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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27화 (127/298)

〈 127화 〉 천상의 마

* * *

지잉­.

감자튀김을 헤카테의 그믐달 위에 올렸다. 잔 위에 올라간 감자튀김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며, 일회성 가호가 내려졌다.

헤카테의 가호.

이것은 마법 투사체로부터 보호해주는 가호다. 그리고 약간의 은신 효과를 준다.

나는 잠시 마인을 보면서 가늠했다.

저 마인은 귀찮다.

천상의 마를 겨냥하고 만들어진 인공적인 마인이기 때문이다. 괴수처럼 만들어진 저 마인은 괴수들의 특징을 가진다.

괴수와 같은 거친 육체와 회복력을 지닌 데다가 오우거의 근력, 적노루의 각력마저 갖추고 있다. 유저들 사이에서 괴수형 마인이라고 불릴 정도다.

단점은 무식하다.

마인이 되어 흉포한 육체를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지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한차례 괴수화를 거치면서 그 지능은 더더욱 떨어졌다.

끼기긱!

마인의 두 다리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마인이 두 손을 땅에 짚으며, 돌진할 준비를 했다. 그 목표는 바로 윤채린이 천마 문워크로 도주하고 있는 경로.

나는 이지아의 힘을 모방한 가면을 썼다. 마도의 업. 그리고 세계의 운명 가면을 덧쓴다.

마력이 들끓으며 폭주하기 시작한다.

지식열람을 이용한다. 지식열람이 좌표를 설정한다.

파지지지지직!

보랏빛의 번개가 손아귀에 모였다. 몸속의 뇌령들이 회전하며 번개를 뿜었다. 번개가 손아귀로 모이며 그것이 마법이라는 법칙에 따라 모형이 바뀐다.

라이트닝 스피어.

보랏빛의 번개가 튀는 5m 크기의 길쭉한 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관통력을 늘리기 위해 창날을 나선으로 꼰다.

콰앙!

마인이 윤채린을 향해 돌진했다. 동시에 내가 라이트닝 스피어를 발사했다.

“……뭣?!”

그제야 마인이 내 존재를 눈치챘는지 내 쪽을 바라봤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 마인이 도약하는 순간에 쏘아진 라이트닝 스피어가 회전하며 마인의 몸통을 관통하려 했다.

마인이 양손으로 가슴을 막는다. 왼쪽 팔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카가가가각!

라이트닝 스피어가 나선으로 회전하며 왼쪽 팔을 관통하였다.

“크아아악!”

마인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자마자 공간장악의 가면을 썼다.

허공에 먹물이 엎질러진 듯 검은색의 물감이 번졌다. 검은색 물감 속에서 마인의 등이 보였다.

파지지직!

나는 즉시 뇌혼을 발동했다.

시야가 보랏빛으로 물든다.

머리카락과 눈색이 보랏빛이 잠식하며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아공간에서 기린검을 꺼냈다. 푸른색의 검신에 보랏빛의 뇌광이 솟았다.

“비염!”

[오케이!]

비염이 손을 흔들자 보랏빛의 불꽃이 넘실거렸다.

자그마한 화염구들이 먹물 안으로 들어갔다.

콰아앙!

보라색의 화염구가 폭발을 일으켰다. 나는 기린검을 들고 마인에게 달려들었다. 아직 공간장악의 능력이 낮아, 내 육체를 옮기기에는 무리가 따랐기 때문이다.

“뭐야! 우리 시아 왜 이리 다재다능해?!”

황당함 반, 즐거움 반이 섞인 비명이 들려왔다.

천마 문워크로 하늘을 유영하던 윤채린이 손을 하얗게 물들이며 빌런쪽으로 향했다.

그것을 보며 땅을 박찼다.

마인이 나를 보며 팔을 휘둘렀다.

파밧!

보법을 밟을 필요도 없었다. 한 걸음을 움직이는 것으로 십수 미터 단위로 이동하는 상태에서는 한 번의 걸음으로도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다. 뇌혼 상태의 나는 동격의 영웅들보다 수배 이상은 빠르다.

기린검으로 팔을 베었다.

근육이 워낙 단단해서 제대로 베지 못했지만 상관없다.

