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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12화 (112/298)

〈 112화 〉 미로(3)

* * *

꿈을 꾸는 것 같이 몽롱했다.

윤채린은 머리를 흔들었다.

꽤 위험했다.

슬슬 ‘폭주’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윤채린은 고개를 흔들고 옆에서 눈을 감고 몸 상태를 점검하는 이시우를 보았다. 그 옆에서 어쩔 줄 모르겠어 하며 이시우를 바라보는 은수아도.

그 표정을 보자니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이시우한테 슬쩍 팔짱을 껴볼까. 팔로 배를 툭툭 치는 것도 재밌었다. 이시우의 복근은 꽤 탄탄해 만질 맛이 있으니까. 그러면 은수아의 표정이 볼만할 텐데.

그런 생각을 가지며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신이 미美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조형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따금 멍때릴 때 보면 자신조차 화들짝 놀랄 정도.

‘그게 다가 아닌 게 문제지.’

이시우는 가만히 보면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사람을 홀린다고 해야 하나. 요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력을 단련하는 초인들을 양성하는 학교인 만큼 이곳에는 미남미녀들로 가득하다. 그런 곳에서도 특출난 외모. 그리고 사람을 홀리는 것 같은 분위기.

당연하게도 이시우는 아이들 사이에서 큰 화제였다.

이시우는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이시우는 남녀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다.

여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때, 좋아하는 남자나 사귀고 싶은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이시우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그냥 한번 같이 자고 싶다, 처음은 이시우 같은 남자랑 하고 싶다는 그런 수위 높은 이야기.

남자들은 하루라도 이시우가 되고 싶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윤채린도 이시우가 좋았다.

그 좋음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아니다.

─설마 남자랑 사귀고 싶은 거야?

묘령의 소년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닥쳐.

─너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는 우리들의 바람을 이뤄야 한다.

─속세에 얽매이지 마라. 너는 천마다. 너는 하늘을 마로 물들일 마왕이다. 우리들의 비원, 백만이 바랬던 염원. 우리가 천년이란 세월을 바랐던 비원을 이루어줄…….

닥쳐.

나는 누구도 아니다.

네놈들의 비원은 내 알바가 아니다.

네놈들이 강제로 만든 인공 마왕 같은 게 아니다.

나는.

“괜찮아?”

걱정스러움이 묻어나는 말.

이시우가 자신을 보며 묻고 있었다.

“뭐야, 우리 시아 걱정했어?”

히죽, 하고 웃으며 이시우의 말에 답했다.

윤채린이 이시우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천마들의 사념이 폭주할 때 그가 곁에 있으면 꽤 안정되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불러도 사라지지 않는 망령들의 말이 이상하게도 이시우가 자신을 부르자마자 사라진다.

아마도.

그가 가지고 있는 특성일 것이다. 저 사람을 홀리는 요사한 분위기. 윤승하는 저 특성이 꺼림직하다고 말했다.

이시우의 특성은 사람을 홀리니 자신보고 멀리하라는 말과 함께였다.

그렇지만 윤채린은 저 특성이 마음에 들었다.

“뭘 그리 실실 웃고 있어. 정들게.”

이시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은수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을 조율했다. 윤채린은 서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기 학생인가?”

은수아가 의아하듯이 말했다. 윤채린이 은수아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

콰앙!

“저 미친놈!”

김하린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크게 뒤로 물러났다. 광익을 휘둘렀다. 황금빛으로 짜인 날개가 크게 휘둘러지며 쏟아지는 얼음과 불덩이들을 막았다.

그러나 공격은 그게 고작 끝이 아니었다.

바위, 검, 물, 얼음, 벼락 등. 십수 개의 공격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주위 환경이 조성된 정령사는 까다롭다.라는 말을 김하린은 체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동굴은 김하린에게 좋지 않다. 동굴이라고 부르기엔 꽤 넓지만, 기동에 제한됨이 있어서 그랬다.

검의 폭우가 쏟아졌다. 김하린은 광익을 이용하여 크게 뒤로 물러났다.

광익이 빛남에 따라 그림자가 커졌다. 뒤에서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사악­은밀하게 송곳처럼 생긴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김하린은 즉시 광익을 풀었다.

땅에서 가시들이 솟았다. 김하린은 몸을 틀며 광익을 일부 전개했다. 빛으로 짜인 날개가 아닌 깃털만을 생성했다. 그 깃털의 수는 다섯. 그것을 윤승하에게 던졌다.

윤승하는 막으려다가 뒤로 물러났다. 깃털뿐만이 아니었다. 삽시간에 자신에게 오는 검은 창이 보였다. 한종우가 마갑을 일부 개조하여 만든 마창. 그것은 자신도 경시할 수 없는 위력이 있다.

뒤로 물러난 윤승하는 태세를 정비하며 공격을 준비하려다가 멈칫했다.

두근.

심장 소리가 크게 요동쳤다.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이 들을 정도로.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한종우에게 서 말이다.

‘……뭐지.’

