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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03화 (103/298)

〈 103화 〉 변화(4)

* * *

문자를 보낸 뒤, 나는 머리를 굴리며 은수아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았다.

피.

머리를 조금 굴리자 떠오른 곳이 있다. 인원수를 맞추지 않아, 폐부가 될 위기에 처해있는 부실이다.

이 부실에 들어가면 1학기 정도만 지나면 피에 저항력이라는 스킬을 배운다. 혈마와 싸울 때, 꽤 유용해서 배우는 이들도 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실로 향해 뛰어갔다.

부실 문을 열 자 보이는 것은 바로 핏빛의 결계였다.

지식열람으로 확인했다.

「파흐라의 수식을 기초로 175가지의 수식으로 짜여 만들어진 결계. 은신을 위주로……」

주술로 수식을 짜서 만들어진 결계였다.

이만한 주술 실력을 갖춘 존재는 2명뿐인데, 한쪽은 영웅이다. 그렇다면.

‘혈마가 진짜로 왔다고?’

나는 당황해했다.

혈마가 왜 여기에 왔지. 결계의 수준을 보건대 하루 이틀 준비 한 것도 아니었다. 지식열람이 말해 주는 정보를 보니 이 결계를 만드는 데만 천문학적인 재화와 많은 마인들이 갈려 나갔다.

여기서 갈려 나갔다는 건, 주술적인 용도로 제물로 바쳐졌음을 뜻한다.

“여기입니까?”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란데힐이었다.

“네.”

“꽤……귀찮군요. 주술적 요소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주술은 일반적으로 한번 만들기가 힘들지만, 한 번 완성되면 굉장히 트릭키하기 때문에 주술에 문외한이면…….”

“괜찮아요. 이 결계에 대해서 꽤 알고 있거든요.”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다.

나는 지식열람을 이용해서 주술 결계 외부에 핵이 되는 부분을 찾았다. 저거 하나 부순다고 당장 이 결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안쪽으로 가는 길을 안전하게 갈 수 있을 분이지만.

“교장 선생님은…….”

“죄송하지만, 교장 선생님은 바로 올 수가 없습니다.”

역시나 그랬다. 하지만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지금쯤 세계수 정화하고 있을 시간대니까. 아마 요정족에서 상급 이상을 자랑하는 전력들 역시 그곳을 수호하느라 바쁘겠지.

'이러면 내가 빡세게 굴러야겠군.'

혈마와 그란데힐이 싸운다면 그녀가 이길 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혈마는 자신보다 약한 상대한테 한없이 강하니까. 100번 싸우면 100번은 그란힐데가 죽는다.

“그럼 시우 님은 다른 요정족들이 오면 말해 주십시오.”

“혼자 들어가시게요?”

“네.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사건이니까요. 저희 요정족들이 처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그란데힐이 높은 확률로 죽는다.

“그래도 같이 가요. 제가 주술에 대해서 엄청 해박하니까요.”

“…….”

그란데힐이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정 여왕님에게는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추후 큰 보상이 있을 겁니다.”

"뭘요, 학생으로서 당연한거죠."

눈을 빛내며 말했다. 요정 여왕은 통이 크지만 그란데힐때문에 꽤 제한을 받는다. 그런데 그란데힐이 요청하는거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진다.

“그럼 결계에 편하게 들어갈려면 우선 저기 부분을 파괴…….”

쾅!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검은색의 구체가 내가 말한 부위를 파괴했다. 그러자 결계의 진한 핏빛이 옅어졌다.

“역시 대단하시군요. 그럼 들어가시죠.”

그란데힐이 흰색 장갑을 끼며 말했다. 결계 안으로 진입하니, 핏빛의 배경이 펼쳐졌다. 묵묵히 걸으니 핏빛의 배경이 사라지고, 50m 남짓한 크기의 부실이 보였다.

쓰러져있는 은수아와 혈마.

은수아가 일방적으로 맞은 듯한 흔적이 보였지만, 놀랍게도 혈마의 뺨에 얇은 혈흔이 있었다.

“본녀를 잡기 위해서, 요정 여왕의 오른팔까지 나서다니. 본녀가 꽤 탐났나 봐?”

“…….”

그란데힐이 묵묵히 단검을 꺼냈다.

혈마가 손을 뻗었다. 길쭉하고 하얀 팔이 뻗어지자 그란데힐이 단검을 내던졌다. 그러나 혈마의 손을 따라 붉은 빛의 피가 둥그런 원형을 그렸다.

단검이 그곳에 부딪히려는 순간, 단검이 허공에 갑자기 나타난 검은 구멍으로 빨려 나가 혈마의 머리 뒤편에 나타났다. 혈마는 그것을 보지도 않은 채, 손을 뻗어 단검을 잡았다.

