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 휴식(6)
* * *
“야.”
“응?”
“좀만 있다 가라. 혹시 모르니까.”
윤채린은 그렇게 말하며 이시우를 붙잡았다. 이시우가 자신한테 다가왔다.
그것을 보고는 윤채린은 최면 어플을 가동하였다. 옆에서 이시우가 화면을 보며 구경하고 있었다. 뒤에서 턱으로 자기 어깨에 기댄 채 말이다.
‘새끼.’
윤채린은 문득 생각했다.
얘가 이렇게 가깝게 다니던 애가 있었나. 머릿속에는 없었다. 다른 여자애들이 은근슬쩍 팔짱을 껴서 가슴을 강조한다던가 했지만, 이시우가 이렇게 달라붙는 적은 거의 없었다.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얘가 나를 여자로 안보나? 그냥 친구로 보는 건가. 여자와 남자 사이에는 친구가 없다지만, 이시우의 주변은 여자가 잔뜩 있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여자들 사이의 거리감을 못 잡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동생 생각도 들었다.
윤승하도 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하지만 먼저 이어진 사람이 승자가 아닐까?’
윤채린은 이런 거리감이 나쁘지 않았다. 화면을 눌러서 최면 어플을 켰다.
붉은색의 글자로, 주의! 라는 문자가 나왔다. 최면 어플을 키고 영혼을 대가로 상대를 갖는다는 문구가 나왔다. 꽤 로맨틱한 말이었다.
내 영혼을 바쳐 상대를 쟁취한다. 윤채린의 마음에 쏙 드는 문구였다.
[상대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면어플~]
윤채린은 최면 어플 실행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머릿속에 계약의 조건들이 나왔다. 영혼을 바쳐서, 상대를 조종하는 힘을 가진다. 영혼을 주는 것은 간단했다. 자신이 동의하고 영혼을 바치는 것이었다. 다른 이의 혼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거 악용하면, 아주 위험한 물건이겠는데.
몇 개의 계약을 읽고 윤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처음으로 제물을 바칠 놈은 정해져 있다. 혼자 온갖 무게를 잡으며 꼰대질하면서 자기가 남자와 함께 있다면 발작하고, 폭주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영혼.
윤채린은 그것을 제물로 바쳤다.
끄아아아악!
비명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그리고 윤채린은 천상의 마를 관조했다. 그러자 잿빛의 세계에서 똥폼을 잡던 녀석, 진천이 사라짐을 확인했다.
이거 진짜군.
등이 굽은 꼽추가 입을 열었다.
꽤 재밌어. 혼을 제물로 아주 작은 대가를 주는 물건이야. 이거 잘만 만지면 계약의 갑을 관계도 바꿀 수 있겠는데?
흥미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진천, 그놈이 가졌던 상태창? 그걸 구현할 수도 있겠는데.
시스템에 간섭하는 힘 말인가?
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고마운 짓을 해줬군. 마왕의 권능 일부를 떼어낸 느낌인데…….
망령들이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윤채린은 그것들을 무시하고,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이시우가 궁금한 표정을 보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어때, 효능 있어?”
이시우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윤채린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폭주에 일조해서 기억에 혼선 등을 가져오는 망령들이 조용해지기 시작했으니까.
“시끄럽던 놈들이 다 조용해졌어.”
“그래, 잘됐네.”
자기 일처럼 이시우가 환하게 웃었다.
순순히 웃는 모습이 뭔가 마음에 안 들었다. 마치 친구가 잘되어서 웃는 것 같아서.
친구라.
“야.”
윤채린은 이시우를 불렀다. 이시우가 왜, 하고 답하지는 않았다. 핸드폰의 화면이 이시우를 붙잡았다.
이시우의 눈이 흐리멍덩해졌다.
마치 실제로 최면에 걸린 모양처럼 눈의 초점이 사라지고 움직임이 멈췄다.
“…….”
윤채린은 순간 후회했다.
충동적으로, 너무 충동적으로 최면을 걸었다.
‘그냥 마음만 확인하면 될까?’
하지만 이시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든가 하면 굉장히 괴로울 것 같았다. 하지만 친한 거로 따지자면 학교에서 나도 만만치 않게 친한 것 같은데.
그래, 윤채린. 사랑은 쟁취하는 거다.
윤채린은 눈을 감고 이시우에게 최면을 걸었다.
“이시우 따라와.”
이시우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는 부끄러우니까, 일단 교실로 이동하고.
***
윤채린은 장학생들만 적용받는 자신의 부실로 이시우를 끌어들였다.
윤채린의 취향대로 개조한 핑크빛의 방. 그곳에서 윤채린은 안절부절 해하며 이시우를 바라봤다.
매번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잘생겼다.
조각 같은 얼굴에 조각 같은 몸. 그리고 사람을 홀릴 것 같은 별 하나 없는 밤하늘 같은 눈동자.
윤채린은 이시우를 바라보다가 툭 던지듯 말했다.
“너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 있냐?”
떨리는 목소리로, 윤채린은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이시우가 고개를 느릿하게 흔들었다.