솔직하게 말해서. 윤승하는 한종우를 별로 경계하지 않았다. 그의 방어력은 인정하는 편이지만 윤승하와 한종우의 실력은 큰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정령들로 계속 공격하면 한종우는 그저 얻어맞는 것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김하린, 한종우, 그리고 이름 모를 학생 A.

기억에 없으니까 저 정도면 자신 혼자서도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여 그들을 공격했다.

독단적인 판단이었다.

성공률은 높았다. 아니, 성공률이 낮았으면 다른 학생들을 꼬드겼을지도 모른다. 윤승하는 김하린이 싫었으니까.

자신의 시우를 바라보는 눈이, 사랑스럽다고 쳐다보는 눈이 참을 수 없었다. 억지로 끼어들며 꼬리치는 모습이 싫었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지방 덩어리로 이시우를 유혹하려는 여우짓을 하는 것을 보았다. 최면으로 그를 꾀는 것을 깨달았다

감히 내 시우에게 최면을 걸어 성희롱 같은 짓을 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

두근.

심장 소리가 울린다. 동굴에 퍼져나가며 강한 위화감을 줬다. 윤승하는 혀를 차며 정령들을 불러 모았다. 윤승하의 주위로 십수 채의 정령들이 원을 그리며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쩌적.

갑옷에 균열이 일었다. 자그마한 균열. 쩌적쩌적­균열이 크게 일면서 갑옷이 갈라졌다. 갑옷 사이로 비늘 같은 것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종우는. 내심 아쉬워했다.

이것은 이시우와 결전에서 꺼내고 싶었는데.

자신의 고유 능력인 마갑. 그것은 자신에게 압도적인 방어력을 부여했다. 압도적인 방어력은 필연적으로 뛰어난 공격력을 만들었다. 마갑을 입고 돌진한다. 그것만으로도 같은 나이대에 적수가 없었다.

굳이 꼽자면 자신의 친척인 ‘겁화’의 능력을 타고난, 사촌 형 정도였다. 아니, 겁화와 마갑이 너무 상성이 안 좋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최강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아카데미에 들어오면서 그 생각이 깨졌다. 윤승하와 윤채린. 저 둘은 사는 세계가 달랐다. 상성이 안 좋다. 컨디션이 나빴다. 그런 수준의 변명이 통하는 적수가 아니었다.

은수아도 있었다. 방어력이 강한 마갑은 윤승하와 윤채린에게도 통용되었지만, 은수아의 칠색은 ‘격’이 달랐다. 그녀의 일곱 빛깔로 빛나는 검은 마갑채로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말도 안 되는 공격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이시우도. 처음에는 그저 머리만 좀 잘난 놈인 줄 알았다. 그리고 신체 능력치로 측정이 안 되는 기교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고사 때, 그에게 패배했을 때, 한종우는 큰 충격을 받았다. 영상을 돌려보면서 복기했다. 내가 실수했나. 다시 붙으면 이길 수 있을까? 결과는 아니었다.

충격을 받았을 때, 자신을 도와준 소녀를 보았다.

그리고 그 소녀에게 당당하게 이시우를 이긴 자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여름방학 때 죽을 각오로 훈련했다.

마갑. 그것에 자신의 특성을 더했다.

쩌저저적.

갑옷이 갈라진다. 그곳에서 매끈한 비늘 같은 것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투구도 용의 형상처럼 변했다. 박쥐를 닮은 날개가 돋았으며, 매끈한 비늘로 만들어진 꼬리도 생겼다.

새로이 진화한 마갑, 마룡갑.

비록 마나 소모가 극심하여 고작 1분밖에 유지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

윤승하가 놀란 표정을 보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쾅!

꼬리를 휘두르자 동굴에 길쭉한 자국이 일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동맹 맺기로 한 거 아니었나?”

“…….”

한종우의 말에 윤승하가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냥. 쟤가 맘에 안 들어서.”

“……뭐, 그럴 수도 있지.”

한숨을 쉬며 답했다. 한종우도 이시우가 싫어서 애들을 밀어 은근슬쩍 압박한 전적이 있으니까.

한종우는 잠깐 윤승하를 바라보았다. 마치 별 무리를 담은 듯이, 별들이 담긴 눈. 그것이 잠시 다른 쪽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혀를 찼다.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김하린을 바라보고는 땅을 박찼다. 바람의 용이 바람을 휘감으며 윤승하를 등에 태우고 이동했다.

“…뭐야, 저거 튄 거야, 지금?”

김하린이 어이없어하다가 멈췄다. 저 멀리서 이지아랑 아야네, 강한남 조와 임나연이 보였기 때문이다.

***

거대한 화면에 수십 개의 화면이 잡혔다. ‘탑’이라는 정해진 미로에 학생들이 헤매거나, 서로 싸우거나, 괴물들을 잡는 광경들이 화면에 잡히고 있었다.

그리고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공손하게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그 중앙에 거대한 의자에 15세 남짓한 소녀가 화면을 보며 손뼉을 쳤다.

