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천상의 마(5)
* * *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원형 경기장.
그곳에 검은색 바탕에 꽃무늬가 새겨진 하와이 셔츠를 입은, 경박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와 차가운 인상의 여성이 같이 들어섰다.
“휘유. 사람이 장난 아닌데.”
“당연하지. 처음부터 최연소 상격의 후보 중 하나인 마에스트로와 상아탑의 후계자와의 싸움이라고?”
남자의 말에 대꾸하면서 여성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보통 때라면 일반 관중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겠지만, 사람이 많이 올 것을 대비한 히어로 아카데미 측에서 최첨단 홀로그램을 이용해 바깥에서도 볼 수 있게 설계되어 있어서 일반 관중은 적었다.
‘진짜 드럽게도 많네. 얼씨구? 엉덩이가 무거운 광성자도 왔어?’
대한민국에서 삼대 길드라고 불리는 창천의 주인, 광성자.
아마도 자기 아들을 보러온 것 일터다. 저 남자는 누구보다도 냉정해 보이는 주제에 자기 가족에게는 팔불출이니까.
“휘유. 이번에 진짜 장난 아닌데. 삼대 길드 모두가 왔어. 창천에서는 엉덩이 무거운 광성자까지 나왔고. 이번 영입전은 꽤 힘들겠는데.”
“삼대 길드뿐만일까? 저기 봐봐. 미국에 노블레스와 갤럭시, 중국에 세가 연맹인 정천맹과 구파까지 몰려왔네. 서방을 지키는 성 십자기사단까지?”
“정천맹은 뭐 그럴 수 있지. 얼마 전에 중국 아카데미가 폭삭 무너졌잖아. 아, 찾았다. 여기가 우리 좌석이네.”
남자가 좌석에 앉으며 경기장을 주시했다.
경기장에는 소년 둘이 겨루고 있었다. 창과 검 등을 사용하며 리드하고 있는 소년과 소년답지 않게 덩치가 큰 학생.
“중국 학생들이 성적이 별로였는데, 훨씬 잘 싸우는걸.”
“거긴 실기 위주로 보고, 히어로 아카데미는 둘 다 보니까.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지금 히어로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과도기지. 대부분이 다 빛나는 원석들 뿐이야. 쟤내들 성적이 20위권에도 간당간당하다는게 믿겨져?”
“……진짜로?”
남자의 말에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광성자는 자기 아들을 보러 온 것이지만, 그 속에는 이곳에서 영입할 존재들을 위해 판을 즉석에서 크게 키우려는 목적도 있을 거다.
“아, 끝났다.”
여자의 말에 남자는 경기장으로 눈을 돌렸다.
근육질의 소년, 강한남이 창대를 붙잡고 돌진하자, 다른 무기를 꺼내 대응하는 타오. 그러나 한번 추진력을 얻은 강한남의 공격은 일절이었다.
“아니, 빗나갔어.”
“뭐?”
“중국 애들이 움직임은 묘하게 잘 움직여. 방금은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빗맞았다.”
여인의 말을 증명하듯이 타오 리가 벌떡 일어나서 검을 쥐었다.
“오늘 경기 예정인 마에스트로와 칠색의 마법사 말고 다른 애들의 대결은 계륵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눈이 즐겁네.”
“계륵?”
“그래, 계륵. 계란말이 같다고 해야 하나. 주메뉴를 먹기 전에 나오는 계란말이.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먹지만, 굳이 찾지 않는 반찬. 근데 계속 보니까 생각이 달라지네.”
“다른 애들이 메인메뉴 같냐.”
“어. 계란말이는 계란말이인데 주메뉴만큼 맛있다고 해야 하나. 엇, 시작한다.”
남자의 말을 끝으로 주위가 고요해졌다.
다들 이번 경기를 주시한다는 증거였다.
어딘가 나른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은발의 귀공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반대편에는 빛바랜 은색머리의 여성, 상아탑의 예비 탑주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장난 아니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네 ‘눈’으로도?”
“어.”
남자가 안색을 굳히며 말하자 여자는 놀랐다.
왜냐하면 남자는 감별사로서 뛰어난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이곳에 올 수 있었고.
그리고 그의 눈을 피할 수 있다면, 상대들은 최소한 중격 중에서도 상위권에 해당한다는 뜻이었다.
“아쉬우면서 흥미가 되는 대결이네.”
“아쉽다고? 왜?”
“왜냐니. 이게 최고의 하이라이트잖아.”
남자가 아쉽다는 듯이 말하자 여자는 픽웃었다.
“글쎄. 그렇지는 않을걸.”
