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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02화 (102/298)

〈 102화 〉 변화(3)

* * *

……어둠이 내리 앉은 밤. 은은한 달빛 아래의 나뭇가지 위.

은수아는 한 소년을 응시했다.

응우옌 꾸억 응우옌.

도저히 사람 이름 같지 않은 이름이다. 응우옌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떠올리며 은수아는 어둠 속에 은밀하게 움직였다.

‘역시.’

응우옌이 수상한 행동을 했다. 주변에 누가 있나 확인 작업을 잠깐 하고 부실로 들어갔다. 은수아는 저 부실의 이름을 알고 있다.

혈마법의 역사

혈마법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여 혈마법을 방어하는 데 중점을 둔 부실이다. 인기가 굉장히 저조해서 곧 해체될 거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는 곳이었다. 안에서는 마력을 차단하고 있는지, 마력으로 투시할 수 없었다.

은수아는 고민했다.

이걸 이시우에게 알릴까 말까.

장난스레 웃음을 지으며 저 애가 범인이라고 하는 말이 떠올랐다.

은수아는 그때 이시우의 말을 부정했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 먼저 속여라. 응우옌이 혹시 몰라서 도망갈까 봐 때를 지켜보기 위해서. 라는 이유는 아니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그냥 그에게 인정받고 싶어서였다.

만약 은수아가 응우옌이 범인이라는 증거를 잡고 응우옌을 잡아서 이시우에게 가면 아마 자신을 칭찬해주지 않을까. 그런 얕은 생각이었다.

언제부터일까.

회귀자 이시우한테 인정받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이시우한테 인정받고 싶어진 기분이 들기 시작한 게.

문득 은수아는 그것이 우스워졌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이름 높은 영웅들조차도 자신을 인정하며, 조금 더 얄팍한 존재들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이 한 명에 손에 인정받고 싶어서 어린애처럼 이런 짓을 하는 게 꽤 우스웠다.

그것을 떠올리다가 은수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곧 전투가 벌어질지 모른다. 잡념은 사치였다. 앞으로 걸어가며 언제든지 싸울 수 있는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은수아는 부실의 문을 열었다.

붉다.

처음 본 그녀의 모습은 피를 형상화한 모습과도 같았다. 피처럼 새빨간 머리카락과 눈동자. 요사스러운 분위기가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붉은색의 용이 새겨진 검은색의 장포.

머릿속 한쪽에서 수배지가 떠올랐다. 최연소로 상격에 오른 인물.

심연교단의 소교주라 불리는 여자였다.

“……이런. 그리 주의하라고 알렸거늘.”

요사한 목소리였다.

은수아는 눈을 부릅떴다. 목소리를 잠시 들었을뿐인데 매혹될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은수아는 뒤로 물러나며 칠색을 휘둘렀다.

“진짜 쓸모가 없구나. 하필 발각되는 것도 상아탑의 후계자라니. 이렇게나 무능할 줄이야. 본녀가 이렇게 골치 아픈 건 꽤 오랜만이군.”

소교주, 혈마가 입을 열면서 은수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혼자 오지 말아야 했다. 눈을 돌리며 도망칠 구석을 찾았다.

“어딜 도망가려는 거니? 본녀가 그렇게 허술한 줄 아느냐?”

혈마가 요사하게 웃었다. 은수아는 이를 악물었다. 혈마라는 인물은 ‘주술’이라는 마이너한 장르를 다룬다.

마법보다 불편하고, 즉각 발동이 안 되며, 대 주술사라고 불리는 이가 하위 주술을 쓰는 데에도 시간을 잡아먹는 비효율의 극치인 것이 바로 ‘주술’. 그러나 그 주술에는 한가지 강점이 있다.

한번 발동되면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라는 것.

운만 좋다면 자기보다 한 단계의 격 높은 상대로도 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주술의 크나큰 이점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말한다면 ‘운이 없다’라면 자기보다 한 단계 격 낮은 상대로도 버거운 게 바로 주술사다.

