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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41화 (141/298)

〈 141화 〉 공략(3)

* * *

나는 차분히 나태의 산양을 공략할 준비를 마쳤다.

물약은 재산을 어느 정도 처분하면서 만들었다.

‘내 1억…….’

전생에는 1억이라는 숫자를 통장에 볼 수 있을까 걱정했다면 이번 생에는 1억이라는 숫자가 한순간에 빠져나가는 슬픔을 느껴야 했다.

……아니, 슬픔이라는 표현도 정확하지는 않다. 아직은 현실감이 없어서 그렇다. 통장에는 이미 수십억 원의 돈이 찍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너무 한꺼번에 많은 돈을 벌어도 현실감이 없어서 그냥 통장에 차곡차곡 모아두는 나날.

나는 손목을 매만졌다. 슬슬 유아독존이 돌아와야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돌아오지 않았다.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내가 윤채린과의 싸움에서 그만큼 무리했다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유아독존이 심하게 과부하 되고 있다거나.

그러나 그럴 이유는 거의 없다.

이곳에 정신계 마인이 침입하고 있을 리는 없으니까.

더 간단하게 생각하자면, 윤채린이 나한테 최면어플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이유는 역시 없다.

윤채린은 천마라는 칭호를 나름대로 애정하고 있다. 유일하게 사부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그녀를 이끌어 주어 그녀의 의지를 잇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최면어플 같은 건 비겁하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멀리할 것이다. 당당하게 고백하면 고백했지.

하지만 괜히 의심이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저번 주 금요일을 기점으로 약 일주일간의 쿨타임을 가졌을 텐데, 현재 유아독존은 언제 다시 재생될지 예감을 할 수 없었다.

‘빨리 수련관에 가야 하는데.’

수련관에서 「하늘을 굽어보는 눈」과 「불가해한 감각」을 익혀야 했다.

한 번 출입하면 다시는 출입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진 데다가 한 수련관을 클리어하면 바로 다음 수련관을 클리어 해야 하는 구조를 가진 탓이다.

나의 경우에는 급할 때는 뇌혼을 써서 빠르게 속도를 늘려, 유아독존을 쓰면 바로 다음 수련관을 클리어 할 수 있기에 유아독존은 필수였다.

‘급할 건 없어, 아직은.’

눈을 감으며 진정시켰다.

아직 급할 것은 없다. 진짜로 급할 때는 다음 달이다.

임무 주간에 일본에 가서 나태의 산양을 공략해야 한다. 준비단계에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한꺼번에 벼락처럼 몰아쳐서 끝낸다. 그 과정에서 윤승하와 윤채린을 파워 업 시키는 것이 첫 과제.

물론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윤승하와 윤채린의 파워업을 중단시키고 나태의 산양을 죽인다.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며 눈을 떴다. 여기저기 잘 정리된 수련장이 눈에 비쳤다.

‘이제 뇌령이 셋.’

그러나 덩치가 커지는 만큼, 뇌신을 만드는 작업이 점점 더뎌지고 있다. 나는 근처에 비치된 수건으로 머리를 닦았다.

삐비빅.

핸드폰이 울렸다. 곧 수업 시간이라는 알림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마법을 사용했다. 염동력과 물 생성 마법을 결합한 청결 마법으로 몸을 씻고, 셔츠와 넥타이를 매고, 그 위에 하얀색의 외투를 걸쳤다.

‘하, 학교에 가기 싫다.’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가서 교실로 향했다. 교실은 이미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중간고사 이론 시험 발표일이었지.

여기저기서 눈을 꼭 감고 기도하듯이 있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한숨을 쉬는 학생도 있고, 망했다…라고 중얼거리며 하늘을 보는 학생도 있었다.

이외로 재밌는 것은 임나연이 나름 자신감 넘치는 상태였다. 임나연은 내가 특별히 과외를 해서 가르쳐 줬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표정 좋아 보이네. 시험 잘 봤어?”

“어, 엄청 잘 봤어.”

임나연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절반 이상 맞췄어!”

“…….”

뭐, 자기가 행복하면 된 거겠지.

드르륵.

올백 머리가 인상적인 교수가 조교들을 데리고 앞문으로 입장했다.

“이번 중간고사는 많이 어려웠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로서도 꽤 어렵게 낸 문제가 있었거든.”

교수가 입을 열 자 학생들이 맞장구쳤다. 너무 어려웠다 등의 말이었다. 교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교수들이 채점을 하며 의논한 결과, 다음 기말고사 때는 더 어렵게 내기로 결정했다. 이시우 학생이 너무 잘 풀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벌렸다.

이걸 내 탓으로 돌린다고?

