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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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라.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서 고민했다.
어떤 것들을 골라야 할까. 이건 좀 고민이 된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 개 보다는 한 단계 위에 있는 물건이 어떨까?
“물건 세개보다는 한 단계 위에 있는 물건을 골라도 될까요?”
“한 단계 위?”
요정족의 보물고.
요정족들이 오랜 기간 모은 만큼, 여왕이 마음대로 하사할 수 없는 물건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미 타락해버린, ‘왕’이라 불리던 이의 물건이나 요정족들을 상징하는 ‘십삼월’같은 물건.
여왕과 종족들의 장이 공로를 인정하여 보물고에는 그 등급이 대충 다섯 단계로 나뉜다.
여기서 공로를 인정받아 등급이 높아질수록 물건이 더 좋은 것들이 나온다.
아마도 지금 받을 수 있는 물건은 보물고 3등급 정도의 물건들일 터.
차라리 4등급 무구 하나를 받는 것이 더 이득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에 몇 가지 무기들이 떠올랐다.
상위의 무기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작업을 통하여 ‘주인’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공간 속에 잠든 무기를 떠올렸다. 「천변」과 그란데힐에게 받은 「벼락검」.
이 두 개로 당분간 무기 문제는 크게 없다. 여차하면 남다윤 찬스나 그란데힐 찬스를 이용하면 되니까.
“네, 그럼 보물 세 개 정도면…보물고에 있는 다른 하나의 물건을 골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별의별 걸 다 알고 있구나.…그래, 알았다.”
여왕이 그렇게 말하며 손뼉을 쳤다. 두루마리가 한번 접히더니 다시 펼쳐졌다. 홀로그램처럼 튀어나왔지만, 방금보다 가짓수가 명백하게 적어졌다.
나는 두루마리를 차분하게 훑었다.
「환영검 이타인」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검의 분신을 생성하여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검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지나쳤다. 나에게는 특성 어검으로 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얻을 수 있는 특성과 겹치지 않으며 내 성장 방향에도 맞는 무기.
지금 당장은 사용할 수 없더라도 후에, 주인의 인정을 받아 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무구를 골라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시선을 끄는 무기가 하나 보였다.
「샛별의 영광」
거대한 창 형태의 무기다.
평소에는 별의 마력으로 마력을 충전하여, 필요할 때는 마력을 개방하여 한방이 가장 큰 무기.
극한의 속도와 공격력을 가지고 있지만, 큰 한방은 없는 나에게 좋은 무기였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더 있었다. 「실피드의 증표」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바람 지배력을 극대화하여 바람을 ‘물질화’하는 능력을 갖춘 배지 형태의 액세서리였다.
예를 들어 근처의 바람을 붙잡아 창으로 만든다든지 허공에서 발판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흐음.”
나는 차분하게 생각했다.
둘 다 일장일단이 있다.
「샛별의 영광」을 고르면 부족한 한방이 채워진다.
샛별의 영광은 제대로 명중하기만 한다면 상격의 영웅조차도 일격에 보내버릴 수 있다.
단점이라면 맞추기가 힘들다는 건데, 내 속도로 어느 정도 커버가 될 테고.
「실피드의 증표」는 안 그래도 상격조차도 제대로 반응할 수 없는 내 속도가 더욱 예측하게 힘들어지는 장점이 있다.
고민된다.
정말로 둘 다 탐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0분을 고민했을까.
나는 한 가지를 택했다.
내 선택이 좋다는 듯, 티타니아가 울상을 지었다.
***
나는 오랜만에 임나연이 있는 부실로 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제 내가 임나연에게 건네준 빙정을 소화해내기 위해서이다.
좋은 영약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그에 따른 준비가 철저한 게 좋다.
그 정도의 영약이면 손실이 어느 정도 나도 충분히 효과를 보겠지만, 당연하게도 손실이 안 나는 것이 가장 좋다.
다만 그 손실률을 줄이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서 문제지.
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부실 문을 두들겼다.
똑똑그러자 안에서 활발한 기척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문 앞으로 온 인기척이 문을 활짝 열었다. 임나연이었다. 안쪽에는 최유나가 비서처럼 안경을 치켜 올리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근육을 보아하니 열심히 단련하셨군요.”
“……네, 다 선배 덕분이지요.”
