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휴식(4)
* * *
윤채린이 나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았다. 마치 수상한 것을 들고 있는 예비 범죄자를 보는 눈빛이었다. 왜 저래.
나는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왜 날 그런 눈으로 봐.”
“너 그 소문 못 들었냐? 네가 최면 앱을 가지고 있다는 이상한 소문.”
윤채린이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나는 당황해했지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표정을 바꾸는 것은 굉장히 쉬웠다. 정신력이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천의 가면의 효능으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무슨 소리야. 최면 앱은 1학기에 있었던 헛소문이잖아.”
“하지만 그때 최면 앱이 들어있던 핸드폰은 네가 회수했잖아.”
그건 그렇다.
하지만 나는 뻔뻔한 표정으로 윤채린을 바라보았다.
“그거야 교수님한테 다시 드리기 위해서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교수들도 위험했다.
교수들이 대부분 송라희나 강한자 같은 선 성향을 지닌 교수들이지만, 호기심이나 마법적으로 막혀있는 교수들이 혹여나 건드릴 수 있는 것이니까.
“흐음.”
내 변명에도 윤채린은 나를 수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나도 윤채린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내가 최면 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망령들 중 하나일 거다. 비록 육체를 잃었지만, 다들 한 계통에서 달인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실력자이기 때문일 거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꼽추새끼일게 분명한데.
나는 캔 커피 하나를 단번에 마셨다. 내용물을 다 털어내고 캔을 구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분리수거 통에 넣었다.
“야, 윤채린.”
“엉?”
“산책이나 하러 갈까?”
“산책? 갑자기? 하, 시우 너 설마 나 꼬시는 거야?”
윤채린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는 옷걸이에서 운동복 웃옷 하나를 걸쳤다.
“뭐, 천마인 이 몸이 넘어가 줄게.”
***
이하나는 꽃을 들고 불만족스럽게 복도를 돌아다녔다.
자기 오빠가 정령 군주인 윤승하 님의 쌍둥이, 윤채린이라 불리는 이와 대결했을 때를 떠올렸다. 보랏빛의 벼락과 검은색의 구체가 부딪치는 장면은 이미 튜브 인기 영상에 올라가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륜이 사방으로 깨지고 이시우를 공격했을 때는 걱정했었고, 보랏빛의 벼락으로 윤채린을 쓰러트렸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환호했다. 그러다가 이시우가 쓰러졌을 때,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병문안을 간 이시우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조금 안심하기는 했었다. 언제부터였지. 이번 연도부터 오빠 노릇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하루가 멀다 하고 원숭이, 고릴라 등등으로 부르던 사람이 용돈을 줬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이하나는 학생의 신분이건만 매달 50만 원 이상의 용돈이 들어오고 있다. 그중에서 90% 이상은 저금하고 아껴서 쓰고 있지만…….
‘그러고 보니 오빠 병문안 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대단했지.’
이하나는 병문안을 갔다가 꽤 놀랐다. 이시우의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굉장한 유명인들이라서.
정령군주라 불리는 윤승하 님은 물론이고 상아탑주가 될 거라 기대받는 은수아, 일본 유수의 가문인 명가의 딸 아야네에다가 한국 재계 1위 그룹의 외동딸인 임나연에 마도명가의 딸 이지아와 최근 스타그램 스타로 떠오르는 김하린도 있었다. 거기에 중국의 스타인 타오 리와 샤오메이 리까지. 하나같이 유명인사들이었다.
남다윤은 의외였다.
그런데 엄만 생각 보다 놀라지 않았다. 남다윤을 보고 나랑 10살 차이 안 나는 애가 며늘xx라고? 중얼거리며 충격은 좀 받은 것 같기는 했는데. 중간에 작게 말을 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거기다가 요정 여왕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나찰의 요정, 그란데힐까지.
그란데힐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부모님이 굉장히 놀란 것을 보면 대단한 인물일 거다. 아마 영웅들 사이에서 굉장히 유명한 인물일 것이다.
아무튼 이하나는 머리를 붕붕 흔들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이하나에 기억 속에도 있는 남자였다. 중간고사 실기에서 자기 오빠한테 지고 눈물을 흘렸던 남자였다. 좀 거칠어 보이는 맛이 있어서 자기 취향이었다.
‘물론 1픽은 윤승하 님이지만……!’
아무튼 이하나는 표정을 바꿨다.
불만족스러운 표정에서 도도한 표정으로. 이시우가 봤으면 꼴값을 떤다고 혐오스러운 표정을 보는 모습이었지만, 실제로 이하나는 꽤 인기가 많다. 주에 한두 번은 고백받으니까. 먹히는 표정이기도 했고.
“……너는.”
남자가 입을 달싹거렸다. 무리도 아니었다. 자신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남자들은 다 헤벌레하니까 말이다.
이하나는 자화자찬하다가 윤채린과 같이 나오는 이시우와 눈이 마주쳤다.
“…….”
이시우의 웃던 얼굴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혐오스러운 것을 보는듯한 표정의 이시우.
