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미로(2)
* * *
담임인 강한자 교수가 우리를 이끌고 탑으로 향했다.
역시나 이번 실기는 탑이었다. 그리고 그 탑이 미로용 이라는 것도.
“오늘의 실기는 ‘탑’ 체험이다.”
“탑 체험은 2학년 2학기 때 하는 거 아니었냐.”
“아, 진짜. 이게 대체 뭐야. 우리 1학년 이번에 커리큘럼 진짜 너무 빡센 거 아니야?”
“그럴 만도 해. 평균 자체가 엄청 높잖아. 작년에 비해서. 거기다가 2학년은 ‘겁화’선배 빼고는 미묘하니까, 1학년들은 반대급부로 평균 자체가 엄청 뛰어나니까 올리려는 생각도 있겠지.”
“아, 나 진짜 2학년들 보면서 성적 세웠을 때, 탑 20에는 들어갈 줄 알았는데, 중간 성적도 힘든 거 실화냐.”
강한자의 말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대부분은 푸념에 가까웠다.
“그것보다 빨리 대책 짜야 해. 윤채린 저거 분명 이시우랑 은수아 이끌고 날뛸 거라니까?”
“저번 서바이벌 때는 윤승하랑 은수아가 있어서 대적할 수 있었는데. 하, 하필 저 멤버냐. 진짜 양심 터진 거 아니냐고.”
“실기 탑 다섯 중 셋이 한 조라니, 진짜 양심 없냐?…….”
나머지는 우리 조를 견제한다는 내용이거나.
뭐, 당연했다. 실기에서 경쟁과 관련된 것은 윤채린은 극단적으로 패도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굳이 싸울 필요 없는 상황에서 적을 만들고, 자신의 앞길을 막는 존재는 모두 쓰러트리거나 하는 등의 행동이었다.
즉, 윤채린은 여기저기서 원한을 쌓아왔다는 말이다. 거기다가 윤채린을 막지 않으면 자신이 목표가 될 수 있으니 이미 여기저기서 힘을 합치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와, 벌써 탑이야? 진짜 마음에 든다니까. 저기는 좀 팰만한 애가 나오겠지?”
“탑 커리큘럼은 2학년 2학기에나 하는 건데. 뭐, 이 멤버면 걱정은 없겠네.”
그 반응에 비해 우리 조는 꽤 무사태평했다.
무리는 아니다. 사실 우리 조는 객관적으로 보면 정말 말이 안 되게 강하니까.
“수아, 너 탑에 대해서 좀 알아?”
“어. 아카데미에서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는 여러 종목을 정하고 무작위로 골라 형평성을 유지하는 편이지만, 이런 실기는 바꾸지 못해. 아카데미 위의 떠 있는 저 탑의 테마는 ‘미로’야.”
“미로? 아, 머리 아프게 됐네. 그냥 벽 부수면……우리는 시아가 있으니 걱정은 없겠네.”
“시아가 아니라 시우. 뭐, 나도 동의해. 시우의 머리라면 미로쯤은 별거 아닐 테니까.”
나는 미로에 대해서 떠올렸다.
꽤 많은 미로를 체험했지만, 조에 누가 배정되느냐에 따라서 난이도가 달라진다. 기억이 꽤 희미해진 지금은 듬성듬성 기억나는 편이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3개월 정도 안 해도 탑에 들어가면 금세 기억나는 편이니.
이런저런 생각을 마치니 강한자의 말이 거의 끝나고 있었다.
“안에 있는 거암괴석은 5점의 점수를 준다. 암석 거미는 마리당 1점. 그리고 보스 몬스터는 100점이다. 그리고 안에서 다른 학생을 제압하면 점수에 상관없이 2점을 부여한다. 점수는 탑 내부에 있는 드론과 카메라, 교수들이 채점한다. 뭐지, 윤채린. 질문이 있나?”
“네, 교수님을 쓰러트리면 어떻게 되나요.”
윤채린의 물음에 강한자가 머리가 아픈지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하게도 마이너스 100점이다. 혹시 모를 위험에 교수들을 배치한 것이니 괜히 귀찮게 하지 말도록.”
“넵, 알겠습니다!”
“다들 핸드폰으로 ‘좌표’를 문자로 보냈다. 다들 그곳으로 가서 탑을 공략하도록. 혹여나 다른 곳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페널티가 있으니 조심해라.”
페널티는 꽤 귀찮았다. 요정족이 거는 디버프의 일종이라 그것까지 달고 가면 고달프다.
“그럼 가자.”
내가 말을 하자 윤채린과 은수아가 내 뒤를 따랐다.