이시우의 입장에서는 노예랑 엄마, 숨은 애인, 딸 등이 있지만, 겉으로는 사귀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윤채린이 환하게 웃었다.
이건 다행이었다.
“흠흠, 그럼 지금 좋아하는 사람은 있고?”
이시우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채린은 멈칫했다. 하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청춘의 남녀가 학교라는 공간에 있는데. 하물며 대부분이 선남선녀다.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더 이상하지.
그래도, 그래도 윤채린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키가 크기는 하지만, 이시우랑 비교하면 작은 편이지만 비율이 좋고 나올 데는 나와 있고, 들어갈 데는 들어가 있으니까. 다리도 희고 길쭉했다.
“그러면.”
한가지 이시우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너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강해진 거…….”
윤채린은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이시우의 반응이 이상했다.
지이잉.
군데군데 부서진 검은색의 왕관이 이시우의 머리 위에서 재조립되었다.
왕관이 이시우의 생명을 갉아먹으며, 재조립되고 있었다.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의 왕관을 보자 윤채린은 깨달았다. 이것은 이시우가 어떻게 해서든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비밀이란 것을.
그리고 저 왕관이 완성되는 순간 이시우는 최면이 풀린다는 것도.
“괘, 괜찮아! 마, 말하지 않아도 돼!”
그러자 거짓말처럼 왕관이 사라졌다.
그 후로 윤채린은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래봤자 왕관 때문에 알아낸 게 별로 없었다.
이시우의 동생, 이하나가 내년에 이 학교에 올지도 모른다는 정보 정도?
‘……어?’
윤채린은 불만족스럽게 이시우를 바라보다가 윤채린은 이시우의 바지 앞부분이 부풀어 오른 것을 깨달았다.
꿀꺽.
윤채린은 침을 삼켰다.
‘아직 이런 건 좀 이른데.‘
물론 싫은 것은 아니다.
윤채린도 한창 혈기가 왕성한 나이니까. 집안이 유교 출신이라 윤채린은 부모님 몰래 야동을 보면서 성 지식을 익혔다. 다만 천상의 마가 폭주하고 영혼들이 지랄해서 그렇지, 지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건 좀 데이트도 하고, 노을을 배경으로 키스도 한번 해주고, 관람차나 놀이공원에 가서 데이트 찐하게 한 다음 분위기가 좀 무르익었을 때, 둘이 호텔 같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은은한 촛불을 배경으로 불을 끄고 한 침대 위에서 서로 사랑한다고 속삭이면서 하고 싶었다.
‘애는 몇 명이 좋지?’
여건이 되면 10명 정도 낳고 싶다.
집은 마당이 딸린 3층 정도 높이의 주택이 좋겠다. 분수 같은 거 하나 만들고, 정원도 하나 만들고 싶다. 아이를 낳을 때마다 나무 한 그루씩 심을 거니까 공간도 좀 남겨두고. 그리고 거기에서 결혼식을 여는 거다. 그러려면 돈도 많이 벌어야 하는데.
원래 이런 건 남자가 한다고 하지만, 윤채린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꽤 생각이 열려있다.
돈이야 내가 많이 벌면 그만이지.
윤채린은 자신이 있었다. 대한민국 삼대 길드에서 자신을 구애하고 중국이 눈치를 보며 협회가 전전긍긍하는 자신이지 않은가? 돈쯤이야 금방금방 벌 수 있다.
그리고…….
노후 대책과 아이들의 미래까지 상상하던 윤채린이 고개를 붕붕 저었다.
이시우의 바지 앞섬을 보며 윤채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 보니 남자들은 오랫동안 발기하면 아프다고 들었는데….’
야동과 야한 소설로 다져진 잘못된 성 지식을 가진 그녀는 남자의 발기가 지속되면 괴롭다는 지식을 가진 윤채린은 이시우를 세워둔 채 쭈그려 앉았다.
잠깐, 아주 잠깐만 보는 거다. 남자는 오랫동안 발기하면 아프다고 했으니까, 나는 치료의 목적으로 이시우를 만지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희롱이었다.
하, 하지만 오랫동안 발기하면 아프니까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
윤채린은 눈을 감고 바지 지퍼를 내렸다.
툭.
“어?”
순간 반응하지 못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기도 했고, 너무 당황스러워서.
윤채린은 육체를 다루는 무공 사용자만, 천마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육체였다. 그렇기에 근육질의 몸보다는 여리여리한 체형이었다. 근육과 뼈를 극한으로 단련하면서 압축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파, 팔뚝만 해?’
이건 흡사 흉기가 아닌가?
당황하면서 자신의 볼을 친 이시우의 물건을 바라보았다.
저게…저게, 고작 바지로 숨길 수 있는 물건인가?
그것보다 냄새가 좀 이상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황홀하다고 해야 하나. 맡기만 해도 뭔가 기분이 붕 뜨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윤채린은 멍하니 이시우의 물건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야한 기분이 들었다. 숨이 가빠졌다.
가랑이 쪽이 간지러웠다.
윤채린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이시우의 물건을 입에 물었다.
`미안, 승하야.`
아무래도 이시우의 처음은 자신이 받아 갈지도 모르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