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휴식(5)
* * *
천상의 마.
그것의 기원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선지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신화의 시대.
신들이 존재하며, 온갖 마물들이 날뛰던 시대였다고 한다. 그 시대에서 선지자는 태어났다. 타고난 신인이자, 천재였던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마물들에 대항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무공의 시초였다.
선지자는 인간을 마물로부터 구해주고, 보금자리를 주었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마을. 100명 남짓한 인원에서 시작되었다.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고, 100명 남짓한 마을은 어느새 1,000여 명이 넘는 곳이 되었다.
선지자는 그곳에서 지도자가 되어 무공을 가르치고, 마물들에 대항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고작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들로부터 겨우겨우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시대에서 인간들을 규합하고 그들에게 대항하자, 그들도 규합하여 인간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선지자의 생명은 끝나가고 있었다. 천에 도달하는 인구를 구하기 위해서 무리하고 있던 탓이었다.
인류의 목숨은 다시 풍전등화가 되었다.
그것이 천마의 탄생을 알리는 방아쇠였다.
막다른 골목 끝에 도달한 선지자의 제자가 선지자를 배신하여 그의 혼과 육체를 제물로, 선지자의 제자는 인공적인 마왕이 되었다.
마왕.
그 시대에서 가장 강했던 마왕을 모방하여, 마법과 술법으로 인신 공양을 통하였다. 선지자의 혼과 육체로 선지자의 제자는 강제적으로 인공의 마왕을 만들었다.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선지자의 제자는 마왕에 적합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을 구원하게 위한 고귀한 의지도 있었다.
그는 마왕이 되자마자 첫 번째로 한 일은 그릇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주 큰 그릇이었다.
초대 천마는 그릇을 만드는 재능과 마왕에 너무나도 적합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자신의 힘은 선지자보다 미약하다. 그러니 먼 훗날, 모든 마왕의 힘을 모아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태어난 그릇이었다.
백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릇을 만들고, 천마는 인간들을 위해서 칼을 들었다.
천 마리의 마수를 죽였다. 마수의 편을 든 인간이라고 부르기 힘든 놈들을 죽였다. 그리고 인간들을 구원해 하나의 마을을 만들었다. 하나의 도시를 만들었다.
하나의 나라를 만들기 직전, 천마는 자기 죽음을 예감했다.
아무리 막대한 힘을 가졌다고 한들, 초대 천마의 육체는 인간의 것이었다. 다음 후계자를 위해서 새로운 몸을 만들었다. 더욱 단단한 육체를. 더욱 강인한 육체를. 그리고 인신 공양을 통해 다음 마왕을 만들었다.
그러나 선지자의 육체와 혼으로 만들어진 천마는 자신의 혼과 육을 바쳐도 자기 제자를 천마로 만들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인신 공양을 하였다.
십만의 인간을 살리기 위하여 오만의 인류를 제물로 바쳤다.
천마라는 존재가 버팀에 따라 인류는 마물에게 대항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천마는 원활한 제물의 공급을 위하여 천마라는 존재를 신으로 만들었다. 인류를 구원하는 수호신.
명교의 탄생이었다.
명교는 오랫동안 천마의 비호를 받았다. 천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마물로부터 인류를 지켰다. 그리고 그만큼의 세월 동안 수백만의 인류를 제물로 바쳤다.
생명에 위협을 덜 받게 되자 사람들은 하나씩 의문을 내었다.
우리는 이렇게 안전한데 우리는 희생해야 되는가.
소수의 인원이 의견을 제시하고 그 의견은 점점 더 커졌다.
구원받는 사람이 늘수록, 구원하는 인간보다 마왕이 되게 위한 제물이 늘 즈음. 반란이 시작되었다.
하나로 규합해서 겨우겨우 마수들을 물리치고 평화를 찾은 명교는 그렇게 몰락했다.
윤채린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와서는 그냥 대부분이 망령인 놈들이야. 그저 자신들의 기원을 잊고 싶지 않아서, 마왕을 타도하겠다는 변질한 목표를 가진 놈들이지. 그것조차도 일부고. 어떤 놈들은 그냥 자기가 뭐였는지도 잊고 태평하게 늘어진 놈이나, 그냥 강한 놈과 싸우고 싶어서 나를 도와주는 놈도 있고.”
윤채린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천상의 마는 결국 그거야. 천마라는 인공 마왕들을 모두 담는 아주 커다란 그릇. 온갖 마왕들을 담아서 여러 가지 기능들이 있지만, 그 근본은 결국 마왕이라는 놈들의 영혼을 담은 아주 큰 그릇일 뿐이지. 그 그릇으로 마왕을 넘어 마신??이라는 존재에게 닿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지.”
마왕을 넘어 마신에게 다가가는 것.
그렇기에 천상?上.
하늘 위에 서는 마를 목표로 하기에 천상의 마.
“그럼 넌 마왕을 쓰러트릴 거야?”
“응. 마왕도 일곱 놈이 있으니까.”
일곱 놈이라.
거악이라 불리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세간에서는 거악을 마왕이라고 부르니까. 그리고 그 일곱을 죽이거나 시간이 흐르면 진짜 ‘마왕’이 깨어난다. 윤승하와 윤채린이 성장 루트를 어느 정도만 타더라도 손쉽게 잡을 수 있다.
그 이유는 마왕이 이 세계에서 부활하면서 온갖 제약을 갖고서 부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 엔딩에서는 마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나타난다.
