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휴식(2)*수정
* * *
어두컴컴했다.
윤채린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이시우가 시한부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검은색의 왕관.
그 왕관을 쓰자마자 이시우의 몸이 멀쩡하게 변한 것을 보고 깨달았다.
이 새끼……저거 하나 믿고, 그 무리를 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또 하나 깨달았다.
내가…이 내가, 또래한테 패배했다.
기절하기 직전의 광경이 떠올랐다. 자신이 소수마공반탄의 장을 쓰자마자 공격을 바꾼 이시우가 떠올랐다.
마치 자신이 마지막 한수로 그걸 쓸 줄 알았다는 웃음 짓는 모습이.
어떻게 알았지.
그건 윤채린이 숨겨둔 구명절초이자, 비장의 수였다.
그 비장의 수를 아는 존재는 어머니와 동생.
바로 생각나는 건 한 존재였다.
‘윤승하가 말했나.’
윤승하 밖에 없다.
윤승하가 이시우에게 헤으응하는건 이미 유명한 일이었다.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누가 공인지 수인지에 대한 격렬한 토론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윤승하의 진정한 정체를 아는 윤채린은 윤승하가 이시우에게 헬렐레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 나한테 지는 걸 원치 않아서 알려줬음이 분명했다!
윤채린은 팍! 하고 이불을 발로 찼다.
이건…이건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자신은 이시우가 뇌혼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초반부터 흑현신뢰까지 썼는데!
그래.
나는 진 게 아니다. 나는 윤승하가 이시우에게 정보를 넘겨줘서 정보의 부족으로 승리를 한 번, 정말…정말 어쩔 수 없이 ‘양보’한 것이다.
윤채린이 스스로 정신 승리를 하고 있을 때, 이시우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평소와는 다르게 흐리멍덩한 표정이었다. 그런데도 그림이었다.
눈부시게 하얀 피부에 졸린 듯한 눈동자이지만 어지간한 모델들보다 더 그림이 되었다. 새삼스레 생각했지만, 정말 잘 생겼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눈이 마주쳤다.
이시우의 눈빛이 또렷해졌다. 그리고 히죽 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야, 야!”
“왜?”
“방금 입꼬리 올린 거 뭐냐?”
“입꼬리를 올리다니. 난 가만히 있었는데.”
“내가 봤거든!”
“후, 채린아. 네가 나한테 져서 많이 힘든 건 알겠지만 피해망상은 곤란해.”
“아아아아아악!!!!!!!”
윤채린이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던졌다.
베개와 이불, 마지막으로 반으로 접힌 검은색의 스마트폰도.
이시우가 윤채린의 스마트폰을 붙잡고 한 번 더 비웃어주곤 밖으로 나섰다.
“야! 야! 내 폰은 주고 가야지!”
***
윤채린의 비명은 정말 듣기 좋았다.
그 비명을 생각하니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다.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군요.”
“응? 아, 그런 일이 있어. 킥킥.”
큰일 났다.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평소라면 바로 멈출 수 있었는데, 왕관이 깨진 반동으로 정신력이 깎긴 탓이다. 윤채린이 분해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생각보다 내가 걔한테 맺힌 게 많았었나.
그란데힐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 미안. 내가 너무 크게 웃었지?”
“아니요. 평소의 모습도 보기 좋지만, 이런 모습도 보기 좋습니다.”
그란데힐이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여기 부탁하신 물건입니다.”
그란데힐이 핸드폰을 하나 나에게 건넸다.
나는 핸드폰을 받았다.
이건 초반에 가짜 최면 어플을 유행시킨 진짜 최면 어플이 들어있는 핸드폰이다. 마인에게 뺏어서 지금까지 애물단지로 두고 있다가 얼마 전에 그란데힐에게 맡겼던 물건이다.
‘진짜 최면 어플은 진짜로 위험해서.’
거악의 일인 색욕을 관장하는 정숙의 처녀가 권능의 일부를 떼어내서 만든 것이다.
