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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25화 (125/298)

〈 125화 〉 이끌림(2)

* * *

화악.

한 송이의 꽃이 피었다.

허공에서 보랏빛으로 빛나는 씨앗에서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었다.

“이건…….”

넋을 잃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랏빛의 꽃은 가련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내포한 힘은 가히 파멸적이었다.

천영의 꽃.

하늘마저 얼리는 냉기(?).

그것이 임나연의 손이 아닌 내 손에 펼쳐져 있었다. 여기에 칠색을 더한다. 보랏빛의 색이 꽃에 스며들었다.

꽃이 만개하며 잎이 떨어진다.

너울거리며 떨어지는 꽃잎. 그리고 보라색의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보랏빛이 시야를 뒤덮었다.

그리고.

시야의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보랏빛의 얼음이 세계를 얼려버린 듯한 모양새였다.

“어때? 쓸만하지?”

“……쓸만한 정도가 아닙니다. 시전 시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지만, 방향을 정할 수 있다면, 이 정도 파괴력을 지닌 거면…….”

그란데힐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서 자랑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대단하시군요. 냉기에 한정되지만…아마 이지아 님의 마법과 비견될 만 합니다.”

“……지아가 벌써 그리 세졌어?”

“네. 요즘 성장세가 더 가팔라졌습니다. 최근에는 상급 마법도 건드리고 있습니다.”

“벌써 중격에 올랐어?”

“아직은 아닙니다마는……아마 조만간 들것 같습니다.”

“그래? 지아도 무섭네.”

나는 한 호흡을 쉬고 「유아독존」을 발동했다.

지식 열람의 특성은 아직 몸에 너무 심한 부하를 줬다.

나는 팔로 그란데힐의 허리를 둘렀다.

“힐아.”

“……네.”

그란데힐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오랜만에 할까?”

“……네.”

그란데힐이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살포시 끄덕였다. 회색빛의 머리가 살랑거렸다.

***

목요일 점심시간.

나는 현재 윤채린이랑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왔다. 다른 애들은 모두 일이 있어서 거르거나 늦게 온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윤채린이랑 단둘이서 먹는 건 또 처음인데.

나는 오랜만에 끌리는 김치볶음밥과 그 위에 달걀부침을 두 개를 얹고 고기와 채소를 가득 담고 왔다.

윤채린이 식판을 내려놓았다. 윤채린의 식판 위에는 고기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간장을 조린 소불고기, 돼지고기볶음에다가 양꼬치구이.

닭을 매콤한 양념에 구운 불닭이랑 오리 주물럭이 식판에 가득 쌓여 있었다.

“온통 고기네.”

“오직 고기지. 천마는 채소를 먹지 않는 법. 정파 무인들을 학살하듯이 고기를 학살하는 것이 천마의 의무니라”

그건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그런데 시우, 넌 은근히 채소를 많이 먹는다.”

“나? 이게?”

나는 식판을 바라봤다. 김치볶음밥과 달걀부침 두 개에 돼지고기볶음과 상추 쌈 몇 개밖에 없는데.

“너도 소림의 땡중들처럼 몸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그러는 거야?”

“……소림사나 서양의 성 십자단 쪽은 좀 더 본격적이지. 벽곡단이나 쌀을 물에 불린 죽을 먹는다던가.”

“쌀을 불에 안 끓인다고?”

“불에 끓이면 화식이잖아.”

“와……진짜 지독하다. 하긴 그래서 강한 건가?”

“동자공을 익혀서 강하지.”

“동자공? 서, 설마 평생토록 섹스도 못하는 거야?”

“뭐, 그렇지 않을까?”

참고로 자위도 못 한다. 내보낸다는 행위 자체를 하면 내공이 빠져나가는 구조라서.

“우리나라에서 동자공이 금지된 무공이 된 이유가 다 있지. 20대 젊은 애들은 대부분 참지 못해서 폐인이 돼버려서.”

“……진짜 악랄한 무공이네.”

“그러고 보니 들었어? 이번 중간고사 때도 대련으로 정한다던데.”