“응? 설마 너 이시우랑 윤채린의 싸움을 기대하는 거야?”
“어.”
남자가 갸우뚱했다.
남자가 봤을 때, 이시우의 성장세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론 하나만으로 히어로 아카데미를 통과한 불세출의 천재 정도였는데 한종우를 꺾은 것은 그만큼 대단하고 충격적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윤채린인데.’
중격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있는 괴물이었다.
남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진다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시합 시작!”
요정족이 손을 내렸다.
시합 시작의 선언이었다.
요정족이 시합의 선언을 알리자 경기장 위의 마력이 급격하게 팽창했다. 윤승하의 주변의 공간이 일렁거리며 온갖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화火, 수?, 풍風, 지?, 뢰雪, 빙, 금, 독?, 무無, 목?, 중?, 화花, 암?, 광光, 음音, 영?, 성?. 총 17가지의 속성의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잠깐, 윤승하가 사역하는 정령이 반년 전에 몇 채였지? 열 네 채 아니었나? 빨리 확인해!”
“미친, 반년보다 사역하는 정령이 훨씬 더 늘었다고?”
스카우트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윤승하가 방금 보인 퍼포먼스가 그만큼 대단했다. 정령 친화력을 타고난 요정족들 중에서 엘리트라 불리는 이들도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인 요정도 많아야 3~4채.
윤승하가 소환하는 정령들이 윤승하의 주변에 머물렀다.
마치, 그의 지시를 기다리듯이.
“마에스트로…….”
전장의 지배자.
윤승하가 손을 내렸다. 그에 호응하듯이 정령들이 몸을 부풀리며 온갖 원소로 은수아를 공격했다.
***
윤승하가 정령 군단을 소환했다.
그 수는 무려 17 채.
말이 안 나오는 숫자다. 반년 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은수아가 반대편에서 그리 생각하며 쓰게 웃었다.
만약 그녀가 이시우와 함께 던전을 돌지 않았다면, 속절없이 밀렸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속된 말로 ‘비벼볼’만 했다.
“그게 끝이야?”
“응.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윤승하가 나른하게 웃으며 도발했다.
은수아는 발끈하는 대신 차분하게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파파를 떠올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부정적인 감각이 모두 털어졌다. 마력을 끌어올렸다.
특성들이 자신을 보조한다. 그리고 최근에 얻은 특성 「라피스 라줄리」가 호응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제대로 다룰 수 없는 힘이다. 불안정하고, 자기 멋대로인 힘.
“후.”
호흡을 고르며 칠색을 전개했다. 때를 맞추어 윤승하가 손을 내렸다. 형형색색 원소가 부풀어 올랐다.
우우우웅─!
공간이 진동한다.
고정하고, 반전하며, 흐르고, 상생하며, 변동하고, 왜곡되며, 부정한다. 일곱 개의 개념을 서로 엮고, 반발시키자 일곱 빛깔의 휘황찬란한 검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기에 한가지 특성을 얹었다.
「신비의 기원」.
자신의 파파인 이시우가 얻어준 특성이 그에 호응하였다. 일곱 빛깔의 검이 더욱 찬란한 빛깔을 내뿜었다. 그러면서도 소모되는 마력이 줄어들며, 더욱 강맹해졌다.
끼이익.
「신비의 기원」은 자신의 특성과 잘 맞았다. 마치 자신을 위해서 태어난 특성인 것 마냥 은수아의 칠색에 호응하였다.
눈앞에 형형색색의 공격이 쏟아지고 있었다.
끼이이이익!
공간이 일그러진다. 단지 들고 있는 것 뿐인데, 그 안에 담긴 개념과 마력이 너무나도 강대했기 때문이다. 은수아는 앞을 향해 칠색을 겨누었다. 그리고 아주 약간의 힘을 해방했다.
파아아앗!
휘황찬란한 일곱 개의 색이 빛을 발하며 공간을 점한다. 형형색색의 공격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주변이 고요했다.
기분 좋은 침묵이었다.
이렇게 쉽게 막을 줄 몰랐던 모양인지 윤승하의 눈썹 한쪽이 올라갔다.
은수아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윤승하에게 달려들었다.
***
금요일.
나는 훈련장에서 마지막으로 점검에 나섰다.
검 한 자루가 둥실 떠다녔다.
그러나 그 검의 크기는 거대했다. 검날의 길이만 20m가 넘어가는 거검巨?.
‘꽤 익숙해졌어.’
천둔검법이었다.
천둔검법은 어검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법칙을 다루는 무공이다.
사실 이걸 무공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상위의 위계로 올라갈수록 마법이나 무공의 경계가 희미해지기는 하지만, 천둔검법은 그중에서도 꽤 이질적이다.