보랏빛의 선이 그어지며 뇌광이 마인의 몸에 침투한다. 마인의 팔이 경련했다. 번개 때문에 마비 효과가 온 것이다.

그리고 상처 위에는.

화악─!

보라색의 불꽃이 피어난다.

비염의 불꽃이 상처 부위를 헤집는다.

[이거지, 이거! 계약자가 차려놓은 밥상에 젓가락을 올리는 것으로도 활약하는 비염!]

비염의 헛소리를 무시하며 질주했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이!”

마인을 향해 돌진하자, 마인이 팔을 휘두르며 땅을 내리쳤다.

힘이 퍼지면서 땅을 한순간에 30m 크기의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질주하던 내가 공중에 붕 떴다.

“잡았다, 쥐새끼!”

마인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행복해 보여서 나도 활짝 웃어줬다.

“뒤, 안보냐?”

“그딴 수작에 내가 넘어갈 것 같으…….”

마인이 말을 멈추었다.

뒤에서 급격하게 마력이 팽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채린이 뒤에서 양손을 모으고 있었다. 손 위에는 묵색의 륜?이 회전하고 있었다.

이제는 숨길 생각도 없는지 륜이 급격하게 회전하며 덩치를 불리고 있었다.

나는 마법으로 재빨리 허공에 빙판을 만들었다. 마력이 물질화되기 시작하면서 빙판이 만들어지자 그곳을 내디뎌 하늘로 뛰어올랐다.

윤채린이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금색 빛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었다. 붉은색의 눈이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우리 시아, 언니가 진짜 사랑한다! 그리고 괴물 새끼 이제는 좀 뒤져!!”

천마신결

멸겁륜

그것이 마인의 등 뒤에 꽂혔다. 묵색의 륜이 회전한다. 마인의 몸이 륜을 따라 접히고 있었다. 등이 륜을 따라 회전하면서 몸통이 회전한다.

나는 기린검을 들었다. 어검의 가면을 덧쓴다. 어검의 힘이 기린검에 깃들었다.

파앗!

기린검이 마력을 추진력 삼아 쏘아졌다. 목표는 마인의 목.

마인이 목을 막으려고 했지만, 멸겁륜이 팽창하면서 마인의 배를 그대로 뚫어버렸다. 중심을 잃은 마인이 어검을 피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서걱.

마인의 목을 베었다. 목이 몸과 분리되면서 마인의 시체가 재가 되어 흩날렸다. 마인이 있던 자리에 덩그러니 유리 조각 같은 것이 있었다.

천마신결의 조각이었다. 저것을 얻으면 얻을수록 윤채린은 성장한다.

“이야, 땡큐땡큐. 우리 시아 덕분에 노리고 있던 녀석을 잡을 수 있었네.”

“노려진 게 아니라?”

“후……시아야. 이 언니가 1000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한 천재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인 셋이 한꺼번에 덮치면 나라도 이길 수 없단다.”

중격의 마인이 세 명이나 달라붙었다고, 놀라지는 않았다.

윤채린이 가진 천상의 마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오히려 세 명밖에 안 붙인 상대가 멍청한 거지. 나였다면 상격의 마인을 보내거나 해서 어떻게 해서든 죽였을 거다.

“시아야.”

“엉?”

“이거 내가 가져도 되냐?”

윤채린이 천마신결의 조각을 가리켰다.

마인을 잡거나 던전을 공략할 때, 기여도에 따라 아이템을 분배한다. 그러나 위험에 처했을 때는 분배가 좀 달라진다. 구해준 사람이 기여도가 높아지는 구조였다.

“어.”

나는 선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시점에서 윤채린이 강화하는것은 조금 뼈 아프지만, 내가 사용할 수도 없는 것이다.

“대신 나중에 나 좀 도와주라.”

“후, 시아의 마수가 결국 나에게까지 닿는 건가……어쩔 수 없지. 천마인 이 몸이 몸으로 갚을 수밖에.”

히죽하고 웃으며 윤채린이 말했다.

나는 조용히 윤채린을 바라보았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봐.”

그러면 남자들이 오해한다고 말하려다가 멈췄다.

“아니, 그냥 이뻐서.”

“뭐, 뭣!?”

“농담~. 막 이래”

“야, 야!”

킥킥거리며 웃자 윤채린이 드물게 당황해했다.