“흠, 역시 공간계는 꽤 귀찮구나.”

귀찮아 보이는 표정이 아닌데. 혈마는 웃고 있었다.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란데힐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지식열람으로 결계를 살폈다. 이런 종류의 결계는 핵의 중심을 부수면 간단하게 무너진다.

‘핵의 위치는…혈마가 가지고 있는 구슬이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혈마와 그란데힐이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공간계 속성의 힘으로 뭉친 검은색의 구체와 혈마의 주술과 피가 사방에서 터져나갔다.

나는 그 광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몸속의 뇌령들을 끌어올렸다. 들숨과 날숨을 반복했다.

지식열람으로 혈마의 상태 창을 훔쳐보았다.

이름 : 홍유화

근력 : 40

민첩 : 35

체력 : 30

마력 : 40

고유능력 : 아타락시아

특성 : X

모든 능력치가 나보다 2배 가까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혈마가 내 능력보다 2배 높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능력치는 10의 배수가 될 때마다 증폭된다. 그 계수는 최소로 잡아도 2~3배.

거기다가 문제는 혈마의 고유능력이라 불리는 아타락시아가 문제다.

내가 가진 능력인 유아독존이 정신계 강화와 신체를 다시 원상 복귀 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아타락시아는 육체와 정신을 항시 평정한 상태로 만들며, 소위 천재들만 가진다는 ‘영감’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번뜩임이라는 특수 능력치. 싸우면서 성장하는 괴물이며, 주인공에 대척점에 있는 존재.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

정리하자면 그녀는 완벽한 밸런스 형태의 능력자다. 그녀가 비록 마인이라고는 하나 주술과 무술 모두 상위격에 도달한 완전체.

‘상격부터는 문제가 많지.’

10만 명이 넘는 영웅 중에서 중격에 도달하는 것은 그야말로 손에 꼽는다. 전 세계를 뒤져도 그 수는 10,000여 명을 채 넘지 않는다.

그리고 상격으로 올라가면 그 수는 극단적으로 줄기 시작한다. 많아봤자 1,000명 이내. 그리고 상격으로 오르면…….

‘권능’에 발을 들이게 된다.

스스로가 만든 ‘법칙’이 세상에 구현 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나랑 그란힐데가 혈마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건 위험해.’

혈마의 능력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그렇다고 어쭙잖게 들이대는 것도 힘들다. 다만 우리에게는 이점이 있다.

시간이 우리 편이라는 것. 이곳이 아카데미의 본부라는 것. 세계수의 영향을 받아 마인들은 이곳에서 힘을 제대로 쓸 수 없다.

파지지직!

몸속의 뇌령들이 들끓는다. 뇌령들이 몸 사이사이를 헤집으며 신경을 극대화한다. 오감이 한없이 넓어지고 시야가 보랏빛으로 물든다.

그리고.

뇌령신공 오의

뇌혼?

그리고 팔찌에서 자파의 단을 꺼냈다. 일순간 모든 능력치를 올려주는 단. 그러나 5분이 지나면 탈진 상태에 빠진다. 나는 그것을 망설임 없이 입에 넣었다.

그렇게 된 내 능력치는.

이름 : 이시우

근력 : 20

민첩 : 35(20+15)

체력 : 22

마력 : 20

고유능력 : 유아독존

특성 : 천의 가면(S), 지식열람(S), 천수(S), 음양체 (S­), 변강쇠(A)

극단적으로 높아진다.

그리고 가면을 쓴다. 얼굴 위에 무언가가 덧씌워진다. 그것을 중첩하고, 중첩하고, 중첩한다. 오른쪽 어깻죽지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보랏빛의 날개가 펼쳐졌다.

마나가 용솟음치며, 검이 공명한다.

페널티 때문에 아끼고 아꼈던 기린의 가면까지 장착한다. 그것으로 민첩은 40이 넘었다. 근력은 버린다. 나머지는 체력과 마력에 투자한다.

‘아슬아슬하게 30.’

원래대로라면 이런 식의 도핑은 일종의 금기다.

능력치를 한순간에 올리는 능력일수록 그 부작용은 심하다. 지식열람으로 확인해본 결과 3개월 동안 나는 움직이지도 못할 거니까. 그리고 싸울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고작 1분도 채 안 된다.

‘그래도 괜찮아.’

광익이 파르르­떨며 뇌광에 공명한다. 아공간에 미리 챙겨둔 검을 꺼냈다. 검의 제질이 꽤 아쉬웠다.

“너.”

혈마가 그란데힐의 공격을 막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표정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이었다. 한순간의 도핑으로 능력치만은 그녀에게 필적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기술의 공백이 생긴다. 무식하게 이동하고 때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혈마가 유리해진다. 이능자나 마법사라면 이것만으로도 위험하겠지만, 그녀는 무인이다. 싸우는 법을 안다.