권능의 일부를 떼어낸 만큼 이 핸드폰을 부수면 그 권능이 다시 정숙의 처녀에게 돌아가는 게 문제라서 굳이 들고 있는 것이지만.
사실 이걸 제대로 쓸 수 있는 인물은 현재 아카데미에서 윤채린 뿐이다.
윤채린이 아니라면 영혼을 저당 잡히는거라 내가 보관하고 있는거고.
“그래서 성과는 있었어?”
“아니요. 에니스 님에게도 맡겨 보았지만, 에니스 님도 곤혹스러워했습니다. 아마 용왕님에게 맡겨봐야 될 것 같은데…….”
뭐, 어쩔 수 없다.
에니스에게 맡겨 보기는 했지만, 에니스는 마법에 특화되어 있어서 권능의 일부를 떼어낸 이 핸드폰에서 뭘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용왕에게 맡겨야 하는데 그렇게 하자니 시간이 부족하다.
기말고사가 시작하기 전에 일본으로 가서 나태의 산양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란데힐에게 받은 핸드폰을 오른쪽 주머니에 넣다가아공간 팔찌의 내구도가 닳아서 수리를 맡겼다. 문득, 그 핸드폰이 익숙하단 것을 깨달았다.
이 핸드폰 어디선가 많이 본 기종이었다.
검은색에 반으로 접히는 스마트폰.
……윤채린 것이었다.
조심해야겠네. 윤채린 스마트폰이랑 혼동될 수 있으니.
“그리고 이제 슬슬 폐막식이 시작하는데 구경하러 가시겠습니까?”
“폐막식? 아, 이제 시작할 때가 됐구나.”
중간고사에서 히어로 아카데미의 문을 개방하는 만큼 중간고사의 히어로 아카데미는 볼거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기서만 맛을 볼 수 있는 요정족의 먹거리들도 있어서 대기업의 임원들이나 회장들도 이따금 보일 정도다.
그리고 얼마 안되는 요정족들의 무기를 구경시켜주기도 하고, 팔아넘기기도 한다. 원래대로라면 마인들이 습격하지만, 요정여왕이 중간고사에서만큼은 히어로 아카데미의 역량을 집중하기에 이때는 낌새라도 보이는 순간 바로 요정여왕에게 표적이 된다.
폭력을 쓸 수 없기에 이따금 이 기간에 히어로 아카데미가 협정의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만큼 요정족의 영향력이 더 강해지기도 하고.’
서로 상생이라는 관계였다.
“폐막식에서 에니스 님하고 여왕님께서 선물을 하사 하실 겁니다. 혹시 원하시는 거라도 있습니까?”
“…….”
원하는 거라면 있다.
일전에 실피드의 증표와 함께 봐두었던, 샛별의 영광.
내게 부족한한방이 있기에 탐이 나는 무기였다.
“에니스 님께서도 따로 상을 주실 겁니다.”
“저번처럼 특성을 개화시켜주는 건 힘들겠지?”
“……예. 아직 시우 님의 그릇이 다 커지지 않아서.”
그란데힐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어차피 지금 에니스에게 받을 물건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태의 산양에게 비수를 꽂을 수 있는 물건. 그것을 받아야 하니까.
‘일본에 가면 봉관의 무녀와 만나려나.’
봉관의 무녀.
최초로 인간이 거악과 단신으로 부딪쳐서 거악을 봉인한 인간이다.라고 세간에 알려졌지만, 그 진실은 조금 다르다.
신혈을 이은 반인반신과 신의 힘을 이용해서 나태의 산양을 봉인한 것이니까.
우리 반에 있는 아야네와 꽤 연관이 깊은 가문이기도 하다.
‘어지간하면 봉관도 얻고 싶은데. 그러고 보니 아야네도 신혈을 이었으니, 개화시키면 꽤 강할테고.’
생각이 꼬리를 무니 여러 가지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혹시 누가 죽으면 어쩌지 같은 생각까지.
“괜찮으십니까?”
“……미안, 생각보다 후유증이 좀 심각하네.”
