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삼자동맹(2)
* * *
나는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왔다.
이유는 저번 서바이벌에서 얻은 보상, 월광의 단을 다른 것으로 바꿔 먹기 위함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한서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 꽤 컸다.
“그럼 밥이라도 사줄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대하가 요즘 제철인데.”
“에이, 우리 사이에 뭘 그리 거창한 곳으로 갈려고 해. 내가 잘 아는 제육 덮밥 집 있는데 거기로 가자.”
정한서가 나를 이끌고 제육 덮밥 집으로 갔다.
안을 보니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손님들이 많았다. 맛집인가 보네.
나랑 정한서는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거, 진짜 다른 사람한테 줘서, 다른 물건으로 바꾸려고? 그거 3반에 현성이가 엄청나게 탐내던데.”
“어. 내가 원하는 게 그 사람한테 있거든.”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주문하시겠습니까?”
종업원이 끼어들었다.
사람이 많아서인지 묘한 짜증이 서려 있었다.
“여기 2인분 같은 1인분 제육볶음 주세요. 시우, 너도 먹을 거지.”
“응.”
“그럼 제육 볶음 2인분으로 주세요.”
“네.”
종업원이 무신경하게 식탁 위에 있는 메모판을 꺼내 막대기 두 개를 표시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근데 선글라스랑 마스크 쓰는 거 좀 귀찮지 않아?”
“이거 벗으면 더 귀찮아져서.”
“……하긴 그렇겠다. 학교에서도 장난 아니었으니까. 그거 알아? 애들끼리 이번에 너 빼빼로 데이 때 빼빼로 몇 개 받을지 내기하더라.”
“나도 궁금하네.”
피식 웃으면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다. 이제 좀 편하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여기저기서 시선이 쏠렸다.
“캬, 진짜 개 잘생겼네. 남자가 봐도 반하게…뭐, 뭐야, 그 시선은.”
“……아냐.”
저 대사에 원한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잠깐 정한서를 노려봤다.
“근데 그쪽에 네가 탐낼만한 물건이 있나? 하긴, 부자는 3년 이상을 간다고 했으니.”
“뭐, 그렇지.”
“여, 여기 주, 주문하신 제육볶음 나왔습니다.”
종업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적당히 인사해주고 그릇을 받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너 고기 추가했어?”
“아니, 안 했는데?”
명백하게 정한서 그릇 위에 올라가 있는 고기양과 내 밥그릇 위에 올라가 있는 고기양이 달랐다. 족히 2배 이상은 넣어준 것 같은데.
“여, 여기 서비스입니다. 마, 맛있게 먹어주세요.”
종업원이 내 앞에 만두 4개가 담겨있는 그릇 하나를 올려놨다. 이건 좀 익숙하지 않네. 나는 떨떠름해 하며 고맙다고 답했다.
“……잘생긴 애들은 제육 집에 가도 서비스가 나온다는 말이 사실이었네. 3년째 단골인 나에게 서비스 하나도 없는데.”
정한서가 부럽다는 말투로 얘기했다.
나는 괜히 쑥스러워져서 제육 볶음을 입에 넣었다.
뭐, 맛있네.
***
밥을 먹고 나오고 거리를 나서고.
후식으로 근처에 파는 타코야끼 먹는 길이었다.
“그럼 난 가볼게.”
“어. 오늘 고마웠다.”
손을 흔들며 정한서를 보내줬다. 정한서가 차를 이끌고 사라졌다. 히어로 아카데미의 학생은 성인 취급을 받기에 운전면허도 취득할 수 있다.
뭐, 예비 영웅들이라 집안이 빵빵한 애들이 대부분이라 굳이 면허를 취득 안하는 애들이 있기는 하다. 나도 슬슬 면허를 따야 되기는 하는데.
타코야끼 하나 이쑤시개로 찍은 다음 입에 넣었다. 매콤한 소스와 씹히는 문어가 일품이었다.
빵빵.
바로 옆에서 경적이 울렸다. 고개를 돌리니 매끈한 노란색의 스포츠카가 보였다. 그리고 창문 틈으로 팔을 내밀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있었다.
머리 위로 선글라스를 올리고 몸에 자신이 있는 듯,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카락 색은 염색했는지, 금색이었고, 기가 좀 세 보이는 여성이었다.
