릴까?”

윤채린이 핸드폰을 들며 거의 선언하듯이 말했다.

나는 윤채린을 멈추려다가 멈췄다. 윤채린의 핸드폰 화면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진짜 최면어플. 나는 경악하는 표정을 지으며 윤채린을 바라보았다.

***

경악하는 표정을 짓는 이시우가 손을 올리려다가 멈추었다. 천마의 영혼으로 강화된 최면의 효과였다. 윤채린은 이제 와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이시우를 강제로 침대로 넘어트리고 싶지만, 윤채린은 참았다.

그것보다는 질문을 해야 했다.

머릿속에 몇 가지 질문이 있었다. 그러나 그중 절반을 윤채린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왜냐하면 이시우의 검은색의 왕관이 이시우의 생명력을 태우며 이시우를 지키려 들것이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질문은 몇 개 없어.’

무슨 조건에서 발동하는지 모른다. 몇 번 우회해서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검은색의 왕관이 단호하게 발동하려는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최면도 제대로 걸기가 힘들었다. 마찬가지로 너무 강한 제약은 저 왕관이 막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약탈하는 거다, 제자야라고 말하는 스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밤을 새워가면서, 자신의 사부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에게 온갖 비법을 배웠다. 남자를 자빠트리는 방법이라거나, 방중술이라거나, 남자의 마음을 훔치는 법 등등.

윤채린은 이시우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이시우는 최면 어플이라는 단어를 기억에서 지웁니다.”

초점 없는 눈동자를 한 이시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윤채린은 환호했다. 다행히 처음 단추는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윤채린과 있었던 기억을 지웁니다. 이시우는 윤채린에게 ‘호의’를 가지고 스스로 따라왔고, 그 과정에서 최면을 걸기까지의 기억이 없어집니다.”

이시우가 윤채린의 명령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거까지는 성공했다.

“그다음, 이시우는 윤승하에 대한 호감이 전부 부정적으로 바뀝니…아, 아냐! 이건 아니야.”

지이잉­

어김없이 검은색의 왕관이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자 윤채린은 명령을 취소했다. 처음에는 이시우의 목숨을 깎아 먹는 게 아닌가 했지만, 사부가 확신을 해주었다. 바로 취소하면 이시우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단 것을.

“이것도 안 되면, 윤승하 이 계집애는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 거야?”

윤채린은 턱을 손으로 쓸며 생각했다.

“이걸 그냥 확, 자빠트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그러고 싶지만, 조금 거부감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가정 상실을 만드는 건 조금 그렇지 않은가.

거기까지 떠올린 윤채린은 한가지 방안을 떠올렸다.

***

주위가 어두컴컴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뜨려다가 몸이 무언가에 묶여 있음을 확인했다.

"……."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구지. 누가 아카데미에 직접 침입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납치한 거지? 머리를 굴렸다. 아공간의 팔찌는 없다. 이건 조금 뼈가 아팠다. 강제로 뇌령을 깨워서 검의 형태를 만들어볼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하늘을 굽어보는 눈이 있다면 바로 전후 상황 파악이 가능했을 텐데.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방 안의 빛이 들어오더니 방안이 시야에 잡혔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밧줄에 묶인 윤채린이 보였다.

"채린아!"

나는 윤채린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평소와는 느낌이 달랐다. 윤채린을 보자마자 심장이 뛰었다. 어라, 얘가 이렇게 이뻤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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