“가슴 만지시겠습니까?”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지만, 흐윽, 이미 만지고 있으시지 않습니까?”
그란데힐이 말했다.
나는 그란데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그란데힐의 신체 이곳저곳을 만지작거렸다. 이러고 있으니 조금 진정이 된 기분이다.
“괜찮으십니까?”
“응, 조금 괜찮아졌네.”
“힘드십니까?”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만 나는 참았다.
“괜찮아졌어. 빨리 갔다 와야지?”
“괜찮…네, 알겠습니다.”
그란데힐을 엉덩이를 툭, 치며 그란데힐을 돌려보냈다. 그란데힐이 나한테 이것저것 주는 편이지만, 그란데힐은 생각 이상으로 바쁘다.
능력은 막강하면서, 요정족의 삶의 터전을 제공하는 티타니아는 서류상의 능력이 전무해서 막말로 그란데힐이 일주일 휴가를 내면 업무가 정말 마비될지도 모른다.
그란데힐을 돌려보내니, 윤채린이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발을 쿵쾅쿵쾅 구르며 와서 눈치채고 싶지 않아도 시선이 절로 가게 했다.
혹시 봤나? 대화는 못 들었을 것 같은데.
그란데힐이 장막을 펼쳤지만, 상대가 윤채린이라서 혹시 몰랐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바라봐.”
“……아니, 그냥. 근데 여긴 웬일이야?”
“야! 이시우! 내 스마트 폰 내놔!”
“아, 맞다.”
나는 최면 어플이 들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반대쪽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윤채린에게 던져줬다.
윤채린이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몸은 좀 괜찮냐.”
“물론이지. 라고 하고 싶은데 아직 좀 저릿저릿하네.”
윤채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팔을 휙휙 휘두르며 이야기했다.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천마지체에 온갖 회복 수단이 있는 윤채린이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은 내 뇌광의 공격력이 후유증을 유발할 정도로 강하다는 증거였으니까.
“근데 너 어디 가냐?”
“이지아랑 김하린이랑 약속 있어서.”
“걔내 둘이랑?”
윤채린이 뭔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천의 가면으로 느껴지는 감정에서는 불신의 감정이 강했다. 하긴, 그 둘은 밖에서 묘하게 신경전을 많이 벌이고 있으니까.
“그럼 낼 보자.”
“엉.”
나는 몸을 돌리며 다시 병실로 가는 윤채린을 봤다.
'다행이네.'
다행히 나랑 그란데힐이 그렇고 그런 관계란 것을 들킨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몸을 돌렸다.
***
부실에 들어가기 전, 살짝 열린 문의 틈 사이로 안을 바라보았다.
이지아는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 차분하게 명상하고 있었고, 김하린은 머리 한쪽을 꼬면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냉랭한 공기가 사방에 풍기고 있었다.
‘생각보다 사이가 더 안 좋은 것 같은데.’
내 앞에서는 달랐다.
이지아랑 김하린이 나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둘의 감정의 골이 깊었다.
‘아니, 당연한가.’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저 둘은 나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서로 친해지기 힘들 것이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체력을 늘려서 여자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 다른 여자랑 연합시키려는 작전을 세웠었는데…….
‘오히려 내가 빨려 죽을뻔했지.’
어느 순간부터 여자가 우후죽순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슬아슬하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점점 늘어나더니, 감당이 힘들어지고 종일 정력제를 달고 살아도 부족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시우야!”
이지아가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양팔을 벌려 나를 껴안았다. 나는 이지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흥흥~ 우리 시우 마마 가슴이 그렇게 좋아?”
“네, 마마!”
“그래~?”
이지아가 나를 보며 색기 어린 눈웃음을 지었다.
“마마 보지에 바로 정액 주입 놀이 할까?”
“네!”
“아, 오늘은 우리 시우 전용 오나홀도 데려왔으니까, 마음대로 써도 돼. 예를 들어 오나홀에다가 싸는 정액이 아깝다거나 하면 마마 보지 안이나, 입에다 싸도 되니까.”
이지아 혀를 내밀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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