“이봐, 거기. 잘생긴 애.”
“저요?”
“존댓말이야? 생긴 것답지 않게 귀엽네. 응, 너. 나랑 데이트할래?”
이거 설마 역 헌팅인가.
“약속이 있어서, 사양할게요.”
“친구랑 놀려고? 나랑 노는 게 더 재밌을 텐데.”
여성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별로 저쪽 여자랑 놀고 싶지는 않은데.
그래도 혹시 몰라서 지식열람으로 정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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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선유라
근력 : 10
민첩 : 13
체력 : 12
마력 : 27
고유능력 : 트윈 스펠
특성 : x
‘전형적인 마법사 능력치네.’
고유능력이 꽤 좋았다. 트윈 스펠. 한번 마법을 영창 하면 마력을 일정하게 대가로 지급하여 영창한 마법을 한 번 복사하는 능력이었다.
…꽤 탐났지만, 나는 자제했다.
안 그래도 그란데힐까지 애인으로 삼는 바람에 부족했던 정력이 요즘 턱없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근데 마법도 슬슬 파야 되긴 하는데.’
원래대로라면 한 우물만 파야 했다.
보통 게이머들이나 이 세계에서 권장하는 성장 루트이기도 하고.
그러나 나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가면의 능력으로 나는 마법사이자, 정령사이며, 전사이기도 했다. 이런 쪽은 보통 애매하거나 만능이지만…….
“어때, 나랑 같이 데이트할래?”
여성, 선유라의 물음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약속한 시각은 3시였다. 지금 시각은 12시 21분. 그 시간 동안 주변에서 카페에 들어가 적당히 시간을 죽치고 있으려고 했는데.
“그럴까요?”
***
“흐아앙♡”
선유라가 신음을 내며 침대 위에 기절하듯 쓰러졌다.
그래, 맞지. 이게 정상이지.
그동안 내가 상대해온 여성들이 너무 강했을 뿐이다.
'좀 미안하네.'
나는 침대 시트 위에 있는 핏자국을 보았다. 데이트하자고 하길래 당당하게 응했는데 설마 처녀였을 줄은 몰랐네. 하지만 나랑 한 거니까 나름 추억이 된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 미안하지는 않았다.
나는 콘돔을 빼고 휴지통으로 던졌다. 몸을 일으키고 샤워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에 맞자 나른한 정신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면도 얻었다. 트윈 스펠은 레벨이 낮아 마력을 꽤 잡아먹을 것 같은데.
빠르게 샤워를 끝내고 계획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월광의 단.
그것은 복용한 이에게 회복력을 극도로 올려주는 능력과 마나가 미약하나마‘신성’을 띄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월광의 단은 그 자체로도 매우 뛰어난 영약이나, 마기에 잠식된 이들이 회복하고자 한다면 이만한 영약이 없다.
그리고 내가 노릴 것은 마기에 잠식되어 고통스러워하는 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그것은 내가 노리고 있는 ‘던전’의 열쇠 역할을 한다. 열쇠 없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최상격에 발을 살짝 들인 남다윤 조차도 열쇠 없이 그 던전을 공략하고자 하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높아진다.
반대로 열쇠만 있다면 당장 나 혼자서도 빠르게 클리어가 가능한 던전이다.
‘학기 초에 내가 와도 말이지.’
극단적인 난이도.
그러나 보상은 난이도에 비례하지 않는 던전이었다. 대부분이 난이도에 비례하는 던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만한 꿀 던전은 구하기 힘들다.
“샤워하고 오는 거야? 한 번 더 안 해?”
선유라가 살갑게 말했다.
“약속 때문에. 나중에 만나서 하자. 번호 줘봐.”
선유라가 내 핸드폰에 번호를 찍었다. 물론 다음에 만날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얼굴은 이쁜데 가슴이 B컵이었다.
윤승하가 더 작았던 시기가 있지만, 윤승하는 골반이 크고 얼굴도 취향을 가리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선유라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자기, 약속이 있다고 했지? 내가 차로 태워줄까?”
“태워주려고? 나야 고맙지.”
“그전에 나 잠깐 화장 좀……. 아까 자기가 얼굴에 뿌려서 화장이 조금 지워졌어.”
“그래서 싫었어?”