‘뇌령신공 만큼은 아니지만.’
몸속의 뇌령들로 뇌신을 만들어 완성하는 무공, 뇌신무.
뇌신을 완성하면 뇌신무는 한가지의 권능을 갖게 된다. 바로 상시 뇌혼의 상태.
나는 그것을 잠시 생각하며 어검을 움직였다. 검이 내 의지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였다.
천둔검법은 상상 이상의 성취를 이루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천둔검법은 나에게 잘 맞았다.
남다윤의 말에 따르면 나는 이미중격에 이르렀었을 때의 남다윤과 비슷한 성취라고 하였다. 아직 익힌 지 한주가 좀 넘었음에도 불과한데 말이다.
‘아쉽네.’
일주일만 있었어도 윤채린을 이길 확률이 대폭 늘었을 텐데.
시간이 매우 촉박했다. 나름 준비한다고 많은 것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좆태창.’
▼
이름 : 이시우
근력 : 22
민첩 : 24
체력 : 25
마력 : 25
고유능력 : 유아독존
특성 : 지식열람(S+), 천의 가면(S), 천수(S), 오버로드(S), 음양체 (S), 변강쇠(A+)
몇 가지 바뀐 점이 있다.
공허족의 왕, 에니스의 개화로 「지식열람」의 등급이 하나 상승했다.
영약의 힘으로「오버로드」가 생겼으며, 「변강쇠」의 특성이 너무 사용한 나머지 진화해버린 것이다.
나는 상태창을 주시했다.
근력, 민첩, 체력, 마력. 그 모든 것에서 윤채린보다 뒤떨어진다. 거기다가 특성 역시 윤채린과 비교하면 열세다. 전투 특화 특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천의 가면」과 「지식 열람」이 보조를 해주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보조의 영역이다.
나머지 특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력으로 쓸 수 있는 특성들보다는 보조에 중점이 되어있는 특성들.
나는 미리 연금술을 이용해서 만들어 둔, 물약을 들이켰다.
마나와 체력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경기장으로 향했다.
“시우, 시합이지? 파이팅!”
“시우야, 힘내!”
애들의 인사를 받으며 시합장으로 향했다.
중앙에 가장 커다란 시합장으로 걸어갔다. 가로 x 세로 100m의 시합장. 고작 시합장으로 쓰기에는 컸지만, 윤채린이 워낙 난리를 치기에 해놓은 조치였다.
“잘 있었어? 시합 기간에 죽어라 단련만 했다며?”
윤채린이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말했잖아. 이번엔 비빌 수 있을 것 같다고.”
“하, 이시우 진짜 많이 컸네.”
윤채린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들 준비 됐나?”
“네.”
“네.”
“그럼 시합을 곧 시작하겠다.”
요정족이 나와 윤채린의 거리를 벌렸다. 가운데 공간에 팔을 올리고.
“시작!”
요정족이 손을 내렸다.
나는 재빠르게 아공간에 손을 집어넣었다.
창, 둔기, 방패가 손을 스쳤다.
고민은 짧았다. 윤채린을 상대로 한가하게 무기를 정할 시간은 없다.
제일 자신 있는 검을 꺼내 들었다. 검에 보랏빛의 뇌광이 둘린다. 새하얀 기가 둘린 손이 뇌광에 부딪쳤다.
쾅!
굉음이 동반했다. 당황하지 않고 왼손으로 검을 꺼냈다. 뇌광을 입힌다. 윤채린이 반대쪽 손을 휘둘렀다.
반사적으로 막으려다가 당황했다. 윤채린의 손아귀에 자그마한 흰색의 륜이 있었다. 검에 마나를 쏟아부어 일순간 거리를 벌렸다.
콰앙!
구체가 바닥으로 향하며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직격 직전에 회수했음에도 저런 위력이었다.
“올, 이걸 피하네. 깜짝 선물이었는데.”
씩, 하고 웃으며 윤채린이 말했다.
하얀색의 구체가 윤채린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천상의 마. 모든 마기의 절대적인 지배력을 갖는다. 남의 것이든, 자신의 것이든 말이다.
윤채린은 조금 전, 천상의 마로 마기를 회수한 것이다.
그렇기에 윤채린을 상대로 장기전은 위험하다.
숨을 들이 내쉬었다.
가면을 쓴다. 얼굴에 무언가가 덧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단기전이라면 나도 어디가서 꿀리지 않는다.
아니, 이 아카데미에서 단기전에서 가장 특화된 게 내 능력들이었다.
몸속의 뇌령들이 반응하며 번개를 내뿜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