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부녀(7)
* * *
100평 남짓한 공간.
이곳은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훈련하거나 대련하는 장소이다.
물론 대부분은 훈련으로 애용한다. 교수급들은 대부분이 중견의 교수들이기에 그들이 부딪치면 둘 다 상처를 심각하게 입을 수 있는 탓이었다.
그란데힐은 그 장소를 눈으로 훑었다.
흠잡을만한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훈련장이니까 좀 더러울 수 있다.라고 말하지만 그란데힐은 그런 것을 용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왕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그녀에게 굳이 책잡히고 싶은 요정족 또한 없다.
“괜찮군요.”
그란데힐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서 있던 요정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른 곳으로 날갯짓을 하며 날아갔다.
그 장면을 잠시 바라보고는, 그란데힐은 조용히 장갑을 매만지며 복장을 점검했다.
그란데힐이 입은 메이드 복 위에는 그 흔한 주름이나 먼지 한 톨 없었다. 가히 메이드의 복장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복장이었다.
그녀의 반대편에서 그란데힐과는 완벽히 상반된 복장을 한 여자가 있었다. 다듬어지지 않고, 산발된 머리카락.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고, 복장은 후줄근한 분홍색 트레이닝복에 회색 반바지. 그야말로 거지꼴에 가까웠다.
그란데힐은 눈가를 찌푸리려고 했지만 참았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학생이다. 비록 나이가 살짝, 아주 살짝 학생이라고 치기에는 많다고는 하나 그것을 커버할정도로 뛰어난 재능에 소유자 이기에 말이다. 김시연은 그녀 자체로 존귀한 존재였다.
“오늘도 복정이 단정치 못하군요.”
“……왜요? 꼬우세요??”
적의가 가득한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김시연의 말에 그란데힐은 쓰게 웃음을 지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란데힐은 그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거의 반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그녀는 교수들의 지도하에 바깥과 단절된 채 생활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약간의 당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니요. 그저 조금 안타까워서 그랬습니다. 반년 가까이 단절된 생활을 하셨으니까요.”
그란데힐의 말에 김시연은 이를 악물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가.
처음에는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교육해준다는 말에 김시연은 하늘을 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곳은 지옥의 시작이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교수들이라는 존재들은 김시연을 진짜 개처럼 굴렸다.
그 과정에서 요정족에서도 꽤 귀한 약재들을 그녀에게 투입하였다. 그녀의 주 속성력인 바람과 관련된 영약과 그녀가 마나 감응력과 능력치를 쉽게 올릴 수 있게 만든 약초 등. 그 액수는 가히 10억을 조금 넘길 정도로.
솔직하게 말해서 처음에는 미안했다. 자기가 그렇게 쓸모 있을까. 내가 10억의 가치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등이 많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얼마 못 가서 깨져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자기를 빡빡하게 굴리기 시작하더니 저 악독한 메이드 장은김시연은 그란데힐이 여왕의 오른 팔이란 것을 모른다그녀가 잠을 잘 때도 뿅망치로 그녀를 공격해서 잠을 깨우는 악독한 짓을 하는 여자였다!
그것이 감각을 날카롭게 해서 언제든지 적의 공격을 방어해야 한다며 자기를 미친 듯이 굴렸다.
그래도 그녀는 참을 수 있었다. 자기보다 조금 어린 소년인, 그녀의 취향에 완벽히 부합되면서 자기를 지옥에서 꺼내준 이시우 같은 왕자님을 만나면서 그래도…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교수들이 단합하여 김시연을 집중적으로 키워야 된다고 말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리고 저 여자가 바로 그 의견을 통과시킨 최종결정자.
“내기를 하나 할까요?”
“내기요?”
“이번에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으면 외출권을 드리겠습니다. 조금 길게 드리도록 하지요. 일주일 정도, 어떻습니까?”
“진짜지요?”
“네,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평가는 어떻게 되죠?”
“김시연님이 가장 확실하게 알 방법으로 하지요. 지금 시작할 대련 동안 제 옷자락이라도 스치면 됩니다.”
“좋아요.”
“그럼 슬슬 시작할까요?”
그란데힐이 말하자 김시연은 달려들었다.
콰앙!
바람이 한순간에 폭발하며 김시연의 몸이 가속했다. 바람 속성력을 터트려 일시적인 폭발력을 얻는다. 그것을 보며 그란데힐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정말 간단하게 시행했지만, 짐승과 같은 감각을 필요로 하는 기교였다.
몸이 일순간 폭발하는 폭발력을 견딜 수 있을 만큼 터프하고, 바람 속성 지배력이 뛰어나야 하며 몸을 그만큼 잘 다뤄야 할 수 있는 기교.
김시연이 으르렁거리며 그란데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란데힐은 단검의 손잡이를 꺼냈다. 칼날이 없는 그저 그런 단검 손잡이. 그러나 김시연의 감각이 저것을 보며 경종을 울렸다. 저 단검은 정말로 위험하다고.