“대련? 후, 이번에도 1등은 나인가.”

윤채린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오리고기 한 점을 크게 집어 우적우적 먹었다.

그녀의 자신감은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그녀의 경쟁자라고 볼 수 있는 은수아는 단기 결전에만 강하고, 윤승하는 근접전에 약하니까.

나는 윤채린을 바라보았다. 황금을 녹여 내린 듯한 황금빛의 머리카락과 루비를 박은 듯한 붉은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새하얀 피부에 조그마한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

「천상의 마」에 대해서 떠올렸다.

모든 마기를 자신의 힘으로 치환하는 말도 안 되는 능력. 그녀는 마기라는 힘을 다루지만, 「천상의 마」로 인하여 모든 마기를 지닌 존재에게 극단적인 상성을 가진다.

본신의 무력 또한 범상치 않다. 인공 마왕이라 불리는 ‘천마’들의 기억이 있고, 본래라면 익힐 수 없는 천마신결을 「천마지체」의 힘으로 익혔다.

나는 문득 윤채린이 얼마나 강해졌을까, 궁금해져서 그녀의 상태창을 살펴보았다.

감정.

이름 : 윤채린

근력 : 30

민첩 : 30

체력 : 30

마력 : 35

고유능력 : 천상의 마

특성 : 용사의 혈통(S+), 천마지체(S), 마존(S), 초감각(S­), 잔혹한 로맨티스트(A­) 외 4종.

정말로 화려한 능력치다.

모든 능력치가 30을 넘어섰으며, 마력은 35에 도달해 있다.

능력치뿐만 아니라 특성도 범상치 않다.

수재에서 천재라 칭해지는 학생들이 보통 3~4개의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윤채린은 이미 완성된 영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용사의 혈통」이다.

하나의 특성이지만 정말 귀찮고 사기적인 특성들이 골고루 모여 있다. 한계에 도달했을 때, 능력치를 100% 발휘 시켜주는 「불굴」과 체력이 다 떨어져도 움직임을 보정해주는 「전투 속행」, 사특한 힘에 저항할 수 있는 「찬란한 의지」까지.

이것저것 자잘한 것들까지 합치면 거의 10개에 달하는 특성들이 합쳐진 것이 바로 「용사의 혈통」이다.

본디 익힐 수 없는 천마신결을 익힐 수 있게 해주는 「천마지체」와 강기공을 보조해주는 「마존」,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초감각」과 공격 시 온갖 보정을 해주는 「잔혹한 로맨티스트」.

팀 대항전이라면 모를까, 대인전에서 윤채린은 자연재해에 가까웠다.

“우리 시아, 언니가 얼마나 이쁘면 얼굴을 그렇게 뚫어지게 보는 거야~?”

윤채린이 머리를 슬쩍 쓸어 넘기며 이쁜 척을 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쁜 애가 이쁜 척을 하면 그게 이쁜 척이 맞으니까.

“그, 그걸 고개를 끄덕이냐…….”

윤채린이 무안한지 젓가락으로 고기를 쿡쿡 찔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고기를 냠­하고 먹었다.

***

“다들 알고 있지? 다음 주부터 중간고사 이론 시험 기간이다.”

강한자의 말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려왔다.

강도 높은 실기 실습에 이어서 공부할 틈도 없는데 이론 시험이 굉장히 빡세졌기 때문이다. 원인은 나한테 있다. 교수들이 틀리라고 낸 문제를 모두 맞혀버리니까 교수들이 문제 난이도를 올려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우야, 시우야. 내일 시간 있어?”

임나연이 옆에서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미안, 나 수아랑 같이 공부하기로 했는데.”

“헉…….”

은수아를 방패로 세우자 임나연이 충격받은 표정을 했다. 그래도 틈틈이 공부를 가르쳐준 것 같은데.

“고, 공책은 혹시 있어?”

“나 필기 잘 안 하잖아.”

“……그랬지.”