우리는 핸드폰에 적힌 좌표를 따라 이동했다.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동굴 앞.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꽤 으스스하네.”
“뭐야, 시아 무서워? 언니 팔짱 껴볼래?”
“파, 팔짱을 낀다고?”
윤채린의 장난에 은수아가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윤채린의 장난을 무시하고 주변을 살폈다. 동굴의 입구에 마나가 넘실거리는 게이트 같은 것이 있었다. 그 앞은 그물 같은 것이 막고 있었는데, 실기를 담당하는 요정족이 만든 일종의 결계였다.
“아무래도 이거 시간이 지나야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긴, 우리는 꽤 가까운 편이었으니까. 그럼 작전 타임인가?”
내가 입을 열 자 은수아가 답했다.
“작전을 제안하겠습니다! 작전 1. 보이는 족족 만나는 적은 다 부순다. 작전 2. 인기척이 나는 곳으로 몰려가 애들을 다 두들겨 팬다. 이상, 끝!”
윤채린이 손을 들며 말했다.
정말 훌륭한 작전이구나.
나는 잠시 탑에 대해서 생각했다.
탑은 거대한 미로다.
위치가 처음부터 무작위로 배정되어 꽤 힘들다. 파티가 무작위로 돌아오는데 그 파티원들이 가진 능력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 아니라 확실하게.
우리 조는 가장 빡센 곳으로 배치되었을 거다.
‘근데 그것도 어느 정도 여야지.’
은수아와 윤채린. 이 두 명만 해도 어지간하면 대적하기 어렵다. 괴물들 중 가장 빡센 보스 몬스터도 이 둘이면 공략할 수가 있다.
하물며 학생들로 저 둘을 공략하고자 한다면 꽤 머리가 아플 거다. 최소한의 멤버가 임나연, 이지아, 윤승하, 김하린.
최소한 이렇게 팀을 짜야 저 둘이 팀을 짰을 때 대적할만했다.
임나연이 빙정을 먹고 달라졌다고는 하나 빙정을 섭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즉, 빙정에 담긴 힘을 다루는 것이 미숙하다는 뜻이다.
빨라도 일 개월.
그 정도는 단련해야 ‘천영의 꽃’을 제대로 다룰 수 있으니까.
거기에 내가 끼어들었다.
우리 조는 쉽게 말해서 모든 학생의 표적이자, 모든 학생이 어지간하면 보자마자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다 뭉쳐서 연합 같은 걸 만들 것 같은데.’
아마 여기서 윤채린이 없다면 그러진 않을 거다. 문제는 윤채린이었다. 윤채린은 어지간하면 학생들을 잡으려고 난리를 치니까.
“그냥 보이는 애들은 다 잡고. 나머지는 보스 공략에 집중은 어때?”
“그게 내 제안이랑 뭐가 달라? 어차피 보스도 잡을 건데 그냥 다 패고 가자. 나중에 뒤통수치면 그게 가장 힘든 거 아냐?”
은수아의 제안에 윤채린이 조목조목 따졌다. 확실히 윤채린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적을 너무 많이 만들잖아. 체력의 안배도 생각해야지.”
“후, 어쩔 수 없구먼. 우리 수아가 조루니 이 언니가 힘낼 수밖에.”
“누, 누가 조루야!”
“하지만 나랑 하면 10분도 안 돼서 숨을 헐떡거리잖아.”
“누,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좀 하지 마! 내, 내 칠색은 단기 결전에 강해서 그런 것 뿐이라고. 너도 내 칠색이 두려워서 정면 승부는 절대 안 하잖아!”
“그렇지만 나는 수아의 큰 그게 두려운걸요.”
윤채린과 은수아가 투덕거리는 사이 시간이 다 되었다. 그물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었다.
적색의 눈동자와 금색의 눈동자가 나에게 향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그녀들이 눈으로 물었다.
“간단하게 가자. 보이는 애들은 다 쓰러트린다. 근처에 누가 숨어 있어도 남김없이 잡는다. 채린이가 정면에서 타격하고 수아가 채린이를 보조해줘. 단, 상대가 강하고 빠르게 쓰러트려야 한다면 수아가 칠색을 쓴다. 나는 어지간하면 도주하는 애들을 잡겠지만, 상황이 여의찮으면 본대에 합류한다.”
“오케이. 간단해서 좋네. 가자고~.”
“그러자. 가장 타당한 것 같네.”
우리는 워프 게이트 안으로 향했다. 공간이 뒤집히는 감각을 느꼈다. 아차 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다른 장소로 이동해 있었다.
‘익숙해.’
들어서자마자 지형이 익숙했다.
맵을 들여다보듯 훤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길에 들어서자 기억이 떠오르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된다.
