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변화(5)
* * *
언제부터였을까.
자신이 삐뚤어진 관심이라도 받고 싶어 했던 계기가.
어렸을 적이었다.
자신의 부모님이 모종의 사고를 겪은 뒤, 돌아가셨다. 가족이라는 존재들은 전부 자신을 키우기를 거부하였을 때, 고모가 자신을 상아탑으로 데려가서 키운다고 하였다.
무슨 일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 은수아는 상아탑에 고모를 따라갔었을 때의 일이었다.
상아탑 내부에 있는 마법 수련실에서 수련생이 마법을 쓰자, 그것을 보며 홀린 듯이 최하급 마법을 발현했을 때.
그날, 상아탑주가 자신을 후계자임을 천명했다.
쟤가 걔야? 4살인데 마법을 ‘본’ 것만으로 발현한 천재가?
어. 향후 500년 내에 있을까 말까 하는 재능이라던데. 야, 수아님 오신다. 빨리 고개 숙여.
야, 쟤 아직 4살이야.
어쩌라고. 다른 상아탑 후계자들보다 월등한 재능의 소유자인데. 아마 수아님이 상아탑주가 될걸? 예비 상아탑주에게 어릴 때부터 잘 보이면 더 좋지.
그때부터였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귀여운 아이에서 다르게 보게 된 게.
은수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를 어려워하기 시작했다.
미친, 이제 10살도 안된 애가 하급 마법을 구사한다고?
10살에 최하급 마법을 구사하는 것만으로도 천재 취급받는데.
처음에는 기분 좋았다.
은수아는 마법이 재미있었으니까. 재밌는 것을 하는 것으로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것은 기분이 좋았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역시 차기 상아탑주…….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은수아가 배우기로는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공손하다고 배워야 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공손하게 대했다.
그것이 처음에는 퍽 재밌었다.
어색했지만, 다들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었으니까. 무관심했던 친척과 가족과는 달랐다. 어린이집에서 머리카락 때문에 자신과 거리를 둔 어린아이들과는 달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녀가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그녀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혹은 질시하고 질투한다.
또래 아이들은 자신을 상전 모시듯이 받든다. 어른들이 자신을 경외하였다.
만약 은수아가 조금 더 영악했다면 그것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은수아는 평범했다.
재능은 타고났으나,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놀고 싶은 그냥 평범한 소녀였다.
네가 그 유명한 상아탑주로 내정된 마법사냐?
그래서 아카데미 생활은 재밌었다.
여기는 자신을 ‘동등’한 학생으로 보는 애들이 많았다.
그들과 함께하는 학창 생활은 재밌었다. 어려워하는 이지아나 김하린도 있었지만……그래도 그들은 은수아로 대해주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리고 이시우.
어딘가 공허해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는 소년이었다. 미래가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며 상아탑의 주인조차도 알아보지 못한 물건을 알아보는 재주.
그리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성장세. 마치 미래에서 회귀한 듯한 인물.
처음에는 그저 흥미 정도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와 친해지면서 어느 순간 그에게 인정받고 싶어졌다.
그래서 은수아는 무리했다. 굳이 혼자 갈 필요는 없었는데.
혈마와 싸우면서 든 생각이었다. 만약 이시우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어떻게든 해줬을까. 아니면 같이 오지 안아서 다행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여기서 쓰러진다면 다시는 못 볼 텐데. 거기에서 생각이 미치자 문득 이시우가 떠올랐다. 부모님이나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해줬던 고모가 아니라.
그런 생각이 드는 게 퍽 우스웠다.
***
언제였더라.
이렇게 미칠 것같이 무언가 가지고 싶은 적이 한 번 있었는데.
혈마는 입술을 비죽였다. 만약에 눈앞의 소년이 바깥에서 자신과 만났더라면. 소년은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지 못했으리라..
장소의 특수함. 그것 하나로 자신을 이렇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자기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제대로 사용하면 결계째로 이곳이 부서질 것이 뻔하기에.
그렇기에 아주 약간. 약간의 시간이 필요로 했다. 그러나 그 소년은 그것을 아는 듯 자신을 집요하게 노렸다.