“그런데 넌 어디 들어갈 길드 있냐.”

“길드? 난 아마 협회에 들어갈 것 같은데.”

“협회? 의외네. 나는 넌 길드 들어갈 것 같았거든.”

“협회도 나쁘지 않지. 길드는 착취 엄청나게 당하잖아.”

“협회도 마찬가지지. 길드는 10년만 고생하면 그 뒤로는 쭉 평탄하잖아.”

나는 윤채린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10년만 고생이라.

마신을 죽이지 못하면 10년 뒤도 없다. 그리고 그 마신은 정말 말도 안 되게 강하고.

“10년 뒤라…….”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뇌혼의 반동으로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아독존」을 이용한다면 금방 치유되겠지만, 아직 반동으로 쓸 수 없었다.

‘뇌혼의 반동을 막는 것보다 정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쓰는 게 맞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늦은 후회였다.

“괜찮아?”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윤채린이 걱정이 깃든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 괜찮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대는 뇌혼을 쓰지 않은 상태였다면 빠르게 처치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마인은 회복력이 강해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 빠르게 화력을 올려 죽이는 것이 맞았다.

나는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었다.

온몸이 쑤셨다.

정신도 혼미했다.

‘아까 악어까지 잡아서 그런가.’

몸이 휘청거렸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힘들었다.

연달아서 싸움을 하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야, 야! 이시우…….”

윤채린이 당황하는 표정이 보였다. 나는 까무룩 기절했다.

***

“뭐, 뭐야.”

윤채린은 당황해하며 이시우를 부축했다.

단단한 육체가 느껴졌다. 가장 효율 좋게 단련하여 압축된 근육에 윤채린은 잠깐 얼굴을 붉히다가 멈칫했다.

이시우의 육체가 굉장히 망가져 있단 것을 깨달았다.

“…….”

윤채린은 얼굴을 굳히고 이시우를 업었다.

지금 여기서 그를 치료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기를 돌리면서 질주하다가 윤채린은 같은 말만을 반복하였다. 기로 이시우의 육체를 관찰하다가 깨달은 것들이 있다.

이시우의 육체는 음과 양으로 가득 차 있는 육체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극단적으로 양의 기운이 빠져있고, 음의 기운만 가득 찬 육체가 보였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육체가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친다면 그 결과는 육체의 붕괴를 가져온다.

그리고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기.

이시우의 몸속에 자리 잡은 무언가들은 이시우의 육체를 치료해주는 게 아니라 서로 싸우면서 이시우의 육체를 갉아 먹고 있었다.

‘너무…극단적이야.’

마치 고독과도 같았다. 항아리에 독충들을 넣어 마지막 남은 한 마리가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잡아먹으며 최후의 한 마리가 육체를 차지하는 식의 무공이었다.

마공이었다.

마공 중에서도 정신이나 육체를 대가로 기형적으로 강해지는 극단적인 마공.

­10년 뒤라.

조금 전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마치 10년뒤가 오지 못할 것같이 나눴던 아련한 목소리가.

“설마…….”

윤채린은 조용히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이시우는 어쩌면 시한부의 인생이 아니었을까.

***

주위가 어두컴컴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여긴 어디지. 주위를 둘러보니 전형적인 병원이었다.

나는 내 옆네는 윤채린이 잠들어서 누워있었다. 윤채린의 주변에 눈물 자국 같은 것이 있었다.

‘기절한걸로 이렇게 울다니.’

나는 조금 미안해졌다.

애가 거칠게 보여도 사실 속이 여리다. 전형적인 외강내유였다.

나는 숨을 내쉬며 조용히 육체를 관조했다.

여자들에게 양기를 착취당하고 뇌령이 서로 잡아먹은 데다가 뇌혼을 연속적으로 사용해 육체는 망가졌다.

다른 무인이라면 당분간은 무조건적인 안정을 취해야만 하는 육체.

그러나 나는 달랐다.

유아독존.

검은색의 왕관이 머리 위에 떴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육체가 시간을 돌리듯 복구되었다.

나는 검은 늪지의 악어를 잡고 나온 단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체력을 올려주며 특성까지 주는 단.

“운이 좋군.”

이걸로 정력이 부족해서 골골대는 날은 이제 안녕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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