사악!
단검 손잡이에서 검은색의 칼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공간속성력을 집약한 공간째로 갈라버리는 단검이었다.
김시연은 즉각 대응했다. 그녀의 손에 바람이 응축된다. 그것이 김시연의 손에 따라 조?의 형태로 길게 늘어섰다. 풍인. 바람의 칼날이 그녀의 손에 머물렀다.
공간 속성은 일명 삼대 속성이라 불리며 그 강함과 응용력은 여타 속성과 비교를 불허한다. 4대 원소가 강하기는 하지만, 삼대 속성과 비교하면 꿇리는 것이 사실이다. 이대로 풍인과 공간검이 부딪치면 그 결과는 뻔했다.
그러나 김시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풍인을 휘둘렀다.
공간 속성이 압축된 칼날과 바람의 칼날이 부딪쳤다.
───!
순간
그란데힐은 멀리 물러났다. 손목이 시큰거린다.
상식 밖에 있는 일이었다. 경지도, 마력도, 속성의 상성 우위도……모조리 그란데힐이 월등하건만 충돌에서 물러난 건 그란데힐이었다.
‘풍랑風?…….’
이시우가 말했던 고유 능력이었다.
펜리르.
신화에서 신을 잡아먹는 신살??의 능력을 갖춘 늑대. 속성은 존재부정이라고 했었나.
김시연을 잘 다듬는다면 굉장히 날카로운 비수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만큼의 성장세였다. 아마 이대로 2년만 더 가다듬는다면.
‘상격은 확실하겠군요.’
김시연 또한 거대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거악巨?과 마왕의 싸움은 이제 5년도 채 남지 않을 테니까.
마인을 적대하면서도 능력이 있고 재능이 있는 자는 지극히 귀했다.
그란데힐은 단검 자루를 꾹 잡았다.
***
월요일. 오후 수업까지 모두 끝난 무렵이었다.
[은수아 : 잠깐 내 부실로 와줄래?]
카톡이 하나 왔다. 무슨 일이지. 은수아는 지금껏 나를 이렇게 불러낸적은...없지는 않았다. 다만 장소가 조금 이상했다. 원래 새벽이나 밤에 만나자고 할텐데, 지금은 아직 낮이었다. 나는 의아해하며 걸음을 옮겼다.
“시우야, 어디가?”
향긋한 냄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이지아가 나에게 물었다.
“나 잠깐 수아랑 이야기 할 게 있어서.”
“……그래? 그럼 끝나고 나랑 어디 갈래? 내가 근처에 파르페로 유명한데 알고 있는데.”
반사적으로 눈이 이지아의 배로 향하는 것을 멈추었다.
근래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모양인지 이지아는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이지아의 뱃살이 조금이지만 잡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가슴도 그만큼 커져서 나야 좋기는 한데.
“음, 시간을 좀 보고.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 알았어.”
이지아가 눈웃음치며 슬쩍 가슴을 강조하는 자세를 취했다. 얘도 은근히 여우라니까.
“그럼 전화 줘. 기다리고 있을게.”
“……혹시 모르니까, 기다리지 마. 대신이라기는 뭐하지만, 내일 같이 갈래?”
“그럴까? 그럼 내일 기대할게~.”
이지아가 손을 살짝 흔들며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게 목적이었구먼.
나는 이지아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은수아가 있는 부실로 향했다. 주변은 한적했다. 은수아가 번잡한 걸 싫어해서 찾기 힘든 구석진 곳으로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똑똑.
나는 부실의 문을 두들겼다.
“수아야, 난데.”
“어, 들어와.”
조금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은수아가 의자 한가운데서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진짜 안 익숙하네.
“무슨 일이야. 날 여기로 다 부르고. 아직 후유증이 다 안 간 거야?”
“어? 으응, 그것보다 미안해서. 어제 던전에가서 그, 시우가 아끼던 장신구가 망가졌잖아. 그것 때문에.”
“별로 신경 쓸 거 없는데.”
진짜 신경 안써줘도 된다.
“대신이라기는 뭐한데 내가 그, 선물을 가져왔거든.”
은수아가 까만 나무상자 안에서 새하얀 날개 모양의 브로치였다. 오를로스의 날개.
“…….”
나는 저 물건을 알고 있다. 다회차 플레이한 고인물들도 알고 있는 아이템이다.
은수아 루트를 타면서 아주 가끔 쓰이는 물건이다. 대충 저 물건을 착용한 상대는 정신력이 취약해지는데, 그 대가로 능력치가 올라가는 아이템이다.
========================
오를로스의 날개
하늘을 날고자 했던 이가 날개 아티팩트를 만들다가 우연히 만들어진 산물.
스킬, 오를로스의 힘 상시 발동
========================
“……고마워.”
나는 브로치를 착용했다.