혈마, 홍유화는 앞을 바라보았다.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며 보랏빛의 잔상이 공간을 점했다. 그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이제 막 중격에 도달한 소년이 자신을 압도하고 있다.
제 자리에서 방어하는 것이 사방팔방 움직이면서 공격하는 것보다 당연히 더 편하다. 들이는 힘, 체력, 속도. 그 모든 것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정해야 했다.
그런데도 눈앞에 소년은 자신마저도 움직임을 이따금 놓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검주의 어검, 거악 중 성실한 나태가 말했던 탐난다는 특성, 광익. 도대체 몇 개의 특성이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그런 특성이 있다고 들었다. 남의 특성을 빌리는 능력. 그 대가로 정신력이 낮아진다고 했었나.
살짝.
혀로 입술을 적셨다. 순간적으로 소년을 조종하는 134개의 방법이 떠올랐다.
‘아니야. 그런 것 보다는.’
하나같이 나사가 빠진 듯한 방법들이다. 가장 확실한 것은 소년이 가장 찬란하게 빛날 때. 심장에 못을 박고 영원히 박제하는…….
쾅!
보랏빛의 뇌광이 보랏빛의 불꽃과 엮이며 날아오는 공격에 홍유화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홍유화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계획이 성공했으면 요정 여왕에게 꽤 골탕을 먹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늦었다. 그란데힐이 자신을 틈틈이 노리며 저 소년은 이미 결계를 군데군데 파괴하고 있으니까.
“이봐.”
“…….”
소년이 담담하게 무시하며 공격했다. 검이 휘둘러진다. 홍유화는 속으로 웃으며 손을 저었다. 저 소년의 공격은 범상치 않다. 직선으로 오는 검이면서도 수많은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반응하면 즉각 즉각 바꿀 수 있도록. 그 변화는 대충 87개. 무시무시한 숫자다.
홍유화는 힘껏 손을 휘둘렀다. 바람이 크게 일며 소년이 뒤로 물러났다.
“그대. 이름이 뭐지?”
“…….”
“본녀의 말을 계속 무시할 셈인가?”
소년이 잠깐 고민하던 표정을 짓더니 툭 하고 던지듯이 말했다.
“이시우.”
“이시우. 좋은 이름이네. 꽤 현명하기도 하고. 너, 본녀와 함께 교단에 투신할 생각은 없나?”
“없어.”
“확고하군. 안중에도 없는 건가.”
홍유화가 나른하게 웃었다. 아니, 나른하게 웃는 척을 했다.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탐이 났다.
“오늘은 이만 물러나지. 아, 혹시 내가 죽인 두 명 중에 그대의 친구가 있나?”
홍유화가 손짓으로 가리켰다. 미라의 형태를 한두 명의 소년이 보였다. 이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홍유화는 그 행동에 의아해했다. 친한 사이라도 알기 힘들게 말라비틀어진 시체를 보고 아니라고 단정하는 그 모습이 퍽 인상 깊었다.
쩌어엉!
홍유화가 창문을 힘껏 쳤다. 그러자 핏빛의 결계가 사방으로 파산하였다. 핏빛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다음에. 다음에 다시 볼 수 있게 될 때가 궁금하구나.”
홍유화는 그렇게 말하며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
“운이 좋았네요.”
“그러게요.”
그란데힐이 내 말에 긍정했다.
난장판이 된 방의 풍경이 보였다. 마치 폐허라도 된 듯 여기저기 바닥이나 천장 벽 등이 부서져 있었다.
……뭐, 인명 피해가 나는 것보다 이게 더 괜찮지 않겠어?
혈마는 도주했다.
나는 창문 틈을 바라봤다. 밖이 부산스러웠다. 여기저기서 요정족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 수는 족히 100명.
전부 하급의 영웅급의 능력을 지닌 보통의 경비원들이다. 혈마의 성격상 티타니아의 진노를 피하고자 저걸 전부 제압할 테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푹 주저앉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로 운이 좋았다. 혈마는 ‘권능’을 제대로 쓰지도 않았고, 손대중한 게 보였으니까.
그리고 몹시 탐난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었지. 아마 다음에 나를 포섭하려고 마인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음.’
혈마에 눈에 든 건 별로 기쁘지는 않네. 하루빨리 윤채린을 키워서 보호해달라고 해야겠다.