이렇게 되면 시간의 압박을 받는 처지가 반대로 된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한가지 특성이 있다. 천수.

남다윤하고 김은정이 극찬한 내 기교는 천수에서 비롯된다. 기교로 유명한 상격에 필적하는 ‘기교’가 있다. 천수의 출력을 끝까지 올렸다.

땅을 박찼다.

팡!

공기를 격하며 순간이동을 하듯이 이동했다. 한순간 혈마도 당황한 듯, 눈을 떨며 아슬아슬하게 핏빛으로 물든 기로 손을 보호하며 내 이동지점을 격했다.

검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쾌. 그러나 언제든 변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검이 수십 가지의 변화를 내포하며 선의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진다. 혈마가 손으로 받아치려 했다. 정면 승부는 피한다. 그녀의 근력은 수치만으로 나보다 두 배는 높다.

선이 점의 궤적을 그렸다.

그러자 혈마가 당황해하며 그대로 핏빛의 기를 뿜으며 거리를 벌렸다.

“어떻게…?”

의문에 답해줄 시간이 없다. 주술사로서도 대 주술사라 불리는 혈마는 공간 자체를 격하는 능력이 있다. 내가 아무리 빨라도 공간체로 공격하면 그것을 피하기는 힘들다.

아니, 나 혼자서는 되지만, 그란데힐과 은수아까지 피신시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라도 그럴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최소 1초. 그 시간 벌이 마저 묶어야 했다.

다시 땅을 박찼다. 교실 벽을 박찬다. 천장을 박찼다. 뇌령신공의 보법, 폭뢰질주보를 극도로 끌어올렸다. 보랏빛의 섬광이 어질러지듯이 사방으로 쭉쭉 뻗어갔다.

그란데힐이 어느새 은수아를 이끌고 뒤로 물러나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며 검을 꺼냈다. 어검. 남다윤의 특성이 내 가면에 호응하며 쏘아지듯이 날아갔다.

혈마가 검을 쳐냈다. 검이 바스러지듯이 가루가 되며 흩날렸다. 이것으로 확신했다. 그녀는 내 움직임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다.

파르르­.

광익이 떨며 속도를 더 높였다. 천장을 박차고, 다시 땅을 박찬 다음 옆구리를 벤다.

카카캉­. 보랏빛의 뇌광이 둘린 검이 손에 막혔다. 다시 한번 거리를 벌리고 이동한다. 이번엔 땅에서 천장으로. 그리고 다시 한번 혈마를 향해 공격했다. 카캉­. 이번에는 혈마가 조금 느렸다.

한자리에서 방어하는 혈마가, 사방을 이동하며 공격하는 내 공격보다 느리다는 의미였다.

그것을 깨달았는지 혈마의 동공이 떨렸다.

그러나 나한테도 시간이 별로 없었다. 나한테 남은 시간은 20초.

카가가가가강­!

나는 사방을 이동하며 혈마를 공격했다. 혈마의 팔과 얼굴에 잔 상처가 많아졌다. 이것으로 10초.

“이제 그대도 알 것이다. 그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단 것을.”

상하좌우 휘저으며 검을 휘둘렀다. 아공간 팔찌에서 창을, 낫을, 사슬낫과 폴암, 채찍과 태도를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5초.

“실로 훌륭한 기교다. 그것을 믿고 미친 듯이 능력치를 올렸지? 그 기교, 굉장히 훌륭한데,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마?에 투신해 본녀에게 충성하지 않겠느냐? 네 부작용을 모두 없애주마. 네 가족을 우리가 지켜주겠다.”

혈마의 말을 무시하며 검을 휘둘렀다. 나중에는 천변밖에 없어서 어검을 이용해서 분신을 만들어 검을 휘둘렀다.

3초.

“싫은 것이냐? 그럼 어쩔 수 없지. 강제로라도 데려가겠다. 본녀는 그대가 꽤 마음에 들었다.”

1초.

나는 재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혈마가 히죽 웃으며 천천히 걸었다. 걷는 자세에 여유가 굉장히 넘쳤다.

순간적으로 20m의 거리를 벌렸지만, 전신이 고통으로 삐걱거리며 몸에 힘이 전부 빠졌다. 하지만.

‘유아독존.’

희끄무레한 검은색의 왕관이 내 머리 위에 씌워졌다. 마치 시간을 되돌리듯, 몸 상태가 1분 전, 도핑하기 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재빠르게 자파의 단을 삼켰다. 그리고 바로 뇌혼. 전신의 감각이 다시 한번 날카로워지며, 시야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아니, 뭐, 이런…….”

어처구니없어하는 혈마의 표정이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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