‘거기다가 지식 열람도 작동되고.’
미로에서 아이템들을 떠올리면 즉각 즉각 어딨는지 지식 열람이 가르쳐줬다.
“갑자기 자신이 없어지는데.”
“질 자신 말이지? 나도 그랬어.”
내 말에 윤채린이 킥킥거리며 받아쳤다.
당연한 말이었다.
***
고오오──!
3m 남짓한 거대한 골렘이 주먹을 들었다. 그것을 내리치려고 하자 강한남이 재빠르게 다리로 돌격했다.
저돌맹진.
돌격에 온갖 보정을 가해주는 그의 고유 능력이었다.
쾅!
굉음과 함께 다리를 부수는 데 성공한 강한남이 멈추지 못하고 동굴 벽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지아는 얕게 호흡을 드리 내쉬었다.
아카데미에서 지급하는 보조용 지팡이를 들었다.
지팡이가 꽤 어색했다. 옛날, 이지아는 이시우의 추천으로 지팡이를 받았다. 라플라스의 지팡이. 그리고 그것에 깃든 정령을 깨워 그녀는 정령에게 마법을 배웠다.
그래서 퍽 어색했다.
어지간하면 항시 붙어서 말을 걸던 정령이 조용히 있어서.
“그래비티 체인.”
촤라라락─
수십 개의 체인이 이리저리 몸을 틀며 거암괴석에게 향했다. 수십 개의 체인이 거암괴석을 타격하며 몸을 구속한다. 본디 그래비티 체인은 상대를 구속하는 데 초점을 두었지만, 이지아의 특성인 마도의 업이 저런 효과를 뿜었다.
그녀가 만드는 마법은 얌전하지 않다. 오히려 폭주에 가까웠다.
체인이 구속하는 것을 확인하며 마법을 발동한다.
프리즘 빔
아케인 임팩트
화산탄
냉기를 내포한 푸른색의 빔이 거암괴석을 얼렸다. 그 옆에 보랏빛으로 응축된 구체와 불과 대지가 섞인 화산탄이 거암괴석을 타격하였다.
콰앙!
거대한 폭음을 내며 거암괴석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이지아가 그것을 보며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이것으로 이지아의 조가 모은 점수는 10점이었다.
“스고이데스요(대단하네요)! 역시 지아 씨 화력은 말이 안 되네요. 팀에 지아 씨 같은 마법사가 들어와서 정말 안심이 되네요.”
강한남을 제외한 다른 조원, 암석 거미를 처리하고 돌아온 아야네가 이지아를 칭찬했다.
“뭘. 아야네도 대단한데. 보통 검사는 암석 속성에 힘을 꽤 못 쓰는데.”
“제 특성이 이런 쪽에 오히려 강하니까요. 아, 강한남 씨도 활약 대단했어요. 거암괴석은 굉장히 단단한데 다리를 무너트리시고.”
“흠, 별거 아니다.”
쿨한척 하는 강한남의 어깨가 슬쩍 올라갔다.
별꼴이다. 이지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슬슬 앞으로 갈까?”
“하이(네). 슬슬 약속 시간이 되가니까요. 소시떼(그리고) 윤채린 씨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꽤 무서워서.”
“걱정 마라, 아야네. 내가 지켜줄 테니까.”
“혼또니 타뿌리(정말 듬직하네요), 아, 죄송해요. 아직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정말 듬직하네요, 강한남 씨는.”
아야네의 칭찬에 강한남이 입가를 씰룩거렸다.
어이가 없네.
학기 초에 자신에게 들이대더니 이제는 아야네에게 들이댄다.
물론 이지아는 그편이 좋았다. 괜히 강한남과 친하게 지내다가 시우의 오해를 사지 않아도 되니까.
걸리적거린다면 아야네였다.
한국어가 어색하다고 했지만, 아야네가 한국어를 현지인 못지 않게 하는 것을 자신의 가문이 주최한 파티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이따금 그녀는 현지인 만큼 한국어를 쓰기도 하고.
아야네가 저러는 건 연습하고 있는 거다.
내 시우에게 감히 꼬리를 칠 준비를 말이다. 반에서 남자들이 일본어 쓰는 여자애 귀엽다─라는 말을 듣고서 말이다.
“가자. 빨리 다른 애들을 만나러 가야지.”
“소데스까(그럴까요).”
아야네와 대화하자 묘하게 날이 선 듯한 이지아.
슬쩍 웃으며 자신을 보는 아야네를 보며, 강한남은 확신했다.
아야네와 이지아가 자신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고 말이다.
"전위인 내가 앞에 서야지. 다들 내 뒤에 있어."
강한남이 그리 말하며 앞에 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