“와, 저것들 완전 물건이네. 뭔 학생 주제에 벌써 중격에 도달한 놈이 4명이나 있어? 그리고 다른 3명은 곧 중격으로 넘어갈 것 같은데?”

“이번 1학년들 때문에 괜히 커리큘럼을 당긴 게 아니니까요.”

불량스러운 말투에 송라희가 조심스레 말을 했다.

“확실히…커리큘럼을 당길만하네. 나는 처음에 너희가 커리큘럼을 당기자고 하길래 이놈들이 대가리에 총을 맞았나. 하고 생각했는데.”

거침없이 말을 내뱉고 히죽. 하고 웃음을 지었다.

겉으로 보면 15세의 소녀였다. 보랏빛의 머리카락에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소녀. 옷은 하늘하늘한 보라색의 드레스를 입었다. 보랏빛 일색인 소녀.

그러나 어디까지나 겉의 모습이었다.

송라희는 눈앞의 소녀가 하는 말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다 썼다.

“미안, 미안. 그래도 확인해 보고 싶었거든. 요정족들이 꽤 틀에 박힌 놈들인데 갑자기 커리큘럼을 확 올려서 말이야. 아주 만약에 우리 애들을 골리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거든.”

“그럴 일은 없습니다…요정족은 누구보다도 교단과 거악을 없애고 싶어 하니까요. 요정족과 공허족, 용족. 이 삼 동맹이 깨질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렇지. 요정왕 오베론이…아차, 미안. 너희 치부였을 텐데. 내가 너무 무신경했네.”

“괜찮습니다.”

일부러 했을 말이지만 송라희는 내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 앞에 있는 존재는 그 정도의 위치에 선 존재니까.

“근데 저거 좀 위험한 거 아냐?”

1남 2녀가 있었다. 외모 하나만으로 시선을 끄는 소년.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금발과 빛바랜 은발을 한 소녀 둘.

이시우와 윤채린, 은수아였다.

송라희는 의아해했다.

윤채린이 위험하고는 하지만 저 소녀의 입에서 나올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직 그녀는 약하다. 송라희 조차도 싸운다면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을 못 하지만, 그녀가 나선다면 1초도 안 돼서 승부가 날 테니까.

“윤채린 말씀입니까? 확실히 저 애가 두른 마?는 위험하지만.”

“아니, 고놈 말고. 걔는 조금만 잡아주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은수아 말씀입니까? 은수아의 칠색이…….”

“아니, 저 남자 놈. 저거 저대로 둬도 괜찮은 거야?”

“……이시우 말씀입니까?”

송라희는 의아해했다.

윤채린은 폭주의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 티타니아가 알린 것 이상으로 놀라울 정도로 폭주하지 않았다. 아마도 모종의 어떤 것으로 안정을 취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은수아는 마법사의 시야로 봤을 때, 그녀가 가진 칠색이 대단히 불안정하다.

칠색.

고정, 반전, 흐름, 상생, 변동, 왜곡, 부정. 은수아의 칠색 검은 일곱 가지의 개념을 고정하고, 반전하며, 흐르게 만들고, 상생하여, 변동하고, 왜곡하며, 부정한다. 그것들을 엮어서 만든 것이 일곱 빛깔의 칠색 검이다.

그에 비해 이시우는 어떤가? 그의 성장세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가파르다. 그러나 그뿐이다. 은수아나 윤채린같이 어떤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흠, 그으래?”

소녀, 공허족의 왕은 히죽. 하고 웃으며 의자에서 내렸다.

“내가 착각한 것 같네. 다들 열심히 일하라고.”

왕은 밖으로 나왔다. 텅 빈 복도. 그녀의 그림자가 길쭉하게 늘어지며 하늘로 솟았다. 그리고 천천히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다.

“세바스찬. 방금 둘 어땠어?”

“금발을 한 소녀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비원을 이루고자 한 망령들에 붙들린 소녀. 소년은…글쎄요. 재능이 꽤 충만한 것 같지만, 저는 잘 모르겠네요. 오히려 은발의 소년이 더 재밌었습니다. 세계에 운명이 휘몰아치는 것 같은 그 실이.”

“그래?”

공허족의 왕은 히죽 웃으며 조금 전 소녀와 소년을 떠올렸다. 열 명가량 되는 망령들에 붙들린 소녀는 꽤 인상적이었다. 하늘에 닿고 비원을 이루고자, 모든 것을 내던진 것들.

은발의 소년은 그야말로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세계의 중심이 그 소년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 같은 거대한 실이 소년을 감싸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시선을 끄는 소년이 있었다.

‘이시우라고 했지?’

검은색의 왕관을 두른 소년.

그 주위에 떠다닌 무수히 많은 가면. 그리고 그 아래에서 하늘을 향해 뻗은 무수히 많은 손. 그리고 위에 떠 있던 주홍빛의 눈동자.

‘재밌네.’

정말로 재밌게 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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