최유나는 신체를 ‘보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신체의 모든 것들을 수치화하여 극한으로 단련시킬 수 있는 전문 트레이너. 그러나 최유나는 나를 볼때는 수치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충 근육으로 보아 내가 어느정도 능력치를 가졌는지 예상만 할 뿐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을 보니 여러 가지 아티팩트와 유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아마도 최대한 손실률을 줄이기 위해서 구해온 것이겠지.
솔직히 여기까지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굳이 필요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나연이 강력하게 주장해서 일단 오기는 했는데.
“그럼 시작할까?”
“응.”
임나연이 바닥에 깔린 카펫 위에 양반다리를 하였다.
품에서 목함을 꺼낸 다음 목함을 열었다. 방 안의 온도가 내려간 듯한 기분이었다.
임나연이 그것을 잠깐 바라보다가 그대로 입 안에 넣었다.
우웅─. 대기가 떨렸다.
순간적으로 임나연의 몸속에서 마나가 폭발하듯 팽창하였다. 시린 냉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쩌적거리며 창문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비염.”
이글거리는 보랏빛의 불꽃이 작은 요정의 형체를 갖추더니 비염이 소환되었다. 비염을 소환하자 추위가 꽤 가셨다.
[우와, 장난아니네. 도대체 뭘 먹는 거야? 그냥 영약이 발산하는 파동만으로도 이런 추위라니.]
비염이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그에 동조하듯이 최유나가 유물들을 조작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쩌적. 쩌적.
부실의 물건들이 서리가 끼며 얼어가고 있었다. 비염이 그것을 느꼈는지, 불길을 거세게 뿜었다. 나와 최유나가 있는 반경 2m 안. 그곳을 제외하고 부실의 모든 물건에 서리가 끼였다.
그리고 서서히 임나연의 머리카락 색이 하늘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머리의 뿌리 부분부터 서서히 하늘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바닥까지 닿는 머리카락이 전부 하늘색으로 바뀌었다.
마나가 ‘빙속성의 마력’을 띄기 시작한 반증이었다.
하늘색으로 물든 머리카락 위. 얼음으로 이루어진 꽃이 피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루처럼 부서지면서.
임나연이 조용히 눈을 떴다.
하늘의 색을 닮은 푸른빛이 번뜩였다.
“후우.”
임나연이 숨을 들이 내쉬자 하늘색으로 물든 머리가 다시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검은색의 머리와 검은색의 눈.
그러나 임나연은 조금 전의 임나연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나는 정보 열람을 통해 상태창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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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임나연
근력 : 25
민첩 : 25
체력 : 20
마력 : 30
고유 능력 : 대해의 마나
특성 :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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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가 5나 늘었네.’
임나연의 마력이 30에 걸쳐있다.
거기다가 임나연의 고유 능력, 마나를 극단적으로 올려주는 대해의 마나까지 결합하면 수치는 30 이상일 거다.
미력하나만 따지자면 아마 아카데미의 학생 중에서도 발군 일터.
“앗!”
임나연이 일어서려다가 몸이 휘청거렸다.
나는 빠르게 임나연의 몸을 바쳤다.
“헤헤, 고마워.”
“괜찮아?”
“응, 그냥 조금 어지럽네. 너무 심력을 쏟아부었나?”
“그럴만해. 혹시 몸에 어디 이상한 부분은 없고?”
“으음……. 이상한 부분은 없는데…….”
뭔가 부족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부분이 없으면 된 거지. 나는 왕좌에 임나연을 앉혔다. 느낌이 묘했다. 처음 임나연이 나에게 최면을 걸고 주인님이라고 불렀던 장소.
“그럼 나연이 잘 부탁할게요.”
“예, 임나연 님은 제가 잘 보살피겠습니다. 걱정하지마세요.”
나는 임나연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럼 이제 부실로 가볼까.
자파의 약을 제조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중간고사가 다가오는데, 중간고사 준비도 해야 했다.
“허~접♡”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에 매칭이 되지 않는 말투.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분홍색의 머리가 보였다.
아카데미는 교복의 변형이 자유롭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은 변형을 자유롭게 한다. 예를 들어 이지아는 하늘하늘한 치마를 입는다던가, 임나연은 은근히 치마를 줄이고 교복을 알맞게 입어서 가슴이 강조되든가 하는 식이었다.
