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 휴식
* * *
보랏빛의 빛으로 짜인 날개가 벼락의 추진력을 더했다.
주변의 빛을 흡수하며 크기를 불려가며 보랏빛의 날개가 활짝 펴지며 몸속의 번개를 순환시켰다. 뇌광이 극한으로 벼려졌다.
보라색의 벼락이 검은색의 구체를 향해 곧게 뻗었다.
“이시우!”
윤채린이 이름을 사납게 부르며 손을 뻗었다.
구체가 주변에 마나를 집어먹으며 커다랗게 변했다.
──────────!!!
묵색의 구체와 보랏빛의 벼락이 부딪쳤다. 그러나 그 속에서 소리는 나지 않는다. 묵색의 구체가 소리마저도 잡아먹으며 덩치를 불렸다.
벼려진 보랏빛의 벼락이 검은색의 구체를 꿰뚫기 시작했다.
이시우의 머리에 있는 검은색의 왕관이 웅웅거리며 호응했다. 보랏빛의 벼락이, 보라색의 뇌광이 짙어지고, 옅게 변했다.
윤채린은 보라색의 벼락을 바라보았다.
저 보랏빛의 담긴 힘이 범상치 않다. 음과 양의 마나. 그것이 반발하여 힘을 극대화한 마나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절반은 옅어지고, 짙어지는 마나에서 벼락이 담긴 힘이 극대화되고 있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멸망’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원인은 바로 저 왕관.
무엇인지 모르지만, 저것은 심상치가 않았다. 저 왕관을 쓴 뒤로 이시우의 공격의 ‘한계’가 풀렸다. 마치 이시우가 가지는 모든 위험성을 짊어진 것처럼.
윤채린은 입술을 비틀었다.
이시우의 전투는 극단적이다. 자기 육체의 크나큰 부하를 주고 상대의 살을 취한다. 구명절초의 수라면 윤채린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시우의 전투는 항상 그래왔다.
마치 자기 육체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아마도 이시우가 가진 능력 중 하나일 거다. 저 검은색의 왕관이 그의 망가진 전투법을 돕는데 크게 일조했을 거다.
쩌적!
묵색의 륜이 밀리기 시작했다. 보랏빛의 벼락이 균열을 내었다.
천마신결의 정수로 짜여진, 패도의 마기. 멸겁륜. 그것에 균열이 크게 일었다. 이시우는 벼락을 휘두르며 생각했다.
‘……곧 인가.’
윤채린은 모든 상황을 가정하여 전투한다.
1000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한 놀라운 재능을 가졌음에도 항상 자신보다 격상의 상대를 상대해왔기 때문이다.
인공마왕.
천마라 불리는 그것들과 심상 세계에서 수백 번씩 죽으면서 얻은 전투법.
천상의 마라는 희대의 사기 특성과 맞물려, 윤채린의 모든 공격은 항상 자신이 질 것을 대비한다.
쩌적!쩌적!
묵색의 륜에 균열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시우는 집중했다. 곧이다. 곧 그게 펼쳐진다.
“너, 좀 친다?”
“말했잖아. 해볼 만하다고.”
윤채린의 말에 씩, 하고 웃으면서 답하자, 윤채린이 입술을 비죽이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이시우는 고민했다. 한 발 후퇴할까, 아니면 뚫어버릴까.
문득 그 고민이 우스워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물러날 수는 없다.
이시우는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쩌저저적!
묵색의 륜이 사방으로 깨져나갔다. 그러나 이시우는 안다. 이것이 다른 공격의 전조임을.
그것들이 조각조각 사방으로 퍼졌다. 윤채린이 하얀 팔을 쭉 뻗었다. 천상의 마. 그것이 깨져나가는 멸겁륜의 마기들을 붙잡았다. 그리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깨진 조각 하나하나에 의지를 담았다. 수천 개로 깨져나간 묵색의 륜이 초승달과 같은 칼날의 형태로 변했다.
천마신결
멸겁륜응용기
흑천비난무????
회심의 필살기.
라고 생각하는 윤채린의 표정이 보였다. 이시우는 입술을 비죽이며 벼락을 휘둘렀다. 극한으로 벼려진 벼락이 검은 초승달들을 일자로 베어냈다.
서걱.
윤채린이 하얗게 물든 손을 내밀었다. 우웅주위의 온도가 낮아졌다. 소수마공. 하얀색의 아지랑이가 윤채린의 손을 휘감았다.
절반이 옅어지고, 절반은 진해진 보라색의 벼락을 향해 뻗었다.
빠직─!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시우의 머리 위에 있던 검은색의 왕관이 깨졌다. 동시에 하얀색의 아지랑이가 흑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이시우의 검이 달라졌다. 극한으로 벼려진 벼락이 힘을 줄이며 부드러움?이 담기기 시작했다.
윤채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소수마공을 응용하여 되받아치는 기술, 일명 천마카운터. 여기까지 와서 저것에 당해줄 생각은 없다.
이윽고 보랏빛의 벼락이.
윤채린에게 내리쳤다.
***
“당장 방어막 보강해!”
“아니, 이거 생도들 싸움 아니냐고!”
여기저기서 투덜거리며 방어막을 보강하는 요정족들이 보였다.
“당장 식목 요정족들 불러! 2명으로 부족할지도 모른다!”
“포션 가져와! 당장! 뭐? 뭘 가져오냐고? 그냥 집히는 데로 다 가져와!”
그에 비해 관중들은 침묵에 휩싸였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중격에 오른 일부는 마냥 감탄했고, 그보다 상위의 위계에 있는 영웅들은 복잡한 눈으로 결투장을 바라보았다.