임나연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때 문자가 왔다. 이지아부터 시작해서 아야네와 반에서 이름을 모르는 애들까지. 대충 과외를 해주면 돈을 주겠다는 문자들이었다. 돈이야 넘치니 모르는 애들한테서 온 문자는 다 차단했다.

이지아와 아야네한테는 바빠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문제를 보여주면 가르쳐 주겠다고 말한 뒤에 핸드폰을 껐다.

“그리고 실기 시험은 이론 시험 기간 다음 주에 잡혀있다. 실기 시험은 ‘대련’이다.”

나는 강한자의 말에 멈칫했다.

또 대련이라고?

중간고사는 특별하게 아카데미의 문을 개방하는 터라 많은 사람이 들어온다. 그래서 대부분 볼거리가 넘치는 던전 탐사나 서바이벌을 주로 하는 편인데.

아니, 이건 문제가 아니었다.

대련이 무작위로 짝을 짓는다지만, 실력차가 너무 크면 안 되기에 비슷한 경지의 사람들을 짝을 세운다.

예를 들어 최상위권에 있는 탈 학생들의 실력을 갖춘 윤승하는 윤채린과 은수아, 나를 포함해서 무작위로 돌려진다.

공허의 왕인 에니스가 축복을 내려 특성을 개화하여 「인피니티」나 「진성광익」,「마룡화」를 얻은 임나연과 김하린, 한종우도 올라오겠지만, 아직은 먼 이야기다.

그러니까 지금 대련이 나온다면.

“……은수아와 윤승하. 그리고 윤채린과 이시우가 승부다.”

나는 반사적으로 윤채린의 자리를 훑었다. 윤채린이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색즉시공」은 에너지의 치환에 중점을 둔 특성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마력으로 활력이나 정력으로 치환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대기에 떠도는 마나를 강제로 내 마나로 치환도 가능하다. 「천상의 마」만큼 압도적인 강제력을 지니지는 않지만, 상대의 공격에도 간섭할 수 있다.

「변강쇠」라는 특성을 가진 이가 색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조건이지만, 나는 그 조건을 꽤 만족하고 있는 편이다.

실제로 주변에서는 나를 굉장히 성실하다고 알고 있다.

내가 그만큼 훈련에 집중하고 성실한 남자이기도 하기 때문이지만…….

“어렵네…근데 진짜 이런다고 남자가 넘어오나?”

복도를 걷자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홍빛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김하린이었다. 김하린이 팔을 가슴 밑에 두어 가슴을 강조하는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야, 이시우. 돈 줄 테니까 가서 초코우유 좀 사 와라. 아니, 어떻게 시우한테 심부름을 시키란 거야. 내가 갔다 오고 말지. 애초에 시우가 초코우유 먹고 싶다고 하면 트럭으로 갖다 바칠 년이 한 트럭인데. 그년 내가 좀 괴롭혔다고 이상한 거 가져온 거 아니야?”

김하린이 투덜거리고 있었다.

나는 기척 차단의 가면을 쓰고 기척을 죽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허접♡ 바보♡ 멍청이♡”

“김하린.”

“꺄아아아악!”

김하린이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후퇴했다. 놀란 표정으로 나를 봤다가 반가운 표정으로 바뀌더니, 이내 사색 된 표정이 되었다.

“호, 혹시 들었어?”

“어떤 거?”

“그, 방금 말했던 거.”

“허접이랑 바보?”

“…….”

김하린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벽을 쿵 쳤다. 그리고 김하린의 팬티 속에 손을 넣었다.

“뭐야, 왜 이리 축축해. 허접이라고 말하더니, 네게 더 허접한데?”

“흐읏.”

김하린이 숨을 헐떡였다. 아래가 더 축축해졌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은 없다. 마치 내 부실 근처이기도 했다.

나는 김하린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따라와.”

“어, 어떻게 할 셈이야! 나, 나를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김하린이 벌벌 떨며 말했다.

겁을 먹은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김하린은 극도로 흥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악당처럼 히죽 웃고는 김하린의 귀에 속삭였다.

“개처럼 따먹어 줄게.”

김하린이 몽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품에 안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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