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천상의 마(2)
* * *
월요일.
“자, 오늘부터 이번 주 금요일까지, 중간고사가 실시된다. 첫날이니만큼 너희들을 위해서 신경 썼다.”
첫 번째 시험은 간단했다.
기본적인 던전 구조가 가지는 기본 마나 값을 구하는 공식이었다. 어려운 시험이라 배분된 시간은 무려 4시간. 이거 하나에 오전이 날아간다.
주변을 슬쩍 보니 애들 표정이 완전히 썩어 있었다.
“오늘 시험은 대부분 쉽게 냈지만, 몇몇 문제는 어렵게 내었다.”
대충 해석하자면 옆에 있는 교수한테 물어봤는데 기본적으로 쉬운데 몇몇 문제는 어렵다. 라는 소리가 나왔다는 뜻이다.
사람인가?
“특히 두 개의 문제는 아주, 아주 어렵게 냈다.”
올백 머리가 인상적인 교수가 흐흐 거리며 웃으며 나를 보았다. 어려운 문제는 나를 겨냥한 문제들이라는 뜻이다.
사방에서 원망 어린 눈초리들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교수가 시험지를 툭툭 두들겼다.
시험지의 두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반에 근 80명 정도의 인원원래 100명이었는데 20명이 퇴학당하거나 B반으로 갔다이라 원래 두껍기는 하지만…….
교수를 보조하는 조교들이 시험지를 배분하기 시작했다. 시험지의 장수가 무려 10장이었다.
지식열람으로 쓱 훑어보니 몇 개의 문제는 시험지의 절반 이상을 글씨로 빼곡하게 적어야 나오는 문제들이었다.
진짜 사람인가?
“그럼 이제부터 시작하겠다. 다들 책상 앞만 보도록.”
***
윤채린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였다.
다른 이들이 아카데미의 여포라고 부르지만, 윤채린의 머리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뛰어났다. 무공이란 자기 자신만의 철학과 오성, 그리고 육체를 아우르는 무공이었기에.
거기다가 장학금을 위해서 학년 수석이라는 명함을 달고 있는 만큼, 윤채린은 이론에도 빠삭한 면이 있다.
……그런데.
‘미친 거 아니야?’
어렵다.
시험 문제들이 정말 미친 듯이 어려웠다.
벌써 30분이 지났는데 10개의 문제 중 이제 겨우 3문제를 풀었다. 그것도 가장 쉬워 보이는 3문제였는데.
윤채린은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았다.
8시 30분이었다. 남은 시간은 이제 고작 3시간 30분.
그녀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자기 동생인 윤승하 마저도. 이시우를 제외하면 은수아, 이지아, 윤승하가 이론에 가장 뛰어난 편인데 그들마저 한숨을 내쉬고 있는 거면 문제의 난이도가 장난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시우마저도 힘들 터다. 윤채린이 그리 생각하고 다음 문제를 풀려고 한 순간.
“다 끝나면 밖에 나가서 쉬어도 되나요?”
그때 평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시우였다.
윤채린은 눈을 깜빡였다. 아니, 쟤가 머리 좋고 뛰어난 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번 시험은 그 궤가 달랐다. 고작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모두 풀었다고?
“뭐, 뭣? 벌써 다 끝났다고?”
“네. 다 끝났습니다.”
교수가 성큼성큼 걸어서 이시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시험지를 홱 낚아 치더니 시험지를 훑었다. 교수의 표정이 점점 이상해졌다. 경악이 서린 표정을 지었다.
“이거 풀이가 좀 이상한데…….”
“풀이는 중간중간 생략하면서 썼습니다. 시간 낭비 같은 풀이가 많아서.”
“그럼 이 문제는…….”
“교수님 아직 시험 시간입니다.”
이시우에게 반박하려는 교수를 제지한 건 그가 아끼는 수석 조교였다. 조교의 말에 그제야 상황이 보였는지 교수가 한번 헛기침했다.
“큼. 이시우 학생은 나가봐도 좋네.”