은수아는 칠색을 해방했다. 윤채린하고 싸우기 위해서 남겨둔 비장의 한 수.

빌런을 상대로 보이기에 아까운 힘이지만, 혈마정도면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상대다. 본래라면.

“영역 전개. 칠색 개방.”

일곱 빛의 색이 그녀를 감쌌다. 붉은색과 주홍색이 그녀의 귀를 감쌌고, 노란빛과 초록빛이 그녀의 양손에 머물렀다. 파란빛이 그녀의 가슴 중앙에 오고, 남색과 보랏빛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붉은빛과 주홍빛이 귀걸이가 되었고, 노란빛과 초록빛이 그녀의 손에 반지가 되었다. 푸른빛의 브로치가 가슴에 장착되고, 남색과 보랏빛이 그녀의 교복 대신, 옷의 형태로 짜이며 우주를 짜아 만든 듯한 드레스로 화했다.

──이것이 바로 방학 동안 단련해온 자신의 새로이 각성한 힘.

“이 모습을 보인 것은 네놈이 처음이다. 나의 전력을 해방할 수밖에 없는 너에게 찬사를 보내마.”

“……그, 렇군.”

혈마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은수아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칠색개방­엠페러 모드는 은수아가 원래 구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왜냐하면 은수아가 ‘효율’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흑염을 두른 것을 포기하고 칠색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치한 이 상태에서 그녀의 전투력은 극단적으로 높아진다.

칠색만으로 ‘출력’하나만 윤채린을 능가했다면 지금의 은수아는 ‘출력’ 하나만으로 윤채린을 압도할 수 있다.

은수아는 좀 더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칠색개방­엠페러 모드는 정말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한가지가 부족했다. 바로 시간이다. 이 상태의 칠색은 은수아의 마나를 극단적으로 잡아먹는다.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1분도 채 안 된다.

은수아는 손을 휘둘렀다. 순간 공간이 짓뭉개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혈마는 눈을 부릅떴다. 저 오글거리는 작명에 말투.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정신을 갉아먹어서 대처가 늦었다. 저 힘, 굉장히 위험하다!

촤악­혈마의 주변에 사방으로 핏물이 번졌다. 근처에 있던 응우옌과 이름 모를 학생의 머리가 핏빛의 궤적에 위로 솟았다. 응우옌과 학생의 몸이 미라처럼 바짝 말라가며 피를 뿜어냈다.

원래 조금씩 가지고 놀 생각이었지만, 저 힘은 위험하다.

중격 이하에게 뚫리지도, 흠칫조차도 나지 않을 거라 자부한 결계가 조금씩 뭉개지려 하고 있었다.

그건 위험하다.

아직 자신은 요정 여왕과는 싸워서는 안 됐다.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면 그녀의 ‘눈’ 때문에 결계가 걸린다. 이 결계를 만드는 데 들인 공도 컸다. 자그마치 중상격에 이른 마인 10명과 천문학적인 재화를 갈아서 만들었으니까.

혈마는 다급하게 은수아에게 돌진했다.

***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마나라는 입자를 인지하고 그 행위를 반복하면 그것이 내가 공부의 기초가 된다. 어떤 혈도를 따라가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기본적인 행위는 그러했다.

그런 의미에서 뇌령신공은 조금 특이했다.

몸속의 뇌령을 만들고 그곳을 분열시켜 몸속 곳곳이 놔둔다. 그러면 뇌령이 알아서 마나를 호흡하며 그것을 점점 늘린다. 물론 사용자가 마나를 호흡하면 더 많은 양의 마력을 얻을 수 있다.

뇌령은 마나를 먹으면서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뇌령들끼리 잡아먹기 시작하지.’

뇌령신공은 일종의 고독이었다.

육체라는 항아리의 뇌령을 풀어두고 한 마리의 뇌령이 남을 때까지 뇌령들끼리 서로 잡아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뇌령이 한 마리가 남게 되면, 그것을 뇌신?이라 칭하기 시작한다.

뇌령이 뇌신으로 변화하면 뇌령신공은 뇌신류로 변화한다.