그렇기에 의문이었다.
천상의 마가 완벽히 개화한 상태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세계에서 오로지 둘뿐인 등급인 Ex 등급의 능력.
‘설마…….’
이시우는 생각을 멈추었다.
아직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윤채린에게 집중하는 것이 옳다.
“그래? 복수 같은 건 하고 싶지 않고? 너 가끔 그놈들 때문에 폭주한다며.”
“뭐, 어쩔 수 없잖아. 놈들에게 복수할 방법은 별로 없고. 내가 자살하면 되겠지만, 또 그건 싫으니까. 사부의 바람도 들어주고 싶고. 아, 사부는 다른 연놈들이랑 달라. 진짜 사부라고 부르고 존경할 수 있는 천마지. 암, 그렇고말고.”
“그럼, 말을 바꿔볼까. 너는 그놈들에게 가장 큰 복수가 뭐라고 생각해?”
“복수? 그건…….”
윤채린이 잠시 고민하는듯했다.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해. 그냥 별거 아니란걸 가르쳐주는 거지.”
“……별거 아니라고? 마왕을 넘어서…….”
윤채린의 말을 잘랐다.
“다른 목표를 만들면 되지. 그리고 그놈들이 바라는걸 이뤄주면 돼.”
“……무슨 소리야.”
“간단한 거야. 너희들이 천년을 넘게, 수많은 희생을 일으키며 만든 목표는 내가 다른 목표를 이루면서 도달할 수 있는 간단한 거라고.”
“…….”
윤채린이 조용해졌다.
“그딴 것들에 휘둘리지 마. 놈들은 과거의 망령들이다. 너와는 다르게 모조리 실패한 실패자들의 넋두리일 뿐이야.”
이시우가 잠시 한숨을 돌리고는 말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너는 그놈들보다도 훨씬 더 대단한 애야. 게네들은 이미 실패한 실패자지만, 나는 네가 뭔가에 실패하는 것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아.”
“너는 그놈들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잖아.”
“……뭐, 그렇지.”
이시우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거짓이다. 초감각이 말했다. 이시우는 그것들을 알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윤채린은 혼란스러웠다.
“아무튼 그런 거야. 놈들에게 하는 최고의 복수는. 그놈들이 천년의 세월을, 가족을 바쳐가며 이뤘던 비원은, 그냥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란 걸 가르쳐 주는거라고.”
이시우는 잠시 숨을 들이 내쉬었다.
“내가 진정한 천마다. 천년의 비원을 목표로 인공적으로 마왕을 만들고, 가족을, 자신의 수하를, 자신을 따르던 이를 바쳐간 너희와는 다르게 나는 내 갈 길을 걸으며, 다른 것을 목표로 하고, 그것을 거치는 와중에 놈들이 바란 천년의 비원은 그냥 ‘덤’과 같이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이다. 라고 하는 거지.”
“…….”
“이런 것도 꽤 괜찮지 않냐.”
“그러네. 킥.”
윤채린이 웃었다.
킥킥거리며 웃다가 갑자기 이시우를 바라봤다.
“그럼 이제 줘.”
“…….”
이시우는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윤채린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뭐, 이 시점에서 윤채린에게 주는게 가장 맞는 방법이다. 그녀가 천상의 마를 스스로 통제하기 시작하게 되면, 가장 든든한 아군이 되어줄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저 윤채린이 최면 어플을 이상한데다가 쓸리가 없다.
“와, 이거 내 핸드폰이랑 완전 똑같네. 최면 앱이 이건가?”
“그럼 난 간다.”
“어. 야 잠깐만!”
***
눈을 뜨자마자 한 생각이 들었다.
왜 이리 피곤하지.
초인의 몸을 갖게 된 뒤로 이렇게 피곤한 적은 없었는데. 이상하리만치 피곤했다.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완전히 무기력한 느낌이었다.
아랫도리가 뻐근했다.
나는 일어나려다가 휘청거렸다.
‘……뭐지.’
나는 눈을 부릅뜨며 핸드폰을 찾았다.
거악이라 불리는 이들 중, 나태의 산양이 발동하는 힘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상대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힘. 그리고 무기력해지게 만든 만큼 상대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치환하는 말도 안 되는 능력.
그러나 핸드폰은 조용했다.
언제나처럼 남다윤이 언제 한번 만나자고 톡이랑 이지아가 맛집 탐방하자고 하는 톡, 임나연이 공부하기 싫다고 하는 톡과 윤승하가 데이트하자는 톡, 은수아가 같이 수족관에 가자는 대화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무시하고 강한자의 수련교실이라 적힌 반 톡방도 이상한 점이 없었다.
실시간에 올라오는 카톡도 별로 이상한 점이 없었다.
그란데힐 : 그러고 보니 저번에 드린 최면어플이 담긴 핸드폰 있잖습니까.
그란데힐 : 용왕님이 생각보다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다시 주실 수 있을까요?
마침 그란데힐한테 문자가 왔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최면 어플?
???
최면어플? 무슨 소리야.
그란데힐 : ?
뭐지, 설마 최면 어플이라도 만드는 건가.
지끈.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가면창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회복이 우선이다. 나는 활력의 가면을 쓰려다가 가면창에 바뀐 한 가지를 바라보았다.
천상의 마를 모방한 가면.
뭐야.
이게 왜 나한테 있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