“그러고 보니 이시우 학생 이번에 푼 문제는 굉장히 인상이 깊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머리 하나로는 세계에서 최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아, 혹시 시험지 풀이를 좀 풀어줄 수 있겠나? 이 문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서 말이지. 어째서 이 문제에서 이 식을 쓴 거지? 스칼라의 마나 방정식을 이용해서 푸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저, 교수님, 오늘 수업을…….”

“지금 그게 중요한가?”

아웅다웅하는 교수와 조교수를 본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론 시험 난도가 더 올라간다는 말에 여기저기서 나를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

윤채린은 이시우를 노려보았다.

이시우 때문에 이론 시험의 난도가 올라갔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아니, 아주 조금 있기는 한데. 그 감정은 아주 미약했다.

그것보다는 기분이 이상했다. 질투라는 감정도 있었지만, 내가 어장 속 물고기가 된 기분도 있었다.

“시우야~.”

이시우의 옆에 임나연이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은은한 하늘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언제부터지. 중간고사 전부터 검은색 머리의 하늘색 머리카락이 슬금슬금 물들더니 이제는 조금 어두운 하늘색이 되었다.

그 옆에 은근슬쩍 이지아도 다가왔다. 이지아가 더럽게 큰 가슴을 강조하며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윤채린도 가슴에 꽤 자신은 있었지만, 이지아는 넘사벽이었다. 저 정도면 몇 컵일까. E는 확실하게 넘을 것 같은데.

‘당연하기는 한대.’

뭐, 당연하기는 했다.

이시우 정도의 남자는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좋은 여자는 넘쳐나지만, 남자는 거의 없었다. 거기까지 성격까지 완벽하다면, 당연하게도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문제는 한두 명이 아니라는 거다.

임나연과 이지아와 대화하고 밥을 먹으러 가는 길. 이시우의 옆에는 윤승하가 남자인 척을 하며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앞에는 은수아와 김하린이 은근슬쩍 끼였다.

‘도대체……몇 명이지.’

일단 학교 내에만 여섯 명이다. 학교 밖으로 나가면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거지.

웃긴 점은 저래 놓고도 사귀는 사람이 몇 없다는 것이다.

‘이 새끼, 설마 어장관리를 하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지만, 윤채린은 고개를 저었다. 여자애들 사이에서 이시우의 이야깃거리는 항상 화젯거리다. 만약 이시우가 누군가와 사귀었다면 모를 리가 없을 거다. 이미 여자애들 사이에서 소문이 쫙 깔렸겠지.

그리고 수련장에서 죽치고 사는 이시우가 누군가와 사귈 낌새도 보이지 않고.

하지만.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윤채린은 조용히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

“야.”

윤채린이 불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생크림 케이크 하나를 포크로 떠서 입에 넣었다.

냠.

맛있네.

포크로 생크림 케이크 조각을 잘라서 먹으니 윤채린이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왜.”

“맛있게 먹네. 그렇게 맛있냐.”

윤채린이 불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카페에서 커피를 시켰는데 나 혼자만 디저트가 나왔기 때문이다. 서비스라고 하는데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전생에는 이런 건 친구나 받아봤었는데.

“맛있지. 원래 공짜라면 양잿물도 들이킨다잖아. 양잿물도 아닌 케이크인데 맛있게 먹어야지.”

내 말에 윤채린이 불만족스럽다는 눈빛이 더 강해졌다.

나는 잠깐 윤채린이 저러는 이유에 대해서 떠올려 보았다.

내가 아무리 말려도, 고가의 선물을 사서 나한테 선물해 주는 거로 돈을 탕진하는 게 윤승하라면, 윤채린은 천마와 관련된 유물에 대해 정보를 모으느라 돈을 탕진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케이크 하나를 사 먹지 못할 정도로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닐 거다.

설마 얘가 나를 좋아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야.”

윤채린이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왜.”

“우리가 막 썸 같은 건 타지 않았지만, 우리 나름 괜찮지 않냐.”

“?”

"요즘 애들은 얼굴만 보고 마음은 차차 알아간다더라. 우리도 그런 관계 나쁘지 않냐? 물론, 난 한번 잡으면 놓칠 생각은 없지만."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나는 당황해하며 입을 벌렸다. 그러니까, 이거 고백하는 건가?

"야, 아무래도 내가 널 좋아하는 것 같다."

윤채린이 품속에서 꽃 한 송이를 꺼냈다.

포장지로 잘 감싸여진 붉은빛을 띠는 튤립 한 송이가 책상 위에 올라왔다.

윤채린이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답지 않게 볼에 붉은 홍조가 떠 있었고, 눈에는 물기가 살짝 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눈은 또렷하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는 나 어떠냐."

그리고는 조용히 폭탄을 투하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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