이것이 뇌령신공의 기본 골자였다. 스스로 진화하는 무공. 그것이 무신 혁월이 만든, 성장하는 무공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무공을 배울 수 있다.

‘정말 악랄한 배치야.’

몸속에 자리 잡은 뇌령 때문에 다른 무공을 익히지 못한다. 다른 무공을 익히려고 하면 뇌령이 단전에 자리 잡은 무공을 잡아먹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무공서는 상격이 아니면 도전할 수 없는 던전 안에 있다. 혁월의 무공이라고 해서 익히려다가 죽은 게이머들이 몇인가.

게이머들은 제작진의 악랄함에 혀를 둘렀다.

하지만 수 많은 시도 끝에 뇌령신공을 익히는 법을 깨달았다.

기본 심법은 정도는 배워도 되지만, 그 기본에서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안 된다.

터무니없는 리스크. 그러나 리턴은 확실하다.

우웅!

뇌령들이 몸을 떨었다. 이윽고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하며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라진 뇌령들이 삼 분의 일.

머리가 붕 뜨며 세상이 보랏빛의 색으로 바뀌었다. 어떤 것으로 비교 불가능한 쾌락이 내 몸을 덮쳤다.

정신의 성장.

일정 이상의 영웅들과 마인들 부터는 색色을 멀리한다는 말이 있다.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게 위함이다. 정신적인 성장은 그 무엇과도 비교도 할 수 없는 쾌락이기에.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해가 갈 것 같았다.

‘슬슬 일어나볼까.’

몸을 주섬주섬 일으켰다. 탈력과 나른함이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몇 시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시간은 어느덧 8시 30분을 가리켰다.

그리고 은수아의 애매모호한 문자가 와 있었다.

[은수아]­도와줘. 피.

나는 빠르게 몸속의 마나를 돌렸다. 머리가 맑아지며 몽롱한 상태에서 깨어났다. 은수아가 도와달라고?

윤채린 만큼 아니지만, 비교 대상이 윤채린일 뿐, 그녀는 고집 있고 혼자서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 이유 대부분이 멋있으니까­라는 이유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수아가 도와달라고 한다면 그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머리를 굴렸다. 지금 은수아를 위협할 수 있는 적이 근처에 있는가.

……없다.

그러나 사건이라면 하나 존재했다. 최근 응우옌이 ‘원작’보다 빠르게 타락하고 있었다. 아마도 마인이 아카데미에 침입 한거지.

왜 이렇게 마인이 자주 침입하냐면 그건 다 이유가 있다. 요정 여왕이 마왕에게 당한 상처가 아직 심각했고, 오염된 세계수를 정화하는데 요정족들이 대부분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다가 멈칫했다. 피. 이 단어가 굉장히 꺼림직하게 들렸다. 교단의 소교주라 불리는 혈마가 유력해 보이는데.

‘설마 얘가.’

나는 굉장히 의아해했다. 혈마. 무협지에서 흔히 천마정도의 포스를 가지고 있는 이 별칭을 가지고 있지만 혈마는…….

‘혈마일리가 없다.’

나는 단정했다. 하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은수아가 위험하다.

나는 재빠르게 그란데힐에게 연락했다. 마인이 침입한 것 같다고. 그것도 은수아조차 위험할 정도의 마인이.

답장은 빠르게 왔다. 왜, 어째서, 어떻게. 그런 것은 묻지 않고 간결한 답변이었다.

[그란데힐]­어딥니까?

­모르겠어요.

[그란데힐]­그럼 요정족을 풀겠습니다.

그란데힐이 재빠르게 대처한다고 했지만, 굉장히 불안했다. 늦으면 은수아를 잃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 나는 입술을 깨물며, 그란데힐에게 빠르게 문자를 보냈다.

­…해드릴게요.

[그란데힐]­어떤 걸 말입니까?

­여장이요. 수아 찾으면 해드릴게요.

읽은 흔적만 있고 답변이 없었다. 괜찮은 거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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