“아니, 존나 좋았어. 아, 자기 아들 섰네. 시간은 없으니까 이걸로 뺄래?”
선유라가 혀를 내밀며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한 발 빼니 머리가 더 잘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약간의 현자 타임을 느끼며 호텔 밖으로 나왔다. 선유라가 주차장에 대놓은 스포츠카의 문을 키로 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보조석에 앉았다.
시트가 수상할 정도로 푹신했다.
나는 핸드폰에 들어가서 길 찾는 어플을 찾았다.
“자기, 혹시 여자친구 있어?”
“왜?”
“아, 미안. 자기 얼굴 정도는 당연히 있겠지? 그, 그럼 우리 치, 친구라도 어때?”
“친구? 난 친구 잘 안 만드는데. 만들 시간도 없고.”
“그, 그럼 파, 파트너는 어때? 세, 섹스 파트너. 자기가 시간만 말해. 내가 다 맞춰줄게.”
“생각해 볼게.”
“지, 진짜지? 그럼 나 자기가 올 때까지 기다려도 될까? 자기, 갈 때도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보다 내 차 이용하는 게 더 좋잖아.”
그렇긴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 잠깐 사이에 카톡이 꽤 많이 왔다.
그런데 모르는 이름이 몇 개 있었다. 보니까 전부 여자 이름인데 얘네는 대체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아낸 거지?
카톡을 확인해보니 자기는 누구니 혹시 나에게 관심 있냐는 등의 헛소리들만 있었다. 빠르게 차단을 눌렀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선유라가 차를 빠르게 몰고 있었다. 그녀가 운전을 잘 한다는 게 아니라 주변의 차들이 알아서 비켜줘서 운전할 공간이 넓어서였다.
“어? 자기, 여기에 볼일이 있었어?”
선유라가 당황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태연하게 끄덕였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담하게 지어진 2층 주택이었다. 본래 이곳은 이 근처에 머물던 이들이 별장으로 쓰는 곳이지만, 가세가 무너지면서 이곳으로 집을 옮겼다. 라는 설정이 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안절부절 해하는 선유라는 뒤로 했다.
“자, 자기야. 내, 내가 어, 엄청 근사한 곳을 아, 알고 있는데. 요리하는 영웅으로 유명한 사람 알지? 그 사람 제자가 운영하는 식당인데.”
“나중에 가자.”
이건 좀 혹했다. 하지만 지금은 볼 일이 우선이었다.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잠시 후,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아, 오늘 오시기로 한 시우 님이셨군요. 기다리고 있었……?”
안쪽에서 50대 언저리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나를 환한 미소로 맞아주려다가 멈칫했다. 시선이 내 옆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선유라는 한숨을 쉬었다.
“왜, 왜 버, 벌써 온 것이오? 이, 이번 달 빚은 다 갚지 않았소?”
“그것 때문에 온 거 아니야.”
대사로 둘 사이의 관계를 짐작했다. 빚쟁이와 채무자의 관계. 꽤 귀찮은 관계네.
“먼저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아드님이 꽤 위중하다고 들었는데.”
“아, 죄송합니다. 안에 들어오시죠.”
중년 남자의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을 지나고 마력이 넘실거리는 결계가 보였다.
“여기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중년 남자가 몇 가지 수식을 풀고는 문을 열었다. 안을 보니 10살 남짓한 소년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물건은?”
“여기 있어요.”
아공간에서 검은색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여니 백색의 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 미친! 워, 월광의 단이잖아?”
“오, 이걸 알아? 꽤 박식하네.”
“다, 당연하지. 그 콧대 높은 요정족들만 만들 수 있는 거잖아? 재료도 희귀해서 거의 학생들만 구할 수 있을 텐데? 히어로 아카데미에 연줄이 있어?”
“뭐, 그렇지.”
선유라의 말에 대충 얼버무리며 중년 남성에게 물었다.
“거래 내용은 아시죠?”
“네. 월광의 단을 대가로 이걸 원하신다고.”
중년의 남성이 품에서 펜던트를 꺼냈다. 보석 장식이 하나도 없으며, 도금된 은이 거의 다 떨어진 낡디낡은 펜던트였다.
나는 지식열람으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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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의 징표]
키르케던전의 열쇠.
키르케던전으로 간다면 그대를 바른길로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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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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