“괜찮으십니까?”
“네, 뭐. 생각보다는 괜찮네요.”
생각보다 괜찮았다. 유아독존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고 내가 어디까지 통용될지 알 수 있었으니까.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그란데힐에게 내가 광익을 쓴 모습을 들켰기에 조금 불안했다. 뭐, 그건 그거고 일단.
“그란데힐.”
“네?”
내가 이름을 부르자 그란데힐이 반문했다.
“뒷일 좀 부탁할게요.”
나는 까무룩 기절했다.
***
나는 한동안 병원에 신세 졌다.
유아독존으로 상태를 원상 복귀 할 수 있지만, 몸에 준 부하만큼 일정 기간 유아독존의 힘을 쓸 수 없었다.
지난 3일. 그동안 정말 골골댔었다.
몸은 나른하지, 속은 매스껍지, 힘은 또 안 들어가지. 정신은 오락가락했다.
정신을 차리면 피곤해서 잠이 들고, 잠에서 깨다가 멍을 때리다가 다시 잠이 들고.
아니면 병문안 온 애들과 잡담한다거나.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윤채린, 윤승하, 임나연, 이지아. 뿐만이랴. 중국에서 온 샤오메이랑 타오도 왔었고, 남다윤도 시간을 내서 왔었다. 놀라운건 협회에서 일하는 동안 인맥이 꽤 많이 왔었다.
나를 보고 우는 것도 많이 보았다. 특히 여성진이 많이 울었는데 그 중에서도 은수아가 가장 서럽게 울었었다. 그걸 본 여성진이 굉장히 오묘한 표정으로 은수아를 봤었지.
다른것도 있었다. 몸에 좋다는 걸 바리바리 챙겨 왔었다.
‘그중 임나연이 가장 심했지.’
다른 애들은 과일 바구니나 이런저런 거를 사 왔는데 임나연은 몸에 좋은 것들을 가져왔었다. 조금만 더 가면 영약으로 갈 회복제라던가, 억 단위의 회복제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서 나한테 먹이라고 권유했었다.
한 번 잠에 들 때마다 선물이 엄청나게 쌓였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임나연이 선물로 가져온 복숭아 하나를 과일 바구니에서 꺼냈다.
‘무슨 복숭아가.’
은은하게 빛나는 복숭아를 보면서 어이없어했다. 천도 복숭아. 중국에서 년에 30개밖에 생산이 안 된다고 들었다.
이건 일종의 영약 같은 건데, 능력치나 특성을 주지는 않지만, 회복력을 올려주며 마나 감응력을 올려줘서 억만금을 줘도 못 구하는 물건이다. 그런데 임나연은 무슨 수로 이걸 구한 걸까.
아삭.
나는 작게 복숭아 하나를 작게 물었다가 눈을 부릅떴다.
맛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맛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복숭아를 먹어 치우니 아까보다 몸 상태가 훨씬 좋아진 것을 느꼈다.
나는 거울을 꺼내어 얼굴을 바라봤다.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 어지간한 여자들을 아래로 보는 압도적인 외모가 보였다.
그리고.
‘유아독존.’
가볍게 숨을 내쉬며 특성을 발동했다. 희끄무레한 검은색의 왕관 같은 것이 내 머리 위에 생기며 내 몸이 시간을 되돌리듯 돌아가기 시작했다.
'좀 더 진해지고 있어.'
특성의 숙련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대로 좀만 더 간다면 아마 2년 후쯤에 진화할 수 있을것 같은데.
나는 몸을 일으키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였다. 몸이 가볍다. 어지럽던 머리가 상쾌해졌다. 3일 동안 병원 때문에 쉬었으니 슬슬 훈련이나 하러 가볼까.
'몸이 굉장히 뻐근하니까.'
전생에는 이런거 상상도 못했는데.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쑤신다니.
“그때의 능력으로 회복하신 겁니까?”
조용히 느껴지는 인기척. 그란데힐이 눈을 반짝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 환자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때 전투를 눈앞에서 봤으니까요. 환자였었던 거죠?”
그란데힐이 조용히 카메라를 들었다.
“환자니까 무리하지 말라는 진단받았습니다.”
“환자였었던 거죠?”
그란데힐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떨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