“오, 시우 동생!”
그에 반해 윤채린은 굉장히 반가운 표정으로 이하나에게 다가왔다.
“뭐, 동생……?”
한종우가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이야, 우리 시우 동생 겁나 귀엽다.”
윤채린이 히죽 하고 웃으며 팔뚝으로 이시우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이시우는 썩은 표정을 한 채 이하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웬일이냐.”
“하, 나처럼 이쁜 동생이 걱정해서 병문안 온 것도 뭐라 하는 거야?”
“윤승하 보러 온 게 아니라?”
“…….”
“윤승하가 내 친구인 거는 알지? 나랑 승하 겁나 친하다.”
“오라버니~~.”
“…….”
“씨발, 그 똥 씹은 표정 뭐냐.”
“용돈 압수.”
“오라버니~~.”
***
밤이 가라앉은 산책길.
나와 윤채린은 차분히 걷고 있었다.
“와, 네 동생 진짜 재밌다. 걔 이름이 뭐라고?”
“하나. 이하나”
“하나라고? 이름 좋네. 첫 번째 해서, 하나.”
윤채린이 점퍼에 주머니를 넣으며 킥킥 웃었다.
“우리 승하는 그런 귀여운 맛이 없는데, 부럽……푸핳하!”
윤채린이 말을 하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내 표정이 그리 이상했나.
“왜.”
“방금 겁나 웃겼어. 너도 그런 표정 할 수 있었구나.”
“……내가 뭐.”
“그냥……. 평소에는 겁나 시크한 척하고, 남자애들 뭉쳐서 바보 같은 짓 할 때 혼자 한심하게 바라보면서 고개 젓는 녀석?”
“나도 놀 땐 노는데.”
“근데 반 애들 너 어려워하는 거 알아? 정한서야 워낙 성격이 유들거려서 그렇지, 너 애들하고 거리 엄청 벌리잖아.”
그거야 당연했다.
나랑 애들의 정신연령 차이가 심했으니까. 그래도 나도 나름 잘 해줬는데.
밥도 사주고, 어느 정도 친해지면 시험 문제를 물어볼 때 지식열람을 통해서 시험 문제도 가리켜 줬다. 이거 시험에 나올 것 같다고 하면서 말이다.
“뭐라고 해야 하지. 우리 또래 애들이라기보다는 선배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그래?”
“너 학기 초반에도 그랬잖아. 이지아 막 도와주고, 임나연도 도와주고, 김하린도 도와줬잖아.”
그야, 게네는 당첨 복권이니까 그렇지.
“생각해보니 다 이쁜 여자들이네. 이 새끼, 이거…….”
“그러고 보니 우리 저번에도 이런 적 있었지?”
윤채린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다급하게 말을 끊었다. 윤채린이 내 말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러게.”
“그리고 나한테 꼴사납게 패배했고.”
“하, 이시우, 건방 떨지 마라. 나는 잠깐 너한테 승리를 양보한 것 뿐이야.”
나는 윤채린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지금 우리가 싸우는 동영상이 튜브에서 가장 화젯거리인 영상인데.”
“뭐?! 누구 허락 맡고 그걸 다 찍어! 다 내리라고 해!”
나는 윤채린에게 답해주는 대신 고개를 저었다.
이미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신고하기도 힘들다.
“뭐, 예상은 했잖아. 이 일을 하게 되면 미디어에 노출되는 거.”
중간고사는 그렇기에 일종의 연예인인 영웅이라는 직업에 익숙해지게 위한 사전단계이다. 진짜 영웅이라면 미디어에 온갖 기술이 노출되어도 패배하지 않아야 한다는 정신론에 기초한 것이 웃기지만.
‘윤채린도 아마 여력이 있을 거니 상관없나.’
윤채린이 겉보기에는 전력을 다했지만, 윤채린도 어느 정도 손을 가감했다. 대련이라는 점을 생각 해 서인 거일 거다.
나도 대련에서 칠색을 노출하지 않았으니까. 사실, 윤채린이 필살기를 꺼냈다면 나도 울며 겨자 먹기로 칠색을 꺼냈어야 했겠지만, 꺼내지는 않았으니까.
‘애초에 그건 상대를 반드시 죽여야 하는 기술이라서.’
꺼내고 싶어도 꺼낼 수 없을 거다.
“야.”
“응?”
“그래서 최면 앱 가지고 있냐.”
윤채린이 물었다.
나는 침묵했다.
“야, 그럼 이렇게 하자.”
“뭘.”
“내 능력 가르쳐 줄게. 그거 넘겨라.”
“……뭘 하려고. 그리고 네 능력 가르쳐 줘도 돼?”
“뭐, 넌 괜찮을 것 같아서. 솔직히 승하 비밀도 억지로 알려줬는데, 이 정도 쯤이야. 그리고 최면 어플은 내 능력을 설명하면 네가 줄 것 같기도 하고.”
뒷말은 예상이 갔다.
아마 거치적거리는 영혼 하나를 바쳐서 천상의 마에 잠든 망령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생각인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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