그중에서 교복의 변형이 가장 심한 것은 김하린이었다.
와이셔츠를 팔을 벌릴 때마다 겨드랑이가 보이는 민소매 와이셔츠로 만들고 그 아래는 타이트한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하얀색의 재킷은 어깨에 걸친 김하린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어. 시, 시우야, 아, 안녕?”
“안녕. 근데 뭐 하고 있었어?”
“자, 잠깐 연습 좀 하고 있었지.”
연습?
어떤 연습을 하는데 허접을 말하는 거지.
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중2병 하면 은수아가 대표적이지만, 김하린도 그에 못지않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좀 더 심각한 정도였다.
“그, 그럼 난 가, 가볼게.”
김하린이 총총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툭, 하고 책이 떨어졌다.
나는 김하린이 떨어트린 책으로 눈길을 옮겼다.
제목은 요즘 남성에게 인기 있는 여자상이라는 책이었다.
그래서 허접을 외쳤던 건가.
근데 왜 허접을 외치는 거지? 이건 이해가 조금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김하린과 눈이 마주쳤다.
“그, 그게, 이, 이건 반 친구가──.”
나는 김하린에 변명이 조금 슬퍼졌다. 김하린은 반에서 꽤 겉돌고 있었다.
이쁘장하고 꽤 발랑 까진 모습에 그녀를 어떻게 해보려는 남자들은 있고, 그런 남자들 때문에 여학생들 사이에서 시기와 질투를 받는 것이 바로 김하린의 현재 위치였다.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나나 아니면 이지아 정도였다.
“반 친구가 추천해준 책이었구나.”
“그, 그렇지. 아, 호, 혹시 시우도 읽고 싶어?”
“아니, 난 책은 잘 안 읽어서.”
책을 주워서 김하린에게 건네줬다.
“그, 그럼 다음에 보자.”
김하린이 내게 책을 받고 거의 뛰어가다시피 반대쪽으로 향했다.
***
“오늘 수업도 야외 수업이다.”
강한자의 선언에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소리나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다름이 아니라 요즘 수업이 야외에서 실습을 하는 것이 늘었다. 그 빈도는 일주일 수업 중 4일을 차지한다.
철은 두드려야 단단해진다.
그 신념하에 교장이 학생들을 굴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전을 겪어야만 강해지고, 돌발 상황에서 좀 더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기에. 나도 동의하는 내용이지만 그 빈도가 좀 심하긴 하다.
“오늘은 조를 배정하겠다. 조를 구성하는 방식은 ‘무작위’이다. 그러나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이 많다고 좋아하지는 마라. 그만큼 난이도가 높아지니까.”
성적이 상위인 학생들이 많아질수록 난이도가 높아진다라.
던전은 아니었다. 던전이었다면, 성적에 따라 무작위 배분을 했을 테니까.
그러면 미로 탑 체험인가.
미로 탑은 가상의 탑을 만들어, 거기에 미로를 만들어둔다. 미로에는 학생들을 골리는 함정이 잠들어 있고, 학생들의 능력을 올려다 주는 버프도 있다. 쓰기에 따라 유용한 도구들도 있고.
물론 괴물들도 나온다. 거암 괴석이라던가, 암석거미라던가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보스몬스터, 미노타우로스가 나온다.
미노타우로스.
다른 게임에서는 꽤 심심찮게 나오는 괴물이나 로크는 희한할 정도로 신화에 많은 집착을 한다. 그 예시가 바로 라미아. 원래대로라면 그냥 잡몹쯤으로 나올 텐데 여기에서 미노타우로스는 상격이 여럿이서 달려들어야 잡을 수 있다.
물론 가상의 탑이니만큼 본판의 10분지 1의 힘도 내지 못하지만, 윤승하나 윤채린 정도면 단신으로도 잡을 수 있다.
“그럼 다들 조를 편성하겠다.”
그리고 내 조는.
“이야, 이거 완전 최강 조 아니야? 시아는 뒤에서 엄호만 해. 이 언니가 지켜줄 테니까.”
“시우가 왜 시아야. 뭐, 페널티가 있다고 해도 이 정도면 1등은 당연하려나.”
악동같이 씩, 하고 웃으며 말하는 윤채린과 묘하게 얌전해진 은수아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