“……야, 괜찮냐?”
“…….”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여성은 경기장을 주시했다.
최상격의 영웅이며, 멸망의 번개라고 이름을 떨치는 김은정이 침을 바른 이시우. 그리고 한국의 삼대 길드 중 하나인 여명이 찍었다고 알려진 윤채린.
두 사람의 격돌은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건 상격 끄트머리에 걸친 이들의 싸움이지 않은가.
질투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이다. 자신은 저 나이에 뭐했었지.
이제 막 중격에 올라서 거들먹거렸던 것 같은데.
수요일 날, 윤승하와 은수아의 싸움도 장난이 아니었다.
17체의 정령과 칠색 빛의 공간마저 가르며 싸우는 모습도 장난이 아니었지만.
“끄응. 머리 아프네.”
“그 정도야?”
“어지간하면 윤승하나 윤채린 중 한 명 데리고 가고 싶었는데……여기서 이시우가 보여준 게 너무 많아.”
“그게 왜?”
“……여기서 세 명 중 두 명을 우리가 가져가면 말이야, 굉장히 귀찮아지거든. 우리가 지명권이 2개나 있기는 하지만, 다른 길드들은 몰래 밑 작업할게 뻔하고, 삼대 길드들도 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여론을 겁나 이용할 거란 말이지.”
“그 모든 귀찮음을 무릅쓰더라도 저 애들이 탐난다는 거냐?”
“어. 이시우는 김은정 님이 있으니까 다들 윤승하나 윤채린을 노릴 거란 말이야. 근데 난 윤채린이 굉장히 탐나네.”
“저거 양날의 칼날인 거 알고 있지?”
“그걸 모르는 등신이 여기에 있겠냐? 그리고 우리 협회다. 마인 조지고, 길드들 조율하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남자의 말에 타박하며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서 스카우트들이 발을 분주하게 옮겼다. 그리고 광성자가 떨리는 눈으로 저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천의 광성자가 왔으니, 다른 이들도 올 것 같다.
여명의 길드장은 중국에 있으니 힘들 테고, 여명의 부길드장하고, 승천의 길드장이 오겠지.
그들 뿐이랴.
삼대 길드에 가려져서 그렇지, 삼대 길드의 자리를 노리려는 최상위권 길드들도 군침을 흘리고 있을 거다. 그리고 돈 하나는 더럽게 많은 중국과 미국의 대 길드들 역시 참전할 거다.
돈 하나는 더럽게 많은 임가 역시 참전할 테고, 명가라 불리는 이들은 이시우에게 없는 가문을 미끼로 그를 데릴사위로 맞이하려 할 거다.
쩝.
여성은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이번 영입은 굉장히 힘들 것 같았다.
***
“…….”
멍하니 고개를 올려 천장을 보았다.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눈을 한번 깜빡였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한데.’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머리가 완전히 굳었다. 감정의 조절도 쉽지 않았다. 조울증에 걸린 것처럼 갑자기 우울해졌다가, 기분이 좋기도 하고, 기분이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다가도 갑자기 곤두박질친 것처럼 우울해지기도 했다.
「신비의 기원」으로 강화한 「유아독존」을 한계까지 쓴 턱이었다.
그 부작용으로 강대한 정신력이 사라지고 어린아이 수준의 정신력으로 변한다.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심각했다.
뭐…그래도 만족할만한 시합이었다.
내가 해낼 수 있던 것을 밖에 모두 내놓을 수 있었던 시합이었고, 윤채린을 상대로 어디까지 통하느냐를 확인할 수 있었던 시합이었으니까.
내가 있는 곳은 현재 병실이었다.
윤채린과의 마지막 결전의 후유증으로 병실 신세를 지고 있다.
‘좋기는 하네.’
침대는 수상할 정도로 폭신거렸고, 방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아티팩트들이 방 온도를 알맞게 조절해주고 있다.
똑똑.
문을 노크하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나는 느릿하게 문을 바라보았다. 문이 드륵, 하고 열렸다. 갈색의 장발이 찰랑거리는 이지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시우야. 이제는 좀 괜찮아?”
이지아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실제로 굉장히 상태가 안 좋았다.
몸 상태는 괜찮았다.
문제는 정신에 있었다.
계속해서 참고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어리광도 부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
“응. 생각보다 후유증이 심하네. 기분이 우울했다가, 좋아지고. 뭐, 그래도 쟤보다는 낫지만.”
나는 내 반대쪽의 침상을 보았다.
팔과 다리를 깁스한 윤채린이 쿨쿨거리며 자고 있었다.
“채린이는 몸은 많이 다쳤지만, 정신은 멀쩡하다니까.”
말을 끝마치고 하품했다. 정신이 약에 취한 것처럼 몽롱했다.
“또 졸려?”
“으응. 좀 많이 피곤하네.”
“……그래, 그럼 난 갈게.”
이지아가 가고 나는 몽롱한 눈으로 윤채린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손해였다. 「유아독존」을 세간에 드러내고, 김하린과 협의도 하지 않았는데 「광익」을 드러내었다.
‘…….’
그런데도 기분은 마냥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이걸로 윤채린을 몇 번이나 놀릴 수 있을까. 나는 승리자의 기분을 만끽하며 킥킥거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
보랏빛과 핑크빛이 교차하는 핸드폰 화면이 보였다.
"……아니, 이게 진짜로 걸린다고?"
윤채린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내 붉은빛의 눈동자가 반달을 그렸다.
이게 뭐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