하얀색의 날개가 빛을 발했다. 사르륵투명한 날개가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
오를로스의 힘
모든 능력치 +2증가
정신계 계통에 취약
========================
그러자 감각이 날카로워지고, 마나가 들끓는다. 몸에서 활력이 넘쳐흘렀다. 정신계 계통에 취약해지는 단점이 있지만, 상관없다. 유아독존 덕분의 정신계 상승치는 어마어마하니까.
아니, 정확히는 유아독존은 정신력을 상승시키면서 능력치를 고정한다. 예를 들어 내가 정신력이 50이라면 유아독존은 대략 200정도 올려준다고 치자면, 나는 상시로 정신력을 250에 고정되게 된다.
그리고 유아독존이 진화하여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진화하면…….
“시우야.”
은수아의 말에 상념이 끊겼다. 나는 은수아를 바라보았다.
은수아의 감정이 심상치 않았다.
“이, 이, 이것 좀 봐볼래?”
“응? 대체 뭔ㄷ…….”
은수아의 핸드폰 화면이 보였다.
핑크빛과 보랏빛이 엉켜 소용돌이 문양을 만드는 화면이. 나는 자연스럽게 눈에 초침을 지우며 최면에 걸린 척을 연기했다.
“……된 건가?”
미안하지만 그런 건 걸리지 않는다.
나는 장난기가 들었지만, 꾹 참았다. 만약 장난쳤다가 은수아가 퍼트리면 그 순간부터 파국이 시작되기에.
“이, 이시우가 숨기는 가장 큰 비밀아, 안되지. 회귀자는 회귀를 하면, 회귀했다고 말할 수 없는 제약이 있으니까.”
회귀자로 유명한 영웅의 일화였다.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는 알리지 않았지만, 그의 모든 행보는 그가 회귀자 임을 가리킨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모두 짐작하였다. 모두가 그가 어떤 ‘제약’에 걸린 것을. 그리고 먼 훗날 회귀자가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그 일화를 알렸기에 알 사람들은 대부분 알았다. 라는 설정이다.
“그, 그럼 이시우는 은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세요.”
나는 손을 천천히 올리고 은수아의 머리를 찬찬히 쓰다듬었다.
“오오…….”
은수아가 감탄하며 나한테 이것저것 시켰다.
“이시우는 목말을 태워주세요.”
목말을 태운다던가.
“뒤, 뒤에서 뒤에서 포옹을…….”
뒤에서 포옹을 한다던가.
그렇게 30분쯤 나를 가지고 놀다가, 갑자기 헛, 하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큼큼, 이, 이제부터 시우는 은수아랑 단둘이 있을 때, 은수아의 아빠가 됩니다.”
“…….”
“시, 시우는 은수아를 보며 무한한 애, 애정을 느낍니다. 은수아를 칭찬하고 싶어 합니다. 아주 사소한 거라도 말이죠.”
“…….”
“그리고 은수아가 잘 하는 것이 많으면 사, 사, 상을 주, 주고 싶어 합니다.”
나는 조금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이쯤 되면 다음 내용이 슬슬 예상이 갔다. 19 금전적인 내용이라던가.
“사, 상은 은수아를 꼭 껴안아 준다던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입니다.”
은수아는 마지막 남은 양심이 맞지 않을까?
“그, 그리고 이 기억은 은수아가 손뼉을 칠 때 적용이 됩니다.”
은수아가 심호흡하고 잠깐 나를 보고는 최면 어플을 종료했다.
“됐나?”
“…….”
내 눈동자가 멍한 눈동자에서 서서히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은수아가 나를 보며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그리고.
짝.
손뼉을 쳤다.
이제부터는 은수아가 바라는 이상적인 아빠를 연기를 해야 한다. 가면을 만들었다.
================
[자상한 아버지의 가면 Lv.1]
아버지와 같은 행동을 할 시, 상대가 자신에게 애정을 느낀다.
================
김하린과의 경험으로 가면이 없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가면을 바로 작성했다. 나는 가면을 썼다. 얼굴의 표면 위에 무언가가 덧씌워지는 감각을 느끼며 내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수아야?”
“으응, 파파!”
“고맙구나. 수아가 날 위해 이런 선물을 주다니. 아빠는 감격했어.”
“아, 아냐. 파, 파파가 날 구해주느라 그렇게 된 건데.”
“그래도 구하느라 많이 힘들었을 텐데. 평소처럼 상이라도 줄까?”
평소처럼 상을 준다고? 도대체 뭐지.
나는 의아해했다.
“사, 상이요? 머,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거요?”
“그래. 이리로 오렴.”
내 몸이 내 다리 위를 툭툭 두들겼다. 은수아가 내 말을 이해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내 다리 위로 옮겼다.
내 몸이 은수아를 껴안고 천천히 은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은수아가 내 손에 머리를 맡기며 기분 좋은듯, 갸르릉소리를 내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가 내 손이 점점 내려가기 시작했다. 손을 쓰다듬던 손은 가슴 쪽으로. 반대쪽 손은 은수아의 허벅지 쪽으로 이동하였다.
어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