“넵, 고생하십쇼.”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나가는 이시우.
교수는 이시우가 나가거나 말거나 교탁에 서서 이시우의 시험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호오이런 발상이…? 라거나 마, 말도 안 돼! 이런 방정식을 이용했다고? 푸, 풀이를 대체 어떻게…맙소사, 이걸 생략해? 라는 등의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윤채린은 연필을 돌리며 이시우에 대해서 생각했다.
히어로 아카데미의 교수직이라면 밖에 나가면 누구나 인정해주는 직위였다.
그만큼 교수직이란 것을 유지하기가 어렵고 끊임없이 내부의 경쟁을 하게 만들고 일 년마다 그란데힐이 점수를 매겨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교수들을 모조리 쳐내는 교수들의 복마전 같은 곳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저 교수는 그 채점에 모조리 든 교수였다. 특기는 이론이었다. 그런 교수가 시험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감탄하고 있으니, 이시우가 남긴 풀이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리라.
그러고 보니 이시우가 푼 시험이 교보재에 실렸었지.
윤채린도 꽤 놀랐었다.
그 풀이가 굉장히 신선한 시점에서 본 것. 그리고 그 시점이 굉장히 정확하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교보재가 아마 이시우가 푼 식으로 바뀔지 모른다고 떠들던 것을 떠올렸다.
이시우가 시한부라면, 그는 시한부란 리스크로 그러한 두뇌를 대가로 가진 것일까.
윤채린은 괜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
파직.
번개가 피어올랐다.
몸속의 뇌령들이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열댓 채의 이르던 뇌령들이 이제는 다섯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몸속을 관조했다.
뇌령들끼리 서로의 몸을 잡아먹어, 종국에는 하나의 신?을 만드는 극단적인 무공.
‘이제 슬슬 새로운 무공을 배워도 되겠어.’
후보로 추려놓은 것은 남다윤의 검법이라고 불리지만 그 근본은 법인 천둔검법. 그리고 김은정이 쓰고 있는 무상검법이었다.
눈을 반개했다.
보랏빛의 안광이 머물렀다.
손을 움켰다 쥐었다. 조금 더 강건해진 신체가 느껴졌다.
다만, 그만큼 몸에 주는 부하는 심해졌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얻는 단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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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늪의 흑단
복용 시, 특성 「오버로드」획득.
복용 시, 체력 +3증가, 마나 +3증가
복용 시, 활력 강화, 마나 회복력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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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오버로드」.
일시적으로 능력치 하나를 올리는 능력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지만, 이 특성 역시 몸에 부하를 주는 대가로 얻는 능력이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내 몸에 이런 특성은 무조건 독이다.
몸에 부하를 주는 뇌령신공, 음과 양을 유지하지 못하면 다른 지체들보다 못하는 지체가 되는 몸에다가 천의 가면으로 능력치를 뻥튀기하는 방식의 싸움. 여기에다가 몸에 부담을 주며 마나를 극단적으로 올리는 방식.
이건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방식이 아니다.
내 뼈를 박살 내고 상대의 살을 훔치는 지극히 극단적인 싸움 법이다.
여기에 유아독존이 없다면 말이다.
시간을 돌려, 자기 육체가 가장 완벽할 때로 되돌리는 유아독존은 내 싸움방식에 화룡점정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은 먹을 수 없지만.’
왜냐하면 그릇의 한계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비염.”
나지막이 비염을 부르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왜 계약자?]
“슬슬 할까?”
나는 비염을 바라보았다.
내가 하자고 하는 것은 정령의 진화였다.
정령이 어느 정도 강해지면 정령사는 보통 두 가지의 단계로 나뉜다.
정령을 늘려서 더 사역하는 방식과 정령을 강화하는 방식.
나는 그중에서 후자를 택했다.
본래 정령사라면 속성을 늘려 다양한 공격을 택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나는 다르다.
번개의 속성을 가지고 있고, 가면과 지식열람을 통해 다양한 속성의 공격을 할 수 있으니까.
[좋아. 이 비염님이 더 강해져서 계약자를 지켜줄게.]
비염이 자기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아공간에서 정령석을 꺼냈다.
정령석에 마나를 들이부었다.
“준비됐지, 비염?”
[물론이지, 계약자]
***
수요일.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오후의 시험까지 마친 나는 배를 두들기며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으로 가는 길은 한산했다.
왜냐하면 이론 수업이 생각보다 더 빡세서 다들 열심히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시절이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교정을 걸었다.
그러다가 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샤오메이 리.
그녀가 허벅지가 트인, 하얀색 배경에 검은색 구름이 그려진 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내 쪽으로 오고 있다.
“오랜만이네요.”
착.
부채를 핀 샤오메이가 눈웃음을 치며 나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시험 기간 아니세요?”
“저희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라 여기 히어로 아카데미랑 시험을 다르게 보거든요.”
샤오메이가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옆에서 중국 전통 복장을 입은 타오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너, 더 강해졌군.”
“꽤 강해졌지. 너도 꽤 강해졌네.”
다른 게 아니라 타오도 정말 강해졌다.
▼
이름 : 타오 리
근력 : 20
민첩 : 22
체력 : 18
마력 : 25
고유능력 : 무예백반
특성 : 짐승의 육감·극(A+), 반골의 상(B+), 불굴(B+), 컬렉터(C+) 외 2종
고유능력 무예백반.
어떤 무기를 들든 자기의 기량 이상으로 힘을 주는 능력이었다.
다른 이들의 비하면 빛이 바래지만 타오도 학생의 실력이 아니었다. 어디를 가든 에이스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히어로 아카데미에는 워낙 괴물들이 득실거려서 그렇지.
“그러고 보니, 너. 이번에 천마랑 붙게 된다면서?”
“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타오가 잠시 주변을 훑고서는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천마를 조심해라. 놈은 인간의 형태를 한 괴물이야.”
타오가 굳은 표정을 하면서 말했다.
나도 동의한다.
승부는 다음 주인데 승산이 너무 희박해서 답이 없다. 사실 거기에서 에니스의 눈에만 들면 상관없기는 한데.
‘나한테 너무 기대하고 있는 것 같던데.’
그게 찝찝했다.
아무래도 윤채린은 이겨야 면이 좀 설 것 같은데.
머리를 긁고 있자니 샤오메이가 나한테 다가왔다.
싱글싱글.
샤오메이가 속을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소용이 없다. 천의 가면이 가진 부가효과가 샤오메이가 어떤 감정을 품는지 가르쳐 주고 있으니까. 그 감정은 꽤 진했다.
“오늘 혹시 시간 있으신가요?”
“이번 주는 좀 바쁜데요.”
다름이 아니라 다음 주도 바쁘다.
왜냐하면 윤채린을 상대하기 위해서 작전을 짜고, 내 특성을 익숙하게 쓰는 훈련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아뇨, 이시우 님이 주신 포션 효능 덕을 다시 한번 봐서요.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가 음식이라도 대접할까 해서요.”
“다음 주……도 힘들 것 같은데. 실기 시험까지 끝난 다음은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샤오메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느껴지는 감정이 좀 더 화사한 쪽으로 변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노래방에 가자는 건 어떻게 됐지?”
“노래방?”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정한서가 이론 시험이 끝나면 노래방에 한번 가보는 게 어떠냐는 말에 어쩌다가 애들끼리 모여서 가게 되었다.
“……노래방?”
“어. 정한서…라고 했나? 그 친구가 노래방에 가자고 해서 나도 가보겠다고 했다. 엄마가 항상 친구 좀 만들라고 해서 말이야.”
“……그런 말 없었잖아.”
“기억 안 나나? 저번에 누나한테도 말하려고 했는데, 누나가 그때 바쁘다고 했었잖아. 그때 했던 말이 뭐였지? 남동생이…말대꾸? 이러면서 나를…….”
샤오메이가 타오의 입을 재빨리 막았다.
나는 핸드폰을 보며 애써 못 들은 척을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